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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꾼 출신 서울대 수석합격자 장승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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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무슨 일이든 공사판에서 삽질할 때처럼, 입시 공부하고 시험치를 때처럼 하면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에 충만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그런 과정을 고스란히 다시 시작하지 않는 이상 그 모든 것이 한낱 추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지난 5년간 입시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사람에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장래에 내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은 산더미 같고 내가 넘어야 할 한계도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한계들을 뛰어넘기 위해 나는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하리라. 이제 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 p. 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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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무엇 하나 갖춘 것 없는 나 자신이 싫었지만 차츰 나 자신에 내제된 '잠재력'을 확인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과 가능성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보통 사람들에게 숨겨진 위대한 에너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 내제된 그러한 가능성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운명을, 한계를 바꿀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럴 힘이 있다.
--- 머리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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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입시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사람에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장래에 내가 구체적으로 무슨일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은 산더미 같고 내가 넘어야 할 한계도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한계들을 뛰어넘기 위해 나는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하리라. 이제 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에필로그 부분에서...
--- p.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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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즐거움이라는 것은 물질적 쾌락과는 달리 제로 섬 게임이 아니다. 어느 한 사람이나 특정 집단이 그런 즐거움을 지나치게 많이 누린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짧은 인생을 보다 넓고 깊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앎'이라는 것. 그래서 배움의 즐거움을 역설한 공자의 말씀은 언제 들어도 새로운 영원한 진리인가 보다.
--- p.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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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와 싸워야 하는 수험생의 하루는 어마어마한 감옥이다. 한치의 빈 틈도 없는 일정의 틀은 마치 거대한 비위덩이처럼 우리를 짖눌러서 가슴 답답하게 한다. 이런 빡빡한 일정이 계속 이어진다면 버텨 낼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하루 이틀 견디며 해나가다 보면 어느순간 교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전혀 갑갑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공부만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도 마음은 오히려 편안하고 가벼워 지곤 한다. 일단 극복하고 나면 그것은 감옥도 한계도 아니다.
---p.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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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더 한층 파란만장하고 눈물겨운 생존투쟁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는 분의 소개로 대구 근교 반야월이라는 곳에 있던 한 자동차 운전학원의 구내 간이 식당에서 장사를 하게 되었다.
--- p.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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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수야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아저씨들 중에서 유일하게 호출기를 가지고있던 김씨아저씨가 헐레벌떡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승수야 니 서울대 수석 합격 했단다!' 글쎄 이런 순간에도 그저 덤덤하게 한번 씩 웃어 버리고 말면 얼마나 멋있어 보였을까 하지만 나는 역시 그런 위인은 못되는 모양이다. 진짜 좋아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내 정신이 아니었다. --- p.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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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대학노트 한 권 분향의 풀이가 들어가는 수학 문제를 암산으로 너끈히 풀어낸다고 한다. 보통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가 선천적으로 남다른 지적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젊은 시절 조정 선수였던 그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이라는 불치명에 결려 사지 육신을 꼼짝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침조차 갈무리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신체 가운데 머리 하나밖에 쓸 수 없에 되었고, 그렇게 해서 남들보다 많이 쓴 머리가 좋아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 p.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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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을 하느라 땅바닥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아카시아 한 그루가 서 있었던 것이다. 아니 두 그루였다. 그러나 그들은 한 몸을 하고 있었다. 바지 하나를 두 연인이 같이 입은 듯 1미터쯤 한 줄기로 자라던 그 아카시아는 위로 올라갈수록 두 줄기로 갈라져서 더 이상 벌어지지 않고 곧게 곧게 자라고 있었다. 세상 그 어떤 연인들도 나눌 수 없을 것 같은 은근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마주 보고 선 채, 전생에 다하지 못한 사랑을 나무로 태어난 이승에서라도 다하겠다는 듯, 그래서 영원히 한 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하늘에 시위하듯.
--- p.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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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일이다.싸움도 술도 오토바이도 다 시시껄렁해 보이고 모든 게 회의스럽기만 하던 그 시절,지금껏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열정이 새삼스럽게 불타오르기 시작한 건,봄날 보았던 고려대학교의 교정이 환상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이상의 소설 <날개>의 주인공이 겨드랑이에 가려움을 느끼며 날아오르기를 안달하듯이 내 가슴속에도 열망이 피어 올랐다.
'날자,한 번만 더' 언감생심 꿈조차 꾸지 않았던 '대학'이라는 곳이,갑자기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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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을 할 때, 특히 오락실 홀맨 노릇을 하던 시절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일들도 반드시 필요하고 누군가 해야 할 일 이긴 하겠지만, 웬지 창조적인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단순히 여기에 있는 물건을 저기로 옮겨 놓고, 혹은 사람들의 시중을 들어 주면서 돈을 버는 것보다는 내 조그만 힘을 보태 뭔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
--- p.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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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건 배달을 할 때, 특히 오락실 홀맨 노릇을 하던 시절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일들도 반드시 필요하고 누군가 해야 할 일 이긴 하겠지만, 웬지 창조적인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단순히 여기에 있는 물건을 저기로 옮겨 놓고, 혹은 사람들의 시중을 들어 주면서 돈을 버는 것보다는 내 조그만 힘을 보태 뭔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 내 생각 이었다.
--- p.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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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하는 풍경 가운데 남과 다른 게 있다면 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로 암기를 위해서, 혹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대개들 연필로 연습장에다 무엇을 써 보거나 그려 보면서 공부를 하는데, 나는 전혀 그러지 않는다. 수학 문제조차도 암산으로 풀 때가 많고, 다른 과목은 아예 하루 종일 공부해도 연습장과 연필이 필요없다.
책을 두 손에 쥐어 세우고 30c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한 채 책과 눈싸움이라도 벌이듯 글자를 뚫어지도록 쳐다보고 앉아 있는 것이 나의 공부하는 자세다. 영어 단어를 외울 때도 종이에 써 보지 않는다. 국사의 연대를 외울 때도 마찬가지다. 지구과학을 공부할 때 나타나는 복잡한 천구의 그림이나, 행성의 궤도상의 운동을 이해하려고 할 때도 역시 그려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머리 속에다 그려 보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애쓴다. --- p.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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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힘은 쓰면 쓸수록 커진다
처음 공사판에 나갔을 때는 하루도 채 버티지 못해 비실거려야 했던 그가 나중엔 어떤 공사장에 가서도 누구 못지 않게 일을 해낼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처음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첫 모의 학력 고사에서 200점을 받고도 감격스러워 했던 그가 비록 5년이란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 입시 공부 하나만은 그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서울대 수석 합격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지난 몇 년간 장승수는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사람의 정신과 육체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터득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두 자리 수 암산에도 헤매던 그가 지금은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두 자리 수 곱셈쯤은 어렵지 않게 암산하고 복잡한 4차원 도형문제까지 풀어낸다. 이러한 성과는 모든 평범한 보통 사람들도 다 해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사람의 능력은 다 오십보백보이고, 연습과 개발에 따라 얼마든지 그 능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땐 힘들지만 점차 실력이 쌓여감에 따라 더 힘든 일, 더 복잡한 공부도 해낼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장승수는 '자유'라고 표현한다. 도저히 해낼 수 없던 힘든 일을 해내고 풀 수 없던 문제를 풀어냄으로서 얻게 되는 자유. 한계라는 벽에 부딪쳐 답답하게 꽉 막혀있다가 그것을 뚫어냄으로써 확 트인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 누구나 자신의 힘을 단련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유를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자유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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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직업을 전전한 젊은이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눈
장승수는 26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꽤 다양한 인생을 경험했다. 탈선 고교생에서 막노동꾼으로 다시 서울대 수석으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도 그렇지만, 그 동안 종사한 직업만도 포크레인 조수, 오락실 홀맨, 신문배달, 물수건 배달, 가스 배달, 택시기사, 조경공사장 인부, 토목공사장 인부 등 열 손가락을 거의 다 채울만큼 복잡하다. 이런 다양한 사회체험 속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책 속에는 이런 자신의 독특한 이력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갖게 된 나름대로의 사회관과 가치관들이 진지하게 드러나고 있다.
"'세상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만을 출발점에 세워준다'는 말이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따금 노력하지 않고도 성공한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경우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별로 노력하지 않은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은 뼈빠지게 노력한 경우. 또 하나는 비록 겉보기에 성공한 것 같지만, 정작은 성공이 아닌 경우." "막노동판을 쫓아다니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실공사 문제였다. 가만히 앉아서 부당한 이득을 챙기려 드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려 드는 자들에게서 부실공사의 근원들이 생긴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다. 사람이 바뀌지 않고서는 부실공사를 비롯한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본질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노가다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내 몸을 움직이고 힘을 쓰면 없던 건물이 올라가고 다리가 생긴다. 생각이란 끼여들 틈이 없다. 어차피 원시시대에는 누구나 육체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따라서 막노동이야말로 가장 자연에 가까운 행동이고, 나도 그 단순함과 원시성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더운 여름날이면 땀을 많이 흘리며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굵은 소금을 준비해 다니며 모자란 염분을 보충해야 했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함께 일했던 성실한 아저씨들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오히려 땀을 흘리려고 골프장에 나와 서성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소금을 삼킬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무리 정당한 노력으로 번 돈이라 해도 무절제한 사치는 합리화 될 수 없을 것 같다.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가지고 누군가가 지나치게 많이 누린다면, 그만큼 소외된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드는 게 아닐까?" "부유하다는 것과 가난하다는 것,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과 그렇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삶의 모습에 편차가 생기는 것을 과연 그 사람의 후천적인 삶의 태도로만 환원시켜서 설명하고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보다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경우의 수'들이 오늘날 서로 다른 삶의 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남다른 노력과 재능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 해도, 운 나쁘게 그 시대와 사회에 적절하지 못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 같은 성공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진정어린 우호와 동정의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초 본성적인 윤리의식이 제도화되어,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진 능력껏 열심히 살아가기만 하면 그 노력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이상으로 꿈꾸어 볼만한 세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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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여준 힘과 가능성은 모든 보통사람들의 몫이다
이 책은 장승수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눈물의 체험담이나 영웅담이 아니다. 상대적이고 다양한 가치관들이 공존하는 이 시대에 더 이상 공부만이 미덕은 될 수 없고, 핍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억지 눈물을 뽑아 낼 수도 없다. 그가 돈 때문에 막노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거나 일을 해서 비참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공부만큼 일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고 즐거움을 느꼈다.
일도 공부의 연장이었다. 그래서 일 할 때는 일이 신나고 공부할 때는 공부가 즐거웠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대단한 성공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 맡은 일에 정진하듯 매달리고 그 속에서 하나하나 삶의 이치를 배워가는 성실한 젊은이를 만나게 된다.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를 통해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해 있는 열정을 끌어내고 그 힘과 가능성을 우리 모두의 몫으로 돌려주는 이 젊은이의 차분한 목소리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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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가 알게 된 것은 공부는 세상의 어떤 놀이보다 신나고 재미있다는 거였다. 책을 통해 얻는 지식 하나하나가 엄청난 발견의 기쁨을 주었고 이것은 과거 술집이나 당구장에서 느껴볼 수 없던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런던이 서울보다 훨씬 더 북쪽에 있는데도 왜 겨울 날씨는 서울이 더 추운가'에 대해 런던이 해양성 기후라서 따뜻한 편서풍과 멕시코 난류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리 공부를 하면서 알았을 때, 술 마신 다음날 갈증이 심하게 나는 이유가 알콜이 간뇌의 활동을 방해하여 신장의 세뇨관에서 수분 재흡수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물 공부를 하면서 알았을 때, 이런 일상의 궁금증들이 자신의 지식으로 해결된다는 것이 그저 즐겁고 감격스러울 따름이었다. 스무살이 넘어서야 자신이 가장 재미있게 해볼 수 있는 것을 찾은 셈이었다. 좋아서 하는 일에는 능률도 더 나기 마련이다. 입시학원을 다니던 첫해 모의 학력 고사를 처음 보았을 때 200점을 간신히 받아 4년제 하위권 대학을 갈 성적이던 것이 여름에는 중위권 대학, 겨울에는 연고대 정도를 갈 성적으로 뛰었다. 이런 학습 성과에 대해 그는 자신이 공부에 선천적인 자질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 얘기한다. 뭐든지 좋아하면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쉬워진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공부가 쉬웠다'는 것은 단순히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아니라 공부에 매달리면서 '얻어낸' 결과다. 그렇다고 해서 장승수가 공부만이 최상의 가치이고 모든 사람들이 공부에만 매달려야 한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따로 있다. 다만 장승수의 경우엔 공부가 가장 재미있고 매달려 볼만한 것이었기에,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가진 능력의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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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꾼 고교생, 막노동꾼, 서울대 수석으로 이어지는 삶의 역전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고, 공부를 안하니 자연스럽게 '딴 길'로 빠져버렸다. 고3 여름, 단지 지겨운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합법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구실이 생긴다는 이유 하나로 생활보호 대상자들에게 시켜주는 국비 직업훈련 과정에 들어가 포크레인 기술을 배웠다. 졸업 후 포크레인 실기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는 오락실 홀맨, 신문배달, 물수건 배달 등을 했다. 밤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먹고 오토바이를 질주하며 보내던 어느날, 문득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다. 고민 끝에,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을 바로 잡는 마지막 대안으로 '공부'를 선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년 후의 일이었다. 첫해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함께 시험을 본 동생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그는 동생의 학비를 위해 막노동일을 시작했다. 5월까지 돈을 번 뒤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다. 그해에 학력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328점을 받아 서울대 정치학과에 지원했는데 또 떨어졌다. 이번에는 6월까지 조경공사장에서 일을 한 뒤 다시 공부를 시작, 서울 법대에 지원했으나 또 떨어지고 말았다. 낮은 고교 내신이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세 번이나 떨어지고 나니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94년에는 아예 시험을 포기한 채 공사장에서 일만 했다. 95년도부터 고교 졸업 5년이 지난 사람에게는 수능 성적으로 고교 내신을 대체할 수 있도록 내신제도가 바뀌었다. 내신의 원죄에 묶여 있던 그에게는 구원과 같은 소식이었다. 다시 한번 도전했고, 결국 올 1월 난생 처음 1등을 하며 서울대 인문계열에 수석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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