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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무렵, ‘나’는 영혼으로 남은 동생 미조와 함께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외할머니는 항상 “별이 보이니?”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외할머니는 자신이 만난 설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폭설의 밤은 6년 동안 계속된다. 열네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나’는 외할머니의 기이한 죽음과 마주한다.
미주인 ‘나’가 열여섯이 되던 해 아빠는 육교에서 떨어져 뇌 한쪽을 잘라내는 사고를 당한다. 아빠는 일곱 살 어린아이로 되돌아갔고, 친할머니인 금미라 여사는 아빠가 사고를 당한 뒤부터 종종 정신을 놓는다. 그리고 이모부가 실종된다. 파일럿이던 이모부가 몰던 화물기가 바다에 추락한 것이다. 시신도 없는 이모부 장례를 치른 후 이모는 ‘나’의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한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이모, 그리고 ‘나’는 조난당한 사람들처럼 서로 슬픔의 점액질을 잇고 이어 시간을 견뎌낸다. 이모는 갑자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겠다며 섬으로 떠난다. 겨울방학이 되자 ‘나’는 이모의 ‘207mile하우스’가 있는 섬으로 찾아간다. 영혼인 미조도 따라온다. 섬은 버려진 곳이었고, 여인숙과 민박집이 즐비한 골목에서 나는 할머니 이야기 속의 설녀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설녀는 홀연히 사라지고 그곳에는 소설가 마리가 서 있다. 마리는 사람들의 인생을 소설로 써준다는 팻말을 내걸고 ‘나’에게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나는 마리가 손으로 쓴 두 편의 소설을 타자기로 옮긴다. 그 과정에서 소설을 의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 그들은 모두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다. 우연히 ‘나’와 미조와 그곳에서 만난 강아지 유령 나우는 마리를 미행하고, 그녀가 나비 표식이 새겨진 바이올린을 찾아 그곳까지 흘러온 사실을 알아낸다. ‘나’는 마리에게서 두 편의 소설 타이핑을 더 제안 받는데, 소설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 소설의 타이핑 작업을 남기고 마리는 섬을 떠난다. 미조는 마리가 내게 남긴 마지막 소설을 보지 말라고 말한다. 제목이 없는 그 기이한 소설은 ‘나’로 하여금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한다. “그녀는 모른다. 미주는 죽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 영혼으로 남은 미주와 강아지 유령 나우와 살아 있는 미조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의 외할머니 문복자이면서 마리인 나의 이야기이다.”(p.224) 죽은 것은 미조가 아닌 ‘나’, 미주였다. 아버지는 육교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그때,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나’는 죽었고, 뒷자리에 있던 미조는 살아남았다. 소설은 이 반전을 통해 상실과 이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작가의 말’에서 이별과 이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무엇이든 떠나보낼 수 있을 때, 떠날 수 있을 때 비로소 놓는다. 조금이나마 후회를 덜 한다는 것을 알기에 오랫동안 놓지 못했고 놓지 않았다. 이 소설은 첫 장편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왔다. 쓰고 싶은 마음은 심장 속에서 작은 새싹으로 돋아나 무섭게 무성해진 수풀이 되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의 방법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 생각한다. 나는 빨리, 많이 쓰지 못하지만 이 소설의 방에 앉아 있으면 크게 두렵거나 불행하지 않았다. 문장 하나를 쓰고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것에 머물러 잠드는 밤이 많았다. 그렇게 눈금을 조금씩 미래로 옮기는 일이 즐거웠다. 소설 쓰며 일상을 사는 소설가의 이름이 되기까지 긴 시간 에둘러 왔다. 지금의 나는 책상에 앉아 문장을 쓰고 그런 일이 최고의 사치임을 안다. 하루가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대기가 되는 만월의 생, 그 길 위에서 무릎 꺾이지 않고 부르는 문장의 노래, 어쩌면 그것이 내가 도달하고 싶은 세계인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에는 자전거 페달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자전거를 타며 밤의 꽃과 나무와 하늘과 별을 바라보느라 내가 페달을 밟고 있다는 걸 잊기도 한다. 무심히 다리를 움직이고 핸들을 틀고 앞만 보고 나아가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일. 그러나 나는 끝내 페달이 되지 못할 것이다. 매번의 이야기 속에서 자주 불행하고 절망하며 때로는 분노하고 슬프며 황망한 문장을 온몸으로 감각하느라 끝없이 나 자신을 괴롭힐 거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여 생의 뜨거운 흐름 속에서 열심히 때론 나태하게 순간을 견디며 그저 헤엄칠 뿐이다. 물의 결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파닥거리는 다만 지느러미인 것으로. 바람에 빛이 커튼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밤이다. 내가 어떤 이름이나 얼굴이어도 변함없는 온기로 등을 쓸어준 가족, 사랑한다. 이제 이 소설의 이별과 이별할 수 있겠다. 감사하다. 멀리 높게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