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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가로등, 포장마차, 비둘기, 열쇠, 스테레오, 낮불, 일기 , 씨앗… 2. 일몰, 안경, 돌부처, 고향, 도주, 저승꽃… 3. 그림틀, 종점, 버릇, 수첩, 편지, 권투, 심문, 국물, 색맹, 관절… 4. 일상, 추억, 양치기, 고무, 연행, 자존심, 본질, 미행 :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하루 혹은 그 짧은 나날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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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든다. 잠긴 문 앞에 서서 열쇠를 더듬거릴 때면 그는 항상 공연히 마음 한구석이 다급해진다. 그러나 그보다는, 막상 열쇠를 쥐고 자물쇠 구멍에 막 꽂으려 하는 순간에 그는 더욱 초조해진다. 그는 지금 쫓기고 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오층까지 층계를 뛰어올라왔다. 숨이 턱에 차 있고 다리와 허벅지가 천근이나 되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지며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있다.
그를 쫓는 자의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쇠를 댄 구두 밑창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치는 시끄러운 소리가 벌써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다. 서둘러야 한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꼬리를 타고 눈으로 흘러 들어가서 눈알이 쓰리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그는 눈살을 찌푸려 눈을 껌벅이며 여러 개의 열쇠들이 매달린 열쇠뭉치 속에서 현관의 자물쇠에 맞는 것을 고르기 위해 애쓴다. 이제 시간이 거의 없다. 당장이라도 그자가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땀이 밴 그의 손 안에서 열쇠들이 자꾸 미끄러진다. 혓바닥이 타들어 가는 듯하며, 온몸이 당장이라도 오그라들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불안한 눈초리로 연신 층계 아래쪽을 힐끔거린다. 드디어 찾았다. 그는 열쇠 하나를 엄지와 검지로 단단히 틀어쥔다. 열쇠가 자물쇠 홈에 닿는 순간, 마침내 그자가 아래쪽 층계참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자는 왼손으로 난간을 잡고서 막 한 발을 올려 디디려 하다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본다. 그는 미처 그자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얼른 고개를 돌려 열쇠를 돌린다. 그자가 쿵쾅거리며 계단을 뛰어올라온다. 보통 때 같으면 그자의 손이 그의 몸에 닿으려할 때 문이 열리고 그는 아슬아슬하게 문틈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리고는 황급히 자물쇠를 채우고서 문에 들을 기대고 선 채로 온몸으로 숨을 헐떡거린다. 그를 쫓는 그자는 결코 그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자는 매번 바로 문 앞에서 그를 놓쳐 버리고 만다. 그러면서도 그자는 전혀 포기할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모든 종류의 잠긴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린다. 그의 동행자가 열쇠로 문을 여는 동안 그가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그자는 어김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여 초인종을 누르고 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여튼 어떤 경우에도 그자는 그를 잡을 수 없다. 그렇게 되어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실제로 쫓긴다. ---p. 2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