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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 Ⅰ. 난(蘭)과 검(劍)의 노래 / Ⅱ. 「청포도」와 향연 / Ⅲ. 「절정」과 의열(義烈) / Ⅳ. 한시 「만등동산」과 「주난흥여」 / Ⅴ. 비명(碑銘) 「나의 뮤-즈」 / Ⅵ. 초혼가 「꽃」 / Ⅶ. 유언 「광야」 / Ⅷ. ‘내’ ‘노래’ 「광야」 / 서검(書劍) 40년, 이육사 연보 / 의의가패(依依可佩), 이육사 작품연보 / 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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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珍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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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베어내는 절창의 표현 ‘강철로 된 무지개’
3장 “「절정」과 의열(義烈)”이란 글은 「절정」 이해의 핵심이 되는 마지막 결구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의 의미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강철로 된 무지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오랫동안 미궁에 빠져 있었으나 저자는 형가의 고사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러 가던 당시 형가의 외침(또는 노래)이 하늘에까지 뻗쳤고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다(白虹貫日)”라고 한다. 해는 진시황 같은 지배자를, ‘흰 무지개’는 그 지배자를 찌르는 검(劍)을 의미한다. 형가의 고사를 통해 ‘강철로 된 무지개’는 바로 해를 찌르는 이 ‘흰 무지개’를 가리킨다는 것이 확인되며, 「절정」은 결국 일제에 맞서는 의열투쟁을 그린 시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육사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서 한시를 배워 능통하였고, 1942년 한글 시의 발표가 금지되자 한시는 육사에게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육사가 쓴 한시는 식민 폭압기 육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4장 “한시 「만등동산」과 「주난흥여」”에서 저자는 육사가 같은 날에 지은 오언율시의 「만등동산(晩登東山)」과 칠언절구의 「주난흥여(酒暖興餘)」를 분석하면서 「만등동산」이 시우(詩友) 신석초와 관련되고, 「주난흥여」가 혁명동지 윤세주와 관련된 작품임을 밝혀낸다. 특히 「주난흥여」에서 묘사된 달과 별의 위치와 천체 관측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 창작시기를 밝혀내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5장 “비명(碑銘) 「나의 뮤-즈」”에서는 폐병 발병 이후 육사가 현생을 넘어서려는 몸부림을 보이며 ‘영원에의 사모’를 노래한 유고작 「나의 뮤-즈」를 기존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이 시의 핵심 열쇠이면서 가장 해독하기 어려운 부분이 “보(褓)보다 크고 흰 귀를 자주 망토로 가리오”라는 구절인데, 저자는 이 구절을 사자관을 쓴 불교의 음악 신 건달바(乾?婆)에 대한 묘사라고 이야기한다. 영원에의 희구는 폐병 발병 이후 이육사 시의 중요한 특징으로, 「파초」의 ‘천년 뒤’, 「나의 뮤-즈」의 ‘몇 천겁 동안’, 「광야」의 ‘천고의 뒤’ 등의 구절은 육사의 화두가 죽음을 극복하는 것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중에서 「나의 뮤-즈」는 사자관을 쓴 건달바라는 화신(化身)을 통해 육사가 죽음을 넘어선 자신의 ‘영원한 과거’이자 ‘본래면목’을 노래한 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6장 “초혼가 「꽃」”에서 저자는 「꽃」이란 시가 3연의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에 있는 꽃성’이 해명되어야 온전히 해석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시의 내용을 통해 꽃성이 수미산을 가리킨다는 것을 밝혀내고 「꽃」이 수미산 도리천궁에 가 있는 극락왕생한 여러 영혼에 대한 노래라고 풀이한다. 즉, 육사는 이 시를 통해 자신보다 먼저 ‘꽃성’에 가 있는 혁명동지들의 영혼을 부르며, ‘생사를 같이하자’고 다짐했던 것이다. 7장 “유언 「광야」”에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독해되지 못하고 논란이 계속되는 「광야(曠野)」의 시구들을 재해석함으로써 「광야」를 새롭게 조명한다. 일단 ‘광야(曠野)’가 넓은 벌판을 뜻하는 ‘광야(廣野)’가 아니라 황무지를 의미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육사의 고향 안동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일제의 강점 이후 체포와 투옥이 만연하던 곳이었다. 이 때문에 육사는 ‘녹야’였던 고향, 즉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되어야 할 식민지를 ‘광야’로 표현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베이징의 차디찬 지하 감옥에서 육사는 녹야에서 광야로 변해버린 고향과 조국을 생각하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고, 죽어서도 초인으로 하여금 노래를 목 놓아 부르게 하겠다고 다짐하였다는 것이다. 「광야」는 절명의 순간에 육사가 남긴 유언인 동시에 자신의 죽음에 보내는 만가(輓歌)이며, 녹야였던 고향과 조국을 그리는 망향가(望鄕歌)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8장 “‘내’ ‘노래’ 「광야」”는 육사의 「광야」를 두보의 「영회고적(詠懷古蹟)」 제3수와 비교하는 글이다. 두보의 「영회고적(3)」은 비운의 미녀 왕소군(王昭君)을 노래한 시로, 시적 공간이 산골이라는 점, 죽은 사람의 혼이 고향으로 돌아와 노래한다는 점에서 「광야」와 유사한 면이 많은데, 여기서 저자는 육사와 두보의 근본적인 차이점, 즉 두보가 역사의 비극적 현장에 대한 충실한 전달자였다면, 육사는 식민 치하에서 민족혁명운동에 직접 뛰어들고자 하였으며, 자신의 시가 행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음을 짚어낸다. 이밖에 이 책에는 도진순 교수가 심혈을 기울인 3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육사의 생애와 상세한 작품연보가 들어 있다. 육사는 자신의 시가 아름다운 난의 향기처럼 퍼져나가길 희망하여 시집 표지로 묵란도(墨蘭圖)를 그려놓기도 했다. 사실 그의 시에는 난꽃의 아름다운 향기와 더불어 현실을 베어내는 서늘한 난잎의 검기(劍氣)가 서려 있다. 그가 말하는 ‘서검 40년’의 ‘시 한편’이란 바로 난과 검의 오묘한 합일점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난(蘭)이 고전의 세계와 결합된 그윽한 예술성의 상징이라면, 검(劍)은 그가 시에 싣고자 했던 의열투쟁의 혁명성을 의미한다. 육사가 난과 검의 아름다운 합일을 절창으로 노래한 구절이 ‘강철로 된 무지개’라 생각하여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시를 통해 육사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섬광과 울림을 만난다는 것은 그의 원통(?痛)을 해원하고, 물구나무 세워진 그의 시세계를 바로잡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육사의 시를 연구하면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남과 북, 역사와 문학과 철학, 그 사이사이에서 현재의 우리가 얼마나 편중되고 갇혀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이 책이 육사 내면의 섬광과 울림에 공감하면서, 이러한 편중과 갇힘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감히 기대해본다.(책머리에, 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