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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산하를 걷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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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김구의 숨결, 얼과 혼을 찾아가는 먼 길
서문-당신은 그곳에 가 보았는가?

경교장 반탁의 중심에서 서거의 현장으로
서울운동장 환영의 장소에서 영결의 장소로
창덕궁 군주의 궁궐에서 국민의 회의장으로
돈암장과 이화장 김구와 이승만의 돈독했던 관계와 이별
언더우드 동상 일제와 공산주의가 허물고자 했던 동상
효창공원 삼의사, 임정 요인들과 더불어 영면하다

미군정청 조선총독부에 뒤이은 새로운 권력으로
서대문형무소 옥중에서 뜻을 굳히다
덕수궁 석조전 한국 근현대사의 무대
보신각과 탑골공원 3월 1일의 만세 소리
건국실천원양성소 건국의 인재를 키우라

백범학원과 김구주택 어리오나 저의 4백여 백범이 또 있아오니
염리동 창암학원 마음의 풍금 소리는 가슴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촌동교회 김구의 기부 편지와 이연호 목사와의 아름다운 사연
남산 석호정 일장춘몽처럼 아련한 희귀한 사진

상동교회 상동청년회와 함께하다
남대문교회 밀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명동성당 마지막까지 이어진 오래된 인연
대각사 용성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다
봉원사와 화계사 김구의 마지막 불교 순례
삼의사 천장식 태고사에서 효창공원에 이르는 길
남양주 홍릉 왕조의 쓸쓸한 낙조

인천감옥 22세에 사형수가 되다
인천감옥 탈옥길 세 상 속으로 숨어들다
인천항 공사장 쇠사슬로 허리를 매고 흙 지게를 등에 지고
인천 내리교회 감격스러운 해방의 장소
강화 김주경 가옥과 합일학교 은인을 찾아서
강화 장곶 버드라지 마을 운동 자금 4천 냥을 받아 몸에 돌려 감고

연보
참고 문헌
색인

저자 소개 6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 원장 겸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제19대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연세대 대학원 정치학과를 마쳤고, 파리1-팡테옹 소르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한국정치외교사, 역사정치학, 지정학. 주요 저서로 『해방전후사의 인식 4, 6』(공저, 한길사, 1989), 『대서양문명사: 팽창, 침탈, 헤게모니』(한길사, 2001), 『전쟁과 평화: 6.25전쟁과 정전체제의 탄생』(서강대학교출판부, 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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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전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사 기자와 한국정당학회 회장(2001~2002년),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2003년), 한국정치학회 회장(2004년)을 역임하고 1982년부터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민주당연구 1, 2』, 『조선신민당연구』, 『인민당연구』, 『허헌연구』, 『김두봉연구』, 『미소공동위원회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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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珍淳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중국 북경대학교,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한국 민족주의와 남북 관계: 이승만·김구 시대의 정치사』로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하였다. MBC 「느낌표」 선정도서 『백범일지』는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되어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원본을 탈초 교감한 『정본 백범일지』도 출간하였다. 한중일 삼국의 전쟁 기억과 기념을 평화의 초석으로 전환시키는 문제에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중국 북경대학교,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한국 민족주의와 남북 관계: 이승만·김구 시대의 정치사』로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하였다. MBC 「느낌표」 선정도서 『백범일지』는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되어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원본을 탈초 교감한 『정본 백범일지』도 출간하였다.
한중일 삼국의 전쟁 기억과 기념을 평화의 초석으로 전환시키는 문제에 폭넓은 관심이 있으며, 안중근·이육사 등 근현대 인물의 내면세계도 깊이 천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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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福龍

정치학자이자 인물 연구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同) 대학원을 수료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중앙도서관장, 대학원장, 석좌교수(1979~2012)를 지냈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1999~2001),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의 객원 교수(1985~1986)를 지내고, 독립유공자서훈심사위원(장)(1999~2023)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분단사 연구 : 1943-1953』(한울, 2001, 한국정치학회 저술상 수상)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풀빛, 2002) 『한국정치사』(박영사, 2003, 5판) 『대동단실기』(선인, 20
정치학자이자 인물 연구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同) 대학원을 수료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중앙도서관장, 대학원장, 석좌교수(1979~2012)를 지냈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1999~2001),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의 객원 교수(1985~1986)를 지내고, 독립유공자서훈심사위원(장)(1999~2023)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분단사 연구 : 1943-1953』(한울, 2001, 한국정치학회 저술상 수상)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풀빛, 2002) 『한국정치사』(박영사, 2003, 5판) 『대동단실기』(선인, 2004)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선인, 2006) 『The Politics of Separ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 1943-1953 (Edison, NJ : Jimoondang, 2008)』 『한국정치사상사』(지식산업사, 2011, 한국정치학회 인재(仁齋)저술상 수상) 『전봉준 평전』(들녘, 2019)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선인, 2021) 『잘못 배운 한국사』(집문당, 2022) 『이방인이 본 조선의 풍경』(집문당, 2022) 등이 있다.

역서로 『외교론』(H. Nicolson, Diplomacy, 1979) 『군주론』(N. Machiavelli, The Prince , 1980) 『칼 마르크스』(I. Berlin, Karl Marx , 1982) 『모택동 자전』(E. Snow, Red Star over China : Genesis of A Communist , 1985) 『묵시록의 4기사』(E. Penchef, Four Horsemen, 1988) 『한국분단보고서』(1992, 공역) 『현대정치사상』(L. P. Baradat, Political Ideologies, 1995, 공역) 『정치권력론』(C. E. Merriam, Political Power, 2006) 『입당구법순례행기』(옌닌, 2007) 『임동(하야시 다다쓰) 비밀회고록』(2007, 공역) 『한말외국인기록』 전23권(2018, 일부 공역) 『삼국지』 전5권 (집문당, 202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5권 (을유문화사, 2021) 『한국분단보고서』 전3권(2023, 일부 공역) 『신·구약 성경 : 교감』(Naver/blog/shinbokryong=신복룡 성경, 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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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기획실장 등을 거쳐 현재 계간 『황해문화』 편집위원, 경인교육대학교 기전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다. 논저로 『김동석과 해방기의 문학』, 『인천아, 너는 어떠한 도시』, 「백초 유완무의 생애와 민족운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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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관심작가 알림신청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후 조직된 ‘고 백범김구선생국민장위원회’의 위원장 오세창, 부위원장 김규식, 조완구, 이범석, 김창숙, 조소앙, 최동오, 명제세 등의 위원을 중심으로 1949년 8월 6일에 창립한 협회이다.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뜻을 이어 가기 위해 전시와 교육, 역사 자료 수집과 편찬 등 의미 있는 기획을 통해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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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26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662g | 155*224*25mm
ISBN13
9788950975746

책 속으로

1949년 6월 26일 일요일, 아들 신이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옹진지구 시찰을 수행하기 위해 새벽같이 경교장을 떠났다. 오전 11시 30분경 포병 소위 안두희가 방문하여 김구를 뵙기를 청했다. 안두희는 45구경 권총을 차고 있었지만 일전에 한국독립당 조직부장 김학규의 소개로 이미 경교장을 찾은 바 있었기에 그대로 방문이 허락되었다. 12시 40분을 조금 지난 시각, 식모 아주머니가 오찬으로 준비 중인 만둣국이 다 되어 간다고 말했다. 그 순간, 안두희가 올라갔던 2층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났다. 안두희가 손에 권총을 든 채 고개를 숙이고 내려왔다. 그는 권총을 계단에 떨어뜨리며, “선생님을 내가 죽였다”고 자백했다.
암살 위협 속에서 “나라를 위해 왜놈이 죽일 일은 했어도 내 민족에게 죽을 일은 안 했다”라고 말했던 김구는 같은 민족, 그것도 한때는 그를 따랐던 33세 국군 장교의 흉탄을 맞은 것이다. 김구의 사망 진단은 성모병원 원장이자 그의 주치의였던 박병래가 맡았다. 김구의 유해는 경교장 2층 침대 위에 모셔졌다. 주치의 박병래는 적십자병원에 연락해서 김구의 데스마스크를 뜨게 했다. 김구의 장례는 한국독립당이 주장한 민족장과 대한민국 정부가 고려한 국장을 절충한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백범김구선생국민장위원회 위원 등이 중심이 되어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가 만들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p.29~31,「경교장-반탁의 중심에서 서거의 현장으로」

1948년 3월 12일 오전 9시 45분 김구는 군사재판이 열리는 미군정청 제1회의실로 미군 헌병에 인도되어 법정 한가운데에 있는 증인석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 4시 30분까지 이어진 증인 심문에서 김구는 “나는 왜놈 이외에는 죽일 리가 없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1948년 3월 15일 두 번째로 소환되어 증인 심문을 받는 자리에서 김구는 답변을 거절했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보면 기소하여 체포하든지, 증인이라고 보면 자신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퇴정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구로서는 장덕수가 피살된 데 대해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분하게 생각하는 마당에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는 것에 대해 기가 막힌다는 심정에서 한 말이었다. 법정을 나온 김구는 증인으로 소환되어 심문받게 된 것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과거 수십 년 해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분투하던 김구는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로 고국에 돌아왔으니 삼천만 동포 앞에 허물을 받음이 마땅하거늘, 도리어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보다도 안일한 생활을 하게 되고 국내 동포로부터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하느님이 꾸짖으시며 징계하시는 뜻으로, 나로 하여금 미군 법정에 나가서 과거에 내가 왜놈의 법정에서 당하던 단련을 다시 한 번 맛보게 하시는 뜻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에 많이 뉘우치게 되었다.

통일된 자주독립 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을 이같이 토로한 김구는 법정에서 나오는 길로 효창공원에 모신 삼의사 묘소에 참배하고, 선열의 영 앞에서 참회의 묵도를 올렸다. 그리고 다시는 미군정청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p.97~99,「미군정청-조선총독부에 뒤이은 새로운 권력으로」

김구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를 다녀오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김구에게는 정치적으로 무척 어려운 시기였으며, 김구가 있는 경교장은 찾아오는 사람이 격감하여 적막하였다. 그해 연말인 12월 31일, 김구는 서울 시내 각처를 순례하며 집 없이 굶주림에 떨고 있는 빈궁한 동포들에게 총9 0만 원의 거금을 희사하였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김구는 가정의 현안 문제들을 연달아 처리하였다. 8월 20일 어머니 곽낙원 여사, 부인 최준례, 맏아들 김인 3인의 유해 봉환식, 1948년 10월 7일 이 3인의 묘비 제막식이 있었으며, 12월 18일에는 남대문교회에서 차남 김신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1948년 연말에 희사한 90만 원의 돈은 곽낙원, 최준례, 김인 3인의 유해 봉환식에 들어온 부의금과, 둘째 아들 김신 결혼식 축의금의 일부라고 한다. ---p.157,「백범학원과 김구주택-어리오나 저의 4백여 백범이 또 있아오니」

이날 김구는 지난날 생사를 함께하다 먼저 순국의 혼백이 된 동지 삼의사의 유골을 받들고 서울로 향하면서 국민에게 다음과 같은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 세 사람을 죽으라고 내보낸 것은 바로 나입니다. 그러나 그 세 사람을 보내고 나만이 살아 있으면서 아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삼열사에 대하여 부끄럽기 한량없고, 회고를 금할 수 없습니다. 조국을 위하여 심령을 바치고 지하에 잠드신 선열과 충의지사가 어찌 삼열사뿐이리오만 대담무쌍히 왜적의 심장을 향하여 화살을 던져 조선 민족의 불멸의 독립 혼을 중외에 떨친 것은 아마 이 세 분이 으뜸일 것입니다. 나는 지금 유골을 모시면서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을 억제할 수 없으며 그들[과 함께] 지하에 불귀의 손이 된 몇만 몇천 명의 동지들의 사심 없는 애국의 지성을 본받아 하루 바삐 통일된 우리 정부의 수립이 실현되도록 삼천만과 같이 분골쇄신 노력하겠습니다. ---p.247~249,「삼의사 천장식-태고사에서 효창공원에 이르는 길」

인천항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기 직전, 김구는 장티푸스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했다가 겨우 살아난 만신창이 상태로 간수의 등에 업혀 경무청으로 들어갔다.
인천항 전체에 큰 파장을 몰고 온 김구에 대한 신문 내용은 『백범일지』에 매우 드라마틱하게 기록되어 있다. 1896년의 인천감리서 경무청에서 열린 첫 신문이 그만큼 김구 자신에게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1929년 『백범일지』 상권에서는 이 재판정에서 김구가 조선인 관리를 통렬하게 꾸짖는 기개를 보여 주었다. 제2차 신문도 옥문 밖의 경무청에서 진행됐는데, 첫 번째 재판 소식이 알려져 “길에는 사람이 가득 찼고 경무청 안에는 각 관청의 관리와 항구의 유력자들이 다 모인 모양이었다. 담장 꼭대기와 지붕 위까지 경무청 뜰이 보이는 곳은 어디나 사람들이 다 올라가 있었다”고 『백범일지』에서 묘사하였다. 김구는 세 번째 신문은 감리서에서 했다고 기록했는데, 이재정이 친히 신문을 하고 왜놈은 보이지 않았는데, 신문서 꾸민 것을 보고 고치게 한 후 서명을 해서 신문을 마쳤다고 했다.

---p.274, 「인천감옥-22세에 사형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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