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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 하늘과 땅 볼펜 한 자루 이 버스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까? 어둠 속의 아리아 동그란 종이컵에 담긴 것 국회와 자전거 딱지에서 만다라로 프루스트의 마들렌, 나의 마루 2 의식주 수저를 떨어뜨려봐 부엌에서 배우는 것들 아궁이와 가스레인지, 그리고 보일러 부뚜막의 검은 보석 가둠의 미학, 항아리 나뭇가지와 천연도구 시대 내 방이라는 성전 3 골목 담을 넘어 집 밖으로 마중물이 없는 세상 골목이 들려주는 이야기 우산 하나를 들고 나‘아’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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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볼펜을 분해했다.
우연한 일이었다. 분해한 조각들을 가지고 놀다가 상상이 꿈틀거렸다. 상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갔다. 다다른 곳에서 돌아보니 ‘하늘과 땅’이 있었다. 흔하고 사소한 볼펜에서 비롯된 상상 여행이 하늘과 땅, 곧 우주로 향했다가 삶의 초석인 의식주에 관련된 다채로운 것들을 통과해 골목으로 나아갔다. 이 책에서는 거기까지만이다. ---「들어가며」중에서 눈을 떴지만 울적한 마음이 들어 선뜻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어젯밤까지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침대 위에 먹구름처럼 떠서 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머리맡엔 노트와 볼펜이 놓여 있다. 꿈결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기 위한 것이다. 엎드려 볼펜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장난기가 동했다. 볼펜을 손에 들고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상단부를 잡고 하단부를 돌려나갔다. 위아래가 분리되었다. 볼펜심을 빼냈다. 그것들을 노트 위에 놓고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그러다 보니 이런 모양이 되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생각이 떠올랐다. ---「볼펜 한 자루」중에서 “떨어뜨려봐.” 작곡을 하는 친구가 말했다. 순간 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숟가락을 쥔 녀석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그가 다시 말했다.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려봐. 그리고 소리를 들어봐.” 숟가락을 쥐고 있는 녀석이나 다른 녀석들이나 그 의미를 파고들 감수성이 그다지 없어 보였지만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마음속에 어떤 강렬함이 수런거리고 있는지. 숟가락을 받아 쥔 녀석이 어색하게 웃고만 있자 그는 숟가락을 도로 가져갔다. 그러곤 허공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살짝 놓았다. 팅, 청아함이 퍼져나갔다. 황홀함과 행복감이 너무도 커 나는 어쩔 줄 모를 지경이었다. ---「수저를 떨어뜨려봐」중에서 숲길을 걷다 보니 바닥에 내 눈길을 휘어잡는 것이 있었다. 나뭇가지. 평소에도 흔하디흔한 그것이 갑자기 가슴을 후비며 들어온 것이다. 330만 년 전의 석기 발견. 인류 최초의 도구 역사 새로 쓰다. 어느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를 읽던 나는 뭔가 시원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평소의 생각이기도 한데, 나는 저 기사의 내용에 오독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저 기사에서 말하는 ‘최초의 도구’란 현재 발견된 것 중에서, 또 발견될 수 있는 도구 중에서 ‘최초’란 의미이다. 이 부분을 우리는 쉽게 읽어 넘긴다. 즉, 발견될 수 없는 도구도 있다는 말이다. 썩어 사라지는 것들. 가령 앞서 내 발에 차였던 나뭇가지나 넝쿨 같은 것들이다. ---「나뭇가지와 천연도구 시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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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 · 부엌 · 아궁이 · 숯 · 항아리 · · · 발에 차인 나뭇가지 · 넝쿨 · 실―
숟가락이 떨어지던 순간, 팅, 소리와 함께 빚어진 내면의 우주 온라인 매체 [뉴스핌](www.newspim.com)에 ‘뫼비우스 단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을 골라 묶었다. 저자 이명훈은 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에 대한 메타적 성찰을 바탕으로 내면의 세계를 여행한다. 2000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하고, 2003년 [문학사상] 장편소설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거대 담론이 넘치는 이 ‘인문학의 시대’에 나를 둘러싼 사소하고 소박한 것들에 대한 성찰과 상상, 그로부터 관점을 새로이 한 융?복합적 통찰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머리맡에 놓여 있던 볼펜을 시작으로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상상 여행을 떠난다. 몇 꼭지의 사유가 이어지고 돌아봤을 때 그의 사유는 ‘하늘과 땅’이라는 주제로 묶였다. 그의 사유는 사물에서 사물로, 사소한 것에서 사소한 것으로 이어진다. 그다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팅’ 하는 소리였다. 숟가락이 어느 술집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그 청아하고 맑은 소리에 은하수 별들의 반짝임과 천상의 소리가 가득한 우주가 태어나던 순간을 시작으로 이어진 사유는 ‘의식주’라는 주제로 묶어 2부에 담았다. 집 안의 것들을 주로 다룬 2부에서 3부로 넘어가려면 ‘담’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밖에는 골목(3부)이 펼쳐진다.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것들로부터 모색해나가는 글쓴이의 여행길은 그가 살아온 시대와 경험을 관통한다. 그럼에도 그의 발걸음이 담장을 넘어 골목, 골목을 벗어난 광장으로 이어지기에 혼자만의 여행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글쓴이가 떠나는 색다른 여행에 길동무가 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우리 주변의 것들을 둘러보며 저마다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