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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_ 근현대 한의학 인물들의 발자취를 더듬다
1. 근현대 한의학 인물 개괄 2. 고종, 순종 년간의 어의들 임금을 감동케 한 뛰어난 치료술 의서를 간행한 어의들 민간 활동에 힘쓴 어의 홍재호 3. 한의학 교육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분투한 인물들 동제의학교의 설립과 폐교 각종 의학강습소의 개설과 일제강점기의 교육활동 해방 후 한의과대학의 설립과 발전 4. 한의사 단체의 구성과 활동 대한의사총합소의 구성 전선의생대회의 개최와 전선의회의 성립 동서의학연구회 동양의학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한의학회 지역 및 재야 한의사 단체들의 각종 활동 5. 한의학 학술지와 신문의 간행에 매진한 인물들 최초의 한의학 학술잡지 『한방의약계』 『동의보감』, 『동서의학보』, 『조선의학계』, 『동서의학연구회월보』 지역지에서 중앙지로, 1935년 『충남의약』의 창간과 발전 한의학 부흥을 위해 탄생한 학술지 『동양의약』 “한의학의 신체계를 확립하자” 1947년 『동양의학』 창간호 “행림계의 첫아이를 잘 기르자” 1954년에 창간된 『의림』 “문화의 진보와 시대의 변천에 발맞추자” 『동양의약』의 창간과 전석붕의 포부 1963년에 뿌려진 미래를 위한 씨앗, 『대한한의학회지』 『행림』과 『한방의 벗』 “학술연구의 광장이 되리” 1975년 『동양의학』 창간호 서울시한의사회보, 1967년과 1979년 두 차례 나온 창간호 〈한의신문〉 〈민족의학신문〉 6. 한의학 제도화를 위해 분투한 인물들 한의학 교육의 기초를 다진 사람들, 팔가일지회의 활동 부산 피난시절 제도화를 위한 활동과 오인동지회 7. 한의학 학술 진흥을 위해 노력한 인물들 개항기 한국의 한의학을 빛낸 삼대의가 황도연, 이제마, 이규준 일제강점기 침구학 · 상한론 연구, 해방 이후 의역학 연구의 경향 경험방 수집 일제강점기 의서 연구자들 신학설의 창도자들 학술적 정리를 꾀한 학자들 학술단체의 구성과 활동 8.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들 일제에 저항했던 한의사 노병희와 조종대 일제에 저항했던 한의사 강우규와 심병조 상의의국을 몸소 실천한 한의사 독립운동가 방주혁 독립운동가로 조선무약을 창설한 한의사 박성수 9. 왕성한 활동으로 한의학의 외연을 넓히고자 노력한 인물들 서예와 미술 배구계에서의 활약 대중매체와 출판 약업계의 활약 한의학의 국제화 개인적 학술활동 의료봉사 10. 근현대 한의사 명의들 한의사 집안을 이어간 인물들 명의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 책을 마치면서_ 이 책이 미래 연구의 초석이 되길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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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간행된 『동양의약東洋醫藥』 창간호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소화笑話가 여백에 기록되어 있다.
① “어떤 사람이 여러 해 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자기의 처가 그동안 자식을 셋이나 낳았다. 그 남자는 이런 괴이한 일이 어디에 있느냐고 그 처에게 ‘남편도 없는데 자식을 낳다니 웬일이오.’ 하며 힐문詰問을 한 즉 그 여자 하는 말이 ‘당신이 안 계시니 당신이 하도 보고 싶어서 너무너무 지극히 생각하니 그 생각이 맺혀서 저 애들이 났소. 큰놈은 원지遠志라고 하는데 이것은 먼 데 계신 당신을 생각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둘째 놈은 당귀當歸라고 하는데 이것은 당신이 하루바삐 돌아오시기를 늘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다음 놈은 회향茴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당신이 정말 집에 돌아오시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니 얼빠진 놈처럼 듣고 있던 남편이 하는 말이, ‘만일 내가 또 한 번 더 오래 여행하고 돌아오면 그때는 건재방乾材房을 시작하게 되겠군.’” ② “재왕財旺을 조금도 띄지 못한 지극히 빈곤한 한의漢醫가 있었다. 재수財數있는 의가醫家에게는 병자가 노두열미勞頭熱尾로 잘 나을 사람만 찾아온다더니 마는 이 의가에는 그와 반대로 노말열두勞末熱頭만 찾아와서 도무지 치료성적이 양호치 못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어떤 사람이 문약問藥하러 왔다 약장 되백이를 빼 보니 온통 벌레 천지다. 그 사람이 어이없어 ‘이게 모두 뭐요?’ 물으니, 의원 말이 ‘그것? 백강잠이오.’라고 하니, 객이 ‘말린 누에가 어떻게 살아 있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가 대답하기를 ‘내 약이 워낙 명약이니까 그놈들이 모두 그 약의 신효를 보고 소생된 것이 아니오?’라고 했다.” ③ “의학을 수업하는 자가 있었다. 묘한 치료방법을 들으면 반드시 필기를 하는데 한번은 길을 가다가 도적놈을 만나서 삼림 속에 숨어서 보고 있으니까 여러 놈의 도적이 모여서 토산불(대고환大睾丸)을 가진 놈을 하나 참살을 하는데 목이 떨어지니까 그 큰 고환睾丸이 쑥 쭈그러들어 갔다. 그 친구 곧 필기하되 대고환 치료治療 경험방經驗方이라고.”(이상 세 글은 필자가 임의대로 손질을 가함.) 위의 세 소화笑話는 자칫 딱딱하게 비칠 수도 있는 학술잡지를 여유롭게 즐기면서 볼 수 있도록 여백에 채워놓은 우스운 이야기들이다. 이 글이 실려 있는 『동양의약』은 1935년 한의사 단체인 동서의학연구회에서 간행한 한의학 학술잡지이다. 발행기관은 경성의 동양의약사이며, 편집 겸 발행인은 조헌영이었다. 이 잡지가 나올 무렵인 1934년은 한의계에서는 중요한 역사적 시기였다. 〈조선일보〉를 통해 한의학 부흥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조헌영趙憲泳, 장기무張基茂, 정근양鄭槿陽, 이을호李乙浩 등에 의해 이어진 이 논쟁은 한의학 부흥에 대한 전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한의가韓醫家들을 고무시켰다. 이 잡지의 창간사에서는 “동양의학의 현대화, 동양의학의 민중화, 동양의학의 학술적 발전” 이 세 가지를 실현하기 위해 본 잡지가 노력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비장한 어조로 이러한 시대적 책무를 실현하기 위해 창간되었음을 표방한 이 잡지의 한 쪽에 위와 같은 농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 소화들은 단순히 웃고 넘기기 어려운 학문적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약물의 이름을 부인이 낳은 사생아의 이름에 빗대어 놓음으로써 약물 명칭의 학술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약물 속에 있는 벌레를 환자에게 백강잠白?蠶(누에를 말함)이라고 속이고 넘어가려는 어느 가난한 한의사의 이야기로, 중심의료에서 주변부로 내몰린 한의사들의 처지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경험방을 선별할 줄 모르는 분별없는 한의사를 해학적으로 그린 것으로 한의학의 정체성 확립과 치료경험에 대한 수집 등 그동안 진행해 왔던 한의계 현안 문제를 역설적인 농담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1935년에 나온 『동양의약』의 소화는 투쟁, 슬픔, 굴복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일제강점기 한의학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준다. _일제강점기 『동양의약』에 나오는 한의학 소화 ---pp.225-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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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간 이 대작의 집필에 매진한 저자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 대한한의사협회장 김정곤
근현대 한의학 인물들을 총망라한 최초의 책! - 대한한의학회장 이종수 이 책은 한의학의 새로운 고전이 될 것이다. -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안상우 자료 수집광 김남일 교수, 헌책방에서 잠자고 있던 근현대 한의학 인물들을 깨우다! 경희대 한의과대학 학장의 방은 한약재 냄새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문객을 반긴 것은 낡은 종이 냄새와 산처럼 쌓인 자료들이었다. 교수실이 아니라 헌책방 같다는 느낌, 저자의 방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근현대 한의학 인물 실록』은 저자의 방을 가득 채운 자료에서 태어났다. 신문ㆍ학술지ㆍ잡지ㆍ단행본은 물론, 약품 선전 전단까지……. 이 책의 저술에 사용된 자료는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방대하다. 저자는 전국의 헌책방과 골동품상을 누비고, 한의학 관련 인물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숨어있는 자료를 찾아냈다. 자칫하면 잊힐 뻔한 근현대 한의학 인물들이 한 학자의 집념과 노력에 힘입어, 자료에서 부스스 깨어나 책 속으로 걸어들어 와 자신의 삶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자료 수집 기간을 제외하고 순전히 이 책 한 권을 집필하는 데에만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6년은 한의과 대학 학부에서 학생 한 명을 키워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저자는 새내기 한의사를 키우듯 정성들여 세심하게 이 책을 집필했다. 앎과 삶이 일치한 진정한 지식인의 삶, 오래도록 전해져야 할 그들의 발자취 이 책은 근현대 한의계 인물들을 다룬 최초의 단행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책이라도 그저 과거의 일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면 굳이 시간과 공력을 들여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역사는 현재 삶의 지침이 될 때 그 존재 의의를 드러낸다. 근현대 시기는 한의학의 암흑기였다. 조선의 강토를 침범한 일제는 조선의 민족혼을 잠재우려 민족 문화 전반을 탄압했고, 전통의학인 한의학 역시 이러한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해방 후에도 위기는 계속되었다. 서양의학의 유입으로 한의학은 과거의 의학, 비과학적인 학문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제도의 주변부로 밀려난 한의학을 대중 의학이라는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려 근현대 한의계 인물들은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고전을 분석하고, 단체를 만들어 세를 모았다. 한의학 제도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한의학의 과학화 ? 현대화를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교육기관을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려 힘쓰는 등 한의학의 부흥을 위해 분투했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한의학을 단순 기술로 여기지 않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도 않았다. 이들은 재산이나 재능 같은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 전체를 한의학을 위해 바쳤다. 이들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위한 앎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근현대 문화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근현대 한의학 인물 실록』은 근현대시기에 활동한 어의, 교육자, 한의사 단체장, 학술지와 한의학 신문 창간자, 독립운동가 등 한의학 발전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소개된 인물들은 최초로 종두법을 도입한 지석영, 솔표 우황청심환을 만든 박성수처럼 익숙한 인물도 있지만, 의사학계 외부로는 알려진 적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주된 임무는 “투쟁”이었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저항하고 한의학을 살리는 게 이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업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학술적인 면에만 치우쳐 있지 않았다. 이들은 서화로 한국미술대전을 휩쓸고, 막강한 전력으로 배구계를 평정하고, 국민드라마 ‘허준’을 만드는 데 기여하며 사회ㆍ문화 활동을 통해서 한의학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 근현대 한의사들의 활동상을 스냅 사진처럼 다룬 이 책은 한의학 연구자뿐 아니라 근현대 문화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