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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집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 미성년 강변의 추억 아바타를 사랑한 남자 그림자 장군 의자 작가의 말 작품 해설|허구의 이미지와 이미지의 허구_ 김진수(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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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간이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휴식과 평화를 느끼고 나아가 몽상에 젖어 들지.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현대인들은 휴식과 몽상은커녕 오히려 불안에 떨어. 그러니 질병이랄밖에.”
“왜 그럴까?” “그야, 휴식과 몽상이 경제 활동에 장애가 되고 그러다간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고 말 거라는 강박 관념 때문이지.”'전망 좋은 집' 중에서---pp.25~26 내 인생은 한때 양지였으나 지금은 햇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음지다. 어느 날 사람들이 나를 슬슬 피하는 이유를 주차장에서 깨달았다. 똥차 옆에 고급 차가 주차되는 법은 없다. 함부로 굴러다니는 똥차는 다른 차에 흠집 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민들은 본능적으로 하이에나를 알아보고 경계하는 것이다. 세상인심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어서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일도 없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에 금을 긋고 어디에 발을 디딜지 번민했다. 문득 더 이상 잃을 것도 불행해질 일도 없으며, 본래부터 빈손으로 온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졌고, 촘촘한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하이에나의 자유는 생각보다 달콤했다.'남자를 빌려 드립니다' 중에서---p.38 “지옥 훈련이란 어떤 훈련입니까?” “다 놈들의 개수작이죠.” 그리고 류 씨는 입을 다물었는데 다분히 회사의 정책에 반발하는 어투였다. 나는 맞장구를 치려다가 그만두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뱃전에 부딪히는 물결 소리가 찰랑찰랑 들려왔다. 잔잔한 물결 위에 달빛과 별빛의 꼬리들이 아롱거렸다. 노를 젓지 않아도 나룻배는 조금씩 흘렀다. “지옥 훈련이 무진장 힘들었던 거로군요?” “뭐,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옛날 생각 하며 받을 만해요.” 병약한 류 씨의 생김새로 미루어 보아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탈출했습니까?” 류 씨가 운동복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 불빛에 그의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 류 씨의 입에서 나온 담배 연기가 푸른 어둠 속으로 풀풀 날아갔다. “김 형,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지옥 훈련 따위나 강요하는 이 사횝니다. 요새 기업들은 무슨 유행처럼 그따위 돼먹잖은 훈련을 신설하고, 또 매스컴은 그런 훈련 덕분에 생산성이나 업무 능률이 배가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 대고 있어요.”'강변의 추억' 중에서---pp.122~123 “네 눈에는 이것들이 단순히 중고품으로 보이냐?” 손님이 뜸한 시간에 조 사장은 김 군에게 물었다. “솔직히 새 건 아니죠, 사장님.” 김 군은 그 말이 사장의 비위를 거스른다 생각했는지 헤벌쭉 웃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묻냐. 이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 보라, 그 말이야.” 조 사장은 뭔가를 유도해 내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골동품 같은 가구, 뭐 그런 거죠.” “대답 잘했다. 그래, 이건 보통 가구가 아니라 제작 연도가 오래된 것일수록 값이 나가는 골동품 같은 거야. 누구나 골동품을 갖고 싶어 하듯 사람들은 집 안에 고가구를 들여다 놓고 싶어 하지.” 김 군은 잠자코 사장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한테 한 가지 말해 둘 게 있는데 우리가 하는 장산 단순히 가구를 파는 게 아니라 옛날 장인들의 정신을 파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장인 정신을 파는 거라고요?” “장사를 제대로 하려면 소비자의 마음을 꿰뚫어야 하는 법이야. 이 고가구들은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러움, 친근함, 편안함 같은 심리적 위안을 주지. 수제품의 가장 큰 특색은 인간의 마음과 직접적인 연계를 유지하는 것, 다시 말해 인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거야. 이에 반해 기계는 마음보다 머리의 소산이기 때문에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거든. 한마디로 말해 수제품에는 손맛에서 연유하는 인간미가 살아 있다, 그 말이야.” “인간적인 성격? 인간미?” 김 군은 이해가 안 되는 듯 그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이런 답답하긴. 옛사람들의 정직한 심성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야. 예를 들어 말이야, 현대 가구는 외양은 화려하지만 겉으로 보이지 않는 옆면과 뒷면은 대부분 합판으로 제작돼 있지. 반면 옛 가구는 앞뒤 모두 통판으로 만들잖아. 그건 곧 그 물건을 만든 옛사람들의 마음 자세, 즉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려는 자세라 할 수 있지. 정신적으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옛 물건을 보고 있으면 현실의 문제들을 잊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실험 결과도 있어.” '장군 의자' 중에서---pp.206~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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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 ‘남자’라는 물건이 필요하고
그래서 나를 부른 것이다. 나는 지금 그녀 앞에 배달된 하이에나다.” 도시의 바닥에 처한 ‘대역 인간’들의 고독한 삶 인간적일 수 없고 인간적이어서도 안 되는 현대인의 아이러니를 소묘하다 199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후 장편소설 [외로운 사람들은 바다로 간다], [숨비소리] 등을 선보이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방황, 고뇌와 좌절을 그려 온 소설가 박석근의 첫 번째 소설집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가 출간되었다. “허구의 이미지를 통해 현실의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미지의 허구를 폭로”(문학평론가 김진수)해 온 그의 작업은 이번 소설집에서 현대 도시와 도시인을 조준한다.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들은 자본주의적 도시의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자존감을 버려야 하는 벼랑 끝에 몰린 ‘대역 인간’들을 통해 자본의 폭력에 일상을 잠식당한 사회적 약자들을 조명하고 있다. 유토피아적 삶의 역설, 즉 유토피아적 삶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의 정신적 불안과 소외를 추적하는 박석근의 이 목격담에서 독자들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경험할 것이다. 정체성도, 주체 의식도 상실한 채 욕망만이 명멸하는 도시인의 삶 박석근은 외딴섬 등대지기의 삶을 그렸던 [외로운 사람들은 바다로 간다]와 마라도 등대지기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 잡지사 편집자의 이야기를 담은 [숨비소리]에서 ‘바다’로 상징되는 유토피아적 공간을 제시했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러한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공간, 바로 자본주의적 도시의 현실을 파고든다. “지옥 훈련 따위나 강요하는”('강변의 추억') “쓰레기장 같은 이 더러운 세상”('미성년')에는 자주적인 삶을 거세당한 대역 인간들이 가득하다. 감옥과도 같은 도시, 그 도시의 바닥에 처한 대역 인간의 삶은 표제작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직과 이혼, 감옥살이를 겪은 후 ‘빌려 쓰이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주인공의 삶은 가난과 고독과 상실로 점철되어 있다. 주인공이 ‘쓰이기’ 위해 접속하는 인력 소개 사이트는 홍보 문구를 “인부를 소개해 드립니다.”에서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로 바꿔 달자 문의가 폭증한다. 자본주의 규율의 폭력에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인들은 이렇게 하나의 물건처럼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달’되어 ‘소비’되고 만다. 박석근은 혼곤한 자본주의적 현실을 사는 대역 인간의 삶을 다양하게 변주해 낸다. 부를 이룬 사람들은 번듯하고 전망 좋은 전원주택으로 이사하지만 흐르는 강물을 보며 현재를 망각하고 오히려 과거적 삶에 빠져들고('전망 좋은 집') 꽤 실력 있는 경제 연구원은 사이버 공간에서 만난 아바타 연인을 진짜 배우자와 다름없이 여기며 현실과 가상을 혼동한다.('아바타를 사랑한 남자') 옛 사람들이 남긴 양식(樣式)과 스타일에 집착하며 상실한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장삿속을 채우는 고가구 판매상도 있다.('장군 의자') 즉 대역 인간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적인 공간이 현실의 고독과 소외를 극복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 사회에서의 대화와 소통을 방해하는 수단이 되어 역유토피아의 상황을 초래함을, 작가는 꼬집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성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등단작이기도 한 '전망 좋은 집'은 인간 역시 현대 자본주의의 규칙, 물질에 대한 집착에 길들여져 이상적인 유토피아 상황을 배겨 내지 못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자유란 불확실한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불확실성이 던지는 불안의 그림자는 자유라는 빛이 던지는 동전의 이면이다. 문제는 이 불확실성을 감당하면서까지 유토피아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느냐 하는 것.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전망 좋은 집을 나가 버리고 마는 거주자들의 행태를 부동산 중개인인 등장인물은 이렇게 분석한다. “휴식과 몽상이 경제 활동에 장애가 되고 그러다간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고 말 거라는 강박 관념 때문이지.” 박석근의 소설 세계는 역설의 형식으로 모순된 우리 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한다. 우리는 자유와 휴식이 자본주의적 일상과 도시적 삶에는 오히려 독이 된다는 역설, ‘전망 좋은 집’이 도리어 ‘정신병적 공간’이 되는 역설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