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마 터치, 크레마원 기본뷰어 이용불가
|
한국어판 서문
서문 1장 침묵의 벽 너머로 2장 금융이라는 행성, 그리고 붕괴 3장 그들과 동화되다 4장 남들의 돈 5장 부름이 오면 6장 각자도생 7장 연무에 가린 섬들 8장 좋은 이야기는 없는가 9장 우라질 10장 우주의 왕자들 11장 거품 속의 인생 12장 아무도 불행한 운명을 예언하는 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13장 아무도 없는 조종실 방법론 옮긴이주 감사의 글 찾아보기 |
Joris Luyendijk
김홍식의 다른 상품
|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
저자는 일반인들이 금융 위기에 대해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 사회에서 돈이 피라면, 금융 부문은 심장이다. 〈펌프의 작동이 잠시라도 멈추면 몸이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당시, 우리 사회는 그와 같은 사태, 곧 〈완전한 붕괴에 서너 밀리미터〉까지 갔다. 대중들은 뉴스에 나온 〈리먼 브러더스 피고용자들의 패잔병 같은 모습〉에 고소해 했지만, 정작 은행가들은 곧바로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식품을 비축하고, 금을 매입하고, 아이들을 시골로 대피시킬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많은 은행가들이 그 사태에서 〈전쟁의 공포〉를 느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은 그동안 대중들이 알고 있던 금융계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깨뜨린다. 대담자들에 따르면, 금융계는 고급 기자회견장에서 최고 경영자가 발표하는 통계 자료나 홍보 기구가 만들어 내는 신뢰 넘치는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완벽히 통제·관리되는 세계가 아니라, 매우 무책임하고(그들은 오늘날의 은행업을 주주와 납세자들의 머리로 하는 러시안룰렛에 비유한다), 위험한 신념이 지배하며(윤리 무관성: 법 위반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우스꽝스러우리만큼 원시적이다(시장에 돌발 변수가 생기면 최후의 수단으로 컴퓨터 전선을 뽑아 버린다). 심지어 부서 간 서열화로 인해, 돈을 벌어다 주는 전방 부서(트레이더들)의 위험한 질주를 중간 부서(사내 통제를 담당하는 준법 감시팀)에서 막을 방법이 없다. 저자가 이 세계를 하나씩 알아가면서, 끝내 〈우라질!〉 하고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5분짜리 시야 우리는 익히 은행가들이라고 하면, 상여금만 수백만 달러를 받는 트레이더나 M&A 전문가를 떠올린다. 그들은 금융계 상위 5퍼센트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저자가 고백하듯이, 정작 〈잘 보이지 않는 은행업의 현실〉을 들려준 사람들은 나머지 95퍼센트의 은행가들(인사, 홍보, 회계 등 후방부서와, 사내 감시 업무를 담당하는 중간 부서)이었다. 금융계의 해고 문화는 이 세계의 살벌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자체로 은행가의 심성과 은행 시스템에 심각한 균열을 낸다. 해고는 연례행사처럼 일어난다. 경제가 침체되거나, 새로운 관리자가 오거나, 실적이 저조하면 〈학살〉 또는 대규모 〈도태〉가 이루어진다. 5분 동안 진행되는 면담이 끝나면, 해고자는 경비 요원에 의해 건물 밖으로 인도된다.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전화기에 손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동료들은 어느 순간 옆자리 동료가 보이지 않거나,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을 때 그들의 해고 소식을 안다. 회사 출입 카드를 긁었을 때 경보음 소리를 듣고 해고 소식을 아는 직원도 있다. 저자는 〈5분 후에 문밖으로 쫓겨날 수 있다면, 사람들의 시야는 5분짜리가 된다〉는 말로 이 사태의 본질을 요약한다. 〈머리 위에 언제 떨어질지 모를 다모클레스의 칼이 매달려〉 있는 상황이라면, 트레이더가 미친 듯이 위험한 투자에 뛰어들고, 일을 투명하게 처리해야 할 후방부서가 서류를 조작하고, 그들을 막아야 할 중간 부서가 작동을 멈추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은행가 개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그들을 일탈로 이끄는 시스템이다. 반복되는 금융 사고(리보 금리 조작 사건 등등)는 단기적인 실적을 강요하는 살벌한 세계에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보여 주는 징후일 뿐이다. 금융계 원주민 속으로 들어가다 이 책은 금융 초보인 저자가 금융의 세계를 하나씩 배워 가는 과정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인류학자가 현지 원주민의 문화를 알아가듯, 저자는 은행가들의 직종에 따른 옷차림, 농담, 은어를 익힌다. 이를테면, 대륙 쪽 유럽 은행가들은 갈색 구두를 신고, M&A를 취급하는 거래 해결사들은 에르메스 상표의 넥타이를 맨다. 상여금이 0일 때를 〈도넛〉이라고 하고, 동시에 다섯 개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브로커의 귀〉라고 하며, 급박한 상황에서 주식 매수를 할 때 0을 너무 많이 기입하는 치명적인 순간을 〈뭉툭한 손가락 증후군〉이라고 배운다. 또한 대담이 이뤄지는 공간(커피숍, 고급 레스토랑, 펍, 대담자의 집)과 은행가들이 먹는 음식(소비뇽 백포도주, 거위 간, 콩팥을 넣은 파이 등)에 대한 묘사를 통해 이 세계의 라이프 스타일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관찰 속에서 금융 지구 시티에 형성된 독특한 문화적 코드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은행가들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이 보다 돋보이는 장면은 따로 있다. 은행가들을 직무를 수용하는 태도와 관점, 윤리적 딜레마에서의 행동 여부에 따라 6가지 부류로 나눠 묘사하는 대목이다. 이를테면, 현 시스템에 불만을 잔뜩 품은 와신상담자형 은행가는 일을 〈어렵고 불쾌한 것〉으로 여긴다. 중립자형 은행가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저 일일 뿐〉 넘겨 버리고,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린다. 우주의 왕자는 마치 투사나 올림픽 선수처럼 자신의 일을 〈영광스러운 경기〉나 〈지위 게임〉처럼 바라본다. 또한 망상적 은행가들은 자기 일에 중독된 채 〈현실과의 접촉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이처럼 은행가들은 살벌한 금융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그 세계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굴절시킨다. 텅 빈 조종석 오늘날 금융은 시한폭탄이다. 라위언데이크는 그 뇌관을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고, 관리하는 은행가들을 만났다. 그들이 들려준 말은 한결같다. 은행은 〈너무 커서 관리할 수 없다too big to manage〉. 우리 시대 은행가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보수를 받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똑똑한 사람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금융이 세계를 어디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저자는 이 사태를 하나의 명징한 이미지로 묘사한다. 한마디로 〈텅 빈 조종석〉이다. 이 책은 〈우리의 금융 및 통화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운 DNA로 개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객들이 자신들이 무얼 사는지,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은행은 더 작아지고 더 단순해져야 한다. 또한 상여금을 받는다면 〈마이너스 상여금〉도 같은 사람에게 부과되어야 한다. 그들이 벌인 일로 엉뚱한 사람들이 밤잠을 설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장기적인 탐욕〉을 강조하는 것은 시사적이다. 코앞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강제하는 동기 유발 시스템(단기적인 탐욕)이 유지되는 한 금융계의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고객과 은행,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방식으로 탐욕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이것이 외부자인 저자가 2년 여간 시티에 머물며 정리한 금융계 탐사 보고서의 마지막 결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