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장
제1장 어떤 회사원의 죽음 제2장 어떤 대학생의 죽음 제3장 어떤 의사의 죽음 종장 옮긴이의 말 |
Atsto Ninomiya,にのみや あつと,二宮 敦人
니노미야 아츠토의 다른 상품
이희정의 다른 상품
|
키리코 슈지는 문을 벌컥 열고 면담실 안으로 들어오며 인사했다. 앉을 때 흰 가운의 소매가 살짝 흔들렸다. 작은 체구에 하얀 피부, 색소가 옅은 홍채. 중성적이고 이따금 어쩐지 아련해 보이는 그 의사는 네 사람의 얼굴을 대충 둘러보고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면담을 요청하신 하시다 씨와 가족분들이시죠? 키리코입니다.” “네, 선생님, 그게요…….” “용건은 현재의 병세와 향후의 경과를 확인하고 싶다는 내용이시죠??” 잡담은 한 마디도 없었다. 다짜고짜 핵심으로 들어가자 네 사람은 긴장했다. 키리코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차트는 봤습니다. 지금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하시다 씨는 고령이기도 하시니 여명(餘命)은 반년 전후로 예상됩니다. 남은 문제는 얼마나 더 연장할 수 있을지가 되겠군요.” “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말을 잇지 못하는 가족은 아랑곳 않고 키리코는 노인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하시다 씨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으세요? 항암제를 쓰면 남은 수명을 몇 개월 더 늘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몇 개월은 입원한 상태로 지내시게 됩니다. 완화 요법으로 완전히 전환하셔서 남은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사용하시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만.” (중략) 이번에는 환자의 부인이 눈이 빨개지면서 말했다. 키리코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소중하신 분이지요?” “당연하죠!”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죽음과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냉정한 말투의 그 말이 가족의 역린을 건드렸다. 가족은 저마다 핏대를 세우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면담실이 떠나갈 듯했다. 키리코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눈앞의 광경을 마치 연극이라도 보듯 바라보았다.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우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런 가운데 당사자인 환자만이.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었다. --- p.10~11 하마야마는 화장실 한 칸을 점거하고 계속 토했다. 토하고 나면 가글을 하고 또 토했다. 입안은 까슬까슬하고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시각은 밤 10시였다. 구토와 입안의 통증 때문에 거의 잘 수가 없었다.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다.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문자를 열었다. 벌써 몇 번째 똑같은 문자를 열어보는 것일까. 「검진 끝났는데 아무 문제 없대」라는 문자. 첨부된 사진. 거기에는 초음파를 통해 흑백으로 촬영된 아들의 모습이 있었다. 쿄코의 배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나에게 자식이 생긴다. 내 피를 이어받은 새로운 인간이 탄생한다. 그렇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아직 힘낼 수 있다. 얼마 동안 사진을 바라본 뒤 화면 끄트머리에 표시되어 있는 날짜를 보았다. 8월 27일.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닷새만 더 버티면 항암제 투여가 끝난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이 고문도 마침내 끝이 난다. 나머지는 검사해서 암세포가 사라졌기를 기도할 뿐이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했으니 하느님, 제발 부탁이에요. 낫게 해주세요. 5분의 4의 행복을 제게도 주세요.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목이 떨렸다. 구역질이 올라와 하마야마는 변기를 부여잡고 토했다. --- p.61~62 “선생님. 그럼, 어느 쪽이에요? 나는 재발하는지 안 하는지 어느 쪽인 거죠?” 하마야마는 필사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그건,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니…….”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분명히 이렇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불과 몇 주 만에 재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뒤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면, 하마야마 씨의 재발률은 70퍼센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70퍼센트라니! 다시 확률이다. 눈앞에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또다. --- p.76 벽에는 합격했을 때의 수험표가 압정으로 고정되어 붙어 있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옥죄이는 것 같았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난…….” 난 의사가 될 수 없어. “난……!” 목구멍이 떨렸다.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3년에서 5년 사이에 절반이 죽는다고? 힘들게 들어온 의대를 졸업도 못 하는 거야? “난…….” 나는 죽는다. 마리에는 오열했다. 온 힘을 다해 울부짖고 싶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눈물과 부르르 떨리는 목이 그러기를 거부했다. 마리에는 흐느껴 울며 천천히 책상으로 다가갔다. 이딴 건. 교과서를 집어 들었다. 갑자기 의미를 잃어버린 그것을 박박 찢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가지런히 꽂혀 있는 참고서를 짓밟고 크게 비웃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손이 떨리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마리에는 교과서를 든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제까지의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죽을힘을 다해 공부했다. 날마다 암기하고 노트에 받아 적고 교과서를 읽었다. 가운을 입은 자신을 상상했다. 환자를 살리는 자신을 상상했다. 아빠, 엄마와 같이 의학 이야기를 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오토야마 선생님 같은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스꽝스러웠다. 그런 자신이 너무나 우스웠다. --- p.1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