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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양말 서랍 속의 성인
하느님의 아이 ─ 잔 다르크
내면의 드라마 ─ 리지외의 데레사
참된 자아 ─ 토마스 머튼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 로욜라의 이냐시오
더욱더 ─ 페드로 아루페
마사비엘 동굴 ─ 베르나데트 수비루
그대가 만나는 모든 이와 이 기쁨을 함께 나누라 ─ 마더 데레사
그리스도의 대리자 ─ 요한 23세 교황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삶 ─ 도로시 데이
나는 죄인이니 ─ 베드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가 된 이들 ─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숨은 생활 ─ 요셉
하느님을 신뢰하는 이들 ─ 우간다 순교자들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 ─ 알로이시오 곤자가
은총이 가득하신 분 ─ 마리아
다른 형태의 성스러움 ─ 결론

저자 소개 1

제임스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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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Martin

예수회 소속 사제로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 스쿨을 졸업하고 웨스턴 예수회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여러 신문과 잡지, 웹 사이트에 글을 기고하며, 피정과 세미나 지도, 강연 활동 등 종교와 영성 분야의 논평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제임스 마틴의 다른 상품

역자 : 성찬성
전남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참된 벗을 찾아서》,《루르드 일기》,《성 토마스 모어》,《나를 이끄시는 분》,《제네시 일기》,《놀라우신 하느님》,《새벽으로 가는 길》,《나는 나를 조각한다》,《하느님 나라는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무지의 구름》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600쪽 | 698g | 148*210*35mm
ISBN13
9788932112497

책 속으로

여타의 성인전과는 다른 빛나는 통찰

많은 사람들로부터 ‘살아 있는 성녀’로 지칭되던 여인은 당연히 하느님의 현존을 기쁘게 감지하며 나날을 보냈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마더 데레사의 힘겨운 봉사가 남은 우리의 경우보다 쉬웠을 것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우리가 누리지 못한 위안과 확신을 하느님에게서 끊임없이 누렸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그런 종류의 일을 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런 일은 한결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쉽게 해내는 마더 데레사 같은 사람에게 맡기라는 식이다. 하지만 실제로 밝혀졌듯, 마더 데레사가 가난한 이들과 일하거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는 일이 우리에 비해 조금도 ‘더 쉽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 누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힘들었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 기도가 항상 쉽고 감미롭고 위안이 된다고 느낄 수 있게 되면, 틀림없이 아주 멋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인들이라면 누구나 그저 눈만 감으면 보상으로 당장 포근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최후의 병마와 싸우는 동안 나름대로 ‘어두운 밤’에 몸부림친 리지외의 데레사를 포함해 긴 대열을 이루는 성인들의 사례는 말할 것도 없고, 마더 데레사의 경우만 보아도 결국 성인들은 남은 우리와 정말 똑같고, 심지어 우리가 전혀 의심하지 않는 부분인 영성 생활에서까지 우리와 다름없이 온갖 방식으로 허덕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더욱 심하게 몸부림쳐야 하는 때도 있다.(……)
마더 데레사가 영성 생활 면에서 몸부림쳤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내 눈에 그녀가 이룩한 업적이 한결 놀라워 보이고 그녀의 모범이 큰 의미를 갖게 해 주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사실이 그렇듯이 유례없이 친밀한 예수님과의 만남이 토대가 되지만, 그 만남이 오랜 세월이든 평생이든 갈수록 침묵으로 잦아드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그녀의 사도직 활동은 충절을 입증해 주는 놀라운 증거가 되고 있다.
마더 데레사의 삶이 지닌 이런 단면만큼 나를 그녀와 단단하게 묶어 주는 것이 없으며, 내가 글이나 강론 또는 피정의 자리를 빌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그녀의 성덕을 식별하는 그들의 이해 능력이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 pp.263-268

진솔한 자기 고백적 체험들

나는 절망했다. 동료들 대부분은 예정대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뒤에 남으라고 지시받은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체면에, 그리고 이 사태가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에 신경이 쏠렸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실패작이었다. 불량한 예수회원이었다. 손상된 상품이었다. 나는 우리 관구장에게 화가 났고, 그 점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나이로비에 있는 내 영성 지도자에게 이런 감정을 토로하자, 그는 인내뿐 아니라 그가 말하는 이른바 무심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까지 종용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자네는 예정대로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무심할 수는 없겠나? 실제로 자네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보다 이 일이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에 관심을 쏟고 있지는 않은가? 하느님의 예정표가 자네의 그것보다 나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무심을 되새기게 만든 그의 조언은 내가 짧지만 강력했던 영적 폭풍을 뚫고 나가도록 도와주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예수회 잡지 《아메리카》에서 일하며 추가로 보낸 한 해는 작가라는 새로운 경력을 꿈꾸도록 도와준 시기로 내 생애에 경이로운 시기였고, 신학 공부를 충실히 준비하는 데도 보탬이 되었다. --- pp.131-132

나는 예수회에 들어가면서 순명이 서원 가운데 가장 쉬울 것으로 예상했다. 아주 많은 것을 포기하고 아주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일 청빈은 분명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정결 역시 커다란 도전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적 친교 없이 살아가면서 걸핏하면 외로움에 시달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순명은 그 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어찌 됐든 하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 하라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장상들로부터 교회 안에서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주제는 다루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다. 나는 토마스 머튼의 말과 페드로 아루페의 표양을 생각하며 내 순명 서원을 충실히 지키고 싶었기에 그 같은 결정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이런 문제를 보다 자유로이 글로 다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 p.190

수련장의 말은 옳았다. 내가 예수회원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런 일이 한 번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피하고자 단단히 결심하고 있었음에도 한 사람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수련기를 끝내고 몇 년이 지나 나는 내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다. 내 사랑의 깊이와 내가 느낀 정열은 예상 밖이었고 도저히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은 누구나 이해하겠지만, 일종의 격동기였다. 몇 주일 동안 나는 이 사람이야말로 내게 필요한 사람이며 내가 여생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상사병’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고, 제대로 먹거나 잘 수도 없었다. 이런 기분에 뒤섞여 나타난 것은 이 모두가 내가 예수회를 떠나야 한다는 징후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이런 혼란의 와중에 나의 영성 지도를 맡고 있는 슬기롭고 노숙한 예수회원을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눈물을 펑펑 쏟고서야 털어놓은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 주었다. 그런 다음에 들려준 답변은 우리 수련장이 해 주었던 바로 그 이야기였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인간이 갖는 경이로운 요소이며, 어쩌면 자네가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면모일 게야. 이번 일은 자네가 사랑하는 사람임을 증명해 주고 있네. 이것이야말로 예수회원에게 그리고 사제에게 경이로운 일이라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결정해야만 하네. 자네는 자유로이 예수회를 떠나 이 관계를 추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여기에 남아 관계를 청산할 수도 있네.”(……)
독신 생활은 쉽지 않다. 사람이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지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빠져들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커진다. 독신 남녀는 서로에게 홀딱 반하고, 사랑에 빠지는 등 다른 인간이 걸려드는 일에 쉽사리 걸려든다. --- pp.313-315

성인들의 전구는 어떤 효과를 내는가?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분들에게 전구하는 것을 미신으로 보기도 한다. 촛불과 성상, 메달, 기도 모두가 마술의 주문처럼 수상쩍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전구를 신앙의 토대 중 하나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사도 신경에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성인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나의 경우는 성인들의 도움을 실천적이고 신학적인 차원에서 이해한다. 하느님과 함께 지내는 이들이 지상에 있는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 해서는 안 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이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싶어 해서는 안 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내게는 그러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것 역시 증명할 길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어떤 성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기도했다가 청한 것을 받았을 때, 우선 하느님께 감사드리지만 그 성인이 어떤 형태로든 내게 베풀었을 특별한 도움에도 감사드린다는 것뿐이다. --- pp.576-577

실리만을 추구하는 성인 공경은 지나치게 편협하다

하지만 친구도 그렇듯이 성인을 철저히 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성인을 그저 귀감으로, 중개자로,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있는 존재로만 여기면 안 된다. 성인을 이렇게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이다. 우리가 그들의 역할을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축소시키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도록 해 주는 역할로 보는 것은 더욱더 나쁘다.(……)
마더 카브리니가 빈자리를 찾느라 주차장을 돌아보고 있다고 상상하면 재미있다. 하지만 만일 성인을 순전히 기능적인 역할로 축소시킨다면, 우리는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계시하고 있는 다양한 선물을 온전히 누리도록 하라는 부르심을 간과하는 것이 된다. 성인은 그저 쓸 만한 도구가 아니다. 그들은 높이 기려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이 지상에서 살아간 이야기는 마치 예술 작품들에 고마움을 느끼듯이 고마워할 만한 선물이다. 어떤 사람이 언젠가 쓴 글에 따르면 성인들은 공연하는 배우와 같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는 바로 복음이다. --- pp.581-583

성인마다 다른 길: 자기 자신이 되는 길

리지외의 데레사에게서 또 다른 심상을 빌린다면, 성인을 사랑하는 것은 놀랍도록 다채로운 화단에서 기쁨을 얻는 것과 같다. 사람이 꽃을 사랑하는 것은 꽃이 하는 일 때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 때문이다. 성인들이 지니는 가장 보편적인 심상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는 증인들’이라는 것을 나도 이제는 안다. 성인들을 구름처럼 떠다니는 존재로 보는 이런 심상이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상당히 차갑고 비인격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훨씬 좋아하는 것은 성인들이 저마다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 주고 있는 화단이라는 심상이다.
성인들이 내게 갖는 가장 중요한 측면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요한 23세의 말을 인용하자면 성인들은 저마다 ‘다른 길로 성화’에 도달했다. 저마다 다른 시간과 상황 속에 자리 잡았고,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니고 삶에 다르게 대처했다. 성인들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도 저마다 사뭇 달랐다. 바로 이 책에 수록된 거룩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그들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언어를 구사하며 살았을 뿐 아니라,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특별한 부르심을 좇아 성화에 이르렀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토마스 머튼과 알로이시오 곤자가는 둘 다 하느님께 뿌리박은 삶을 살았지만, 삶에 접근하는 방식은 크게 달랐다. 머튼은 자신의 정주 서원, 수도원에서의 자기 위치, 트라피스트 수도승으로서의 자기 소명에 관해 거의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의문을 품고 지냈다. 반면에 알로이시오는 소싯적부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예수회원이 되는 일이었다. --- pp.583-584

성화는 몇몇 사람의 사치품이 아니다: 모든 이들의 의무다!

여기에 이르러서도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래, 난 이 책에 나오는 그 누구와도 닮은 구석이 없다. 난 도로시 데이처럼 사회 운동가도 아니고 토마스 머튼처럼 관상가도 아니고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위대한 학자도 아니고 페드로 아루페처럼 통찰력 있는 지도자도 아니며, 베르나데트 수비루처럼 실제로 환시를 보는 신비가는 더더욱 아니다. 성화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 (……)
근자에 모든 사람이 저마다 성화로 부르심 받고 있다는 주장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일부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성화가 베드로나 잔 다르크처럼 오래전에 죽은 성인이나, 사제나 수녀 또는 수사, 로욜라의 이냐시오나 요한 23세와 같은 전문적인 종교 인사에게나 해당하는 사안이라고 믿는다. 물론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나 샤를 드 푸코처럼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도 있다. 그리고 어쩌다가, 정말 어쩌다가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 일에 평생 헌신한 이름 모를 부모나 도로시 데이처럼 잘 알려진 탁월한 평신도도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개념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굉장히 낯설다는 말이다. --- pp.592-593

하느님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기를 바라신다고 하는 믿음은 줄곧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나는 늘 성장하도록 부름 받고는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이 되라고만 당부하신다. 따라서 내가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누군가의 고백을 듣거나, 길거리에서 노숙자와 마주칠 때 “베드로나 프란치스코나 데레사나 요한 23세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물을 필요가 없다. 그들이 내게 그리스도다운 행실을 보여 주는 귀감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하느님이 이 특정한 상황에 데려다 놓으신 것은 그들이 아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신비로운 지혜로 이 자리에 재능과 기량과 함께 약점, 한계를 지닌 나를 세워 놓으셨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지?” (……)
보편적인 성화 소명은 우리 자신이 되라는 초대다. 이는 또한 일상생활이 지니는 성사성을 기억하고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성화라는 위대한 목표를 성취하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
성화의 소명은 하느님과 친교를 맺으라는 초대이다. 이것은 성인들의 삶을, 그들을 사랑하여 존재하게 만드신 절대자께 드리는 선물로 변모시켜 놓은 그 부르심이다. 성화로의 초대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이자, 되기로 되어 있는 성인들로서 대면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시지 않는 하느님과 보다 가까워지라는 필생의 부르심이다.

--- pp.597-599

출판사 리뷰

나에게 있어서 성인은 누구인가?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개신교 신자나 다른 종교인들과는 달리 무수히 많은 성인들을 가지고 있다. 공식적인 성인 명단은 교황청에도 없어서 성인의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르지만, 대략 1만 명에서 2만 명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성인들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주보성인이나 영명 축일에 생각하는 정도랄까. 그리고 무슨 급박한 상황에서 기적이라도 바라며 간구하는 정도다. 그래서 아주 예외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들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저자도 그랬었다.

진이 잔 다르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당황한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음을 시인했다. 그러자 무슈 셰르망이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언급한 이야기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녀는 음성을 들은 (누구의 음성이었더라?) 젊은 처녀로서 (얼마나 젊었더라?) 프랑스 군대를 승리로 이끌고 (누구와 싸워 승리했더라?) 화형을 당한 뒤 (정확히 무슨 이유였더라?) 성인으로 선포된 (언제 선포되었더라?) 인물이었다.
- ‘하느님의 아이’, 잔 다르크(29쪽)

의견과 조언, 협조와 위안을 주는
형이나 누나 같은 멘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성인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던 저자는 예수회 수련자가 되면서 독서를 통해서 혹은 어떤 계기가 있어서 성인들을 한 분 한 분 알아갔다. 그리고 성인들의 생애나 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자신과 공통점을 확인하며 친밀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성인들이 자신과 늘 함께하면서 의견과 조언과 도움을 주는 형이나 누나 같은 멘토가 되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나이로비에서 삶이 힘들 때마다 (그럴 때가 잦았다) 나도 모르게 알로이시오를 생각했다. 아침에 갑자기 물이 없어 당황할 때, 나는 조용히 알로이시오 성인에게 작은 기도를 바치며 주선을 부탁드렸다. 내가 모는 낡은 지프가 (또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나는 알로이시오 성인에게 조금만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밤도둑이 우리 공동체에 숨어들어 내 신발과 카메라와 몇 푼의 현금을 훔쳐 갔을 때, 나는 가느다란 갈대 같은 내 참을성을 놓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알로이시오 성인에게 부탁드렸다. 그리고 단핵세포증으로 두 달 동안 침상에 누워서 내가 지금 케냐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아스러워졌을 때, 나는 그에게 전구와 격려를 구했다. 나는 그가 병듦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 알로이시오 곤자가(517쪽)

성인들은 누구나 이런저런 고통을 겪었으며, 따라서 우리가 비슷한 시련을 겪을 때 이미 그런 고초를 당한 그리스도인이 있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이 성인들이 하느님과 하나 된 상태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위안을 얻는다. 예를 들어 리지외의 데레사와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짧은 생애 동안 중병에 시달렸고, 긴 생애를 살았던 페드로 아루페도 마찬가지였다. 그대는 병 때문에 낙담하게 될 때 스스로 낙담했음을 시인한 데레사에게서 위안을 얻을 수 있고, 굳센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았던 베르나데트나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고자 했던 페드로 아루페에게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성인들의 삶을 알면 그들의 지혜를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다. 경험 많은 여행자처럼, 성인은 고통의 길을 걷는 그대의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 성인들의 생애를 읽는 이유는 그들의 통찰력에서 유익한 도움을 얻는 데 있다.
- ‘다른 형태의 성스러움’, 결론(573쪽)

그러다 보니 저자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성인들에 대한 애정을 당혹스럽게 여기던 사람에서 놀랍게도 성인들을 자기 삶의 기쁨 중 하나로 여기는 사람으로 바뀌어 갔다. 그 후로도 성인들에 관해 읽고 새로운 성인과 만날 때마다 각별한 즐거움을 맛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에 어떤 성인에게 끌리는 이유는 그 성인이 이미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사람이 다른 성인을 놓아두고 한 성인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상으로는 우리의 삶과 공통점이 거의 없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세기 전에 죽은 누군가가 도움을 구하고 싶을 만큼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무엇이 나로 하여금 16세기 후작의 아들을 자주 찾게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면에서 한 성인에 대한 끌림 또는 신심은, 남용되고 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의 신비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런 신심들은 있는 그대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 놀라움의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자, 영성 생활에 예기치 못한 은총으로서.
-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 알로이시오 곤자가(526쪽)

나는 또한 그들의 우정도 감지한다. 나슴 성인들을 알면 알수록 하느님과의 삶을 즐기는 이들이 나를 돕고 있고, 그들은 나의 편이고, 그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훌륭히 살아 내기 바라고 있으며, 그들은 내가 훌륭한 예수회원이요 사제가 되기 바라고 있다고 느낀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을 처음 대면한 이래로 그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믿어 왔다. 그들은 내게 말한다. “포기하지 마라.” 그들은 내게 타이른다. “걱정하지 마라.” 또는 노리치의 율리아나처럼 이렇게 말한다. “만사가 형통하고, 모든 일이 다 잘되리라.”
- ‘다른 형태의 성스러움’, 결론(576쪽)

성인과 관계 맺는 두 가지 방법:
수호자형과 동반자형


저자는 우리가 성인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방식이 ‘수호자’형과 ‘동반자’형이 있음을 예리하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인을 수호자로만 여기지 동반자로 여기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수호자’형이란, 성인들이 하느님 가까이 있고 성인들에게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므로, 우리는 그분들에게 그저 도움을 청하기만 하는 관계다. 마치 나를 위해 부모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형이나 누나에게 늘 부탁만 하는 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초대교회에서는 성인들이 ‘수호자’라기보다는 ‘동반자’에 더 가까움을 일깨워 준다. 그러니까 성화와 성인의 지위가 보다 평등했고, 친구 같은 관계였다. 그러한 예로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를 ‘성인’이라 지칭했음을 들 수 있다.(우리말 성경에서 ‘성도’라 옮겨서 책의 본문에도 ‘성도’라고 옮겼지만, 그리스어 원문은 ‘성인’이라는 뜻의 하기오스 를 썼다.-편집자 주) 즉 성인들은 우리보다 앞서 가며 우리를 격려하는 친구이자 신앙 공동체의 형제자매이며 동시에 거대한 ‘증거자 집단’인 것이다.

나는 이들 가운데 몇 분이 여러분에게도 동반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결합하는 날, 우리의 귀감이자 중개자요 벗이 되어 준 이 성인들을 두고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을 것이다.
- ‘다른 형태의 성스러움’, 결론(600쪽)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성인들이 이 두 가지 유형이 모두 효험을 발휘했다며, 우리에게 성인들을 이러한 멘토로서 사귀는 법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감동적으로 전해 준다.

내 삶에서는 두 가지 유형이 모두 효험을 발휘하고 있다. 나는 일반적으로 성인들을 동반자로, 귀감으로, 그리고 물론 응원단장으로 삼는다. 하지만 내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때도 많고, 그럴 때 내가 얼굴을 향하는 이들이 성인이다.
예를 들어 리지외의 데레사는 내가 낙담하거나 풀이 죽었다고 느낄 때 생각나는 성인이다. 그녀는 은총이 일상생활의 노고를 통해 작용한다는 점을 깊이 깨친 사람으로, 그녀의 표양은 그날 내 앞에 놓인 일을 보다 평온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그날의 근심 걱정이 나를 짓누른다고 느끼면 데레사 성녀에게 기도를 부탁드린다.(……) 성소로 어려움을 겪을 때, 그러니까 장상이 내린 곤란한 결정을 받아들이는 데 힘이 들 때 나는 로욜라의 이냐시오나 토마스 머튼에게 눈을 돌린다. 머튼은 수도회 장상들과의 의견 충돌에 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정결 문제로 고심할 때는 알로이시오 곤자가에게 눈을 돌린다. 그리고 교회와 갈등을 겪을 때면 요한 23세에게 눈을 돌리고, 소박하게 살아야 하는 삶이 힘들어질 때면 도로시 데이에게 얼굴을 향한다.
터놓고 말하거니와, 나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때마다 반드시 어렸을 때 가장 먼저 배운 기도를 바치는데, 바로 잃은 물건을 찾아 주는 파두아의 안토니오 성인께 바치는 기도이다. “안토니오 성인이여, 안토니오 성인이여, 제발 둘러보아 주십시오. 무언가를 잃어버렸는데 찾을 수가 없답니다.”
나는 이 기도를 바치고 나면 곧잘 경악할 만큼 금세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낸다.
- ‘더욱더’, 페드로 아루페(173~175쪽)

저자는 성인들이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안에서도 함께하심을 체험한다. 그래서 바쁠 때면 필기사 세 명을 고용해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썼던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글을 쓸 때면 글 쓰는 이유가 명성에 있지 않음을 일깨워 준 토마스 머튼 신부를, 소외된 이들과 일할 때면 자신이 섬기는 가난한 이들이 그리스도임을 깨우쳐 주는 마더 데레사 수녀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싸울 때면 결과보다는 하느님을 신뢰해야 함을 깨닫게 해 준 잔 다르크 성녀의 삶을 생각하며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
크리스토퍼상, 미국 가톨릭 출판인협회상 수상에 빛나는 책!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미국에서 10만 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은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되었고, 크리스토퍼상과 미국 가톨릭 출판인협회상을 수상했다. 미국 언론계로부터도 큰 호평을 받았다.

괄목할 만한 매우 유쾌한 작품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얼마나 멋진 책인가! 이 책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개인적 체험이 녹아 있고, 지혜가 가득하며, 곳곳에 유머가 숨어 있다. 역사를 통틀어 다양하게 활동한 거룩한 분들이 지나온 삶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임스 마틴 신부의 삶에 영향을 미친 그분들에게 간구하며 그분들을 향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깨닫게 해 준다.
- 론 한센,《환시 중의 마리에트》의 저자

마틴 신부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해 주려고 한 말은 칼 융의 심리학과 같이 보편적인 것이다. 즉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다 마더 데레사나 도로시 데이가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가장 충만하게 우리 자신이 되기를 원하신다.
- 워싱턴 포스트지

“성화는 모든 이들의 의무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성인이 되고 싶어 해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의 갈망을 통해 우리에게 소명을 일깨워 주신다.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갈망에서 비롯된 사랑으로 결합하면서 부부로서의 소명을 찾아낸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갈망에서 아이를 창조하고 부모로서의 소명을 찾아낸다. 갈망은 성인들의 삶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하여, 그들에게 일정한 유형의 일을 하도록 유도하고 특정한 소명을 창출하고 독자적인 특별한 종류의 성덕으로 이끌어 준다. 안젤로 론칼리는 갈망했기 때문에 사제가 되었다. 도로시 데이는 갈망했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로 들어왔다. 샤를 드 푸코는 갈망했기 때문에 사막에서의 가난한 삶을 기꺼이 선택했다. 궁극적으로 가장 깊은 갈망은 하느님께로, 그리고 세상에 바라시는 하느님의 소망을 실현하는 일로 이어진다.
- ‘다른 형태의 성스러움’, 결론(587~588쪽)

이러한 갈망은 다양하게 이뤄져,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군인으로서의 출세를 포기하고 하느님을 따른 반면, 잔 다르크는 군대로 뛰어들었고, 도로시 데이는 복음 전파를 위해 신문사에서 일한 반면,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자신의 이야기가 출판되는 것을 꺼려했다. 이러한 다양한 모습 속에서도 성인들이 일치되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투신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성화는 하느님이 우리 각자에게 지정해 주신 목표이자 종착점임을 강조한다.

풍요롭게 펼쳐지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인들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도록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훌륭한 조언자이자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는 분이며, 우리 인생길을 함께 걷는 진정한 친구임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참고: 교황청에도 공식적 명부가 없다는 성인들!

성인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심지어 교황청에도 공식적인 성인 명부가 없다. 왜냐하면 1천여 년 동안 정식으로 시성식이 없었는데도 교회는 성모님과 성 요셉, 베드로와 바오로 등의 사도들과 제자들, 그리고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노와 같은 위대한 학자 교부들 등 수많은 분들을 성인으로 공경해 왔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초의 시성식이라 할 수 있는 일은 993년에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일어났다. 요한 15세 교황이 주교회의 도중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울리히(Ulrich) 주교를 성인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렇듯 교회는 천년 동안 ‘복자’와 ‘성인’의 칭호도 혼용했고, 시복과 시성이라는 개념의 구분도 없었으며, 공식적인 시복, 시성식도 없었다. 그러다가 1512년 율리우스 2세 교황이 시복식과 시성식을 구분하기 시작해 1600년대에 이러한 구분이 확정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하느님의 종(Servus Dei), 가경자(Venerabilis), 복자(?? Beatus), 성인(Sanctus) 등의 구분과 시복 및 시성의 절차와 규정의 법제화는 1750년대에 베네딕토 14세 교황이 했다. (천진암 성지 홈페이지 ‘이번 주 풍경소리’ 참조)
따라서 공식적으로 성인 숫자가 얼마가 되는지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추산할 수 없고, 대개 1~2만 명 정도라고만 추산할 뿐이다.

추천평

성인들은 우리의 수호자이자 벗입니다. 제임스 마틴 신부는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그분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고백합니다. 성인들에게 향하도록 이끈 재미있고 모험 가득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그 속에서 우리가 헌신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줍니다.
에이버리 덜레스(예수회 추기경)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내가 그저 우러러 바라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성인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보다 훨씬 더한 절규를 가지고 있으며, 나보다 훨씬 못한 위안을 가지고 사신 분들의 삶의 이야기. 그래서 그 안에 있는 나를 볼 수 있고, 나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실 수 있는 그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공감의 틀 안에서 멘토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 모든 분들께 새로운 희망으로 이 책을 추천합니다.
홍성학(신부,가톨릭출판사 사장)
제임스 마틴 신부는 홀든 콜필드(《호밀 밭의 파수꾼》 주인공)와 토마스 머튼을 만나는 지점에서 가장 멋진 영적 체험기를 펴냈다. 그가 살아온 동안 자신을 북돋우고 이끌어 준 성인들의 도움으로 인해 그는 뜻 깊고 재미있는 여정을 소개하게 되었다.
로버트 엘스버그(오르비스 북스 편집장)
얼마나 멋진 책인가! 이 책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개인적 체험이 녹아 있고, 지혜가 가득하며, 곳곳에 유머가 숨어 있다. 역사를 통틀어 다양하게 활동한 거룩한 분들이 지나온 삶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임스 마틴 신부의 삶에 영향을 미친 그분들에게 간구하며 그분들을 향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깨닫게 해 준다.
론 한센(《환시 중의 마리에트》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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