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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선택의 기로
제1장: 효도하는 자녀가 부모를 죽인다 제2장: 지나치게 장수하는 사람들 제3장: 부모 자식 간 유대의 함정 제4장: 부모가 먼저 자녀를 버려야 한다 제5장: 우리에게 99세 노인의 자살을 막을 자격이 있는가 제6장: 이제 효도할 이유도 여력도 없다 마치며: 버리지 않으면 내가 버려진다 에필로그 |
Hiromi Shimada,しまだ ひろみ,島田 裕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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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대부분은 평생 살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간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도 않는다. 하물며 간병 살인을 저지르는 이들은 살인은커녕 범죄와 전혀 관련이 없는, 오히려 성실한 사람이다. 이 사실은 도네가와 신주의 셋째 딸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셋째 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와중에도 생활보호를 마다했다. 그런데 가족을 집에서 간병한 끝에 결국 피간병인을 살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매년 반복된다는 점이다.--- p.23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조부가 72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내 기억에 조부는 치매를 앓고 있었고 이따금씩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켰다. 조부는 도쿄제국대학(도쿄대학의 옛 이름_옮긴이)을 졸업한 분이었지만 당시 내 눈에 그는 사고뭉치 치매노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집에는 조모가 계시고 내 부모가 계셨으며 누이가 있었다. 3세대가 함께 살아 조부를 간병할 여유가 있었고 아버지는 굳이 일을 그만둘 필요가 없었으며 따라서 일가의 생활도 파멸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의 힘은 완전히 쇠락했다. 연로한 부부끼리 혹은 연로한 부모와 자녀 한 명으로는 간병을 지속할 수 없다. 언젠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다.--- p.75-76 법무사인 지인의 말에 따르면 상속으로 인한 갈등은 유산이 많은 집이 아니라 오히려 유산이 적은 집에서 생긴다고 한다. 언뜻 의외인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선 고액의 유산을 남기는 사람은 생전에 상속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전문가와 상담하여 면밀히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유산이 적으면 고인이 생전에 충분히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상속인도 재산이 적기 때문에 자기 몫이 조금이라도 많아지기를 바란다. 비용이 드는 것을 꺼려 전문가에게 의뢰하지 않고 상속인끼리 논의를 하면 아무래도 마찰이 생기기 쉽다. 상속 문제로 형제자매가 연을 끊고 갈라섰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린다. 부모로서는 조금이라도 재산을 남기려고 필사적이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자식에게 부담을 안기게 된다.--- p.93-94 한편, 효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원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교육의 비용을 제공하지만 고유의 기술이나 기능을 전수하지는 않는다. 지위나 직책을 물려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예전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많은 것을 전수하고 물려주었기에 열심히 효행을 실천했다. 기술의 대물림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녀들은 그만큼 부모를 공경했다. 효행은 결코 대가 없는 애정의 발로가 아니다.--- p.179 이제 자녀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살아가고 부모도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자녀는 부모에게 기대서는 안 되고 부모도 자녀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일찌감치 자녀를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자녀는 자기 힘으로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물론 부모가 자녀를 버린다고 모두가 성공적으로 자립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립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생태계의 기본이며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자녀가 힘들어진 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이를 악물고 버려야 한다. 만약 때를 놓치면 이번에는 자신이 나이 들었을 때 자녀에게 버림받게 된다. 이 상황이 자녀를 버리고 나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길보다 훨씬 험난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p.197 고백하자면 이 책을 기획한 후 집필하기까지 상당히 애를 먹었다. 주제는 부모를 버린다는 것으로 정했지만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내 안에서 갈등이 생겨 도무지 원고가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극작가 하세가와 신의 작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세상에서 벗어나 방랑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들이다. 방랑자는 혼자의 힘으로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간다. 본래 성실한 사람이 방랑자가 되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현대사회의 세상살이가 점점 가혹해짐에 따라 성실한 사람에게도 방랑자와 같이 혼자 헤쳐 나가는 힘이 요구되고 있다. 그간 나의 종교학 인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연구 과제는 통과의례였다. 통과의례에는 반드시 여러 고행이 수반된다. 부모를 버리는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시련이 될 것이다. 통과의례의 문제와 이를 연결하자 비로소 나는 이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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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 당신은 언제까지 부모와 자녀를 부양할 것인가
이제 그 혹독한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고령화 시대의 효도는 불효보다 위험하다 일본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 10건 중 1건은 일명 ‘간병 살인’이다. 오랜 세월 노부모를 간병하다 정신적 · 신체적 · 경제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결국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리 놀랍지 않은 뉴스가 되었다. 노부모 살해는 남의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지난달 12일 충북 청주에서 70대 노모와 40대 아들이 각각 자신의 집과 대청호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일이 발생했다. 치매를 비롯한 중증 장애를 앓던 홀어머니를 20년 가까이 극진히 모시던 아들이 끝내 한계를 느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모든 가족이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길 원했지만 아들은 끝내 그런 ‘불효’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노부모 간병 살인에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패륜으로 인생을 마감했지만 평소 주변으로부터 ‘효자’라는 칭찬을 무수히 받아 온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라는 점이다. 그들이 극진한 효행을 실천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늙으신 부모를 한집에서 모시는 게 당연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저성장, 고령화 시대의 효도는 그 자체로 위험한 것이 되었다. 부모가 먼저 자식을 버려야 한다 자녀에게 부양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부포세대’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 50, 60대의 79.6%가 ‘부포족(族)’이라는 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노부모와 자식을 이중으로 부양하고 있어 마땅한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이대로라면 늙어서 자식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바람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부모를 버리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늙어서 자식에게 버림받기 전에 부모가 먼저 자식을 버리는 게 좋다고 권유한다. 늙고 병든 부모를 버리는 것보다는 젊고 건강한 자식을 버리는 편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나이만 먹었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녀를 세상으로 내모는 일도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은이는 “자립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생태계의 기본이며 인간도 예외는 아니라”며 이제는 좀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다소 과격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지은이의 주장은 부모 자식 간의 유대관계를 이제는 조금 느슨하게 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성인이 되면, 혹은 결혼을 하고 나면 각자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는 서구의 사람들처럼 하면 될 일이다. 오래도록 얹혀산 대가는 결국 끝을 알 수 없는 노부모 간병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래도록 자식을 곁에 둔 결과는 자식에게 간병이라는 부담을 지울 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방적 기대와 의무보다 합리적 공존을 모색하라 지은이는 “부모의 은혜가 줄어든 만큼, 효의 의무도 줄어들었다”고 주장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업과 기술을 전수하고 농지를 물려주는 게 당연하던 시절, 자식은 물려받은 것으로 생계를 이으며 노부모를 봉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전히 부모의 양육으로 자녀가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예전에 비하면 오늘날 부모의 은혜는 상대적으로 보잘것없고, 그만큼 효의 가치도 줄어들었다. 어여쁜 아이를 키우는 보람이 여전한 데 반해 의료기술의 발달로 끝을 알 수 없게 된 간병은 전보다 혹독해지고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효행은 결코 대가 없는 애정의 발로가 아니다”. 부모 자식 간에 지나치게 합리성을 따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노부모 간병 살인에서 보듯이 고령화 시대에 부모와 자녀가 오래도록 공존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부모 공경’ 혹은‘자식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한편에게 일방적으로 의무를 지우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당장에 다소 벅차더라도 각자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다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그만 서로를 놓아줘야 할 때가 왔다. 대한민국이 완벽한 복지사회가 실현되기 전까지는 그 혹독한 연결고리를 끊는 것만이 고령화 시대를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책이 그 당위성을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