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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정지용 시 이야기
정지용김성장 해설
(주)고래실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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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창작/이론 top100 9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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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동심과 고향에 관련된 시


향수
옛 이야기 구절
고향
자류
가모가와
조약돌
띠, 할아버지, 홍시, 병
종달새, 딸레, 지는해, 숨기내기
산엣 색시 들녘 사내

2장 뿔뿔이 달아나는 바다
바다에 관련된 시


선취 2
선취1
갑판 위
바다 9
바다 6
갈매기
바다 1
풍랑몽 1
해협
바다 4

3장 나의 눈보다 값진 이
신앙에 관련된 시


불사조
다른 한울
그의 반
나무
갈릴레아 바다

4장 숨어있는 고요함
산에 관련된 시


장수산 1
옥류동
나비
구성동
백록담
진달래
호랑나비

5장 사랑과 절망과 혼돈의 시절
그 밖의 시들


엽서에 쓴 글
파라솔
카페 프란스
유리창 1
발열

시계를 죽임
그대들 돌아오시니
나비

정지용 연보

저자 소개 2

鄭芝溶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9인회를 결성하고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을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1935년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 [문장]의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뒤에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사변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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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김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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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학교 때 장래 희망란에 ‘화가’라고 썼다. 그러나 희망과 달리 공고 기계과에 진학했고 거기서 문학 하는 선배들을 만나 시를 끄적였다. 직업 군인 생활을 마치고 공장에 취직하여 용접공으로 살다가 스물일곱 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재주는 시원치 않았으나 시, 소설, 평론 등 마음 가는 대로 그저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를 좋아했다. 최근에는 붓글씨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그림이든 글이든 글씨든 모두 ‘쓰는’ 행위이니 결국 원래 희망대로 붓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행복한 생각을 한다. 시인, 서예가, 전직 국어 교사. 1988년 『분단 시대』 동인으
초등학교, 중학교 때 장래 희망란에 ‘화가’라고 썼다. 그러나 희망과 달리 공고 기계과에 진학했고 거기서 문학 하는 선배들을 만나 시를 끄적였다. 직업 군인 생활을 마치고 공장에 취직하여 용접공으로 살다가 스물일곱 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재주는 시원치 않았으나 시, 소설, 평론 등 마음 가는 대로 그저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를 좋아했다. 최근에는 붓글씨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그림이든 글이든 글씨든 모두 ‘쓰는’ 행위이니 결국 원래 희망대로 붓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행복한 생각을 한다.
시인, 서예가, 전직 국어 교사. 1988년 『분단 시대』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서로 다른 두 자리』, 서예 시집 『내 밥그릇』, 정지용 시 해설서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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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29쪽 | 262g | 120*205*20mm
ISBN13
9791196380304

책 속으로

정지용은 고독한 시인이었다. 그는 대한제국이라는 무력한 제국에서 태어나 일본이라는 폭력적 제국의 점령 기간에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미국이라는 교묘한 제국이 한반도를 종횡하던 시기에 죽었다.
때로는 영광의 자리에 있었으나 시대의 첨단을 가는 자의 고독한 무게를 견뎌야 했고 이념을 추구하지 않았으나 이념의 포충망에 갇혀 40년 가까운 세월을 한반도에서 잊혀야만 했다. 시인은 언어를 무기로 세상을 재구성하는 자일진대 그는 언어가 시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던 일제 말 암흑기에 붓을 꺾어야 했고 남북이 극한대립으로 치닫던 6.25 직전, 은둔자로 절필하며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했다. 한때 히라가나로 시를 써야 했고 마지막엔 죽음의 자리마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으로 길에서 죽어간 시인 정지용, 그를 사랑한 숱한 사람들도 비극의 시대를 함께 건너야 했다. 선택한 것보다 강요된 것이 더 많은 시대를 살던 한반도 거주민들의 운명이었다. --- p.4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아무러치도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고, 내가 함부로 해도 아무러치도 않고, 내가 아무렇게나 해도 아무러치도 않은 그런 사람일까요. (…) 그런데 그 ‘안해’가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함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면서 맨발로 이삭을 ‘줏고’ 있으니, 이것은 너무 안쓰러운 장면입니다.
그 시절 어쩌면 모든 안해들이 그렇게 힘들었던 시절인지 모릅니다. 정지용은 결국 ‘아무러치도 않은’ 가슴으로 이 장면을 쓰고 있지는 않았겠지요.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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