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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陸史, 이원록, 이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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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전국의 문학관 기행 에세이(졸저 『시로 만든 집 14채』)를 쓰면서 이육사 관련 책을 몇 권 읽고 정리한 적이 있다. 이육사는 그때 나에게 ‘시와 다이너마이트를 한 가슴에 품은 시인’으로 다가왔다. 독립운동 가운데 가장 격렬하게 활동을 했던 의열단 단원으로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나온 군인이었으며 시를 썼다. 일제 강점기에 가장 여러 번 감옥을 드나들었던 시인,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중략) 글씨 자체에 대한 탐미적 관점보다 글씨가 내 삶의 어디에, 우리 사회 공동체의 어느 곳에 쓰일 수 있을까에 집중하며 30여 년 붓을 가지고 지내다 보니 어떤 촉이 생기는 느낌이다. 계속하여 붓을 쥐고 하얀 평면 위에 머물다 보니 서체의 다양성에 조금씩 눈을 떠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획과 자형과 기울기의 작은 변화에도 풍부한 정서가 별현될 수 있다는 느낌 말이다. 시의 느낌이 글씨로 전환될 때 그 시가 담고 있는 느낌을 담을 수 있는 서체가 가능해지기를 꿈꾸면서 말이다. 어떤 성취가 있다면 그 힘은, 어떤 경우라도 내 글씨의 기본적인 힘은 쇠귀민체로부터 왔다는 걸 기록해두고 싶다. 거기에는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이후 보통 사람들이 쓴 손글씨의 감성 결집이 이루어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024년 7월 김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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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는 행동하는 시인이었습니다. 의열단원들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이수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이래서 내 가을은 다 지나가고 뒤뜰에 황화 한 포기가 피어 있으니 어느 동무가 술 한 병 들고 오면 그 꽃을 따서 저 술 한 잔에도 흩어주고 나도 한 잔 마셔 보겠소”(「계절의 오행」 중에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육사는 민족도 알지만 가을도 알고 그 가을꽃을 따서 술잔에 띄워 마실 줄 알던 사람입니다. 이런 대목이 육사를 더 미덥게 합니다.
김성장 선생은 신영복체 ‘따라 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여럿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정민 교수가 당나라 유지기(劉知幾)의 《사통(史通)》 《모의(模擬)》에서 옛것을 배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듯이 ‘따라 쓰기’가 모동(貌同)보다는 심동(心同)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연암 선생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심사(心似)라야지 형사(形似)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 쓰되 똑같아서는 안 되며 다름을 추구하되 바탕은 다르지 않은 상동구이(尙同求異) 정신을 지녀야 합니다. 이번에 김성장 선생이 쓴 이육사 시를 보면 신영복체의 정신을 닮았으되 김성장 선생이 자기 정신으로 자기 글씨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멀지 않은 날에 김성장체 따라 쓰기 하는 이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 도종환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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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사람 되셨다는 한소식, 글씨가 그 마음이 되셨다는 큰소식. - 김인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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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장 님의 글씨를 보노라면 존재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가 글씨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살이의 근본에도 사람의 글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김성장 님의 글씨는 사랑과 그리움의 관념적 속성까지를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모양으로 형상화한 체(體)가 있다. 또박또박 솟거나 풍요롭게 흐른다. 아름답다. - 김주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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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장의 글씨는 물과 불과 바람의 ‘흐름’과 ‘일렁임’을 닮았다. 서실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역사, 인물, 노동 등의 생생한 이야기를 글씨로 담으려 애쓰고 있다. 본래 시와 글씨는 한몸인 바, 이번 글씨전 역시, 김성장의 활달한 글씨에 이육사의 시정신을 오롯이 담았다. - 송찬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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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말여. 성장이 엉아가 이육사 선생님 시와 글로 서예전을 헌다는디, 서체가 쇠귀 선생 본이랴. 육사 선생님이나 신영복 선생님이나 강골의 지사잖여. 성장이 엉아가 그분들 정신두 우람하게 펼치구, 정성을 다해 공손함두 담구, 또한 서예가로서 독창적인 자존두 지켜내야 허니께 을마나 조마조마헌 맴으로 칼바위 끝에서 먹물을 갈었겄냐구. 글씨 말여. 그러니께 우선 박수부텀 쳐드리는 게 도리 아니겄어. - 이정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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