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희 시인은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고 그 속에 깃든 삶의 기억을 섬세한 언어로 옮긴다. 가까운 인물의 생애로부터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시로 아우른다. 그 가운데 무심한 일상 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는 시적 감각은 탁월하고, 쇠락하는 시간 속에 잊히고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한결같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오래된 지도를 읽”(「약도」)듯이 생의 근원을 묻고 생활의 통점을 짚어내는 문장에서 더욱 빛난다. “나 원래는 부서질 대로 부서진 가루”(「부러진 연필심」)인 자아를 성찰하고, “비 오다 갰다 다시 비 오다 갰다 하는”(「얼룩에 대하여」)현실을 위무하며, “밤바다 파도 속으로 소금을 되돌려 주는 일”(「소금을 바다로 되돌려 주기」)의 회생과 긍정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다. 나아가, 쌓인 ‘흰 눈’을 ‘하얀 불놀이’로 명명할 때 이 시집은 찬란하게 읽힌다. 삶을 눈과 불의 격렬한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여기에 시인은 한마디 덧붙인다. “생은 무엇이 받치고 구르는 힘으로 나아간다”(「고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