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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하얀 불놀이 12 가장 작은 방 14 약도 16 흐엉 씨의 두부 18 바둑 20 왜 밝은 쪽에선 볼 수 없을까 22 고(故) 24 빵 26 열정 3악장 28 암막 커튼 30 도마 앞에서 32 거기 34 개미 한 마리 등이 따갑도록 36 켤레 38 제2부 파도가 굽이쳐요 40 모자로 햇빛을 가린 남자가 자전거를 굴린다 42 소금을 바다로 되돌려 주기 44 부러진 연필심 46 수술실 앞에서 48 이상한 놀이터 50 얼룩에 대하여 52 일월 54 저 독한 냄새는 누구의 일인가 56 벚꽃 만개한 북천의 기다란 둔덕이 걸어간다 58 고드름에 대한 한 생각 60 숲을 열어 물 마시고픈 나이 많은 아이는 62 가시는 바깥으로 자란다 64 밥 끓는 소리 66 제3부 처음 가는 장소라면 어디든지요 68 도루묵 70 고추밭에서 72 사춘기 시절 74 이브닝 76 관계 78 어처구니없이 어처구니를 79 그늘을 밟은 날 80 언저리가 중심을 만든다 82 비와 햇빛 사이에 무지개 83 흰 것들에 대하여 84 칼 이야기 86 혼돈 88 꽃이 지는 날 여자는 90 제4부 교차로의 볼록거울 94 우물 96 그런 날 98 흔들린다, 민들레 100 별안간 102 담장 104 톱니 자국 106 서랍을 여니 108 두부 110 치킨집 앞에서 112 기름집이 있는 골목 114 단추와 단춧구멍 116 스프링일까 118 당신의 젠가 게임 120 해설 박찬선 상황인식과 관계의 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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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에서 두부를 자른다
칼끝을 압력솥 쪽으로 놓고 자른다 정수기 쪽으로 놓고 자른다 어디로 놓고 자르든 물컹한 두부도 각을 세운다 칼 지나간 자리 두 개의 선분이 맞닿은 곳 꼭짓점이 두부의 말랑말랑한 각 같은 것이라면 우리 식탁에 앉을 때 힘주지 말자 식탁이 물컹물컹할지도 모르니까 도마도 싱크대도 프라이팬도 반찬통도 두부처럼 말랑말랑한 각을 가졌을지도 모르니까 우리 칼 쥔 손에 힘을 빼자 그러면 우리 집 칼끝도 물컹한 모서리가 되어서 우리 집 칼로는 과일을 썰 수 없게 될까 두부밖에는 자르지 못하는 걸까 집 안의 모서리들이 모두 물컹해지면 식구들 모두 물컹해져서 흐엉 씨가 될까 --- 「흐엉 씨의 두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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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해 저물기 전에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하지 못하고 다음으로 넘어간 일들이 많았다 비루한 이유라면 게으름일 수도 있다 아직 덜 익었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넘어가고 넘어가서 모인 것들이 자꾸 밖을 본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내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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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희 시인은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고 그 속에 깃든 삶의 기억을 섬세한 언어로 옮긴다. 가까운 인물의 생애로부터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시로 아우른다. 그 가운데 무심한 일상 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는 시적 감각은 탁월하고, 쇠락하는 시간 속에 잊히고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한결같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오래된 지도를 읽”(「약도」)듯이 생의 근원을 묻고 생활의 통점을 짚어내는 문장에서 더욱 빛난다. “나 원래는 부서질 대로 부서진 가루”(「부러진 연필심」)인 자아를 성찰하고, “비 오다 갰다 다시 비 오다 갰다 하는”(「얼룩에 대하여」)현실을 위무하며, “밤바다 파도 속으로 소금을 되돌려 주는 일”(「소금을 바다로 되돌려 주기」)의 회생과 긍정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다. 나아가, 쌓인 ‘흰 눈’을 ‘하얀 불놀이’로 명명할 때 이 시집은 찬란하게 읽힌다. 삶을 눈과 불의 격렬한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여기에 시인은 한마디 덧붙인다. “생은 무엇이 받치고 구르는 힘으로 나아간다”(「고故」)고. - 송찬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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