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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 말과 민주주의 2 다중과 폭력 3 섞임과 구분됨 4 노모스와 파시스 5 죽음과 평등 6 토론과 레토릭 7 설득과 진리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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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와 민주주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는 말하기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있다. 트로이에 주둔하고 있는 그리스 연합군 사령부에 한 병사가 등장했다. 병사들 중 가장 못생기고 다리까지 저는 테르시테스였다. 그는 지지부진한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왕들을 비난했다. 이를 막아선 것은 오디세우스였는데, 그는 홀을 들어 테르시테스를 때리기 시작했다. 피와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고 왕들은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왕들은 그가 진실을 말했음을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말’과 ‘권력’에 대한 하나의 원형적 관계를 보여준다. 저속한 자의 말하기는 진실일지라도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폭력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왕들이 지배하던 시대의 말하기 교훈이다. 말과 권력의 관계는 복잡하고도 모호하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말과 권력의 관계가 드러내거나 숨기는 가치ㆍ규범ㆍ제도ㆍ행위의 집합은 결국 한 사회가 권력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방식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누구나 말할 기회를 누리고 말하기 방식이 정교화된 사회는 정당한 방식으로 권력을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폭력’이 아닌 ‘말’을 통해 정당한 권력을 구성하는 과정이 민주주의라고 할 때, 말하기와 민주주의는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적 옹호가 필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퇴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저자 이준웅은 민주주의가 왜 바람직한 정치체제인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효과적으로 방어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민주주의 이론의 위기는 곧 현실 민주주의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에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은 민주주의란 그 정치체제의 주체인 시민의 불신을 사기 쉬우며, 시민에게 불신받는 정치체제란 ‘정당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정치체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의사소통을 이용한 권력의 정당화에 있다고 보는 저자는 폭력과 회유로 점철된 참주정과 쿠데타의 위협을 동반한 과두정으로부터 압박을 받으면서도 ‘소통적이며 조정적인 정치체제’를 모색했던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역사가 우리 현실의 문제점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이론적 반성 지점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의 지배적 담론양식이었던 ‘레토릭적 의사소통’을 탐구함으로써 이론적으로 정당화 가능하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한 민주주의 이론, ‘의사소통 민주주의’를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격인 제1장을 거쳐 제2장에서 고대 아테네 민주정의 성립ㆍ발전과정을 말하기 권리의 확장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제3장에서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 소통양식인 레토릭에 대해 논의한다. 레토릭은 단순한 말하기 기예ㆍ수사법이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돕는 실천양식이었다. 제4장에서는 고대 레토릭을 둘러싼 당대 논자들의 논쟁을 재구성해 레토릭을 통한 ‘연행적 경연문화의 활성화’가 갖는 사회정치적 함의를 밝힌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제5장에서 로버트 달ㆍ마이클 세이워드 등 최신 민주주의 이론의 성과와 한계점을 살펴보고 고대 민주주의에서 얻은 영감을 근거로 민주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며, 제6장과 제7장에서 ‘숙의 민주주의’ 논의를 경유해 마침내 ‘의사소통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이 책은 매체와 커뮤니케이션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저자가 그간의 문제의식과 연구를 집대성해 내놓은 첫 번째 저작이다. 읽고 쓰는 일, 연구하고 새로운 주장을 만들어내는 일과 관련한 ‘반성’이라는 방법론에서 시작해 플라톤으로부터 헤겔ㆍ하버마스, 고대 민주주의 이론에서 현대 의사소통 이론에 이르는 폭넓은 논의를 일관된 주제 아래 담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 현실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성과물을 제시하는 인상적이며 개성적인 저작이다. ‘평등한 말하기’와 ‘무엇이든 말하기’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성립과 운영은 다중이 누린 ‘말하기 권리’에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레이스테네스 시기에 확립된 권리 가운데 ‘이세고리아’(isegoria), 즉 ‘평등하게 말하기’가 있다. 이는 민회ㆍ시민법정 등 공적인 장소에서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발언의 자유를 의미했다. 이세고리아는 ‘파레시아’(parrhesia), 즉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자유’ 와 더불어 아테네 말하기 문화의 기초를 이룬다. 귀족들 앞에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경계심이 해체되고 시민이면 누구나 꺼릴 것 없이 말할 수 있다는 의식이 지배적이 된다. 아테네 민주주의 발흥기에 일군의 ‘현명함을 주장한 사람들’ 즉 ‘소피스트’들이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들로 인해 기원전 5세기 중반 이후 아테네 정치에 레토릭이 활발하게 도입되면서 민주적 말하기 문화가 강화되었다. 레토릭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담론적 실천양식이다 레토릭은 흔히 말과 글을 꾸미는 기예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레토릭은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의사소통 가치ㆍ규범ㆍ제도ㆍ실천을 구현한 의사소통 양식이었다. 첫째, 레토릭은 말하는 자의 재산ㆍ명성ㆍ권력 등이 걸려 있는 사회적 실천행위였다. 예를 들어 사법적 레토릭은 법정 소송에서 사용되었는데, 이는 재산과 명예, 때로는 시민권을 걸고 싸우는 일이기도 했다. 둘째, 레토릭은 일종의 경연이었다. 정치적 레토릭에서는 두 명 이상의 논자가 서로 다른 주장을 제기하고, 근거와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이를 평가하는 것은 민회와 평의회에 참석한 다른 시민들이다. 레토릭이란 결국 동등한 시민권을 갖고 있는 자들이 공적 영역에서 공적 사안에 대하여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시하기 위해 말로써 상호 경쟁하는 소통방식인 셈이다. 레토릭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 주장하는 담론양식이기도 하다. 레토릭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역시 공동체의 앞날을 결정하는 토론에 사용될 때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주장해서 모두가 그 주장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동의할지 말지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실제 고대 아테네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정치 엘리트들’은 한 시대에 약 10~20명 정도였던 것으로 볼 때, 레토릭은 특히 현자 또는 소수의 정치 엘리트와 다중이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섞임’을 혐오하는 자들 현대에도 그렇지만 고대에도 레토릭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엇갈렸다. 레토릭 비판을 이론적으로 확립하고 철학적 테제로 정식화한 이가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고르기아스』『파이드로스』 등의 저작에서 ‘레토릭과 철학’이라는 대립을 제시해 말을 통한 권력구성을 추구하는 레토릭을 비판하고 보편적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을 옹호함으로써 현대에까지 레토릭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플라톤의 레토릭 비판이 ‘난잡함’ 또는 ‘섞임’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돈을 주면 누구에게나 지식을 전수하기, 누구에게나 참정권 주기, 민회에서 동등하게 말할 권리 주기 등이 섞이는 것, 난잡한 것이다. 플라톤은 모르는 자와 아는 자, 말할 능력이 없는 자와 있는 자, 들을 자격이 없는 자와 있는 자를 구분하고 싶어했다. 레토릭은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인 의사소통 양식이었다. “레토릭이 각광과 더불어 악명을 얻던 시기가 아테네 민주주의가 최고로 발전했던 페리클레스 시대라는 점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후대에 레토릭이 그 악명을 벗어나 ‘말을 잘하는 기술’로 순치되는 순간, 아테네 민주주의 역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레토릭에서 의사소통 민주주의로 저자는 고대 레토릭의 민주주의적 기능에 착안해 ‘의사소통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민주주의 이론을 제안한다. 그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이념을 의사소통 합리성에서 찾는 현대 민주주의 이론, ‘숙의 민주주의’이다. 시민 패널을 포함한 공청회, 여론조사, 시민 배심원, 공공 저널리즘 등을 통해 구체화되는 숙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폭력이 아닌 말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제도임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의사소통 행위자의 이성과 합리성에 기대며, 의사소통 행위에서 일종의 ‘이상적인 대화상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흔히 과도하게 이상적ㆍ제한적이라고 비판받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숙의 민주주의의 핵심이 되는 이론적 가정을 받아들이면서도 숙의 민주주의를 넘어 ‘의사소통 민주주의’(communicative democracy)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숙의 민주주의가 스스로 옭죄는 제한된 이념적 요건을 넘어 현실의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들을 포괄함으로써 ‘더 넓은 민주주의’ ‘더 유연한 민주주의’ ‘더 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연적 말하기 문화의 활성화가 정당한 민주주의를 만든다 의사소통 민주주의는 결정하는 주체들 간의 연행적 담론경쟁을 통해서 최선의 주장을 선택할 수 있는 정치체제이다. 이는 숙의 민주주의와 달리 모든 비폭력적 상호작용을 의미 있는 의사소통으로 이론에 포함하며, 감정과 정서의 역할을 받아들인다. 감정을 동반하지 않는 의사소통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감성적 의사소통은 단순히 숙의를 도울 뿐만 아니라 사실 필수적이라 보기 때문이다. 의사소통 민주주의의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의사소통 민주주의는 일종의 ‘미래체계’다. 그것은 공동체의 미래 운명을 진단하고 대처 방안을 찾고 결행하는 방식을 제도화한 것이다. 둘째, 공동체 운명의 자율결정원칙을 채택한다. 셋째, 강력한 정치적 평등성을 주장한다. 넷째, 서로 다른 능력과 덕성을 갖춘 시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다섯째, 비폭력 원칙을 분명하게 채택한다. 힘 대신 말이 권력을 창출한다. 여섯째, 민주주의의 성공은 레토릭 문화, 즉 경연적 말하기 문화의 활성화에 달려 있다. 공동체의 미래 운명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경쟁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다중이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일종의 경연처럼 활기차게 전개될 때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 일곱째, 모두가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제공하며, 이런 공정성이 민주주의가 산출하는 권력을 정당화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레토릭을 핵심적 의사소통 방식으로 채택한 의사소통 민주주의는 결국 ‘모두가 말하고, 모두가 듣고, 모두가 판단하는 민주주의’이다. 이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나와 참과 좋음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른 자들과 말을 섞지 않고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의견교환을 통해서 남은 물론 나의 입장에도 얼마든지 변화가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이 곧 참과 좋음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로지 설득을 통해서 나와 너, 또는 다른 누구에게 자발적 동의를 얻을 수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공동체 내의 갈등하는 시각ㆍ의견ㆍ가치 등을 중재하는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다. 이 방식에 의거해서만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를 정당한 것으로 수용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