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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광대
김명곤 자전
김명곤
유리창 201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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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에세이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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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 꿈을 쏘는 사수

제1부 나의 꿈에 날개를 달다
한 통의 전화, “나 임권택이오”
―〈서편제〉, 오정해 그리고 소리꾼 유봉
그 대신 막걸리나 자주 마십시다
―마음대로 각색하라던 시대의 문호 이청준
나를 인정해준 영화감독, 이장호
―〈바보선언〉 그리고 이보희의 정권 타도(?)
나의 첫 수필집을 간택(?)해준 작가 이윤기
―그의 신명과 따뜻한 배려가 그립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고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 마지막 길 배웅
아름다운 말들
―김제동 그리고 선배 광대들
내가 만난 최고의 관객, DJ
―문화 대통령의 자세

제2부 꿈의 씨앗이 자라다
세월을 낚던 아버지
-낚시와 족보와 장미울타리 공주
음악을 사랑했던 가족
-나의 ‘수호천사’, 아버지와 어머니
나를 키운 세상
-나를 매혹시킨 비밀의 정원들
내 가슴에 불을 지른 스승
-박시중 선생님
새벽 4시 30분 기상, 도시락 두 개
―서울 사대 독어교육과에 입학하다

제3부 꿈의 회전목마를 타다
엉겁결에 연극배우가 되다
-전투경찰이 때려 부순 첫 무대
질풍노도의 청춘시절
-병과 우울과 시와 판소리
지리산 상선암에서 다시 태어나다
-장고항 바닷가와 지리산 상선암의 기이한 인연
판소리 명창 박초월을 만나다
-어머니 같은 스승,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아, 한창기 사장님
-평생 인연 맺어진 첫 직장 「뿌리 깊은 나무」
판소리 부르는 독일어 선생님
-배화여고 철부지들과 연극하며 지낸 사연
총각 선생님에게 반한 여고생
-교사와 제자의 사랑이야기
내게 새 생명을 준 사람, 아내
-내 인생의 자문위원들

제4부 꿈의 퉁수쟁이가 되다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의 현장으로
-남민전 사건으로 해산된 ‘극단 상황’과 「장사의 꿈」
연극의 바다 위를 항해하다
-‘극단 아리랑’의 창단과 이어지는 연극 행진
아시아·태평양의 예술가들이 뭉쳤다
-유럽을 순회하며「아시아의 외침」을 외치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
-「파업전야」와 「격정만리」 사건
남사당패 ‘삐리’에서 무용 인간문화재가 된 노예술가의 기구한 이야기
-아직도 못 다 푼 남사당의 생명력 「유랑의 노래」

제5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해도 달도 별도 국립극장에 있다
-48세에 국립극장장이 되다
“하루 5분 창밖을 바라봐라.”
-외발 자전거로 외줄 타는 극장경영
‘광대’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예술이냐, 벼슬이냐?
나를 버려야 나를 얻는다
-중국 여도사의 가르침 ‘사아공작(捨我工作)’
나는 다시 광대다
-유랑민의 자유로움과 창작생활의 희열에 빠진 요즘 생활

저자 소개

저자 : 김명곤金明坤
1952년 전북 전주 출생.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학과와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을 마쳤다. 사대 재학 시절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간 뒤 연극에 푹 빠졌고, 이 무렵 박초월 명창의 제자가 되어 판소리를 배웠다. 졸업한 뒤 《뿌리깊은 나무》 기자, 배화여고 독어 교사를 거쳐 본격적인 연극의 길에 들어섰다.

1983년 〈바보선언〉으로 영화에 데뷔했으며, 이후 각본까지 쓴 〈서편제〉에 출연하여 1993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했으며, 2000년부터 6년간 국립극장장을 지냈고, 2006년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국정에 참여했다. 현재는 연극, 영화, 뮤지컬을 개발하는 기획사 ‘아리 인터웍스’ 대표이자 동양대학교 석좌교수.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2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526g | 153*224*20mm
ISBN13
9788996680437

책 속으로

“소설과 영화는 엄연히 다르니 김 선생이 하고 싶은 대로 각색하시오. 그 대신 우리 막걸리나 자주 마십시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가슴속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p.29

“개새끼들, 더러운 놈들” 등 순박한 그녀가 아는 촌스런 욕이란 욕은 다 내뱉더니 마지막에 나온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니들 정권이 얼마나 갈 줄 아냐, 이놈들아?”
설마 이보희가 그토록 의협심과 투쟁 의식에 불타는 ‘여협’인 줄 미처 몰랐다. 여관 화장실에서 먹은 음식과 술을 다 토하며 울고불고 혼잣말처럼 정권 타도(?)를 외치다가 다음 날 다시 순박한 표정으로 촬영하던 이보희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p.40

“일국의 대통령을 하시겠다는 분의 문화 예술에 대한 식견이 이토록 천박하다니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술자리는 매우 어색하게 마무리되고, 우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하고 헤어졌다. (중략) 당시 차기 장관 후보를 놓고 참모진에서 수많은 인사를 검토하던 중, 대통령께서 아무 의견도 듣지 않고 독자적으로 나를 낙점하는 통에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pp49~51

초대하지 않으면 공연장에 오지 않는 정치인들의 몰지각한 문화 의식을 앞장서서 깨뜨린 선구적 관객, 당당히 표를 사서 관객과 함께 줄 서서 입장한 겸손한 관객…… 추운 겨울날 오후를 소극장에서 함께 보낸 DJ는 내가 이제껏 만난 최고의 관객이다. ---p.72

제자 중에 대학을 나온 ‘선비’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지 공연하러 가거나 방송국에 가거나 국악인 모임이 있을 때면 꼭 나를 데려가서 인사를 시켰다. 선생님의 사랑 덕분에 나는 평생을 판소리에 몸담아온 예술가의 겉과 속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p.154

나는 스물여덟 살 총각 선생으로, 아내는 고1 여학생으로. 내가 허름한 회색 양복에 후줄근한 바지를 입고 첫 수업을 하는 순간, 아내는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내 부스스한 머리 뒤에서 은빛 햇살이 퍼지는 걸 봤다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p.184

그 무렵 이민 대표는 지나치게 친북적인 견해와 연극이 민주화 운동의 전위 선전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나는 그 견해에 강하게 반대하며 연극의 예술적 독자성을 고집하는 주장을 펼쳤다. (중략) 나는 내 하얀 손을 부끄러워하고, 내 허약한 발을 수치스러워하며 정처 없이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 이민 대표가 본명 이재오로 돌아가 보수적 우익 정치인으로 성장해갈 때, 나는 그와 반대편 입장이 되었다. ---pp200~204

오, 예술이여! 너를 위해서라면 이 몸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p.294

출판사 리뷰

전천후 엔터테이너 김명곤

독일어 교사, 「뿌리깊은 나무」 기자, 소리꾼, 희곡 작가, 연극연출가, 연극배우,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김명곤이다. 내년에 60세가 되는 이 사내는 지금도 꿈을 꾼다. 그의 꿈은 오로지 예술이다. 연극, 영화, 뮤지컬 등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예술. ‘불후의 명작’에 대한 꿈.

故 이윤기(소설가, 번역가)는 1991년에 나온 김명곤 수필집 「꿈꾸는 퉁소쟁이」에서 김명곤을 이렇게 소개했다.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나와도 자기 저서에는 독일어를 한마디도 안 쓰는 지독한 바지저고리. 판소리꾼인가 하면 영화배우로도 뛰고, 연극 평론을 하는가 하면 소설도 써내는 팔방미인. 20대의 카오스에서 자기를 건져준 문학과 연극에 공양미 시주 대신 거짓 민중보다 참 민중을 더 섬기겠노라 약속한 큰 광대 김명곤이 온몸으로 부르는 소리가락!

김명곤의 삶을 만나면, 우리가 산 삶은 지우개로 북북 지우고 싶어진다! 그가 살아온 험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들으면 문득 그를 닮고 싶어진다!
무대에 서면 청산유수같이 대사를 뱉어내는 김명곤도 자기 이야기를 할 때면 그렇게 어눌할 수가 없다. 그의 인생에는 대본이 없기 때문인가?

당시 고려원 편집주간이던 마흔네 살의 이윤기가 서른아홉 살 김명곤을 이렇게 평했다. 이때 김명곤은 극단 아리랑 대표로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에서 가난한 민중연극을 이끌고 있었지만 대중들에게는 낯선 인물이었다.

개념광대 김명곤의 탄생
1993년 영화 「서편제」는 그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주면서 김명곤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연극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그는 작가였으며 배우였고 연출가였다. 2000년에 국립극장장, 2006년에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냈지만, 그는 다시 예술의 자리로 돌아와 연극, 뮤지컬,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천상 예술인이다.
신분계급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양반을 희롱하는 광대들의 탈춤이 있었다. 1%를 위해 99%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당한 사회시스템은 소셜테이너를 탄생시켰다. 광대와 소셜테이너 사이에 김명곤이 있다. 김명곤이 유일하지는 않지만 김명곤이 대표적이다. 한결 같이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광대’임을 자랑스레 여긴다. 하여 그는 개념 광대이다.
개념광대 김명곤의 탄생은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민전 사건에는 지금 진보신당 대표가 된 홍세화, 고인이 된 시인 김남주 등과 함께 보우수익 정치인으로 크게 성장한 이재오가 있었다. 이재오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이민’이라는 가명으로 교사극단을 이끌었고, 김명곤도 독일어교사 시절 이 극단의 멤버였다. 독일 희곡에 심취하며 탐미적 예술을 지향했던 김명곤은 이재오 등 극단 동료교사들의 구속을 보면서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시인 김용택의 말대로 “전봉준 같은 단단한 몸으로 깃발”을 들었다. 80년대 그는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외로운, 꿈꾸는 광대였다
김명곤이 국립극장장이 되고 문화부장관이 되었을 때 그의 변신을 우려하는 시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시인 도종환은 ‘남산의 소나무가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라며 김명곤에게 신뢰를 보냈다.

…그대 길 없는 길을 내기 위해 / 모든 걸 버릴 줄 아는 이였기에 / 그대 새로운 길 열어가기 위해 / 전 생애를 걸 줄 아는 이였기에 /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있어도 / 외로운 광대임을 잊지 않으리라 믿는다… -p248

극장장, 장관 등 공익근무를 마친 김명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늘 꿈꿔 온 예술판으로 돌아왔다. 천연덕스럽게 다시 광대가 되었다. 다시 연극을 기획하고, 영화에 출연하며, 뮤지컬 대본을 쓰고 있다.
그는 대학시절 연극과 판소리의 기초를 다졌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사골 출신 장남의 책임감도 적지 않았다. 타협적으로 「뿌리깊은나무」 기자가 되었지만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연극병이 도진 것이다. 그러나 시골의 부모님까지 상경한 터에 생활은 그를 연극판에 둘 수 없었다.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가 되었다. 교사를 천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수업이 일찍 끝나면 연극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태생부터 불량교사였던 셈인데 그 마저도 2년 만에 그만 두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민중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故 이윤기 표현대로 “거짓 민중보다 참 민중을 섬기겠노라는 큰 광대”, 참 광대가 된 것이다.
그 뒤로 「서편제」로 인기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곧바로 연극무대로 돌아와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며 연기를 하였다. 국립극장장을 지내고,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뒤 곧바로 광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온 생애를 꿈꾸는 일에 의탁하고, 한 편의 영화나 연극에 바칠 때 예마는 찾아올 것이다. 나는 예마를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고”(p291)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
제1부는 날개 단 김명곤이다. 연극으로 시작했지만 그에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준 것은 영화 「서편제」다. 그는 서편제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 소설가 이청준과의 인연이 소개된다. 작가 이윤기와 영화감독 이장호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은인들이다. 국립극장장과 문화부장관으로 만난 김대중과 노무현과의 일화는 김명곤의 강단을 알게 해 준다.

제2부는 어린 시절부터 서울대 입학까지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예술의 혼을 불어넣어준 분들이다. 고전을 가르치던 고교시절 은사는 김명곤에게 문학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제3부는 청년 김명곤이다. 연극에 미치고, 판소리에 미치면서 자기도 모르게 예술가로서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 박초월 명창을 만나고, 「뿌리깊은 나무」 한창기 사장을 만나는 등 인생의 은인들이 찾아왔지만, 병마가 찾아와 고통과 시련으로 절망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여고 1년생 제자는 아내가 되어 김명곤의 병을 쫒아내 준다.

제4부는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가로의 변신과 실천을 보여준다. 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연극판 앞자리에는 늘 김명곤이 있었다. 여고 1년생 제자는 ‘거지아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제5부는 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 등 문화행정가의 고뇌를 보여주고, 다시 자유인, 유랑민으로 돌아온 예술가 김명곤의 꿈을 얘기한다.

추천평

김명곤은 늘 숨 가쁜 시대의 현장에 있었다. 1980년대 그가 전봉준 같은 단단한 몸으로 깃발을 들고 마당극의 마당을 훨훨 날며 구호를 외치면 모두 숨이 막혔다. 그는 부활한 전봉준이 되었다. 판소리 가락에 따라 춤추며 남도의 먼지 나는 들길을 걸으면 그는 민족의 한을 품은 뛰어난 가객이었다. 영화든 연극이든 판소리든 그가 있는 곳은 늘 시대의 중심이었다. 한때 그는 우리나라 문화를 책임지는 수장이었다. 관리자의 탁월함까지 갖춘 것이다. 요새 말로 타고난 전천후 엔터테인먼트다.

어느 날 그가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를 듣고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달리던 차를 멈췄다는 기사를 보았다. 실은 나도 그랬다. 그 노래를 듣고 나도 머릿속이 노랗게 되었다. 그는 아직도 현대적인 청춘의 감성, 감각을 잃지 않고 사는 새파란 청춘이다. 그의 어깨는 스무 살 청년처럼 싱그럽다.
김용택 (시인)
김명곤, 그는 운명적으로 광대다. 책을 읽으며 그의 삶의 내력을 소상히 들여다보고 나니 그가 〈서편제〉와 만난 것은 우연한 캐스팅이 아니라 운명적인 결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학 시절 문학을 하려다 연극에 빠진 것도 운명이었으며, 연극 때문에 폐병에 걸려 낙향했다가 판소리를 만난 것도 운명이었다. 그가 판소리와 만나 전통과 화해하고, 소리꾼의 예술에 매혹당하고, 그들의 삶에서 받은 감동이 그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염된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 그의 운명은 “길 없는 곳에 길을 내기 위해 / 모든 걸 버릴 줄 아는 이” “새로운 길 열어가기 위해 / 전 생애를 걸 줄 아는 이”로 살게 했으며, 국립극장장을 거쳐 문화부장관이 되게 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광대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운명이란 이름의 열정은 그를 다시 광대가 되게 하여 광대무변한 기획을 맡길 것이다.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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