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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출연진 소개3

감독비토리오 데 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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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torio De Sica

위대한 감독 '비테리오 데 시카' 로베르토 로셀리니, 루키노 비스콘티와 함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이끈 거장. 그는 소년 시절 연극배우로 출발했고, 1930년대까지도 주로 배우로 활동했으며 감독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57년의 '무기여 잘 있거라'로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심지어 죽기 직전인 1974년에도 앤디 워홀의 '드라큘라'에 출연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는 1974년생을 마감할 때까지 4번이나 아카데미 외국영화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세 명의 네오리얼리즘 감독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위대한 감독 '비테리오 데 시카'

로베르토 로셀리니, 루키노 비스콘티와 함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이끈 거장. 그는 소년 시절 연극배우로 출발했고, 1930년대까지도 주로 배우로 활동했으며 감독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57년의 '무기여 잘 있거라'로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심지어 죽기 직전인 1974년에도 앤디 워홀의 '드라큘라'에 출연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는 1974년생을 마감할 때까지 4번이나 아카데미 외국영화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세 명의 네오리얼리즘 감독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감독으로서의 그는 멜로드라마로 출발했다가 네오리얼리즘 대열에 합류해 걸작을 내놓다가 후기로 갈수록 네오리얼리즘 본연의 현실과의 치열한 긴장에서 벗어나 멜로드라마적 관습으로 다시 빠져들어간 것이 사실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자전거도둑 Ladri di Biciclete'(1948)도 로셀리니의 '무방비도시'나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에 비해 덜 정치적이며 좀더 정통 드라마에 가깝다. 데 시카의 초기작은 감상적인 멜로드라마가 주를 이루며 주로 애정의 삼각관계가 극의 동기를 이룬다. '테레사 Teresa Venerdi'(1941)의 주인공인 소아과의사는 약혼자를 두고도 견습간호원에게 빠져들며, '수녀원의 가리발디 병사 Un Garivaldino in Convento'(1942)의 주인공 여인 카타리나는 친구의 약혼자에게 애정을 느낀다. 전쟁이 배경으로 끼어들긴 하지만 영화는 철저히 세 인물의 애정과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말괄량이 막달레나 Magd-dalena Zero in Condotta'(1940)에서도 막달레나와 그의 사촌, 그리고 막달레나의 선생이 애정게임을 벌인다.

범상한 대중영화에 머물렀던 데 시카가 네오리얼리즘의 대열에 합류하는 건 시나리오 작가 세자르 자바티니와 공동 작업한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I bambini ci Guar-dano'(1943)부터였다. 자바티니는 데 시카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극작가로 '아이들이 보고 있다' 이후 '구두닦이 Sciuscia'(1946), '자전거도둑', '밀라노의 기적 Miracolo a Milano'(1951), '움베르토 D Umberto D'(1952) 등 데 시카의 대표작은 대부분 그의 각본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가톨릭신자였던 데 시카 감독과 공산주의자였던 자바티니의 관계는 종종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 넣었는데 둘이 공동으로 작업한 영화들이 각자 만들었던 영화보다 뛰어났다는 것은 이런 점과 관련된다. 데 시카 감독이 멜로드라마에서 출발해 네오리얼리즘을 거쳐 다시 멜로드라마로 옮겨간 반면 자바티니는 네오리얼리즘의 비공식 대변인이 되었다. 어쨌든 자바티니와 데 시카의 공동 작업이 낳은 네오리얼리즘의 걸작들은 하층계급의 일상을 날카롭게 파헤치면서도 인류에 대한 도덕적 호소를 보여주었다. '구두닦이'에서는 아동문제에 무관심한 성인들을 질타하며 절망에 처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자전거도둑'에서는 가난 속에 피어나는 부자간의 사랑을 단순한 형식에 담았다. 형식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어떤 관습에도 매이지 않고 거리의 진실을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담아낸 이 작품들은 정교하고 화려한 형식의 영화보다도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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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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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lo Mastroianni

1924년 로마 근교에서 목수로 태어나 1947년 배우로 데뷔한 마스트로얀니는 1996년 12월 19일 7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120여 편에 출연했다. 죽음을 앞두고 1996년 깐느 영화제에 라울 루이즈의 <세 삶과 하나의 죽음>으로 마지막 걸음을 했던 그는 자주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절 좀 데려가지 마세요. 난 앞으로도 수백편의 영화에 더 출연해야 해요." 그러나 난 지금 시간 이 없다. 난 이 직업을 좋아한다.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해 직업에 대한 강한 사랑을 표하기도 했다. 마스트로얀니는 1960년대 이탈리아의 걸작에서의 호연, 특히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1924년 로마 근교에서 목수로 태어나 1947년 배우로 데뷔한 마스트로얀니는 1996년 12월 19일 7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120여 편에 출연했다. 죽음을 앞두고 1996년 깐느 영화제에 라울 루이즈의 <세 삶과 하나의 죽음>으로 마지막 걸음을 했던 그는 자주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절 좀 데려가지 마세요. 난 앞으로도 수백편의 영화에 더 출연해야 해요." 그러나 난 지금 시간 이 없다. 난 이 직업을 좋아한다.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해 직업에 대한 강한 사랑을 표하기도 했다.

마스트로얀니는 1960년대 이탈리아의 걸작에서의 호연, 특히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과의 페르조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페데리코 펠리니의 <라 돌체 비타>, <8 1/2> 피에트로 제 르미의 <이탈리아 식 이혼 방식>, 비토리아 데 시카의 <해바라기>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희극과 비극에 구애되지 않는 폭넓은 연기 영역을 가지며 작은 갈등에도 휘청거리는 인간적인 인물들을 풍부한 느낌으로 소화해낸 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탈리아 식 이혼 방식>, <특별한 날> <검은 눈동자> 로 3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피자 삼각형> <검은 눈동자> 깐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1,2,3,태양> <지금 몇 시에요?>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1988년 유럽영화제는 그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필모그래피]

해바라기(1970)|주연배우
와이프 미스트리스(1977)|주연배우
비키퍼(1986)|스피로
패션 쇼(1994)|주연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매일
2011년 12월 21일
시간/무게/크기
118분 | 크기확인중
연령제한
15세 이용가
KC인증

줄거리

- 제37회 미국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수상!!
- 제18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 남우주연상 수상!!
- 리얼한 사랑과 삶의 아름다움을 그린 영화!!

< 감독 및 배우소개 >

* 감 독: 비토리오 데 시카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 1901년 7월 7일 이태리의 소라에서 태어났다. 젊은 나이에 이미 연기에 푹 빠져있던 데 시카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배우로 데뷔해, 수려한 외모로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흥행 스타로 성장했다. 이후 그렇고 그런 멜로 영화를 만든던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이탈리아 영화 제작자인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루치아노 비스콘티와 함께 작업하면서 세계 2차 대전으로 비롯된 이탈리아의 가혹한 현실을 휴먼 다큐멘터리 방식의 영화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1942년 <아이들이 우리를 바라본다>를 만들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만의 신랄한 풍자와 가슴을 울리는 대사 등으로 헐리우드 영화산업 방식에 물들어 있던 이탈리아 영화계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전쟁으로 인해 거의 4년간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던 데 시카 감독은 1946년 <자전거 도둑>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단호한 주제에 심미적인 요소들을 가미하고, 배우들의 즉흥적인 연기와 감정의 압축, 그리고 신뢰성이 느껴지는 다큐멘터리 방식의 해설로 네오 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영화사에 기록된다.

이후 데 시카 감독은 <밀라노의 기적>(1951), <움베르토 D>(1952) 등 네오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걸작들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움베르토 D>가 흥행에 실패한 뒤로는 <종착역>(1953), <어제 오늘 내일>(64) <연인들의 장소>(66), <해바리기> 등 좀 더 가벼운 주제의 통속성이 짙은 작품들을 발표하게 된다.

* 배 우: 소피아 로렌

1934년 9월 20일 이탈리아 출생. 어머니의 고향 나폴리로 돌아가 그곳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바다의 여왕 콘테스트에 합격해 어머니와 함께 로마로 진출했다. 50년 머빈 르로이 감독의 <쿼바디스>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는데 이것이 데뷔작이다.

이후 수많은 작품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훗날 남편이 된 카를로 폰티와 만나고 그의 제작 작품 에서 주연을 맡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과 인연을 맺는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이 알려진 작품은 <하녀>로, 맘보 리듬을 타고 폭발한 야성적인 에로티시즘 영화. 이것이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눈에 들어 그의 <긍지와 정열>로 할리우드 영화에 데뷔하기도 했다.

50년대 말부터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해, 여자의 슬픔, 괴로움을 온몸으로 연기하는 국제적인 여배우가 되었다. 59년의 <흑란>으로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여우상을, 61년의 <두 여인>으로 아카데미상과 칸영화제 여우상을 수상했다. 자서전적인 텔레비전 드라마 <소피아 로렌의 이야기>엔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줄거리 >

첫 번째 에피소드인 "나폴리의 아델리나"
놀고 먹으면서 교도소나 들락거리는 남자와 결혼한 아델리나가 남편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밀수입 담배를 판매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아델리나는 수사관들이 수사망을 좁혀올 때마다 임신을 하여 체포의 위기를 모면한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임신한 여성을 체포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 덕분에 일곱명의 아이들을 갖게 되었지만 더 이상 아이를 낳을 기력이 없는 남편으로 인해 아델리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할 수 없이 아델리나는 임신한 것처럼 배를 불룩하게 위장해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하지만 그녀를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수사관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두 번째 에피소드 "안나"
기업가의 응석받이 아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얽매인 듯한 생활에 신물이 난 안나는 남편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그 욕망은 좀더 절실한 사랑을 꿈꾸게 되고 이로 인한 일탈을 계획하지만 진실성이 결여된 그녀의 허황된 꿈은 결국 단순한 유희 이상이 아니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마라"
로마에서 고급 콜걸 생활을 하던 마라가 순진한 신학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볼로냐에서 온 마라의 기둥서방으로 인해 신학도가 위험에 처하게 될까봐 그를 져버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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