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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권연구소 한불외교자료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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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해제

1907년

【1】 스토리 더글라스의 주장을 실은 대한제국 관보 에 대해(1907. 1. 18)
【2】 코리아데일리뉴스 에 실린 기사와 반향들(1907. 1. 22)
【2-1】 별첨 1― 코리아데일리뉴스 의 1907년 1월 16일자 영문기사 복사본
【2-2】 별첨 2― 코리아데일리뉴스 1907년 1월 16일자 기사의 불어번역문
【2-3】 별첨 3―1907년 1월 21일의 관보 요약문
【3】 대한제국 통감부에 대한 반박문을 각국에 전달함(1907. 1. 23)
【3-1】 별첨 1―권재형의 청원서 원문
【3-2】 별첨 2―권재형의 청원서 번역문
【4】 대한제국에서 일본병력의 감축 보고(1907. 2. 23)
【5】 이토 후작의 복귀(1907. 3. 21)
【6】 일본 정부의 보호국 통치 개입 정황에 대한 보고(1907. 3. 30)
【7】 대한제국 주둔 일본 병력의 감축(1907. 4. 23)
【8】 대한제국 행정 개혁에 대한 보고(1907. 5. 22)
【8-1】 별첨 1― 대한제국 행정 개혁 사본
【9】 통감부의 대한제국 개혁과 내각 교체에 대한 보고(1907. 5. 23)
【10】 이완용 내각의 구성과 성격 및 식민지 체제 가속화에 대한 보고(1907. 5. 28)
【10-1】 별첨 1―대한제국 행정 개혁 영문 번역본
【11】 사임한 의정부 구성원들에 대한 조치(1907. 6. 2)
【12】 만주와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보고(1907. 6. 14)
【12-1】 별첨 1―헤이그 밀사사건 관련 프랑스 언론 기사들
【13】 고종의 양위를 알리는 급보 사본(1907. 7. 19)
【14】 고종의 양위 경과를 전하는 전보(사본)(1907. 7. 19)
【15】 황태자의 황제 대리 임명을 전하는 전보(사본)(1907. 7. 19)
【16】 고종의 보호국 조약 서명을 전하는 전보(사본)(1907. 7. 20)
【17】 고종의 양위를 통지하는 일본 대사관의 공문(1907. 7. 21)
【18】 고종 양위에 따른 보호통치 강화 움직임에 대한 전보(사본)(1907. 7. 21)
【19】 고종 양위 소식을 해외 공관들에 전하는 전보(1907. 7. 22)
【20】 고종 양위에 따른 대한제국 내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한 보고(1907. 7. 24)
【20-1】 별첨 1―관보에 실린 황제 칙령 불어 번역본
【21】 고종의 양위를 통지한 일본 대사관의 공문 수령증(1907. 7. 24)
【22】 ?한일신협약? 체결과 그 내용에 관한 보고(1907. 7. 25)
【22-1】 별첨 1―1907년 7월 25일 관보 부록에 게재된 ?한일신협약? 번역본
【23】 새로운 보호조약 체결을 알리는 전보(사본)(1907. 7. 25)
【24】 새로운 보호조약 체결을 알리는 전보(사본)(1907. 7. 25)
【25】 새로운 보호조약 체결을 알리는 전보를 해외 공관으로 발송함(1907. 7. 25)
【26】 헤이그 밀사 파견에 따른 대한제국의 위기와 일본 정부의 대응 및 향후 정세 보고(1907. 7. 25)
【26-1】 별첨 1―?한일신협약? 번역본(영문판)
【26-2】 별첨 2―?한일신협약?을 게시한 관보 원문
【26-3】 별첨 3― 재팬 타임즈 에 게재된 ?한일신협약? 영문판
【27】 일본이 프랑스 외무부에 한일협약에 대해 보고함(1907. 7. 25)
【27-1】 별첨 1―?한일신협약? 영문판
【28】 일본 외무성이 파리 주재 일본 대사관에 한일협약 사실을 알리는 전보(1907. 7. 26)
【29】 외무부 장관이 페테르부르크 주재 프랑스 대표(133호)와 워싱턴 주재 프랑스 대표(114호)에게 보내는 전보(1907. 7. 26)
【30】 외무부 장관이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에게 보내는 전보(1907. 7. 26)
【30-1】 별첨 1―?한일신협약? 관련 하야시 자작과의 인터뷰를 소개하는 프랑스 언론 기사
【31】 일본 참사관이 ?한일신협약? 제7항의 연도 수정 통지함(1907. 7. 28)
【31-1】 별첨 1―?한일신협약? 관련 프랑스 언론 기사
【32】 황제 폐위 및 군대 해산 등 대한제국의 사건들에 대한 보고(1907. 7. 30)
【33】 대한제국의 일들과 일본 통감부의 업무수행에 대한 보고(1907. 8. 6)
【34】 한일신협약 조약에 따른 대한제국 내 사건에 대한 보고(1907. 8. 12)
【35】 이토 후작의 일본 출국과 통감부의 개편 계획(1907. 8. 21)
【36】 대한제국 주교 뮈텔 신부의 편지 요약문(1907. 9. 16)
【37】 대한제국 의병의 동향에 대한 보고(1907. 9. 17)
【38】 이토 후작의 시정개혁 계획 및 간도 문제와 관련된 도쿄의 동향 보고(1907. 9. 18)
【39】 대한제국 상황에 대한 미국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관점 보고(1907. 9. 22)
【40】 통감부 개편 내용에 대한 보고(1907. 9. 24)
【41】 이토의 서울 복귀와 일본 황태자의 대한제국 여행에 대한 보고(1907. 10. 3)
【42】 일본 황태자의 서울 방문에 대한 보고(1907. 10. 20)
【43】 일본 황태자의 서울 방문이 갖는 정치적 의의에 대한 보고(1907. 10. 24)
【43-1】 별첨 1―일본 황태자의 서울 체류에 관한 서울 프레스 , 재팬 타임즈 기사
【44】 대한제국 내의 점점 격화되는 폭동 동향에 관한 보고(1907. 11. 6)
【44-1】 별첨 1―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황제께 상주한 보고
【45】 순종의 대신민 선언문에 대한 보고(1907. 11. 19)
【45-1】 별첨 1―순종의 대신민 선언문

1908년

【46】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에 대한 보고(1908. 1. 15)
【46-1】 별첨 1―재판소구성법 반포
【47】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대한제국 사법 개혁 관련 공문을 프랑스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1908. 3. 23)
【48】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안의 일본 의회 통과와 일본의 여론에 대한 보고(1908. 4. 3)
【49】 타임즈 오브 인디아 에 실린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 관련 기사문에 대한 보고(1908. 4. 30)
【49-1】 별첨 1―일본의 대한제국 침탈을 다룬 타임즈 오브 인디아 기사 원본
【49-2】 1908년 4월 30일 타임즈 오브 인디아 에 실린 기사 내용 요약문: 일본의 대한제국 수탈 계획
【50】 대한제국에서의 폭동과 일본의 조치에 대한 보고(1908. 5. 18)
【50-1】 별첨 1―대한제국의 평화를 호소하는 순종의 칙령
【51】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 상황에 대한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문의(1908. 5. 19)
【52】 대한제국 정부의 내각 개편에 대한 보고(1908. 6. 5)
【52-1】 별첨 1―대한제국 내의 폭동과 관련하여 일본 대사가 수집한 메모
【53】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에 대한 보고(1908. 8. 1)
【54】 대한제국의 경제 상태에 대한 보고(1908. 8. 3)
【55】 대한제국에 있는 일본 행정구역 대표 임명과 관련한 통감부의 행정명령에 대한 반발(1908. 8. 7)
【56】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시행을 허가하고 그 규약을 승인하는 황명이 공포된 데 대한 보고(1908. 9. 3)
【57】 동양척식주식회사 정관 발송(1908. 9. 7)
【57-1】 별첨 1―법률 제22호. ?동양척식주식회사법?
【58】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구성과 대한제국에서의 일본의 정책에 대한 보고(1908. 9. 28)
【58-1】 별첨 1―대한제국의 부에 대한 다카하시의 평가를 게재한 영문기사
【59】 타임즈 오브 인디아 가 게재한 고베 통신원 기사의 전달(1908. 10. 1)
【59-1】 별첨 1―1908년 10월 1일자 타임즈 오브 인디아 기사
【60】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정관 번역문을 발송한다는 보고(1908. 10. 23)
【60-1】 별첨 1―동양척식주식회사 정관 번역문
【61】 전라도 태인에서 발생한 시천교도 학살 사건과 이토의 임박한 서울 복귀(1908. 10. 31)
【61-1】 별첨 1―1908년 10월 28일자 재팬 타임즈 기사 및 29일자 재팬 크로니클 기사
【62】 타임즈 오브 인디아 에 게재된 일본 통신원 기사의 발송에 대한 보고(1908. 11. 30)
【63】 대한제국 내의 폭동 진압 관련 문서의 전달(1908. 12. 16)
【64】 타임즈 오브 인디아 에 게재된 일본 통신원 기사 전달(1908. 12. 21)

1909년

【65】 황제의 남쪽 지방 시찰에 관해 보고함(1909. 1. 6)
【65-1】 별첨 1―남부 지방 시찰에 임하는 순종의 칙령
【66】 대한제국의 개혁과 발전에 대한 1907년 연차보고서(1909. 1. 8)
【67】 대한제국에서의 사업을 위한 일본의 차관이 결정됨을 보고(1909. 1. 12)
【68】 대한제국 황제의 남서쪽 지방 행차에 대한 보고(1909. 1. 14)
【69】 동양척식주식회사 총재 임명에 대한 보고(1909. 1. 16)
【70】 대한제국에서 수행된 개혁 및 발전에 대한 연차보고서 발송과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한 보고(1909. 1. 19)
【71】 대한제국 황제의 한반도 북쪽 지방 행차에 대한 보고(1909. 1. 22)
【72】 이토의 통감 사임 계획에 대한 보고(1909. 2. 4)
【73】 대한제국 황제의 한반도 북쪽 지방 행차에 대한 보고(1909. 2. 4)
【74】 대한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보고(1909. 2. 5)
【75】 대한제국 황제의 이토 히로부미 친왕 관저 방문에 대한 보고(1909. 2. 8)
【75-1】 별첨 1―황제의 이토 친왕 관저 방문 건배사
【75-2】 별첨 2―이토 친왕의 답례 건배사
【76】 이토 친왕의 일본행에 대한 보고(1909. 2. 10)
【77】 이토 친왕의 출국 당시 분위기와 소네 자작과의 관계 보고(1909. 2. 12)
【78】 1908년 9월 5일자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의 보고 논점에 대한 보고(1909. 2. 14)
【79】 내부대신의 해임 결정(1909. 3. 1)
【80】 대한제국의 개혁과 발전에 관한 1907년의 분석(1909. 3. 22)
【81】 황제의 농업 장려 제의식에 대한 보고(1909. 4. 6)
【82】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발족에 대한 보고(1909. 4. 6)
【82-1】 별첨 1―우사가와 남작의 동양척식회사 발족 기념 연설문
【82-2】 별첨 2―일본과 대한제국의 일본인들에 대한 프랑스 신문기사
【83】 통감 이토 공과 부통감 소네 자작의 관계에 관한 분석 정보 전달(1909. 5. 1)
【83-1】 별첨 1―대한제국의 일본인들에 관한 프랑스 신문기사
【84】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강탈을 우려하는 현지 주민들의 불안과 회사의 대응(1909. 5. 6)
【84-1】 별첨 1―동양척식주식회사 총재 우사가와의 선언문
【85】 이토 공이 일본 통감 직에서 물러나 일본제국 추밀원 의장에 임명되었다는 보고(1909. 5. 23)
【86】 이토 공이 대한제국에서 편 정책과 행정에 관한 기사가 타요Tayo(太陽) 지에 게재됨을 보고(1909. 6. 11)
【86-1】 별첨 1―이토 통감의 정책과 행정을 비판한 시마다(사부로)의 글 전문
【87】 소네 자작이 통감으로 임명되었다는 보고(1909. 6. 15)
【88】 대한제국 황제가 이토 공과 소네 자작에게 칙서를 보냈다는 보고(1909. 6. 17)
【88-1】 별첨 1―이토 공에게 보낸 대한제국 황제의 친서
【88-2】 별첨 2―소네 자작에게 내린 대한제국 황제의 칙서
【89】 소네 자작의 서울 도착을 보고(1909. 6. 22)
【90】 대한제국 황제가 이토 공에게 친서를 내렸음을 보고(1909. 6. 25)
【90-1】 별첨 1―히로부미 공에게 내린 대한제국 황제의 친서
【91】 이토가 대한제국 황제에게 하직을 고하며 행한 여러 행사들에 대한 보고(1909. 7. 15)
【91-1】 별첨 1―이토 공의 연설문
【92】 일본 보호국 구성을 위한 결정적 조치들에 대한 보고(1909. 7. 18)
【92-1】 별첨 1―보호국 구성 관련 주요 조치들을 특필한 언론 기사들
【93】 파리 주재 일본대사가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게 ‘각서’ 전달을 알리는 구상서(1909. 7. 19)
【93-1】 별첨 1―‘각서’ 영역본
【93-2】 별첨 2―‘각서’ 불역본
【94】 사법 행정에 관한 한일 간의 각서가 외국에 미칠 영향에 대한 보고(1909. 7. 21)
【94-1】 별첨 1―파리 주재 일본 대사에게 각서 수령을 통지하는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답신
【95】 사법과 형무에 관한 한일 간 협정이 이루어졌음을 보고(1909. 7. 22)
【95-1】 별첨 1―‘각서’ 영역본을 전하는 이시즈카 총무장관의 편지
【95-2】 별첨 2―‘각서’
【96】 대한제국 정부 해체의 신호탄인 군부폐지에 대한 보고(1909. 8. 2)
【96-1】 별첨 1―군부폐지를 알리는 대한제국 황제의 조서
【96-2】 별첨 2―대한제국 황제의 칙령(勅令) 제68호
【96-3】 별첨 3―일본의 대한제국 통제 강화 소식을 전하는 타임즈 지 기사
【97】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관한 우사가와 총재의 인터뷰를 보고(1909. 9. 7)
【97-1】 별첨 1― 오사카 아사히 신문에 보도된 우사가와 총재 인터뷰
【98】 대한제국의 사법 사무에 관한 보고(1909. 10. 8)
【99】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 과정에 대한 보고(1909. 10. 15)
【100】 코콥초프 재무장관의 만주 방문 소식을 전하는 기밀 문서(1909. 10. 15)
【101】 대한제국의 도량형 개혁에 대한 보고(1909. 10. 20)
【102】 대한제국의 사법 사무가 일본에 위임됨을 보고(1909. 10. 22)
【103】 일본이 대한제국의 내각 인사에 참여함을 보고(1909. 10. 22)
【104】 대한제국의 사법 사무가 일본에 위임됨을 보고하는 전보문(1909. 10. 22)
【105】 이토의 암살 소식을 전하는 프랑스 신문 기사(연월일 미상)
【106】 프랑스의 조의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전보문(1909. 10. 29)
【107】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에 대한 보고(1909. 10. 29)
【107-1】 별첨 1―1909년 10월 20일자 황성신문 기사 번역문
【107-2】 별첨 2―통감부 공보에 게재된 ‘통감부 재판소’에 관한 칙령 제28조, 29조, 30조
【107-3】 별첨 3―이토 히로부미 암살 원인에 관한 프랑스 신문 인터뷰 기사
【108】 대한제국에서 벌어진 폭동에 대한 보고(1909. 11. 6)
【109】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 문제와 관련된 동향 보고(1909. 11. 23)
【110】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 문제와 관련된 소문 보고(1909. 11. 23)
【111】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에 관한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답신(1909. 11. 28)
【112】 대한제국 사법 개혁 관련 답신의 전달(1909. 11. 28)
【113】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 관련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답신 원본(1909. 11. 28)
【114】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 문제에 대한 보고(1909. 12. 7)
【114-1】 별첨 1―일진회의 한일병합성명서
【114-2】 별첨 2―국민대회 성명서
【115】 일진회의 한일병합운동과 일본 통감부의 상황에 대한 보고(1909. 12. 11)
【116】 일진회의 한일병합운동에 대한 일본 통감부의 공식 입장에 대한 보고(1909. 12. 13)
【117】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에 대한 보고(1909. 12. 14)
【118】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테러 사건에 대한 보고(1909. 12. 23)
【118-1】 별첨 1―1909년 12월 23일 서울 프레스 번역문

1910년

【119】 외무부 장관이 파리 주재 일본 대사에게 보낸 서한의 복사본 전달(1910. 1. 3)
【120】 합방운동과 대한제국의 일본 통감부 상황에 대한 보고(1910. 1. 7)
【120-1】 별첨 1―통감 소네 자작의 한국 내 동향을 전하는 재팬 타임즈 기사
【121】 대한제국에서의 일본 보호통치와 관동 조계지의 행정에 대한 보고(1910. 2. 2)
【122】 이완용 총리에 대한 보고(1910. 2. 5)
【123】 안중근의 유죄 판결에 대한 보고(1910. 2. 16)
【124】 대한제국 보호통치와 관동의 행정 분석에 대한 보고(1910. 3. 19)
【125】 소네 자작에 대한 보고(1910. 5. 12)
【126】 대한제국 외교 및 식민지 문제에 관한 프랑스의 견해(프랑스 외무부 소장 자료)(1910. 5. 16)
【126-1】 별첨 1―대한제국의 병합을 거론한 프랑스 신문 자료
【127】 이완용 암살을 시도한 이재명의 재판에 대한 보고(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 전달)(1910. 5. 19)
【128】 통감 소네 자작의 은퇴와, 보호국체제를 양국 병합의 단계로 나아가게 하려는 일본 정부의 구상에 대한 보고(1910. 5. 23)
【129】 통감부가 작성한 연차보고서 내용에 대한 보고(1910. 5. 30)
【130】 서울 주재 신임 일본 통감과 부통감 임명에 대한 보고(1910. 5. 31)
【131】 서울의 신임 통감 지명에 대한 보고(1910. 6. 1)
【131-1】 별첨 1―통감 및 부통감의 약력
【132】 대한제국 병합 소문에 대한 보고(1910. 6. 10)
【133】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의 편지 사본을 여러 대사관에 전달함(1910. 6. 15)
【134】 일본인 행정 관리 재편성에 대한 보고(1910. 6. 15)
【135】 신임 통감 및 부통감 임명과 보호국의 앞날에 대한 보고(1910. 6. 17)
【136】 대한제국, 타이완, 사할린, 관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척식국의 설립에 대한 보고(1910. 6. 23)
【137】 경찰 위임 협정과 일본 헌병대 보강에 대한 보고(1910. 6. 25)
【137-1】 별첨 1―경찰 위임 각서
【138】 대한제국의 일본 병합을 예고하는 함부르크 통신원의 보고(1910. 6. 25)
【139】 통감부경찰서관제에 관한 일본 천황의 칙령과 데라우치 장군의 서울 방문에 대한 보고(1910. 7. 5)
【139-1】 별첨 1―경찰 위임 각서
【139-2】 별첨 2―통감부경찰서관제(1910년 6월 30일자(일본) 관보 )
【140】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의 편지 사본을 여러 대사관에 전달(1910. 7. 16)
【141】 데라우치 장군의 서울 도착에 대한 보고(1910. 7. 23)
【142】 대한제국에서 이루어진 발전을 요약한 소책자의 발송에 대한 보고(1910. 8. 3)
【143】 대한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보고(1910. 8. 11)
【144】 대한제국 황제의 황위 포기 소문에 대한 보고(1910. 8. 23)
【145】 ‘대한인국민회’의 청원서 접수에 대한 보고(1910. 8. 21)
【145-1】 별첨 1―대한제국의 일본 병합 저지를 당부하는 ‘대한인국민회’의 청원서
【145-2】 별첨 2―대한제국의 일본 병합 저지를 당부하는 ‘대한인국민회’의 청원서(불문)
【145-3】 별첨 3―‘대한인국민회’의 외무위원회가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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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권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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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메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프랑스어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퀘벡학회 회장, 프랑스문화예술학회 회장,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퀘벡 관련 주요 논문으로 「퀘벡 작가 레진 로뱅의 이주 글쓰기」, 「가브리엘 루아의 『데샹보 거리』에 나타난 페미니즘」(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퀘벡 영화』가 있다. 퀘벡 현대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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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부아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했다. 현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같은 대학 프랑스어권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밀란 쿤데라의 『불멸』, 『느림』, 『배신당한 유언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망친 책,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로맹 가리의 『게리 쿠퍼여 안녕』, 『징기스 콘의 춤』,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 『철학은 전쟁이다』, 에드위 플레넬의 『정복자의 시선』, 가스통
프랑스 사부아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했다. 현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같은 대학 프랑스어권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밀란 쿤데라의 『불멸』, 『느림』, 『배신당한 유언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망친 책,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로맹 가리의 『게리 쿠퍼여 안녕』, 『징기스 콘의 춤』,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 『철학은 전쟁이다』, 에드위 플레넬의 『정복자의 시선』, 가스통 바슐라르의 『불의 정신분석』, 『촛불』,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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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3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841g | 152*225*30mm
ISBN13
9791160681758

출판사 리뷰

아관파천 이후 1897년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그해 8월 광무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면서 대한제국 시대를 열었다. 이때는 열강들 간 세력 균형이 이루어지면서도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긴장감이 감돌던 시기였다. 유럽 내의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외교 노선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까지 반영되었고, 유럽 열강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교차적 제휴를 서슴지 않았다. 대한제국과 관련해서도 프랑스·러시아 동맹, 러시아·일본 동맹, 영국·일본 동맹 등 열강들의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이에 외교관계의 중요성을 인지한 고종은 특명전권공사로 민영환을 임명하여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파견하였다. 고종은 대한제국 내 러시아나 일본 세력의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때로는 반일 정책과 반러 정책을, 때로는 두 세력의 침투를 막기 위해 청, 미국, 프랑스 등과 국제 관계를 형성하며 다양한 대외정책을 실시하였다.

고종의 적극적 외교정책은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중립정책을 통해 나라의 자주권을 확립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으나, 결국 대한제국은 여러 사건들과 을사늑약 등을 거쳐 일본의 통치 체제 하에 놓이게 된다. 다시 말해 1897년부터 1917년까지의 시기는 한국 근대사의 대대적 전환기이자 가장 중요한 시기로, 약 20년간 대한제국 시기(1897~1910), 일제 통감부 시기(1906~1910), 병합 이후의 시기(1910~1917)가 이어졌다. 본 자료집은 일본이 한국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해 통감부 시기를 지나 마침내는 병합을 이루어 총독부를 설치해 본격적인 식민통치를 실시하는 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중심 내용은 대한제국부터 통감부 시기 국내정치 상황과 일본의 정책 시행, 병합 후 국내정치 상황과 일본의 정책 시행, 대한제국과 황실의 대내외 문제, 한불관계 및 주한 프랑스인들 관련사항 및 제주도 교안사건 등에 관한 것이다. (해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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