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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
장우진
미술문화 201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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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top10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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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1. 세기말의 한 가운데
벨에포크의 파리
젊은 예술가의 초상
상징주의
아르누보

2. 인생의 극장 앞에
보헤미안의 고향
체코의 시골 소년
빈과 뮌헨의 수업시대
파리에서 맞은 봄

3. 무하, 세기말을 장식하다
극적인 만남 사라 베르나르
일상의 그 모든 것
박람회의 풍경

4. 무하 양식
아르누보의 별
화가의 작업실
세기말의 여인들

5. 보헤미아를 향하여
아메리카의 보헤미안
슬라브 서사시
끊임없이 재현되는 무하

무하연보
참고문헌
무하도판목록
색인

저자 소개

저자 : 장우진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미술사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미술과 만화에 대한 애정으로 《미술, 만화로 읽다》를 출간했고, 사랑하는 조카들을 위해 어린이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미술책 《루브르박물관에 가자!》를 만들었다. 현재 미술에 대한 강의와 저작을 계속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76g | 128*188*20mm
ISBN13
9788991847927

책 속으로

사라는 그가 그린 포스터가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당장 그와 계약을 맺고 싶어 했다. 사실 〈지스몽다〉를 위한 포스터가 처음부터 무하에게 의뢰된 것은 아니었다. 그전에 다른 유명화가들이 그려 준 포스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퇴짜를 놓았던 그녀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여 연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이 포스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녀 주위엔 학식 있는 지식인들과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그녀 자신도 아마추어 소설가요, 화가, 조각가였던 만큼 그녀의 안목은 정확했다.
1895년 새해 첫날, 파리의 광고 선전탑에 이 포스터가 나붙자 그것은 곧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폭이 좁은 장방형의 포스터는 실물 크기의 여배우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해 주었다. 당시의 원색적인 다른 포스터들과는 달리 파스텔 톤의 투명한 색채와 명암으로 채워진 무하의 포스터는 비잔틴식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배경과 화려한 중세풍의 의상으로 이국적이면서도 장식적인 느낌을 주었다. 평면적인 배경과 장식은 사색에 빠진 듯한 그녀의 사실적인 얼굴과 대비되어 신비감을 더해 주었고, 포스터 속의 그녀와 눈이 마주친 파리지앵들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무하는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진 것이다. --- 「극적인 만남 사라 베르나르」 중에서

‘국수 가락 양식’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풍성하게 늘어진 머리카락은 여인의 벗은 몸 위로 흘러내리고 가슴 깨의 별 무리에서 시작된 연무는 여인의 머리띠를 이룬다. 한 손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댄 채 턱을 괴고 또 한 손에는 깃털 펜과 붓이 살며시 쥐어져 있다. 이 포스터는 ‘무하 양식’의 전형이 된 몽환적 여인과 장식, 인상적인 타이포를 보여주고 있다. 무하가 이 포스터를 제작하고 있을 때 레옹 데샹은 무하의 작업실에 들러 작업 중인 이 그림을 보고 한 눈에 반하게 된다. 데샹은 무하에게 그림을 완성하지 말고 미완성인 지금의 상태로 포스터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이 포스터는 스케치 풍의 날렵하며 자유분방한 선이 살아 있는 이색적인 포스터가 되었다. 데샹의 말대로 이 포스터는 대중들에게 신선한 감각을 선사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같은 해에 제작된 연작 패널화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각기 다른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하고 있다(114-5쪽 그림). 봄꽃으로 화관을 얹은 봄의 여인은 작은 새들의 지저귐에 맞춰 수금을 뜯으며 더할 나위 없는 봄의 서정성을 노래한다. 태양만큼이나 붉은 양귀비꽃을 머리에 꽂은 여름은 그녀의 작은 발로 수면을 유희하고 물가에 자라난 수풀의 어린 가지에 기대어 의식에서 몽환으로 이어지는 여름 한나절의 나른함을 표현하고 있다. 포도를 수확하는 달콤한 가을은 그윽한 국화 향이 그 취기를 더하고 동장군이 지배하는 겨울, 여린 가지에 무겁게 내려앉은 눈은 숲의 작은 새들까지 떨게 한다. 그러나 새들은 여인의 품에서 날개를 접고 그녀의 입김으로 추위를 녹인다. 무하는 이러한 연작 장식 패널로 큰 성공을 거두고 뒤이어 다른 버전의 〈사계〉와, 〈네 개의 예술〉, 〈과일과 꽃〉, 〈네 개의 별〉, 〈네 가지의 꽃〉, 〈네 가지의 보석〉 등의 연작을 완성한다. 각기 다른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들 작품에는 상징성을 지닌 여인과 세심하게 선택된 자연이 그의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제 무하의 포스터는 거리를 메우고 그의 장식 패널은 값싼 목로주점의 먼지 낀 벽에서, 가난한 학생의 허름한 하숙방에서 혹은 고급 주택의 응접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의 포스터와 장식 패널은 다시 비단 천에, 그리고 엽서에, 작은 과자 상자, 도자기 접시에도 인쇄되었다. 그의 작품은 굳게 닫힌 미술관의 유리문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이 닿는 거기에, 눈이 머무르는 어느 곳에나 있는 대중을 위한 예술이 되어가고 있었다. …(중략)… 무하는 광고주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무하와 계약 관계에 있었던 거대 비스킷 회사인 르 페브르 유틸사의 포스터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사와 숙녀가 등장한다. 흰 장갑에 실크 헷을 그러쥔 콧수염의 신사, 리본과 깃털로 장식한 고급스런 여인의 의상. 그리고 단정한 실내에 놓여 있는 르 페브르 유틸사의 비스킷 상자는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계층과 삶의 방식을 전달한다. ‘에드워드 시대의 멋쟁이’라 할 만하게 멋지게 차려입은 이 신사와 숙녀들은 상류층이나 신흥 부자들의 생활 방식, 즉 어느 귀부인의 살롱에서 파티를 한다거나 로튼 로에서 승마를 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에 취하는가 하면 라이트 섬에서 요트를 즐기는,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르 페브르 유틸사의 비스킷을 한 입 깨물었을 때 ?시나마 어느 귀부인의 티파티에 초대라도 된 듯한 기분을 내는 것이다. 무하는 거의 백 년 전의 사람이지만 광고에 있어 그 감각은 매우 현대적인 것이었다. 이 시기 자전거야말로 대유행이었고 1891년 공기를 넣은 고무 타이어가 실용화되면서 자전거는 중요한 교통의 수단이자 여가의 즐거움이 되었다. ‘페르펙타 자전거’를 위한 무하의 포스터에는 자전거에 몸을 기댄 채 정면을 바라보는 여인이 화면을 압도하고 있다. 거친 붓질로 완성된 그녀의 머리칼은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려 화면을 채우고 그녀의 머리 위에 쓰인 ‘CYCLES PERFECTA’란 글자는 너무도 선명하게 우리 머리에 각인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의 눈을 응시하며 ‘나와 함께 이 자전거를 타고 봄의 미풍을 즐겨 보지 않을래요!’라고 말을 건넨다. --- 「일상의 그 모든 것」 중에서

〈지스몽다〉 이후 십 년, 무하는 파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의 스타일이 세기말 파리의 거리를 메우고 사람들은 ‘무하 스타일Le Style Mucha’을 소비하기 위해 주머니를 털었다. 아르누보가 ‘국수 양식’이니 ‘마카로니 양식’이니 하는 말로 비난받은 것도 그의 탓이요, 벨 에포크의 파리가 ‘무하 양식’으로만 도배된 것도 그의 탓이다. 무하를 모방했던 수많은 화가들은 오래전에 잊혀버린 존재가 되었다. 아니 세기말 파리에서 웬만큼 재능 있는 화가라도 무하 앞에선 그 존재감이 희미해질 뿐이었다. 무하란 이름이 파리 아르누보를 대변하게 되었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과연 사람들을 열광케 하는 그의 양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첫 포스터인 〈지스몽다〉(99쪽 그림)에서 그 전형이 발견되고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아름다운 화관과 호화로운 의장을 걸친 여인이 눈길을 끈다. 그녀가 그려내는 굵은 윤곽선. 그리고 그 뒤로 광배와 같은 오라가 그녀를 감싸고, 예외 없이 식물이나 모자이크, 동양이나 체코 민속풍의 장식이 상징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적당한 비율로 잘린 화면의 위나 아래에는 그의 창의적인 레터링이 선전 문구를 전한다. 그것은 그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다시 한 번 그가 만들어 낸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상업성과 예술성이 성공적으로 결합하고 명랑과 외설이 교묘하게 만나며, 세속적인 동시에 영혼의 한 지점을 울리는 그의 작품은 분명 벨 에포크의 파리 시민들에게 익숙하지만 왠지 낯선 아름다움이었다. 이미 첫 포스터에서부터 완성되어 있었던 그의 양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 「아르누보의 별」 중에서

출판사 리뷰

누구나 보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화가,
매혹적인 곡선으로 세기말을 사로잡은 보헤미안,
알폰스 무하의 생과 작품 세계 속으로


도톰하고 매끄러운 살결에 흩날리는 풍성한 머리칼, 이국적 의상을 걸친 아름다운 여인은 우연히 펼친 책의 삽화에서, 혹은 친구가 보내온 엽서에서 한 번쯤은 보았음직하다. 그러나 이 관능적인 여인을 창조해 낸 화가에 대해 우리는 그간 잘 알지 못했다. 그의 작품은 미술 서적에서 보다는 책의 삽화, 잡지의 표지, 우편엽서나 달력, 포스터나 광고 문구에서 더욱 쉽게 발견되었다. 포스터, 장식패널, 극장의 무대와 의상, 일러스트, 벽화, 건축, 스테인드글라스, 보석디자인, 조각, 초상화. 이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무하는 세기말 아르누보를 지지했던 대중들에게 그 이전의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명랑하고도 심원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선이 그려내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세기말을 장식했던 아르누보의 정수, 알폰스 무하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정열적으로 활동했던 곳은 벨 에포크(bell ?poque)의 파리였다. 이 책은 무하라는 화가의 생과 작품을 통해 백년을 훌쩍 거슬러, 19세기 말 유럽의 지적 풍토와 예술적 조류, 예술 주변을 둘러싼 감수성들을 되돌아보며 세기말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일부 포스터와 장식패널 외에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무하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다양하게 분석하여 새롭게 소개하고 있다.

만국박람회의 전기궁전과 놀랄만한 볼거리들, 카바레와 극장의 야한 여흥과 풍성한 오락거리, 도시의 지하를 관통하는 지하철과 철제로 지어진 높은 에펠탑. 화려하게 꽃핀 도시 문명은 그 이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자유와 번영의 구가였다. 그러나 당시 유럽의 부와 사치 속에 만연한 기계주의, 과학만능주의, 낙관주의 뒤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세기말로 대표되는 퇴폐와 향락, 염세적인 분위기였다. 또한 세기말의 자아분열적인 시대의 우울증을 딛고 예술적인 운동으로 자리 잡은 상징주의는 자연에 대한 재현에서 해방되어 비밀스럽고 자유로운 인간 내면의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상징주의와 미학적인 면에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면서 세기말을 장식한 것은 식물의 덩굴무늬 같은 곡선을 연상시키는 아르누보였다. 예술을 개혁하여 우리의 삶과 주변 환경의 총체적 변혁을 요구한 아르누보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났고, 무하는 이러한 아르누보의 중심에 있었다. 1860년 체코의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 이반치체에서 태어난 무하는 교회가 중심이 된 생활 속에서 신앙을 키우며 성장했고, 우연히 들른 교회의 천장화와 마주하고서 화가가 될 운명을 직감하게 된다. 화가의 꿈을 키워가던 무하는 빈에서 무대 배경을 그리는 일을 하게 되지만 회사 사정으로 해고된다. 그러나 타고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어느 귀족의 후원으로 뮌헨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후 1887년 예술가들의 도시 파리에 입성하게 된다. 사라 베르나르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무하가 파리 유행의 중심에 서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무하가 그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무하는 사라 베르나르를 위한 작품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광고 포스터는 물론이고, 장식패널, 수많은 책의 일러스트, 보석디자인, 조각, 인테리어디자인까지, 다양한 재능을 펼쳐 보인다. 그의 작품은 세기말 파리에서 굳게 닫힌 미술관의 문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손이 닿는 곳, 눈길이 머무는 곳에 존재하는 대중들을 위한 미술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유행의 첨단을 달리던 파리에서 예술가로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무하 스스로는 불만족과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떠나온 고향 체코에 대한 그리움과 슬라브 민족을 위한 거대한 연작 〈슬라브 서사시〉를 향한 꿈 때문이었다.

1906년 미국으로 이주한 무하는 뉴욕 등지에서 강의를 하며 틈틈이 전시회를 열었고, 초상화를 그리는 일로 알게 된 기업가 찰스 크레인을 통해 〈슬라브 서사시〉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된다. 2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거대한 작품에 온 힘을 쏟아 부은 20년 동안 무하는 자신의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모멸과 비판, 전쟁의 참화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슬라브 공통의 유대와 인류의 이상적 평화를 바란 한 화가의 끈질긴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고, 1928년 〈슬라브 서사시〉는 조국에 기증되었다. 그러나 1939년 히틀러의 야욕이 프라하까지 이르렀고 게슈타포는 애국인사로 명망을 얻고 있던 고령의 무하를 몇 번이나 검거해서 심문을 가했다. 그리고 결국 1939년 7월 14일 그는 세상을 떠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무하의 조국 체코는 공산화 되었다. 공산 정권 하에서 무하의 이름과 작품은 환영받지 못했고, 입체파, 표현주의와 같은 새로운 미술운동의 분출 속에 무하라는 이름은 잊혀졌다. 대중들의 가벼운 취향으로 여겨졌던 그의 작품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팝문화의 부활과 함께 아르누보와 아르데코가 20세기 새로운 디자인의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부터였다. 특히 그의 작품이 그의 철학적 세계관과 미학적 고려를 통해 온전히 재조명 된 것은 아주 최근에 와서야 이루어진 일이다. 무하는 포스터, 장식 패널, 극장의 무대와 의상, 일러스트, 건축, 보석 디자인 등, 다양한 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태양이 프리즘을 통해 그 아름다운 빛을 드러내듯 세계의 영혼은 무하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에 아름다운 스펙트럼을 펼쳐 놓았다. 모라비아의 어린 소년은 예술이 성직임을 알았다. 그에게 예술은 모든 이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자신이 그 사명을 위해 태어났음을 굳게 믿으며 극장의 세계와 세기말의 파리의 진보적인 사상들 속에서 자신의 정신과 기술을 단련해갔다. 언제나 운명이 지지해 줄 것이라는 낙천성을 발휘하며 성실히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이겨내며 수련한 이 소년은 어느새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라나 세기말 아르누보를 지지했던 대중들에게 그 이전의 누구도 알지 못했던 명랑하고도 심원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백년을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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