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스리랑카 기차엔 있지만 KTX에는 없는 것
1부 바쁨의 지배 현재를 사는 원시인, 미래를 사는 현대인 ‘뺄셈’의 여가에서 ‘덧셈’의 여가로 원더우먼 증후군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 정체된 질주 2부 바쁨의 탄생 사건의 시간에서 기계의 시간으로 신의 미움을 산 베짱이 번영의 시대에 부족한 것 주 15시간 근로한다는 예언 3부 바쁨의 강제 빠르게 돌아가는 지구본 ‘나 이렇게 바쁜 사람이야’ 쉴 새 없이 울리는 카톡 감옥 4부 바쁨의 미래 역사에 남을 중대한 변곡점 두 가지 선택지, 워커홀릭 또는 실업자 바보를 길러내는 학교 쾌락에 길들여진 사람들 5부 바쁨의 파괴 바쁨에도 질이 있다 노는 것은 쓸모없다는 착각 권태를 찬미하다 ‘잠은 낭비’라던 에디슨은 틀렸다 6부 바쁨 공화국 시간 빈곤자들 ‘하면 된다’는 신화를 돌이키며 생존을 위해 돌진하라 한강의 몰락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 에필로그 | 다시, 원시인의 시간으로 참고 문헌 |
한중섭의 다른 상품
|
직장인 70퍼센트,
“나는 개인시간을 포기한 타임푸어” 연간 2천 69시간에 달하는 평균 노동시간으로 OECD에서 두 번째로 오래 일하는 나라. 평일 여가가 3.1시간뿐이며 그마저도 대부분이 TV 시청으로 채워지는 나라. 고위직 임원에서 신입사원까지 과로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정확한 통계 하나 없는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빨리빨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한국인의 일상은 언제나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다. 시간이 곧 돈으로 통하는 금융업계 종사자 K의 하루를 들여다보자. 서울에 사는 주식 중개인 K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TV를 켜고 지난밤 미국 증시와 연준(연방준비은행)의 금리 코멘트에 관한 뉴스를 들으며 시리얼을 우적우적 먹는다. 출근길에는 스마트폰을 쥐고 메일을 확인한다.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오전 회의를 마치고, 고객에게 보낼 보고서 하나를 부랴부랴 작성한다. 점심은 샌드위치로 대충 때운 후 몇 통의 문의 전화에 응답하고 상사에게 서류를 제출하고 나니 오후 8시. 회사를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집이 아닌 강남의 음식점으로 향한다. 간단히 저녁만 하고 싶었지만 거래처 박 부장이 폭탄주를 마시고 싶어 하는 기색을 보인다. 오늘도 아이가 잠들기 전에 귀가하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야근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삶을 보내고 있을까. 노르웨이의 사례를 찾아보자. 노르웨이는 2016년 UN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와 OECD의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에서 각각 1위를 기록했다. 노르웨이 국민이 행복을 느끼는 데는 시간적 여유가 큰 몫을 차지한다. IT 회사에 재직 중인 한센의 일상을 살펴보자. 한센은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거주하는 직장인이다. 개발부서에서 근무하는 그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세 아이와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그의 동료는 오늘부터 3주 동안 스페인으로 휴가를 떠났다.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면 그도 2주간 캠핑을 다녀올 생각이다. 노르웨이의 법은 주당 노동시간을 최대 40시간으로 규정하지만, 노조와 회사가 협상한 끝에 한센은 37.5시간을 일하고 있다. 탄력근무제가 적용된 그의 퇴근 시간은 오후 4시. 거리는 벌써 일과를 마친 사람으로 가득하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양고기를 굽고 저녁을 차린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는 다함께 내일 계획을 이야기한다. 그의 가족은 몇 년째 주말농장을 가꾸고 있다. 내일은 올해 첫 당근을 수확할 셈이다. 그는 벌써 신이 난 아이들을 재우고 자신도 잠자리에 든다. ‘워커홀릭’은 미덕이고 ‘번아웃’은 일상인 한국…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는가 시간빈곤은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를 중심으로 확산된 전 세계적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타임푸어(time poor)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제적 절박함과 높은 교육열은 한국인의 삶이 과열되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부터 ‘빨리빨리’라는 말을 외치게 되었을까. 《사실,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진 않아》의 저자 한중섭은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시기’를 기점으로 꼽는다. 일제는 조선인을 가혹하게 부리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상을 퍼뜨렸다. 이는 서구 열강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게으름은 악이요, 근면함은 선이다’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적극 활용한 것과 같다. 그리고 1960~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국가주도경제가 실현되며 ‘하면 된다’라는 말로 압축되는 근면·성실의 정신이 확산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 겪은 불안은 새로운 형태의 불안으로 대체되었다. 한국인에게 더 이상 일본 순사나 북한군은 근심거리가 아니었다. ‘하면 된다’의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한국인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똑같이 가난한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누구는 출세하고 누구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성공의 트로피를 거머쥐지 못한 사람들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_본문 중에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이든, 성공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든, 한국인은 자신의 일상을 숨 쉴 틈 없이 옥죄었다. 직장인은 야근을, 10대는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했다.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은 어떻게든 자기계발에 투자되었다. 학원가에는 퇴근이 늦어 수업에 참석할 수 없는 샐러던트(공부하는 직장인)를 위해 새벽반이 개설되었고, 그마저 여의치 않은 이를 위해 런치클래스(점심시간을 이용한 수업)가 열리기도 한다. 케인즈는 예언했다 “2030년, 주 15시간 노동의 시대가 온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을 부른 ‘하면 된다’ 정신은 이제 한강의 몰락을 부르고 있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기반을 둔 산업은 이미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에 경쟁력을 빼앗겼고, 공교육은 창의적 인재를 기르기보다 정답을 잘 고르는 ‘회사형 인재’를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곳에 또 다른 천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젊은 세대는 탈진할 때까지 달리기를 거부하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우리는 지금 역사에 남을 중대한 변곡점 위에 서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노동 없는 산업의 등장을 예고한다. 이제 인류는 1퍼센트의 엘리트와 평범한 99퍼센트로 나뉘게 되며, 누군가는 바쁘고 싶어도 바쁠 수 없는 잉여 인간으로 몰락하게 되리라는 섬뜩한 경고가 떠오르고 있다. ‘바쁨’조차 양극화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존 케인즈는 <우리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전망을 던졌다. ‘경제가 거듭 성장한 결과, 100년 뒤 후손들은 주 15시간만 일하고 여가를 누릴 것이다.’ 케인즈의 이 예측이 1930년에 등장했으니 이제 예정일까지는 10여 년이 남았다. 과연 우리는 그의 바람대로 물질적 번영과 함께 시간적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더 바쁜 삶으로 내몰고 있는지 잠시 멈춰 되돌아볼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