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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편집자의 말 / 5
서언 / 11

제1장 중원과 서역 예술의 만남
1. 둔황 석굴 최초의 보살은 누구일까? ... 31
2. 북위의 둔황 조형물은 중원 지역의 양식을 계승한 것일까? ... 41
3. 왜 북위의 석굴에는 석가의 고행상이 있는 것일까? ... 51
4. 왜 석가다보釋迦多寶를 『묘법연화경』으로 해석하는가? ... 58
5. 서위의 채색 조형물에는 어떤 양식이 나타났을까? ... 64
6. 모가오굴에서 가장 큰 중심탑주석굴은 어떤 기능과 특징들이 있을까? ... 72

제2장 앞을 잇고 뒤로 전하다; 한漢의 양식(風)과 이민족의 정취(胡韻)
1. 왜 수나라의 조형물을 승전계후承前啓後라고 하는가? ... 87
2. 수나라 시기, 왜 미륵삼회상을 만들었을까? ... 97
3. 수나라 시기에는 석가모니와 10대제자十大弟子를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 106

제3장 세속의 형상이 속세를 감동시키다
1. 왜 당나라 초기의 모가오굴 조형물을 ‘정관 양식’이라고 부를까? ... 121
2. 누가 남대불상(南大像)과 북대불상(北大像)을 만들었을까? ... 136
3. 당나라 전성 초기의 가장 아름다운 점토조형물(圓塑) 군상은 어디에 있을까? ... 142
4. 어떻게 당나라 전성기의 사실적인 조형물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가? ... 153 5. 당나라 전성기의 가장 뛰어난 석굴은 어느 것일까? ... 167
6. 당나라 전성기, 조형물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어떻게 드러내었나? ... 177

제4장 참신하던 토번吐蕃의 조형물이 점차 빛을 잃다
1. 토번의 통치하에서 둔황은 왜 당나라의 양식을 유지하였을까? ... 191
2. 둔황에서 가장 큰 석가열반상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 206
3. 당나라 후기의 저녁노을이 남긴 낙조는 얼마나 될까? ... 216
4. 둔황 채색 조형물의 여운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 224

│부록│ 둔황의 연대기 / 230

저자 소개 4

劉永增

둔황연구원 고고학연구소 소장

樊錦詩

한족(漢族) 여성으로 저장성 항저우가 본적지이다. 1938년 베이핑(北平, 오늘날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현재 둔황연구원의 명예원장을 맡고 있다. 1963년 베이징대학을 졸업한 후 당시 둔황연구원(당시에는 둔황연구소였다)에 들어와 40여 년을 일했다. 세간에서 판진스를 ‘둔황의 딸’로 부른다. 석굴의 고고학 연구 및 과학적 보존 방법에 크게 공헌하였다. 제12대 중국정치협상회의(공산당을 비롯한 8개 정당의 대표와 각 단체와 소수민족, 홍콩과 마카오 동포 등을 묶어 구성한 정책자문기구) 위원이며, 2007년 11월 중앙문사연구관(中央文史?究館)의 일원으로 위촉되었다. 둔황
한족(漢族) 여성으로 저장성 항저우가 본적지이다. 1938년 베이핑(北平, 오늘날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현재 둔황연구원의 명예원장을 맡고 있다. 1963년 베이징대학을 졸업한 후 당시 둔황연구원(당시에는 둔황연구소였다)에 들어와 40여 년을 일했다. 세간에서 판진스를 ‘둔황의 딸’로 부른다. 석굴의 고고학 연구 및 과학적 보존 방법에 크게 공헌하였다. 제12대 중국정치협상회의(공산당을 비롯한 8개 정당의 대표와 각 단체와 소수민족, 홍콩과 마카오 동포 등을 묶어 구성한 정책자문기구) 위원이며, 2007년 11월 중앙문사연구관(中央文史?究館)의 일원으로 위촉되었다.

둔황 문물 보호 및 연구 사업에 40여 년간 종사하면서 석굴의 고고학 연구 및 과학적 보존 방법 개발에 크게 공헌하였다. 저서로 『둔황 석굴(敦煌石窟)』, 『둔황 석굴 전집 : 불전고사화(敦煌石窟全集·佛傳故事?卷)』, 『중국 벽화 전집 : 둔황편 제3권 북주(中國壁?全集·敦煌·3·北周卷)』, 『안서 유림굴(安西?林窟)』 등 10여 종의 둔황 석굴 고고미술학 전문 서적이 있다. 편저자로 참여한 저서도 여러 권이 있다. 『중국 미술 분류 전집 : 중국 벽화 전집(中國美術分類全集·中國壁?全集)』에서 둔황 벽화 부분을 집필했고, 전26권인 『둔황 석굴 전집(敦煌石窟全集)』과 전13권인 『둔황을 해독하다(解讀敦煌)』에도 대표 편저자로 참여했다. 이 전집들은 둔황 석굴 예술 연구 분야에서 필수적인 대규모 총서들이다.

또한 「막고굴 북조 동굴 분기(莫高窟北朝洞窟分期)」, 「막고굴 수나라 동굴 분기(莫高窟隋代洞窟分期)」, 「막고굴 당나라 전기 동굴 분기(莫高窟唐代前期洞窟分期)」, 「둔황 막고굴 제290굴의 불전고사화(敦煌莫高窟第290窟的佛傳故事?)」, 「막고굴 역사 유적으로 살펴본 막고굴 절벽의 안정성(從莫高窟曆史遺迹探討莫高窟崖體的穩定性)」, 「현장의 불경 번역과 둔황 벽화(玄?譯經和敦煌壁?)」, 「P.3317호 둔황 문서와 막고굴 제61굴 불전고사화의 관계 연구(P.3317號敦煌文書及其與莫高窟第61窟佛傳故事?關系之?究)」 등 20여 편의 석굴 고고학 및 고미술학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들로 둔황 석굴의 연대를 판별하고 분류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국제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 밖에도 ‘막고굴 절벽의 모래바람에 의한 훼손도 연구’, ‘둔황 막고굴 환경 변화와 석굴 보호 연구’, ‘둔황 막고굴 및 주변 지역 환경 변화에 대한 과학적 교육 연구’, ‘문물 정보의 디지털 저장 및 재현 시스템 연구’, ‘전면 디지털 촬영 측량기술을 막고굴 문물 보호에 응용하는 연구’, ‘둔황 문물이 현지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 연구’ 등 30여 건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이런 연구 프로젝트의 성과를 담은 논문으로 「둔황 막고굴의 보호 연구 작업(敦煌莫高窟及其保護、?究工作)」, 「둔황 막고굴 개방에 관한 대책(敦煌莫高窟開放的對策)」, 「둔황 막고굴의 보호와 관리(敦煌莫高窟的保護與管理)」, 「둔황 막고굴 보호 및 관리를 위한 총체적인 규정과 그 수확(敦煌莫高窟保護與管理總體規劃的制定與收獲)」, 「세계 일류 수준의 유적 박물관으로 발전하기 위한 과제(建設世界一流的遺址博物館)」, 「디지털 시대의 둔황 : 둔황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數字化時代的敦煌??探索保存和利用敦煌文化遺産的新途徑)」, 「둔황 막고굴 여행 개방 정책의 효과와 문제점, 대책(敦煌莫高窟旅遊開放的效益、挑戰與對策)」 등 30여 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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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光淳

中國浙江農林大學校 風景園林學科 專任講師 국립 강릉원주대학교 박사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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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강릉원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 한국조경학회 학술부회장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592g | 175*250*20mm
ISBN13
9788978018258

책 속으로

둔황 지역은 변경에 자리하고 있어 사회는 상대적으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역의 권문세가들과 백성들이 대를 이어 석굴을 만듦에 따라 둔황은 규모 면에서 웅대한 불교의 성지로 발전하게 된다. 이와 함께 중원의 각지에서 서쪽으로 몰려드는 승려들과 전란을 피해 온 부호들, 관직을 잃은 선비들이 끊임없이 둔황으로 모이게 되면서 그들의 지혜와 재력은 석굴 조성의 촉진제가 되었고, 보존에도 큰 역할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 13쪽, 서언

둔황 석굴의 암석 구조는 주취안(酒泉)계의 역석암礫石巖층으로 부드러운 모래와 자갈들의 퇴적과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인도의 간다라나 마투라와 같은 조각을 할 수 없었고 오직 점토와 색채를 이용하여 조형물을 만들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이것을 ‘채색소상’이라 불렀다.
- 20쪽, 서언

둔황뿐만 아니라 5~6세기 중국 북방의 넓은 지역에서 교각미륵이 유행했던 소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과 생활의 모진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의 희망을 미래 세계의 구세주인 미륵보살에게 기탁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모가오굴 초창기 석굴의 미륵불상은 모두 도솔천궁에 있는 보살을 표현하였고, 북방 지역의 보편적인 대상이 되었다.
- 40쪽, 제1장_중원과 서역 예술의 만남

불교의 석굴사찰 조성 시 벽화의 전이모사轉移模寫나 소상 혹은 조각 작품들의 교류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고, 더욱이 둔황은 변방에 자리 잡고 있어서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 또한 새로운 양식이 둔황에 유입되기까지 30~50년 혹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원인이기도 했다. 반면 이 시대 모가오굴에는 북제 양식과 마투라 양식이 짧은 시간 내에 출현하였는데, 이는 수 왕조가 통일 이후 불교를 대대적으로 장려하였고, 둔황과 중원 지역 사이의 교류가 한층 강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 103쪽, 제2장_앞을 잇고 뒤로 전하다; 한의 양식과 이민족의 정취

모가오굴에서 제자상은 북주 시기에 출현하였는데 이때부터 1부처2제자2보살 형식의 5존상이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석굴은 부처의 왼쪽에는 늙은 가섭, 오른쪽에는 소년 아난이 자리하고 있고, 일부분은 벽감 안에 다른 8제자들을 그려 넣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벽화와 조형물을 결합하는 수법으로 석가와 그의 10대제자들을 표현한 것이다.
- 110쪽, 제2장_앞을 잇고 뒤로 전하다; 한의 양식과 이민족의 정취

당나라 석굴의 조형물은 일체감이 강하며 일반적으로 서쪽 벽감의 정중앙에는 석가모니좌상이 모셔져 있고, 양측에는 아난과 가섭 두 제자 그리고 보살과 천왕이 각각 자리하고 있으며, 벽감 안에는 보살과 10대제자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조형물은 대부분 실제 사람과 동일한 크기인데, 사실적인 기법에 색채는 화려하다. 무주武周 시기 및 개원開元과 천보天寶 연간에는 벽을 의지하여 만든 미륵 거상巨像이 출현하기도 하였다.
- 120쪽, 제3장_세속의 형상이 속세를 감동시키다

당나라 건중建中 2년부터 대중大中 2년까지(781~848) 둔황이 함락된 거의 70년에 이르는 기간을 ‘토번 시기’라고 불렀고 그때가 당나라 중기였다. 토번의 통치자가 불교를 널리 보급함에 따라 이 시기 모가오굴의 조성과 조형물 제작 활동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이전 시대의 고풍을 이어받아 서쪽 벽감에는 석가모니의좌상, 양측에는 제자상과 보살상 그리고 천왕상을 배치하였고, 일부 감실의 외부에는 역사상을 두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이 시기의 새로운 소재로 석가의 열반상을 중심으로 한 삼세불상三世佛像과 칠불약사상七佛藥師像도 나타난다.
- 190쪽, 제4장_참신하던 토번의 조형물이 점차 빛을 잃다

당나라 후기에는 토번 통치 때에 조성된 녹정형 벽감 석굴 외에도 배병식背屛式 중심불단형 석굴이 출현한다. 이 석굴의 평면은 정방형으로 중심에 불단을 설치하였으며, 불단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배병은 굴실 천장까지 닿아 있다. 녹정감실 안의 조형물은 대부분이 소형으로서 일곱 명 혹은 아홉 명의 군상으로 되어 있는데, 대체적으로 토번 시기의 주제나 양식을 이어받고 있다. 하지만 중심불단 석굴의 조형물은 규모에서 앞 시대를 훨씬 뛰어넘고 있어 여래나 제자, 보살을 막론하고 몸집이 풍만하면서 크고 강건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 외에도 이 시기에는 고승상高僧像도 나타났는데, 비록 하나의 예일지라도 초상肖像 작품의 출현은 둔황의 채색 조형물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상징한다.
- 216쪽, 제4장_참신하던 토번의 조형물이 점차 빛을 잃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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