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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고대사연구의 현황과 과제/이기동
2. 고구려의 성립과 변천/노태돈 3. 백제사의 재인식/노중국 4. 신라의 성립과 변천/이기동 5. 후기 가야연맹의 성장과 쇠퇴/김태식 6. 임나일본부설의 실체/김현구 7. 삼국시대의 사회구조와 신분제도/이기백 8. 불교의 수용과 고대 사회의 변화/김두진 9. 삼국통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김영하 10. 발해사연구의 몇 가지 문제점/송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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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공인은 왕실과 귀족이 일정한 타협을 이룸으로써 가능해졌다. 불교가 사상면에서 왕실과 귀족으로 하여금 대립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였다. 그러기 위해 불교는 왕실의 입장에서는 물론, 귀족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신앙으로 나타나야 했다. 전륜성왕과 미륵, 또는 석가불과 미륵보살 신앙은 불교사상면에서, 왕실과 귀족이 타협을 이루면서 서로 조화되었음을 나타내준다.
불교를 공인하면서 왕실은 전륜성왕 관념을 포용하였다. 인도에서 일어날 당시의 원시불교는 정복국가를 정당화하는 면을 가졌다. 원시불교경전 속에 나타나는 전륜성왕은 정복사업을 추진해가는 세속적 군주의 상징적 존재였다. 전륜성왕은 정복사업을 추진해가는 세속적 군주의 상징적 존재였다. 전륜성왕은 금, 은, 철, 동륜왕이 있는데, 무력으로 이웃의 모든 국가를 정복하고 그 땅에 불법 통치를 이룩하는 장본인이다. ---p.1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