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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1. 운명의 끈 2. 난세에 낀 구름 3. 만남 4. 새로운 자리 5. 요동치는 천하 6. 멀고 먼 길을 떠나며 7. 죽음을 두 손에 쥐고 8. 울지 않는 새 9. 귀향길에 뎃포를 들다. 10. 해가 버린 나라 11. 작은 땅에서 부는 바람 12. 이순신을 죽여라 13. 달빛은 흐르고 구름은 가리고 14. 모든 시작과 모든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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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난세의 시대로 접어든 지 한참이나 지났다. 태평 시대라면 한창 뛰어 놀았겠지만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아이들이 더 많은 시절이었다. 게다가 용병 부대에 소속된 아이들은 더 심한 처지였다. 언제고 차디찬 시체가 되어도 누구 하나 혀를 차지 않았다. --- p.45~46
“넌 꿈이 무엇이냐?”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는지 히로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답했다. “전 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게 제 꿈입니다.” “답을 찾는 사람이라…….” --- p.46 “네가 그랬지. 어느 곳이든 정착해서 살게 된다면 그곳이 고국이자 고향이라고.” “그래.” “내가 정착하는 곳에 네가 꼭 옆에 있었으면 해.” --- p.127 ‘나는 조선인인가, 일본인인가. 이들은 전쟁으로 인해 죽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있다면 왜 주요 장수들은 도망치고 없는 성을 민초들이 죽어 나가며 지키려 한단 말인가.’ --- p.247 "정말 내가 돕는다면 그들의 무고한 죽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 p.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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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왕이 된 남자』를 잇는 기발한 발상
역사와 허구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된다 대담한 발상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가 이주호가 돌아왔다.『역랑; 김충선과 히데요시』는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6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하는 이주호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광해, 왕이 된 남자』보다 한층 더 파격적인 상상력을 선보인다. 그리고 6년에 걸친 역사 고증 작업은 상상력을 탄탄하게 뒷받침하며 한국적 역사 팩션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비단 한국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임진왜란을 접점으로 조선과 일본의 거대 역사가 만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주축으로 하는 16세기 일본 전국시대와 이순신이 지킨 조선을 무대로 삼아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김충선(사야가)의 정체를 밝힌다. 조선을 침략한 히데요시 조선을 택한 일본 뎃포 부대의 장수, 사야가 임진왜란.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사들은 막강, 아니 압도적이었다. 제3자 누구의 눈에도, 당사자들인 조선이나 일본의 눈에도 일본의 승리는 자명했다. 승리가 뻔히 보였던 전쟁에서 일본 뎃포 부대의 장수 사야가는 왜 조선을 택했을까? 일본과 한국에서도 사야가의 정체에 대한 설이 여전히 분분하고, 그가 항왜(조선에 귀순한 일본인)가 된 계기를 명쾌하게 납득시킬 설명은 역사에서 생략되었다. 작가는 과감하게 그 역사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려는 자, 오다 노부나가를 도왔던 뎃포 부대에서 자란 사야가(작중 히로). 전쟁이 횡행했던 시대 속에서 사야가의 삶 역시 전쟁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다가 죽고 히데요시가 일본의 정권을 장악하면서 일본의 칼날은 조선을 거쳐 명나라로 향한다. 그리고 정을 나눌 시간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격정의 시대는 사야가를 조선까지 내몬다. 조선을 침략한 히데요시는 세 가지를 예상하지 못했다. 첫째는 조선 왕의 비겁함이고, 둘째는 가난한 조선의 현실이며, 셋째는 이순신이었다. 이에 히데요시는 사야가에게 임무를 맡긴다. ‘이순신을 죽여라.’ 시대라는 견고한 옹벽에 틈을 낼 수 있는 가능성 문제적 인간 김충선의 신념과 사랑 조선에 와 김충선이 된 자, 사야가는 시대라는 견고한 옹벽에 맞설 수 있을까? 그의 선택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역사의 궤가 맞물리는 짜릿함과 실존하는 역사적 인물들이 펼치는 박진감 넘치는 서사는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리고 김충선의 신념과 사랑은 끝내 먹먹한 감동으로 흐른다. 이제 조선의 장수, 시대가 낳은 문제적 인간 김충선을 만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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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틈새를 비집는 대중서사의 유연한 상상력
“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게 제 꿈입니다.” 여덟 살짜리 어린 용병이 꿈꾸던 답이 무엇인지, 마침내 그것을 찾았는지는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알 수 없다. 애당초 거대 역사는 답을 향해 가는 인간의 길이 얼마나 지난한가를 기록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소설 『역랑』은, 거슬러 밀려오는 시대의 물결에 온몸으로 맞섰던 사람과 삶의 못다 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실존하는 역사 인물이다. 사성賜姓(임금이 공신에게 내려준 성씨) 김해 김씨의 시조 김충선.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가?’라는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에 대한 오래되고 끈질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정사正史인 『조선왕조실록』부터 확인한다. 실록에 그는 두 번 등장하는데, 「선조실록」에는 사야가沙也加로, 「인조실록」에는 김충선으로 나온다. 사야가와 김충선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영조 시절에야 『승정원일기』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혀지는데, 사후 120년이 지나도록 비밀이었던 까닭은 가족들의 안전 문제 때문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이에 1798년(정조 22년)에 간행된 저서 『모하당집』을 더하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리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수록한 공식 기록은 다음과 같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가토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침입하였다가 경상좌병사 박진에게 귀순하였다. 그 뒤 경주·울산 등지에서 전공을 세워 첨지의 직함을 받았으며, 정유재란 때는 손시로 등 항복한 왜장과 함께 의령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러한 전공을 가상히 여긴 조정으로부터 가선대부를 제수받고, 이어서 도원수 권율, 어사 한준겸 등의 주청으로 성명을 하사받았으며 자헌대부에 승품되었다. (이하 생략) 역사의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사야가의 정체는 항왜降倭다. 항복한 일본인, 좁은 의미에서 임진왜란 때 조선에 투항해 조선군에 협조한 일본군을 가리킨다. 선조는 그에게 ‘충성스럽고 착한忠善’ 인물이라고 이름을 내려 주지만 일본의 평가는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배반자, 배신자, 역적, 매국노. 자신이 속한 나라나 집단을 등지고 남의 나라 혹은 집단에 이바지하는 존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할 때도, 파리에 비시 괴뢰 정권을 세울 때도 전장에는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로 외치며 모국을 공격하는 자들이 있었다. 배반의 이유와 목적은 각각이지만 등 뒤에서 칼을 꽂고 총알을 날린 배반자에 대한 동족의 분노와 증오는 때로 적敵에 대한 그것보다 컸다. 그래서 김충선의 과거와 임진왜란 당시 행적은 일본과 조선 양국에서 불분명하고 확인하기에 쉽지 않다. 『역랑』은 바로 그 지점―공식 기록으로 남지 못한, 남길 수 없었던 충성과 배반의 가파른 틈새를 파고든다. 이미 전작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확인된 주특기로, 작가는 기록된 역사에서 누락된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한 후 대중서사의 과감한 상상력으로 확장시킨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네가 직접 결정해야 해. 너 이외의 다른 사람이 그것을 결정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작중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주인공에게 던지는 말이 곧 배반자인 동시에 충신이었던 모순된 운명에 대한 질문이다. 『역랑』이 그에 답하는 방식은 16세기 일본의 난세를 특별히 긴 명줄로 헤쳐 나온 조선인 고아의 극적인 운명이라는 전형적인 영웅담의 구성이다. 이방인인 주인공의 소외된 삶이 경계를 뛰어넘는 세계적 존재인 사랑을 만나지만, 시련과 고통 속에서 지켜낸 열망이 좌절되면서 마침내 고독한 영웅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박진감과 안정감을 주는 한편 이미 여러 작품에서 변주된 구조이다. 이에 대해 소설 『역랑』이 통속성을 이겨내는 방식은 취재와 묘사의 성실성과 정교함이다. 역사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지켜야 할 기본 중의 기본임에도 흥미에 치우치거나 부주의로 놓치는 경우가 빈번한 부분이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조선의 입장에서 보기에 익숙하지만 전국시대 마감 후 정명가도를 명분으로 내세워 조선으로 물밀었던 일본에 대한 이해도는 낮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광범한 이해와 일본인들이 숭상하는 호걸 3인을 둘러싼 투쟁담, 병법과 전술과 무기의 디테일 등에서 작가가 치열하게 모색하고 오래 공들인 기색이 역력하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의 줄타기는 언제나 아슬아슬하지만 작가는 시종일관 침착함을 놓치지 않고 있다. 오래 묵히고 깊이 생각한 흔적이다. 허구의 비중이 극대화된 가족의 비밀이나 최후의 복수 등에서 짐짓 영화와 게임의 장면이 떠오르지만, 학계의 상반된 의견이나 야사野史 등을 맞놓고 그 사이를 상상력으로 채우는 방식은 유연하고 능란하다 할 만하다. 내가 이 나라에 귀화한 것은 잘되기를 구함도 아니요, 명예를 취함도 아니다. 대개 처음부터 두 가지 계획이 있었으니, 그 하나는 요순 삼대의 유풍을 사모하여 동방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함이요, 또 하나는 자손을 예의의 나라에 남겨서 대대로 예의의 사람을 만들고자 함이라. 실제로 김충선이 『모하당집』의 「녹촌지」에서 밝힌 귀화의 까닭이다. 이것이 정말 어린 용병이 꿈꾸던 답일까? 소설은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다. 『역랑』은 문제적 인간인 김충선과 그를 새롭게 만나는 독자들에게 흥미롭고도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 김별아 (『미실』의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