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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80 평생을 감사하며
제1부 | 소년 및 청년시절 1. 가족ㆍ 12 1) 집안 내력과 가풍ㆍ 12 2) 천성이 의사셨던 아버지ㆍ 15 3) 여장부이신 어머니ㆍ 20 4) 큰형 고창섭과 작은형 고창식 이야기ㆍ 24 5) 그 밖의 가족, 친인척ㆍ 28 2. 소년 시절ㆍ 31 1) 기개의 고장 경남 의령군과 어린 시절ㆍ 31 2) 의령보통학교 역사와 당시 분위기, 항일운동ㆍ 32 3) 경쟁심과 의욕으로 충만한 소년기ㆍ 36 3. 중고등학교 시절ㆍ 38 1) 마산중학교 진학과 천하무적생활ㆍ 38 2) 8·15 해방과 부산 이주 그리고 경남중학교 시절ㆍ 41 3) 축구 그리고 YS와의 인연ㆍ 46 4) ‘중립은가능하다’ㆍ 47 제2부 | 풍운의 청년시대 1. 6·25전쟁ㆍ 52 1) 전쟁 발발과 사람들의 집결지가 된 우리집ㆍ 52 2) 육군헌병학교 입학과 전쟁경험ㆍ 55 3)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울대 의예과 입학ㆍ 58 4) 전시연합대학의 분위기ㆍ 60 2. 젊은 날의 쇼와의대ㆍ 66 1) 일본 밀항과 쇼와의대 입학ㆍ 66 2) 생리학에 눈뜨게 된 쇼와의대 교육ㆍ 68 3) 대학 안팎에서의 일상생활ㆍ 72 3. 첫 번째 암 투병기ㆍ 76 1) 십이지장궤양 오진ㆍ 76 2) 젊은 날의‘자객’인 대장암과 무라카미 교수의 수술ㆍ 78 3) 투병생활과 재기를 위한 몸부림ㆍ 80 4) 일본의사시험에 유일한 외국인으로 합격하다ㆍ 82 5) 암투병을 통해 형성된 나의 철학ㆍ 84 6) 귀국과 미국 유학 포기ㆍ 85 4. 연애, 결혼 그리고 가톨릭 입문ㆍ 88 1) 아내를 만나다ㆍ 88 2) 가톨릭 입문ㆍ 93 제3부 | 한국에서의 수련과 핵의학과의 만남 1. 서울대학교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의 수련의 시절(1959-1963) ㆍ 98 1) 서울대학병원 문을 두드리다ㆍ 98 2) 서울의대 부속병원의 수련의 생활ㆍ 101 3) 영원한 멘토 이문호 선생님, 그리고 핵의학과의 조우ㆍ 107 4) 서울대병원의 방사성동위원소진료실과 나ㆍ 111 5) 국제원자력기구 등을 통한 교육과 융합학문에 대한 관심ㆍ 114 2. 원자력연구소 방사선의학연구소 생활(1964-1969)ㆍ 111 1) 전문의로 방사선의학연구소로 가다ㆍ 121 2) 신나는 핵의학 연구와 임상,그리고 최연소 2급갑 연구원이 되다ㆍ 125 3.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생활(1969-1978)ㆍ 133 1) “꿈이 있으면 일은 이루어진다”: 서울의대교수로부임ㆍ 134 2) 방사성동위원소 진료실장 취임과 활동ㆍ 135 3) 내과 핵의학 발전과‘동원회(同元會)’,그리고 주요 구성원들 ㆍ 140 제4부 | 핵의학을 안정·제도화시키다(1978-1990) 1. 서울대학교병원 생활과 제2진료 부원장(1978-1982)ㆍ 148 1) 핵의학을 위한 열정과 병원 내 활동ㆍ 148 2) 핵의학 독립을 위한 분투ㆍ 153 3) 핵의학과(부) 독립후 활동ㆍ 157 4) 제2진료 부원장 취임과 생활ㆍ 160 2. 다시 암과의 싸움과 승리ㆍ 165 1) 두 번째‘자객’으로 찾아온 십이지장암ㆍ 165 2) 죽을 시간도, 죽을 수도 없는 50대 가장의 암투병ㆍ 171 3) 암으로부터 회복과 암에 대한 나의 철학ㆍ 175 3. 서울대학교병원 제1진료 부원장 시절(1986-1990)ㆍ 179 1) 제1진료 부원장의 취임과 활동ㆍ 179 2) 서울대병원의 주요 직책ㆍ 182 3) 변화하는 서울대학교 병원을 지원하다ㆍ 184 4. 사회봉사ㆍ 187 1) 학제간 연구를 지원하는 학회 대표로ㆍ 187 2)‘ 영광원자력역학조사단’단장을맡다ㆍ 194 제5부 | 사회봉사의 시기(1990-현재) 1. 원자력위원회 위원과 서울의대 교수생활ㆍ 202 1) 원자력위원회(1991-2000) 안전전문위원과 위원ㆍ 203 2) 서울의대 교수생활과‘연건캠퍼스계획위원회’위원장(1995-1997)ㆍ 206 2. 대통령 주치의가 되다(1993. 3-1998. 2)ㆍ 207 1) 김영삼 대통령과의 인연과 주치의 발탁의 감상ㆍ 207 2) 대통령 주치의 생활ㆍ 209 3. 의과학 연구의 지원과 각종 학회 책임자ㆍ 211 1) 의과학 연구 활성화를 위한 지원ㆍ 211 2) 일본 쇼와대학 객원교수와 일본학회와 교류ㆍ 213 3) 각종 학회의 임원으로ㆍ 214 4. 학교 정년과 다시 찾아온 세 번째‘자객’, 간암ㆍ 219 1) 퇴임과 함께 찾아온 간암, 수술로 승부하다ㆍ 221 2)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대통령 주치의 복귀ㆍ 225 3) 삶을 관조하며ㆍ 227 5. 후학 양성과 계속되는 사회봉사ㆍ 230 1) 가천의과대학 초대 학장과 총장ㆍ 230 2) 기타 사회활동ㆍ 234 회고록을 마치며-에필로그ㆍ 238 범산(凡山) 고창순 연보ㆍ 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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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혼자 잘나서 되는 것은 없다. 이제 나는 만 80회의 생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수많은 사연들이 주마등같이 흘러간다. 이것을적어두는 것이 가족이나 직장 선후배들에게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직도 기록을 통한 증언 문화가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정직한 기록을 통해 내 인생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내가 살았던 시대의 분위기를 전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회고록에서 드러나겠지만 아무리 개인이 뛰어나도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만남이 있었다. 내게는 의사인 아버지, 여장부인 어머니 그리고 성장해서는 지금의 아내와 네 자녀라는 축복된 만남이 있었다. 내가 의사로 성장해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학교병원의 관리직, 대통령 주치의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이문호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훌륭한 분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리고 애착을 가져온 핵의학 분야와 갑상선 분야에서 좋은 후배들도 만났다. 그 모든 사람들과의 좋은 만남에 대해 늘 기도하고 있다. 암이라는 시련이 있었다. 나는 막내로 귀하게 자라서 샘도 많고 승부욕도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20대, 50대, 60대 세 번에 걸쳐서 각각 대장암, 십이지장암 그리고 간암에 걸려서 수많은 전략을 가지고 암 투병에 임했다. 그러므로 나의 경험을 읽는 사람들에게 얼마간의 위안과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조금이라도 너그러워지고 부드러워진 것은 바로 내 인생에 닥친 암이라는 재난 덕분이었다.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산다는 마음가짐으로 산다면 누구든 주변에 좀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게 찾아온 암이라는 녀석들은 ‘위장된 축복’이라고 확신한다. 감사하는 마음,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암을 통해 나의 삶을 관조하게 된 것과 더불어 인생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인생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어떻게 대처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인생에 도전하되 조금이라도 여유 있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겪어온 일제 치하 식민지 생활, 6·25전쟁, 전후의 가난, 경제발전 속의 의학계의 도약에서, 또한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 시점에서 생각해야 할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증언으로서 이 글이 의미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