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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간디는 욕망에서 자유로웠을까?
제1장그 순간, 역사가 움직였다 간디의 힘|내게서 시작되는 신앙|소금을 만들러 가자|분쟁을 멈추게 한 단식|물레를 돌려라|종교를 넘어서|간디의 상징성 제2장비폭력과 불복종으로 가는 길 ‘비’와‘불’의 논리|비폭력의 논리|국가란 무엇인가?|의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참된 자치란 무엇인가?|전통이란 무엇인가?|상생하는 공동체를 위하여|사티아그라하, 소금 행진|인종 편견이라는 충격|달팽이처럼 나아가라|독립 기운의 제고|신의 자녀들|홀로 걷기 제3장욕망의 두 얼굴 인간 간디|성욕과의 갈등|성욕을 버릴 수 있는가?|맛에 집착하지 말라|변호사도, 의사도 필요 없다|자유란 무엇인가?|여자가 되고 싶다|간디의 가족은 행복했을까? 제4장나의 삶이 곧 나의 메시지입니다 간디의 가업|공동의 정체성|왜 살생을 해서는 안 되는가?|제각각이면서 함께이고, 함께이면서 제각각인|나의 삶이 곧 나의 메시지입니다|실험은 계속됩니다 제5장간디의‘물음’을 생각하다 단식과 단식 투쟁은 어떻게 다른가?|‘초월적 이념’이 작동하지 않는 일본|간디와‘~이 아니다’|‘비폭력’과‘불살생’의 차이|이론과 현실 사이에 낀 모순|종교가도, 정치가도 아니다 |종교에‘똑같은 정상’은 없다|이론만으로는 안 된다, 행동하라!|휴식을 위한 기술|욕망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성욕은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하기 쉽다|사랑을 몰랐던 간디|관계성의 결여와 아키하바라 사건|이데올로기적 범죄는 때론 멋지다?|‘초월축’이 필요한 시대인가? 후기 연보 |
Takeshi Nakajima,なかじま たけし,中島 岳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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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가 품고 있던 의문 가운데 ‘근대의 속도’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그는 “철도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고, “선한 것은 달팽이처럼 나아가는 것입니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간디는 근대 산업사회에 의문을 표시했고, 전통적인 농촌 사회의 이상적 모습에서 가치를 찾아냈습니다. 그중에서 그가 주목했던 것은 1년에 약 넉 달이나 되는 ‘농한기’입니다. “처마 밑이나 나무 그늘 아래에서 ‘탈카닥 탈카닥’ 물레를 돌리면서 차츰 무심 속으로 빠져듭니다.” 간디는 ‘근대의 속도’에서 떨어져나오는 시간의 흐름을 중시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 속에서 진정한 ‘아힘사(불살생)’이며, ‘샨티(평화)’의 움이 싹튼다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물레를 돌리는 행위는 빈곤에 허덕이는 계층에게는 경제적인 수입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특히 농촌 여성들에게 물레는 매우 중요한 현금 수입을 확보해주는 수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차르카(물레 [돌리기])’라는 존재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운동의 상징인 동시에 수단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간디의 불복종 운동은 때로 ‘패시브 레지스턴스passive resistance’라고 표현되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옮기면 ‘수동적 저항’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간디는 ‘비폭력’을 ‘수동적 저항’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비폭력은 폭력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라고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간디는 비폭력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침묵”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비폭력이라는 행위는, 그리 쉽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소극적인 저항이라고 인식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간디에게 비폭력의 상징인 ‘차르카 돌리기’는 가장 강력하고 적극적인 저항 운동이었습니다. 바로 이 ‘힘의 침묵’이야말로 그에게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였던 것입니다. 간디는 ‘패시브 레지스턴스’라는 용어로 자신의 운동이 ‘소극적 저항’으로 인식되는 것에 반발했지만, 나는 그 운동이 ‘수동’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의미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간디는 “자치는 우리 마음의 지배입니다”라고 역설한 뒤, 여기서 더 나아가 마음속에 있는 근대적 욕망을 억제하지 않으면 참된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금욕’과 ‘자유’가 간디에게는 똑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 산스크리트어로 ‘자유’는 ‘묵티’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해탈’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불교에서는 ‘열반’입니다. 욕망에서 해방됨으로써 인간은 자유자재한 경지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욕망을 100퍼센트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의식주와 같은 생활의 기본적인 요소를 만족시키고 나서도 다시 ‘더 많이, 더 큰 만족’을 원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간디는 바로 이 ‘더’를 부정합니다. 인간은 ‘달마’를 좇아 살아가고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일의 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획득합니다. 그 이상의 물질은 ‘잉여’이고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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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과 불살생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거대한 역사가 된 인류의 위대한 스승
간디 사상의 핵심만을 명쾌하게 풀어서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조망하고 통찰한다! ‘자유’를 방패로 경쟁을 부추기고 ‘욕망’이 이끄는 대로 돌진하여, 영혼의 빈곤과 사회적 빈부의 차가 극에 달한 현재!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인간적 욕망과 고통스럽게 싸운 20세기 인류의 위대한 스승 간디의 삶을 통해 각박한 현대와 지금 우리의 모습을 조명한다. 비폭력과 불살생의 실천으로 영혼의 자유와 평화로운 사회적 삶으로 향하는 구도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세상에 전한 진짜 인간 간디와 만난다. 내 삶이 곧 메시지다 “진리를 찾아가는 자는 티끌보다도 겸손해져야 한다. 세상은 티끌을 그 발밑에 짓밟지만, 진리를 찾는 사람은 티끌에게조차도 짓밟힐 수 있을 만큼 겸손해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진리의 별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욕망과 더불어 인생을 살아간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좋은 옷을 입고 싶다’ ‘멋진 집에서 살고 싶다’ ‘월급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부와 명예를 얻고 싶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다’ 등……. 하지만 이런 욕망을 손에 꼽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당연히 우리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욕망이 존재하며, 또 그런 욕망을 반성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욕망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인간들이여 자신의 욕망과 마주하라. 그리고 반성하고 진리에 따라 행동하라”라는 간디의 외침은 사뭇 절절하고 사무치는 경계의 말로 들린다. 간디 역시 인류의 스승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었으므로 평생을 이 욕망과 싸우며 살았다. 하지만 욕망의 억제의 힘이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르진 않았다. 간디는 이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는 삶이 결국은 인도의 독립과 세계평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 속으로 ‘욕망의 억제’라는 종교적 규범을 들여와서, 종교적 인격의 확립과 인도의 정치적 독립을 결부시켰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간디 스스로가 바로 그 욕망의 억제(비폭력, 불살생)를 통해 각종 사회 분쟁을 해결하고 인도의 독립에 기여했다. 오늘 현대사회에서 간디의 삶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인간의 이성은 만능이요, 어떤 일이든 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대주의의 오만이다. 근대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선한 것은 달팽이처럼 나아가는 것이다.” 《간디의 물음》은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인종차별주의에 고통 받는 인도의 민족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혁명가 간디를 이야기한다. 영혼의 빈곤과 사회적 빈부의 차가 극에 달한 무한경쟁시대, 자유로운 삶과 세계 평화를 위해 마지막까지 스스로와 눈물겹게 싸운 간디의 삶은 이기심이 만연한 현대 우리의 삶에 경종을 울린다. 개인의 욕망을 끝도 없이 추구한 현재 과연 우리의 삶은 행복한가? 우리 세계는 평화로운가?라는 물음을 되묻는다면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의 본질은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복잡해지고, 치열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지금, 우리는 잠시 간디를 통해 마음의 휴식과 함께 삶의 근본을 다시 되새기며 미래까지 지속될 간디의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