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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仁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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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산다는 게 뭔지 알아? 산다는 건 말이야, 폭식증 환자가 되고 싶어도 당장 한 끼 먹을 돈도 없는 사람이 밥을 쳐다보는 눈길 같은 거야. 그게 사는 거고, 그게 슬픔인 거고, 그게 절망이라는 거야. 섹스? 순정? 제발 웃기지 좀 말라고 그래!
--- p.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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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들이 선택하기 전에 그쪽에서 그들을 먼저 선택해 버린, 스무 살의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세계의 유일한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니 모두들, 전장에 나가기 직전의 병사들처럼 그 일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녀의 친구들 중 누구는 한 학기가 지나기도 전에 미팅을 스무 번도 넘게 했고, 누구는 어느새 커플링을 끼고 다녔고, 또 누군가는 어느새 실연의 상처 때문에 자살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 중의 어느 누구도 완전히 채워져 있지는 않았다. 거리에서 흘러 나오는 유행가들만이 그들을 잠깐씩 위로할 뿐이었다. 그들은 스무 살에 이미 유행가 가사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 p.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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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처음부터 내 나이를 알고 있었어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린 전부 서로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고요. 당신은 내 친구가 파리에 몇 년째 유학 중인지도 알고 있었고, 내 나이가 몇 살인지도 알고 있었어요. 분명히 내 입으로 말했었으니까요. 그런데 두 번째 만났을 때, 당신이 다시 물었죠. 몇 살이냐고요. 나는 당신이 첫 번째 만났을 때의 나를 기억하는지, 두 번째 만났을 때의 나를 기억하는지 몰라요. 두 번째 만났을 때에도, 당신하고 난 다시 만날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랬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기연에게 주었지만 그것이 약속의 의미와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일 같은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는 그때 이미 기연의 직장을 알고 있었고,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기연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연 역시 원하기만 한다면 현중을 통해서 얼마든지 승인의 전화번호 정도는 알아낼 수 있는 입장이었다. ---pp.109~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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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처음부터 내 나이를 알고 있었어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린 전부 서로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고요. 당신은 내 친구가 파리에 몇 년째 유학 중인지도 알고 있었고, 내 나이가 몇 살인지도 알고 있었어요. 분명히 내 입으로 말했었으니까요. 그런데 두 번째 만났을 때, 당신이 다시 물었죠. 몇 살이냐고요. 나는 당신이 첫 번째 만났을 때의 나를 기억하는지, 두 번째 만났을 때의 나를 기억하는지 몰라요. 두 번째 만났을 때에도, 당신하고 난 다시 만날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랬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기연에게 주었지만 그것이 약속의 의미와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일 같은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는 그때 이미 기연의 직장을 알고 있었고,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기연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연 역시 원하기만 한다면 현중을 통해서 얼마든지 승인의 전화번호 정도는 알아낼 수 있는 입장이었다. ---pp.109~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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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화려하게 등단한 뒤, 2000년 현대문학상을 받는 등 꾸준한 활동을 펼치며 작가 생활 20년째로 접어드는 여류 작가 김인숙의 새 장편소설 『우연』. 이 소설에서도 작가의 주제 의식인 '현대인의 외롭고 힘든 정체성 찾기'가 표출되어 있다. 하지만 기존의 어느 소설보다도 감히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솔직하고 사실적인 문체와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구성은 특히 젊은 층의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들이며 공감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고 잘 읽힌다. 그것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 속에 엇갈리는 만남, 여자와 남자의 시각 차이에서 발생하는 오해 등이 감성적인 문체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대화 내용과 섹스 장면은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한다. 고독하고 외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각자 섬처럼 부유하는 현대인은 '우연'이라는 연결 고리에 의해 서로의 삶에 점차 뿌리를 내린다. 상처받고 길을 헤매는 자들이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회복하는 김인숙의 사랑 찾기는 궁극적으로 불모의 고독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존재 방식을 내밀하게 응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랑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