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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발
1997년 3월, 북한 함경북도 무산시 무산역 2부 아파트 1997년 6월, 중국 북경 3부 동행 2000년, 인천항에서 국경까지 1997년, 북경에서 국경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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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영과 나영이 방을 나간 후에, 북조선 사람들끼리 모여서 토론했다. 주제는 ‘남조선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명령하듯이 규칙을 세워서 통보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특히 북조선 남자들에게 둘씩 조를 짜서 설거지를 하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집중적인 토론이 이루어졌다. 사회는 김민규가 봤고, 먼저 불만을 토로한 것은 리옥주였다.
왜 북조선 남자더러 설거지를 하라 말라 하는가, 남조선 여자들이 북조선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리옥주는 예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기 남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 남조선 여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입을 뗐다. 나도 반대다. 우리 아들들이 부엌에 들어가서 설거지하는 거 나는 싫다. 이 집에 여자들이 가득한데 왜 내 아들까지 부엌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냐. 여자들이 일을 더 하면 될 것을. 송옥란이 리옥주를 거들었다. 남조선 여자들이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는 없는 거디요. 우리를 업신여기는 게 아니면 뭐겠습니까. 이런 우리의 입장을 남조선 사람들을 불러서 알려줘야지요. 설거지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우리가 알아서 하는 건데 그들이 통제할 수는 없는 겁니다. 곱게 자란 남조선 여자들이 뭘 알겠습니까. 이제 우리 의견이 정해졌으니까 방으로 들어간 남조선 사람들을 불러오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김민규가 정리했다. ---pp.143~145 북한 사람들을 만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나는 북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듯하다.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깨달은 양. (…) 나는 그날 비로소 북한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보이기 시작했다. (…) 이런 구분은 나에게 또 다른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내가 중국에 온 목적은 굶주린 탈북 식량난민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한국을 떠날 때 처음 가졌던 마음은 진심을 다해 그들을 돕고 싶다는 하나의 마음뿐이었다. (…) 그러나 점차 그들을 알아가면서 돕고 싶은 북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선별하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마치 한국 정부가 선별해서 망명 신청을 받아들인 것처럼. ---pp.237~239 나는 그들과 함께 가고 싶지 않았고, 두 사람과 작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의 마음은 이미 그들을 저버렸다. 그러나 그들과 동행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지 않는가. 동행 말이다.---p.281 얼마 못 가 그녀는 착하기만 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남편이 싫어졌다. 조선족에게 시집을 간 언니가 자신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녀도 조선족에게 시집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한족 남편이 국경에서 북조선 여자를 파는 인신매매단에게서 자기를 이천 위엔 주고 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물리고, 이제 와서 조선족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떼를 쓰는 건 힘든 일이었다. 시골에서 이천 위엔은 무척 큰돈이었다. 그 돈을 주고 여자를 데려왔는데, 남편이 자신을 순순히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서 간이 큰 그녀는 제 발로 공안국에 가서 자수를 했다. 그러니 어쩌랴. 공안국에 스스로 들어가버린 아내를 한족 남편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공안에 신고하지 않고 탈북자를 숨겨준 것이 발각되면 중국 사람들도 벌금형 또는 형벌을 받는다. 한족 남편은 공안이 무서워 도망가버린 아내 앞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공안에 들어가서 감옥에 며칠 있었시오. 거기서 저는 남조선 사람처럼 데모를 했댔소. 춘희라는 여자는 감옥에서 잡곡을 섞지 않은 이밥을 달라고 시위했다고 한다. ---pp.288~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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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후 15년, 이제야 빛을 본 ‘남과 북의 동행’, 그 놀라운 이야기!
‘새터민, 꽃제비, 굶주리는 사람들, 투먼 수용소의 수감자들’로만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탈북자들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 그들은 ‘탈북자’라는 인격 없는 구호 대상이 아니라 강만금이었고, 김민규였으며, 리춘희였다! 1997년, 8명의 탈북자들이 북경 외곽의 한 아파트에 모인다. 굶주림으로 두만강을 넘어 중국 땅을 헤매던 이들을 탈북자를 돕는 남한 활동가들이 구조하여 은신처를 제공한 것. 북경 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 신청서를 넣은 이들은 한국으로 갈 날만 기다리며 은신생활을 하고 있다. 탈북자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였던 먹는 것이 일단 해결되고 불안하나마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는 지금, 그러나 이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 사람 두 명만 사는 것으로 위장된 아파트. 바깥출입은 고사하고 말소리도 발소리도 더운 여름에 커튼도 열 수 없는 숨 막히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점차 예민해지고, 남한 사람들에게 당장 생사를 의지하면서도 이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팔아먹기 위해 자신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과 경계심이 팽팽해진다…… 한국으로의 망명 신청은 거부되고, 이제 이들은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제3국으로 밀입국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 1997년, 13명의 탈북자들이 망명 신청이 불허되자 남한 사람들과 함께 장장 7천 킬로미터의 대장정 끝에 제3국으로 넘어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기념비적이면서도 충격적인 ‘남과 북의 동행’에 관한 아주 특별한 보고서. 탈북자, 굶주리는 사람들? 중국의 탈북자 북송 문제로 요즘 다시 탈북자 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인 탈북자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 나왔다. 탈북자, 즉 ‘북한을 이탈한 주민’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온 ‘귀순자’로 대대적으로 환영받던 시절부터, 북한의 대기근 이후 단지 배가 고파서 국경을 넘는 이들의 존재가 우리 사회의 불편한 모습이 된 지금까지, 탈북자의 존재는 분단국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늘 원죄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아무리 이들의 존재를 모른 척해도, 때만 되면 나타나는 이들에 대한 뉴스와 이들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늘 우리에게 이들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그래서, 탈북자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새터민, 꽃제비, 굶주리는 사람들, 브로커에게 돈 뜯기고 인신매매까지 당하는 처참한 사람들, 또는 투먼 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여 우리를 정의롭게 분노케 하는 사람들? 이것이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탈북자에 대한 관념의 전부일 것이다. 이 작품 《오래된 약속》은 탈북자에 대한 이러한 일면적인 인식을 뒤엎는다. 이 작품 속의 탈북자들은 뉴스 보도처럼 무구한 동정심을 끌어내지도 않고, 대북정책을 두고 서로 대립하는 두 정치적 진영이 만들어낸 담론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이 작품 속의 탈북자들은 우리와 너무도 똑같은 인간이기에 오히려 그 모습이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역설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경험하게 될 것이다. 1997년, 탈북자 집단 망명 신청 사건 이 소설은 1997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1997년, 탈북자 13명이 북경 주재 한국 대사관에 집단으로 망명 신청을 했으나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은 한국 사회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이는 그 전까지 ‘귀순자’들을 소리 높여 환영하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더구나 바로 직전만 해도 황장엽 씨 망명 사건이 있었다). 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정치적 목적과는 상관없이 그저 배가 고파서 국경을 넘은 이들은, ‘제3국을 통하면 받아주겠다’는 한국 정부의 언질을 받고 정말로 제3국으로 밀입국하여 그곳 한국대사관에 들어가 망명 신청을 했다(이때부터 탈북자들이 제3국을 거쳐 망명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13명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 알려진 것은 이들이 한국대사관을 나와 제3국 국경에서 실종된 후였다. 한국 언론은 이들의 실종을 크게 보도하면서 한국 정부의 비인도적 처사를 비판했다. 이들은 북한 식량난민으로서는 처음으로 망명 신청을 한 사람들이었고, 또한 한국 사회에 북한의 대기근을 알린 최초의 사람들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의 대기근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들의 증언으로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국내에서는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돕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들은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불린, 강만금이었으며 김민규였고 송옥란이었다 이 소설은 바로 이 13명과, 당시 이들과 함께 제3국으로 가는 7천 킬로미터쟀 여정을 함께 했던 남한 사람들 세 명의 ‘동행’ 이야기이다. 강만금은 북한에서 남부러울 것 없던 당당한 노동자였으나, 대기근으로 가족과 집을 모두 잃고 무산역을 떠돌며 꽃제비를 하다가 인신매매되어 두만강을 건넜다. 강만금의 이러한 스토리는 전체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의 1부를 이룬다. 따라서 독자들은 1부에서 성실하고 활기찼던 한 평범한 여성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는가, 주변 사람들의 이기심과 몰인정한 태도가 어떻게 만금을 그 지경까지 몰고 가는가, 개인을 보호해주는 국가 시스템이 철저히 무너져 내렸을 때 생존을 위한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그악스러워지며, 또 그 그악스러움이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희생시키는가 하는 참혹함의 연쇄고리를 보게 된다. 결국 만금은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로 두만강을 넘고 남한 사람들에게 운 좋게 구조되지만, 그들이 왜 자기를 도와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신들이 왜 우리를 도와준다는 겁메까?” 하고 영문을 모르는 만금의 질문으로 1부는 끝난다. 2부부터는 작품의 결이 확 바뀐다. 사실 1부는 만금의 고통과 슬픔에 초점이 맞춰져 독자들이 만금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함께 고통을 느끼게 되는 전통적인 감정이입 방식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단편소설로 읽힌다. 하지만 2부와 3부는 탈북자 13명과 남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한 사람의 감정선을 쭉 따라가기보다는 은신하고 도망다니는 사람들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관찰자 시점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관찰자는 2부에서는 만금이며, 3부에서는 탈북자들과 제3국까지 동행할 임무를 띠고 중국에 온 남한 사람이자 작가 자신인 ‘김아영’이다. 탈북자 13명 중 8명이 북경 외곽의 한 아파트에 모인다. 배고픔으로 인한 각자 사연을 가지고 두만강을 넘어 중국 땅을 헤매던 이들이 탈북자를 돕는 남한 활동가들에 의해 하나하나 구조된 것. 13명 중 5명은 북경의 민가에 흩어져 있고, 이 아파트에는 8명이 숨어 산다. 한국 사람 단 둘만 사는 것으로 위장된 아파트. 바깥출입은 고사하고 말소리도, 발소리도, 더운 여름에 커튼도 열 수 없는 숨막히는 상황에서 일단 먹는 것이 해결된 탈북자들이 펼치는 드라마가 2부의 내용이다. 북한에서 보위부였으며 자신이 국군포로의 아들이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이 자기의 이용가치를 보고 당신들을 모두 보호해주고 남한으로 데려가는 거라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김민규와 그의 아내 리옥주, 김민규를 보스 따르듯 따르는 강호와 철이, 그리고 말끝마다 ‘민규는 참 똑똑한 사람’이라며 추켜세우는 강호 엄마 송옥란, 그리고 어딘가 모자라 보여 늘 제 엄마의 구박을 듣는 송옥란의 큰아들이자 강호의 형 강민, 김민규와 척을 져 만금을 제외한 6명의 ‘공공의 적’이 된 조학수, 그리고 강만금이 이 드라마의 주역들이다. 그리고 이 아파트에는 이들을 보호하는 두 명의 남한 사람 가영과 나영이 있다. 숨소리도 죽여야 할 은신생활이지만, 이 아파트에는 바람 잘 날 없다. 남한 사람들의 선의를 조금도 믿지 못하고 뭔가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있으므로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늘 사람들을 채근하는 김민규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모이고, 가영 나영과 한 방을 쓰는 데다가 천성이 개방적이고 따뜻하여 그들과 쉽게 친해진 강만금은 ‘자본주의에 물들었다’며 그들의 인신공격을 받는다. ‘내래 그동안 조선에서 김정일이 노예로 한 게 원통해야!’ 하고 대놓고 큰 소리 치는 조학수는 김민규와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인다. 처음 아파트에 모여 살림살이가 시작됐을 때, 이들을 인솔하는 입장에 있는 가영이 회의 시간에 ‘이제부터 밥은 여자들이 돌아가면서 하고 설거지는 남자들이 조를 짜서 하자’고 말하고 나가자, 남조선 여자들이 왜 북조선 남자들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 하고 설왕설래가 시작되고 결국 그것이 치고받는 싸움으로 이어진다. 임신한 리옥주는 중절수술을 해달라며 칼을 들고 시위를 하고, 하루 종일 전쟁 그림만 그리는 강민이는 나영에게 ‘북침이 맞고 남침이 틀리다’며 살벌하게 따지고 든다. 기다렸던 한국으로의 망명 신청이 거부되고, 이들은 이제 다음 선택을 한다. 제3국으로 넘어가서 망명 신청을 하는 것. 그리고 이들의 제3국행을 도우러 남한에서 스물네 살의 김아영이 온다. 그리고 3부가 시작된다. 김아영은 작가 윤정은의 과거다. 작가는 소설 속의 김아영처럼,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네 살이었던 1997년, 탈북난민들에 관한 비밀 보고서를 접하고 북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떠 주저 없이 중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이제 김아영이 보고 듣는 것, 김아영의 분노와 회의적 시선, 깨침은 모두 스물네 살의 윤정은의 것이다. 그리고 이 책 전반을 아우르는 질문과 성찰은 그 후로부터 15년 동안 이 이야기를 안고 살아온 작가 윤정은의 것이다. 북한 사람을 만나고 싶고 무조건 그들을 돕고 싶다는 소박한 열정 하나만 갖고 중국에 온 욾영은, 그들의 태도에 하루가 다르게 실망감을 쌓아간다. 아영이 보기에, 이들은 남한 사람에게 생사를 의지하고 있으면서도 남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언론에 팔아먹는다는 모함을 하고, 숨어 사는 처지에 패거리로 무리짓고 자기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왕따나 시키는 뻔뻔하고 상식 이하의 사람들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영은 자신이 ‘같이 있고 싶은 북한 사람’과 ‘같이 있기 싫은 북한 사람’을 구별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북한 사람들을 만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나는 북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듯하다.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깨달은 양. (…) 나는 그날 비로소 북한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보이기 시작했다. (…) 이런 구분은 나에게 또 다른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내가 중국에 온 목적은 굶주린 탈북 식량난민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한국을 떠날 때 처음 가졌던 마음은 진심을 다해 그들을 돕고 싶다는 하나의 마음뿐이었다. (…) 그러나 점차 그들을 알아가면서 돕고 싶은 북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선별하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마치 한국 정부가 선별해서 망명 신청을 받아들인 것처럼. (본문 237~239p) 북한 사람 하면 막연하게 동포라거나 ‘김일성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사람들이라는 인식밖에 갖고 있지 못하던 아영은 이제 이들이 입체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로 보이면서 호불호가 생기고 ‘불쌍한 사람들이므로 무조건 도와주고 싶다’던 생각이 얼마나 천진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루트가 정해지고, 가영과 아영의 인솔하에(나영은 제3국 쪽에서 지원하기 위해 일단 귀국했다) 13명 전원은 중국 대륙을 남쪽으로 가로지르는 장장 7천 킬로미터의 여정에 오른다. 하지만 여행은 피곤했다. 열 살 미만의 아이 둘과 임신부까지 딸린 대가족이 몰래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파트에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이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들은 언제 공안에게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질투심에 상대에게 악담을 퍼붓고 루트나 기타 정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걸핏하면 자기들끼리 회의한다고 여관방 문을 걸어 잠갔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조금씩 나눠준 비상금으로 남자들끼리 담배 사다 피우고 술 사 먹고 하는 것도 아영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저 인간들이 정신이 있는 건가… 아영은 아예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러다 상해로 가는 기차간에서 조학수가 중국 여자를 성추행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아영의 회의는 극에 달한다. 나는 그들과 함께 가고 싶지 않았고, 두 사람과 작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의 마음은 이미 그들을 저버렸다. 그러나 그들과 동행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지 않는가. 동행 말이다.(본문 281p) 마침내 상해역 광장에서 ‘동행’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김민규가 임신한 아내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하는 데다가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며 상해에 왔으니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한 것이다. 몇 번 말이 오간 끝에 아영은 ‘두 분이서 생일잔치하러 가시라’며 폭발하고, 김민규는 ‘북한대사관에 가서 다 고발하겠다’며 폭탄선언을 한다. 사람들이 경악하는 와중에 뱃심이 있는 가영이 나서서 사태는 간신히 무마되지만, 이때의 상처는 아영에게 크게 남는다. 13명은 무사히 제3국 국경을 넘고, 이제 대단원의 막은 내린다. 그리고 아영은, 아니 윤정은은 15년 동안 그때의 상처를 보듬다가 이제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북한 사람과 친근하게 손을 잡고 소풍을 가는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남한 사람의 시선으로 그리다보니 불가피하게 북한 사람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지만, 북한 사람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아영은 진저리를 쳤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1부에서의 만금처럼 자신이 제어하지 못하는 불행의 힘에 떠밀려 중국 땅까지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적이라고 배운 남한 사람들에게 당장 급한 대로 생사를 맡기기는 하지만 어떤 시스템에 의해 자신들이 구조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적’을 경계하며 자신이 상황을 다스릴 힘이 있다고 스스로 믿고 그 힘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일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탈북자(북한 사람)들은 이처럼 각자 입장에서 이해할 만하고 여러 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인간적인 약점은 비난보다는 차라리 공감을 일으킨다. 북한 사람들에게는 북에서 보위부였음을, 그리고 남한 사람들에게는 국군포로의 아들임을 내세우는 김민규를 우리는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국경을 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차간에서 중국 여자의 몸을 더듬던 조학수를 우리는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인물들은 문학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이 작품에서 탈북?들의 이런 모습에 충격을 받는지? 혹시 우리는 탈북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고 북한과의 화해, 통일, 평화를 늘 말하지만, 새터민의 생활에는 무관심하고 북한 사람을 한 번도 구체적 일상의 수준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새터민의 삶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기에 영화 「무산일기」도 그토록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만금이(만금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이) 이웃들에게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스스럼없이 밝히면 그들은 놀라 슬금슬금 달아나는 게 아닌지?(「작가의 말」) 도대체 우리에게 북한 사람이란 무엇이기에, 우리는 그들이 곁에 오면 도망가는 것일까? 순수하게 북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했던 아영의 마음이 회의를 겪은 이후, 1부 끝에서 만금이 한 질문, ‘당신들이 왜 우리를 도와주는가’는 지난 15년 동안 내내 작가에게 화두였다.(「작가의 말」) 그간 대북지원에 관한 정치적 공방이 어지러이 오고 갔지만, 그래도 작가는 돕는다는 것은 그저 인간의 길임을 재확인한다. 그렇게 물었던 만금도 남한 사람들과 친해진 후 더 이상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경계심을 가지면 돕는 이유도 묻고 돕는 대가도 바라지만, 경계심을 풀면 도와주고 도움받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남과 북의 동행에 관한 책이다. 15년 전, 남과 북 사이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멀고 위험한 길을 동행했던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이 체제와 이념을 매개하지 않고 맨몸으로 만나서 서로를 경계하고 당혹스러워하고 서로에게 상처받았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책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질 남과 북의 동행을 위한 아주 특별한 필독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