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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를 낳았을까 아이를 낳고서야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모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당신은 편하잖아.” 남편은 어느새 타자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를 낳았을까 육아에는 모든 문제가 겹쳐 있다 2부 독박육아, 아웃! 엄마를 착취하는 독박육아 또 다른 엄마를 착취해야 살 수 있는 엄마 ― 58년생 개띠 엄마의 고난과 독립하지 못하는 82년생 딸의 슬픔 독박육아에서 공동육아, 평등육아로 집안일 지능 기르기 남편과 아이들이 추억 만들 시간을 빼앗지 말아달라 100조 원을 쏟아부어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 3부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워킹맘입니다 육아는 노는 일이 아니다 ― 아이를 키우는데 ‘집에서 논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엄마들의 죄책감을 부추기나 ‘남의 편’을 바꿀 수 있을까 왜 여자들이 절반을 차지해야 하는가 워킹맘, 전업맘, 경단녀는 같은 이름이다 4부 아이는 자라서 사회가 된다 아들을 잘 키워야 세상이 변한다 유치원 운영위원을 하는 이유: 모든 게 정치니까 아이라는 우주가 찾아왔을 때… 사랑받는 건 오히려 나였다 아이들을 만나게 해준 신에게 감사하다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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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인지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을 상상해보지 못했다.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해야 한다고 남자친구였던 남편을 닦달했을 정도로. 나는 내가 결혼 제도에 들어가지 않고 아이를 낳을 만한 배짱은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게 가부장제를 정면으로 배반할 용기가 없다는 뜻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렇게 서른 살에 임신하고 서른한 살에 아이를 낳았다.
--- p. 16 나만, 내 세대의 엄마들만 힘든 게 아니었다. 모든 엄마들이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데 왜 다들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아이를 낳고 나서 그 부분이 제일 이해가 안 됐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일을 다들 공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왔다는 사실이. 엄마가 나를 낳은 지 3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의 고통을 먹고 자란다. 자라면서 육아가 어떤 일인지 들은 적이 없었다. 여성이 주로 해왔던 이 사적인 일에 대해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엄마는 “이제 다 까먹은 줄 알았는데 네가 두진이를 키우는 걸 보니 내가 널 키울 때 얼마나 자고 싶어 했는지 생각나더라”라고 하셨다. 지나고 나면 흐려지는 세상만사처럼 육아의 괴로움도 잊게 될 거라 생각하면 그만일까. --- p. 40 무엇보다 가부장제는 ‘내 몸’이 알고 있었다. 결혼 초 시가에 가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편하게 있으라’는 시부모님의 말에도 언제 설거지를 해야 하나, 과일을 깎아야 하나 앉았다 일어났다의 반복이었다. 시가에 가면 ‘앉았다 일어났다 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하더니. 내 이성은 친정에 간 남편에게 나와 똑같이 밥상 차리는 일을 돕고 설거지를 하라고 말했지만, 시가에서는 평소의 그런 나와는 다른 내가 툭 튀어나왔다. 그렇게 다른 나를 발견하고서야 알았다. 내 의식은 가부장적 세계의 부정을 주장했지만 내 몸에는 그 질서가 깊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몸속 깊이 체화돼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pp. 56~57 “내가 왜 당신이 맥주 한잔하는 시간 때문에 책 읽는 시간을 빼앗겨야 해? 내가 책 읽는 건 일이고 당신이 맥주 한잔하는 건 일이 아니야. 회식은 일이 아니라고. 그러면서 남자들은 말할 거잖아. 역시 애 낳은 여자들은 일을 대충 한다고. 내가 책도 다 못 읽고 기사를 쓰면 그렇게 말할 거잖아. 같이 아이를 낳았는데 왜 나만 일을 대충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해!” 남편이 아이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불만이었다. 같은 회사니까 알리고 싶었다. 남편이 쓸데없이 늦게 들어오면 내가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회사에 남자 직원들을 오래 붙잡아두면 붙잡아둘수록 집에 있는 여자들은 회사에서 2등 사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신들이 여자 직원들에게 일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서 “애 낳은 여자들은 일을 대충 해” “일 잘하던 여기자들도 애 낳으면 별 볼 일 없어져” 같은 말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알리고 싶었다. --- p. 62 이 사실 또한 아이를 낳고서야 절절히 느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산후조리부터 아이를 키우는 것까지 친정엄마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소망처럼 ‘일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노동력에 의지해, 아니 노동력을 착취해가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온전히 나의 ‘최선’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주 좌절했다.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로 나를 키운 엄마의 꿈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언론에서 ‘알파걸의 실패’와 같은 기사를 쏟아낼 때면 동의하면서도 씁쓸했다. 가부장적 문화가 공고한 사회에서 나는 영락없이 ‘실패한 알파걸’이었다. 나와 남편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날 부모가 됐지만 절대 같을 수 없었다. 난 궁지에 몰리면 “알파걸 같은 소리 집어치워”라며 화내는 서른일곱 살이 되었다. --- p. 112 두진이의 유치원 친구 엄마 중에는 출산 전에 했던 일을 놓지 않으려고 오전에 열심히 한복 디자인을 해서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엄마가 있다. 그가 블로그에 올려둔 한복 디자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진만 보고도 반할 정도다. 그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디자인하고 바느질하는지 설명하는 표정을 보고는 두 번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후 1시 30분에 아이 둘을 데리러 온다는 이유로 그를 ‘전업맘’이라 생각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말하는 그의 표정은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에 있는 나와 똑같다. ‘전업맘’ ‘워킹맘’ ‘경단녀’… 우리는 그렇게 손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 p. 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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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서야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1982년생인 임아영은 어려서부터 ‘남자처럼 잘할 수 있다’ ‘여자도 남자처럼 공부하고 일할 수 있다’고 배웠다. 그는 그것이 우리 사회가 진보한 결과이리라 믿었다. 여성이 밖으로 나간 만큼 남성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임아영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여성으로 산다는 게 정확히 어떤 부당함과 모순을 마주하는 일인지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며 100여 곳에 서류를 넣을 때도 ‘회사는 여자를 싫어하는구나’ 하고 막연히 느낄 뿐이었다. 그 막연함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구체화된 곤란과 괴로움으로 체감되기 시작한다. 임신한 몸은 참기 힘들 만큼의 졸음과 잦은 배뇨욕 등의 증상을 나타내고 몸은 점점 더 무거워져 새우 자세를 취해야 겨우 잠들 수 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임신한 티 낸다’는 말을 들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임신한 여직원’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그러다 결국 하혈을 하고, 그 뒤로는 혹시라도 아이가 잘못될까 스스로 움츠러들기 시작한다. 회사에서는 ‘2등 사원’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임신 중에도 이전과 똑같이, 아니 오히려 무리를 해서라도 더 일하려 애쓰지만, 만약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모든 게 ‘욕심 많은 워킹맘’인 자신의 탓이 되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막연한 분노가 쌓여간다. 내 몸이 여성의 몸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낳기까지 동반되는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온전히 홀로 감내하지만 사회는 아이를 가진 여성의 몸에 ‘희생하는 모성’ 외의 의미를 부여한 적이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더해졌을 때, 임아영은 이 사회가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 적이 없었음을, 그러한 사회에서 자신도 늘 ‘남자’라는 기준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배반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임아영의 고백에는 ‘그래도 세상이 달라졌다’고 믿었던 낙관이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며 비관으로 변하고야 마는 많은 여성들의 현실이 담겨 있다. 남편이 아니라 친정엄마와 아이를 기른다 - 또 다른 엄마를 착취해야 살 수 있는 엄마 ‘난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를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자식에게 모든 걸 내어주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내 이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똑같다. 내 인생을 자식에게 전부 줘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서도 내 일상은 엄마의 인생을 착취해야만 굴러간다. 그게 내 딜레마이고 죄책감이다. 나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오롯한 개인으로 일하는 삶을 유지하고 싶지만 그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평생 나와 동생을 위해 자신의 온 시간을 나눠 준 엄마를 착취해야 한다. _또 다른 엄마를 착취해야 살 수 있는 엄마, 113~114쪽 ‘애 보느니 파밭 매겠다’는 옛말이 있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이 워낙 체력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체력전에 지금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투입되고 있다. ‘할마’ ‘할빠’란 신조어의 탄생은 맞벌이하는 자녀 대신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가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임아영 또한 자신의 일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정엄마의 손을 빌린다. 아이를 누가 봐주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친정엄마요”라고 대답할 때마다 이제 60대에 접어든 엄마의 성하지 않은 무릎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끼지만, ‘워킹맘’들 사이에서 ‘친정엄마가 백업해주는 엄마’는 부러움을 산다. 독박육아가 초래하는 이토록 모순적인 상황에서 남성들은 여전히 육아의 구경꾼으로 자리한다. 육아를 여성의 일로 여기는 구시대적인 관념도 없지야 않겠지만 임아영이 생각하는 보다 실제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회사에 너무 오래 있기 때문이다. 가사와 육아를 여성의 일로 떠넘기고 OECD 회원국 중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아이는 엄마, 아빠가 아니라 엄마와 할머니, 또는 보육교사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다. ‘일-가정 양립’을 향한 의문 가정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요? 저출산은 장기적 문제로 접어들었다. 웬만한 정책으로는 출산율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임아영은 저출산의 원인에 노동, 주거, 보육, 교육, 인권까지 우리 삶의 전반적인 문제가 엮여 있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비혼과 비출산은 더 이상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파격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문제로 인한 인과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임아영 또한 결혼,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를 경험하며 ‘사회적 해법’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개인이 치열하게 적응해 살아남을 게 아니라, 힘들고 더디더라도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과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임아영이 생각하는 해법은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부모가 아이를 돌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가사와 돌봄이 여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남성들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독박육아, 여성의 경력단절, 저출산 그 어느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생각이다. 그러므로 그는 일상의 정치에 참여한다. 아이의 유치원 운영위원회부터 ‘엄마 정치’를 내세운 비영리 단체 ‘정치하는엄마들’까지. 일과 아이 사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갈등하고 노심초사하는 엄마들, 가사와 육아의 전문성을 더 많이 요구받으면서도 ‘논다’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엄마들, 독박육아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기어이 일을 포기한 엄마들… 임아영은 그들 모두에게서 자신을 발견해내며 그 어느 순간에도 절대 놓지 않았던 무기인 펜으로 엄마이자 기자인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아이는 자라서 사회가 된다 - 우리 모두의 아이를 기르는 일 임아영은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 ‘다음 세대’가 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 육아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무한 경쟁의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든 아이를 생존시키려는 부모들의 몸부림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임아영의 불안은 ‘아이가 경쟁에서 지면 어쩌나’ 하는 쪽보다 ‘아이가 좋은 시민으로 자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쪽에 더 가깝다. 아이를 낳고서 마주한 현실에 분노하며 자신이 겪은 부당함과 모순의 구조적 원인을 파헤칠 때는 한없이 날카롭기만 했던 그의 펜이, 두 아들과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는 부드러운 색색의 연필로 바뀌기도 한다. “엄마 주머니에 하트가 있어.” 대뜸 그런 말을 하기에 “응?” 하고 주머니를 살폈더니 그 작은 엄지와 검지로 내 주머니 속에서 하트를 만들고 있었다. 아, 남편보다 로맨틱한 아들. _아이라는 우주가 찾아왔을 때… 사랑받는 건 오히려 나였다, 301쪽 두 아들의 엄마로서 좀 더 예민하게 고민하는 지점들도 있다. 그는 아이가 저지르거나 당하는 작은 폭력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릴 때부터 ‘집안일 지능’을 길러주려 하고, 남자도 치마를 입을 수 있다고, 또 울고 싶을 때 우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아이가 크고 작은 권력을 무기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사람으로, 성별에 따라 고정된 삶을 살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건 이 아이가 자라 다음 세대의 사회를 이루는 한 명의 ‘시민’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초점이 ‘나’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첫 번째 경험. 아이는 우주였다. 아이를 낳는 건 내가 돌봐주고 보살펴야 하는 작은 존재가 생기는 게 아니라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우주가 찾아오는 일이었다. _아이라는 우주가 찾아왔을 때… 사랑받는 건 오히려 나였다, 297쪽 하나의 우주가 찾아오는 삶의 거대한 전환을 경험하는 일, 육아. 임아영은 그 전환이 결코 ‘부모’ 개인에게만 한정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아이를 낳고서야 깨달은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그 분노를 동력으로 삼아 지금의 사회를 사는 한 시민으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임아영 자신으로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유다. ‘속았다’고, ‘내가 순진했다’고 과거의 자신을 탓하는 엄마들의 하소연에 담긴 진실을, 이제 우리는 좀 더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