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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01 지금의 우리 02 씨앗 이야기 03 흙에 대해 배우며 04 흙을 지키는 것이 농사 05 마늘싹이 나왔습니다 06 잡초와 자생초 07 넘어진 토마토 08 농업을 이해하는 다양한 시선 09 커밍아웃을 하다 10 기적의 사과 11 자연을 따르는 농사 태평농 1 12 자연을 따르는 농사 태평농 2 13 농부 철학자 14 실천이 필요할 때 15 나는 농부입니다 16 모두를 위한“ 적정기술” 17 착한 소비“ 로컬 푸드” 18 도시 농부를 기다리며 닫는 글 모두모두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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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전까지 우리나라에는 우량 종묘회사가 4개 정도 있었습니다. 적어도 흙에 뿌릴 씨앗만큼은 우리 스스로 해결하고도 남아 해외에 수출할 정도로 튼튼한 기반의 종묘회사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IMF 위기를 기해 해외의 다국적 종묘회사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IMF의 뼈아픈 상처들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입니다.
농우 바이오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을 빼고는 국내 종묘회사의 리더그룹 모두가 외국의 다국적 종묘회사에게 인수-합병 되었습니다. 소규모의 종묘회사들이 이어져 오거나 새로 생겨나기도 했지만 시장점유율이나 소비되는 양에 있어서 다국적기업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국내 종묘시장의 패권은 완벽하게 외국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지요. ---p.17-18 이런 다국적 종묘회사들에게는 이루고 싶은 ‘커다란 목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의 모든 농부들이 자신들의 씨앗을 구입해야만 농사를 지울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헌데…… 농사를 지은 농부는 어김없이 수확과 동시에 씨앗을 갈무리합니다. 농부들이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종묘회사들의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종묘회사들의 간계가 바로 우리 농업이 직면한 두 번째 문제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씨앗을 만들어낼 수 없는 씨앗, 그러니까 ‘불임성 씨앗’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씨앗을 심어 열매를 맺어도 제대로 된 씨앗을 얻을 수 없는, 정확히 말하자면 씨앗이 맺히긴 하는데 그 씨앗을 거둬다 다음해에 심어보면 다시 그 열매가 풍성히 맺힌다고 보장할 수 없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씨앗’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p.20 지난해 봄농사를 시작으로 생전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봄채소가 무엇인지 알아본 다음에 그것들의 씨앗을 구하는 것으로 제 농사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종묘상에서 매년 씨앗을 구입하는 방법보다는, 내 손으로 종자 받아 이듬해, 그 이듬해에도 내 씨앗으 로 농사짓고 싶었습니다. 귀농하기 전, 앞으로 농사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무렵 저 는 당연히 씨앗을 심어 열매를 얻은 뒤 열매에서 씨앗 거둬다 이듬 해 농사 때 파종하는 그런 농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어려운 일임은 귀농준비하며 책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직 실감하지 못해 반신반의했던 정도 였습니다. ‘수박에서 수박씨 얻어 다시 키우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pp.22-23 이렇게 마음먹고 주변의 재래시장을 다니며 토종 종자를 구하는 것으로 생의 첫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토종종자는 유전자가 고정되어 있는, 다시 말해 ‘○ 심으면 ○ 나는’ 그 당연한 이치가 통하는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별다른 설명 필요 없이 지금껏 이어져온 종자들이 그 존재 자체로 입증해 줍니다. 먼저 종묘상에 들렀습니다. “병충해에 강하고 고수확을 보장하는 F1 종자가 좋습니다!” “정말 병충해에 강한가요? 씨앗 채종도 가능한가요” “같은 양의 약을 써도 개량종자가 약발이 더 잘 서지요. 채종은 그닥 권장하지 않습니다.” 설마 했지만 역시나였습니다. 눈을 돌려 길바닥에 앉아 고무대야와 비닐봉지에 손수 농사지은 것들 담아 팔고 계신 주름 가득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여쭤보기 시작했습니다. ---pp.2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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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치우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11년 1월 중순 경이었다. 딴지일보에서 인기리에 이어져오던 ‘젊은 농부의 농사이야기’의 연재가 어느 정도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었다.
부여의 한 농촌에 자리한 젊은 농부의 집 창밖으로는 눈이 너무도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정돈된 거실에 아내와 나란히 앉아 있던 그의 첫 인상은? 젊었다. 그리고 농부였다! 사실 딴지일보에서의 그의 연재는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사로잡힌 시점은 분명히 다르게 기억한다. 젊은 농부의 농사이야기 192쪽과 193쪽에 실려 있는 그 글귀를 읽었던 바로 그 순간이었으며, 딴지일보의 연재로는 제8편에 해당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개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직 그 개인 자신뿐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규율이나 동기유발, 정책이나 장치가 아닌 마음에서 시작되는 변화. 그것이 아니면 인간은 진심으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변화하지 않으면 집단 역시 절대로 변화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규율과 캐치프레이즈에 동조하는 듯 발맞춰 걸어가는 ‘한 무더기의 무리’만이 있을 뿐이겠지요. 농촌 문제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과 토론은 농촌과 농업에 대한 진심 어린 이해와 사랑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젊은 농부의 아내가 내온 차를 채 절반도 마시기 전에, 글로 읽었던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전해져 왔다. 그는 ‘농업’에 매겨진 사회적인 가치를 다른 시각으로 보려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마주보고 앉아 있던 나부터 ‘귀농이 미래다’가 아니라 ‘농업이 미래다’라는 걸 당장 인정하게 됐다. 그런 기척을 느껴서였을까, 젊은 농부가 물어왔다. “어떤 책을 내고 싶으세요?” 사실 도서출판 치우는 애초에 오늘날 귀농은 누구나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도전의 세계, 그리고 자연과 함께 꿈꾸는 미래지향의 세계라는 점을 일깨우자는 취지의 도서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의를 거듭할수록 “그래, 이렇게 하자”보다 “이렇게는 하지 말자”만 분명해질 뿐이었다. 특정한 농업 방식으로 일군 성공의 크기를 자극적으로 던져놓고 그 노하우 대해서 설명하거나 그 노하우를 얻기까지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건, 솔직히 아니었다. ‘농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부가 아니라 바꿀 수 있는 마음’을 갈망했다. 그래서 물거품처럼 사라져가던 기획이었고, 젊은 농부로 인해 극적으로 되살아난 기획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그대로 털어놓았다. “소중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젊은 농부의 짤막한 대답이었다. 서로의 뜻이 마주 잡히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뒤, 세상에 태어난 이 책은 그야말로 풋내기 젊은 농부가 들려주는 ‘농사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하지만 딴지일보 편집장 김용석님이 보내 온 헌사처럼 “한 젊은이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기 가족을,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을 가장 적절하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실험해본 모험적 연애담”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을 이보다 더 매력적으로 표현하기란 당장 올 해 추석까지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을 백퍼센트로 끌어올리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도서출판 치우의 편집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로 맨 마지막에 실린 「모두모두 자란다」편을 꼽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사실 다국적 종묘회사들의 음모를 목도하게 되는 「지금의 우리」편과 「씨앗이야기」편도 그 흥미진진함에 있어 하이라이트로서 손색없으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흙의 냄새가 그리워져 가는 「흙에 대해 배우며」편과 「흙을 지키는 것이 농사」편 역시 그렇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풋내기 농부의 어설픔에 실소가 터지는 가운데 잔잔한 자기 성찰이 전해져 오는 「마늘싹이 나왔습니다」편이나 「넘어진 토마토」편을 뽑지 못하는 건 정말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게 되는 대다수의 사람은 편집부의 선택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설령 동의하지 않아도 좋다. 출간을 목전에 둔 이 순간에도‘모두모두 자란다’편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출판사의 편집자가 아니라 그의 가장 열렬한 애독자로서 그를 응원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자신의 밭에서 작은 정성과 실천의 걸음들로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가고 있는 그를 열렬히 지지한다. 그가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