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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여
아버지와 흙으로부터 배운 이야기
장인수 저
삼인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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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01 들판은 울음곳간, 하늘은 울림통이 된다 / 02 노을과 소나기가 소 등을 넘는다 / 03 소는 눈부신 치아와 눈망울을 지녔다 / 04 뿔과 수염은 구름 냄새를 맡는다 / 05 달빛은 곤충들의 몸부림을 좋아한다 / 06 들판은 관능적이다 / 07 미물들의 꿈틀거림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 08 새벽달은 숫돌에 낫과 칼을 벼린다 / 09 마당을 가로질러 무정천리를 간다 / 10 흙은 실컷 부풀어 오르는 감성이다

제2부
01 꽃 피우느라 나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 02 꽃씨를 받으며 엄마는 꽃몸살을 앓았다 / 03 풀은 인간의 삶을 맘껏 넘나든다 / 04 풀은 예측 불가능한 난세를 즐긴다 / 05 배추는 들판의 관능이고 색계였다 / 06 흙색과 꽃색은 서로를 핥고 스민다 / 07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 08 부처님도 함께 고추 농사를 짓는다 / 09 뿌리는 땅과 하늘의 무한 접속을 꿈꾼다 / 10 아버지의 몸에는 꽃의 수액이 흘렀다 / 11 햇마늘은 입안을 극락으로 만든다

제3부
01 들판은 드넓은 울음곳간이더라 / 02 들판에는 광란의 에로스가 펼쳐진다 / 03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사유할까 / 04 누구나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인다 / 05 들판에서 새참 먹는 재미를 아느냐 / 06 빗소리가 읽어주는 반야심경을 듣는다 / 07 시간과 고독과 인생이 함께 걷는다 / 08 십리 길이 천리 길을 건너간다 / 09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 10 하늘의 열락이 천하를 품는다

제4부
01 문풍지는 우주의 숨소리로 울었다 / 02 마시자! 어스름 한 잔의 불빛을 / 03 달빛은 지구를 비추는 개구쟁이다 / 04 자전거를 타면 바람의 성분이 된다 / 05 매일 어떤 장소와 시간을 이동한다 / 06 가장 좋은 걸음은 발걸음이다 / 07 재래시장엔 흥건한 카니발의 언어가 산다 / 08 불편함을 즐기는 것이 즐거움이다 / 09 눈도 울고 코도 울고 귀도 울더라 / 10 아버지는 늙어서도 영원한 청년이다 / 11 아버지도 불장난을 하다가 오줌을 쌌다 / 12 아버지는 아들 친구의 친구가 되었다 / 13 인수야, 니 망 좀 잘 봐라

저자 소개 1

1968년 충북 진천군 초평면 들판에서 나고 자랐다.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고 2003년 계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유리창』, 『온순한 뿔』, 『교실-소리 질러』, 『적멸에 앉다』, 『천방지축 똥꼬발랄』 등과 교육 서적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창의적 질문법』, 산문 『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여』를 펴냈다. 쉽고 간결하며 경쾌하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추구하고 있으며 일상과 신비를 융합하는 상상력과 은유의 힘을 지향하고 있다. 28년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서울특별시 교육감 연구교사로 지정되어 「창의적 문제해결력 신장을 위한 주제
1968년 충북 진천군 초평면 들판에서 나고 자랐다.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고 2003년 계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유리창』, 『온순한 뿔』, 『교실-소리 질러』, 『적멸에 앉다』, 『천방지축 똥꼬발랄』 등과 교육 서적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창의적 질문법』, 산문 『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여』를 펴냈다. 쉽고 간결하며 경쾌하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추구하고 있으며 일상과 신비를 융합하는 상상력과 은유의 힘을 지향하고 있다.
28년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서울특별시 교육감 연구교사로 지정되어 「창의적 문제해결력 신장을 위한 주제 중심의 통합교과 토론 수업」 논문을 집필하였다. 서울특별시 중등 독서토론논술교육연구회 강남지회장, 서울특별시 컨설팅장학위원으로 활동을 바탕으로 내일신문, 미즈내일 등에 교육 칼럼 및 교육 수기를 연재하였다. 영재교육 담당교사동아리 우수사례 발표, 한국교육개발원(KEDI) 우수 영재교육 교수학습자료 경진대회 응모하여 입선하는 등 영재수업 담당교사 및 영재교육담당자를 위한 직무연수 강사로 활동하였다.
교원을 위한 원격직무연수 〈질문하고 놀며 배우는 활기찬 배움중심 교실〉(한국교원연수원)를 개설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중견시인으로서 시 쓰는 일에 진력하며 20년 동안 이어 온 시동인 〈빈터문학회〉 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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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5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4361504

책 속으로

봄이면 흙의 각질을 뚫고 기지개와 혀가 튀어나오고, 아지랑이와 뱀의 긴 꼬리가 스멀거리고, 까맣게 부릅뜬 개구리 눈동자가 굴러 나와 알을 낳고, 해토의 기운을 받은 제비꽃과 산수유와 매화가 퐁퐁퐁 꽃잎을 터트린다.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앞발로 파헤칠 때 포르릉 튀어나오는 아지랑이. 싹이 비집고 나오느라 흙덩어리는 부푼다. 흙은 간지럽다. 겨우내 홀로 문을 닫았던 흙은 문을 열어 어둠을 토하고, 더 깊은 지하를 깨우고 기지개를 켠다. 흙마다 구멍이 생긴다. 점점 구멍이 많아진다. 푸른색, 노란색, 빨간색이 쑥쑥 자란다.
---「흙은 실컷 부풀어 오르는 감성이다」중에서

나는 소 얼굴을 매일 들여다보며 자랐다. 소의 얼굴을 쓰다듬고, 소와 뽀뽀하고, 소의 콧등과 혀를 만지며 자랐다. 소의 이빨은 화강암처럼 크고 튼튼하며 가지런했다. 소 혀는 수세미처럼 길쭉하고 두터우며 거칠었다. 뱀장어가 제 굴 드나들 듯, 소는 자신의 콧구멍에 수시로 긴 혀를 쑤욱 집어넣는다. 긴 혀로 제 콧등을 핥고, 어깻죽지를 핥는다. 소의 눈망울은 감자알만하다. 소는 목이 마르면 물을 한 드럼은 먹어치운다. 목마른 소가 물을 쑤욱 켤 때 소의 목구멍은 수멍이 되어 콸콸콸 물소리가 들렸다.
---「노을과 소나기가 소 등을 넘는다」중에서

자신의 목숨인 작은 불빛 하나로 너울거리는 반딧불. 풀잎에서 풀잎으로 날아다니던 며칠 밤의 춤이 그 생의 전부였다. 아랫배를 활활 태운 작은 불빛이 반딧불에게는 짧은 청춘이다. 심장에 조각칼을 대어 얇은 부스러기로 핏물을 썰어내 태우는 듯한. 반딧불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냥. 그 불빛에 나의 임파선과 솜털과 눈썹과 겨드랑이 털까지 심지가 되어 하롱하롱 하르르 타오를 듯했다. 내 몸도 그렇게 불이 켜지고 반짝였으면 했다.
---「달빛은 곤충들의 몸부림을 좋아한다」중에서

시골은 섹슈얼리티의 진열장이고, 에로티시즘의 엑스포다. 인간의 사상과 관념과 태도와 사회적인 관계망 이전에 대자연의 생존과 번식의 순리가 작용하는 공간이다. 번식의 논리는 순연하고 순수하다. 시골은 성애와 애욕의 공간이다. 풀꽃마다, 곤충의 동작마다, 농작물의 꽃망울마다, 돼지의 울음소리마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스며있다. 노을, 달빛, 별빛, 강물의 출렁임, 열매는 관능적이다. 관능이 아닌 것이 없다. 관능은 생존 전략이다. 관능은 종족번식을 위한 사투이며, 몸부림이며, 탱고다. 미꾸라지와 맨드라미와 으름과 민들레와 지렁이와 개미와 돼지와 사마귀와 우렁이가 모두 변강쇠고 옹녀다.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들판은 관능적이다」중에서

밭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더니 그 말이 맞다. 주인이 자주 오지 않는 논밭에는 풀이 많다.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 무섭게 풀이 먼저 쑤욱 자란다. 잡초란 내가 기르고자 하는 식물이 아니다. 그래서 잡초를 뽑아내는 일은 길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일이고, 기력이 닿는 한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이다. 풀을 뽑다보면 작물이 성큼 자라 풀을 압도하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
---「풀은 예측 불가능한 난세를 즐긴다」중에서

들판을 쏘다니다 보면 수없이 찍혀있는 아버지의 발자국을 보게 되었다. 장화 발자국도 있고, 맨발로 찍힌 발자국도 있었다. 우리 논에 찍힌 무수한 발자국은 대부분 아버지의 발자국이었다. 벼를 베던 발자국이었고, 피사리를 하던 발자국이었고, 우렁이와 미꾸라지와 참게를 잡던 아버지의 발자국이었다. 아버지의 발자국에 얼음이 얼면, 나는 그 얼음 조각을 한 입 가득 베어 물거나 아버지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어 보기도 했다. 봄이 되면 그 발자국 안에서 자운영 꽃과 하늘지기가 피어나고, 물이 고이면 거머리가 기어 나오기도 했다.
---「들판에서 새참 먹는 재미를 아느냐」중에서

이 가을의 압권은 터질 듯 팽창하며 푸르른 배추밭과 무밭이다. 11월 중순 즈음, 산천초목이 붉은색, 노란색, 주황색, 오색찬란한 단풍이 들어가는데 무와 배추는 거꾸로 시퍼런 위용을 자랑했다. 십리 밖에서도 배가 불룩한 배추밭과 무밭의 푸르름이 선명하게 눈에 띌 정도였다. 배추와 무의 싱그러움은 관능적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속이 차오르는 배추와 무의 몸통은 육덕이 풍만한 관능미를 맘껏 뽐냈고 메뚜기들을 끌어들였다. 우주도 덩달아 팽창하는 듯 관능적으로 보였다. 추수가 끝나 황량한 초겨울 들판은 무와 배추의 푸르른 에로티시즘으로 기운이 넘쳤고, 색계(色界)가 되었다.
---「배추는 들판의 관능이고 색계였다」중에서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못생긴 꽃도 많았다. 못생겼다는 것은 또 다른 표정이었다. 잘생겼든 아니든 꽃에는 화려함과 유혹과 관능과 성적인 본능뿐만 아니라 연약함과 쇠락의 느낌,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행이 스며있었다. 꽃은 탄생과 소멸을 동시에 품고 있는 모순 덩어리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의 화려한 희극은 결국 땅에 떨어져 소멸하는 비극이었다. 꽃은 생명의 희열과 쇠락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삶의 덧없음, 인생무상,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인식을 일깨웠다.
---「흙색과 꽃색은 서로를 핥고 스민다」중에서

발은 피로와 탈진을 지나 더 멀리 뛰어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발은 근육에 쌓인 젖산과 여러 활력의 징후를 소진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았다. 나는 발을 가진 동시에 발이 되고 싶었다. 뜀뛰기는 심술을 부리며 영혼의 탈출구 노릇을 하려 했던 것 같다. 산다는 것은 발끝에 달렸다. 걷고, 뛰고, 발이 닳아 문드러져야 세상이 보인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지금의 한 발자국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소중한 흔적이다.
---「시간과 고독과 인생이 함께 걷는다」중에서

가을 하늘에는 묵은 공기가 거의 없었다. 찬 이슬의 발톱을 지닌 찬바람이 허공을 쏘다녔다. 긁힌 허공에 살짝 탄로난 별의 탄생. 별의 조도(照度)가 낚시 바늘의 미늘처럼 시퍼렇다. 어떤 별의 동공은 제 묵은 발톱을 짓찧어 새로운 발톱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독수리보다 매섭게 느껴졌다.
---「마시자! 어스름 한 잔의 불빛을」중에서

누렁이들이 귀를 쫑긋 기울이다 컹컹 짖는다. 눈발 속에는 수많은 소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귀에 담아도 끝을 알 수 없는 적막의 소리. 적막이 만들고 적막에서 내려오는 소리. 한 생애의 여백에 쌓이는 소리. 바람으로부터 탯줄과 영혼을 얻어 태어난 적막에서 광막한 광야로 넘어가는 소리를 축생인 누렁이들이 듣고는 컹컹 짖는다.
---「하늘의 열락이 천하를 품는다」중에서

내 추억에 남은 문풍지 소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듬이질 소리, 홍두깨 굴리는 소리, 두 손을 비벼 새끼를 꼬는 소리, 먼 초원의 야생마 울음소리, 충북선 증평역 건널목 차단기 오르내리는 소리, 소 되새김질하는 소리, 콩나물 물동에 물 흐르는 소리, 조그만 가마솥에 고구마 찌는 소리, 초가 처마에서 고드름이 커가는 소리, 꽹과리 소리 앞세워 굿을 하던 이웃집 무당이 칼춤을 추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가 문풍지 파르르 떠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들렸다.
---「문풍지는 우주의 숨소리로 울었다」중에서

얼마 전 아버지는 엄마에게 노인용 전동차를 한 대 사주었다. 엄마는 이제 전동차를 타고 들판을 쏘다닌다.
“이놈이 참 잘 가. 저승사자도 이런 놈이면 좋겠구먼.”
엄마의 전동차 칭찬이 자자하다. 언젠가는 전동차처럼 착하고 잘 굴러가는 저승사자가 오기를 바란다.

---「인수야, 니 망 좀 잘 봐라」중에서

출판사 리뷰

농투사니 부모님이 삶에서 길어 올린 지혜

저자는 언어를 가장 섬세하고 밀도 있게 다루는 시인이자,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런 저자에게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부모님의 언어란 별안간 땅강아지나 벼룩처럼 툭 튀어나와 자연과 삶의 파문을 일으키며 영혼의 수면을 치고 가는 물수제비 같은 것이었다.

“부모님의 언어는 농사꾼의 언어요, 길바닥에 너부러진 자갈 같은 언어요, 패랭이꽃 같은 언어다. 풀의 언어이며 가축의 언어다. 질경이와 바랭이와 망초가 자라는 곳에서 길어 올린 어휘들이다. 부모님이 쓰시는 속담이나 사투리는 대자연의 순연(純然)한 거름냄새며, 이슬이고, 야생화의 향기라고나 할까.” (「들어가는 말-들판의 소년이 광야의 울음을 찾아서」 중)

십 리 밖에서도 들릴 것처럼 큰 소리로 말싸움을 하다가도 나무그늘에서 나란히 막걸리를 들이켜며 언제 그랬냐는 듯 도란도란해지는 노부부의 다정함,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철이든 함박눈이 퍼붓는 한겨울이든 들판의 농작물 곁으로 ‘가장 좋은 거름’인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아버지의 성실함과 우직함,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퉁퉁 불은 발에서 장화를 벗겨내며 엉덩방아를 찧느라 터져버린 어머니의 웃음 등이 저자의 애정과 연민어린 시선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문명의 편리를 누리지 못하고 고된 노동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오신 부모님의 언어는 평생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길어 올린 지혜를 거름으로 태어났기에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무게와 밀도, 반향과 울림을 더해간다. 살아온 세대와 경험이 다르다 해도 몸으로 경험한 삶과 그 삶에서 나오는 언어는 시공간을 초월해 오래도록 살아남지 않는가.

또한 저자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모든 것의 핵심은 뿌리이며 버릴 것과 기를 것을 분별해야 한다는 가르침,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가축의 도살과 손질도 스스럼없이 해내는 모습, 불타버린 집에서도 아들의 책가방을 제일 먼저 구해내던 든든한 웃음, 들판의 온갖 냄새가 배어있는 체취를 통해 무엇보다도 숭고하고 고답적인 배움을 전해주던 살아있는 교본이었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의 언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포개어 보며, 검게 그을리고 땀에 젖은 아버지의 근육을 경탄하며, 잠든 아버지의 갈라진 발등을 애처로워하며 가만히 그 곁에 눕는다. 아들은 점점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간다.

시인의 언어로 담아낸 농촌의 사계

저자는 유난히 청각에 민감한 편으로, 과거를 생각하면 언제나 소리가 먼저 들려오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소개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개구리 우는 소리, 댑싸리비로 마당 쓰는 소리, 소가 되새김질하는 소리, 숫돌에 낫 가는 소리, 문틈으로 황소바람 들이치는 소리, 아궁이에서 솔가지 타닥타닥 타는 소리, 손 펌프질로 우물물 길어내는 소리, 찔레 덤불에서 날아오르는 벌떼 소리가 들려오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책은 그만큼 감각적이고 생동감 있는 묘사로 그득하다. 현대 문명의 편리함 뒤로 사라져버린 그리 오래지 않은 옛 시절의 추억과 온기가 시인의 섬세한 묘사로 되살아난다. 산문 속에서도 군데군데 시를 읽는 듯 탁월한 우리말 문장과 리듬을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펼친 것에 후회가 없을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은 그냥 꽃이 아니다. 꽃마다 향기와 색깔이 솟아난다. 노란 피, 빨간 웃음, 파란 절망, 분홍빛 현악 4중주, 초록 꽹과리, 하얀 뽕짝이 차고 넘쳐 흘러간다. 꽃밭은 색채의 군무이며, 범람이며, 해일이며, 탕진이며, 고갈이며, 사막이며, 은하수이며, 격랑이며, 초신성이다. 꽃밭은 색깔의 현기증이며, 순교이며, 아우성이며, 진군이며, 순례이며, 아제아제바라아제이며, 나무아미타불이다. 꽃은 세계 안에 있는 빛의 총량을 잘게 쪼갠 것이다. 그 쪼개진 것들의 퍼짐이다.” (「흙색과 꽃색은 서로를 핥고 스민다」 중)

이토록 깊은 감수성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은 과연 드넓은 초평의 자연 속에서 체득한 저자의 야성과 꾸밈없는 천진함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껏 절망하고, 부르짖고, 미쳐 날뛰며 있는 그대로 존재해도 되는 자연 속에서 그는 어느 새 자연과 닮은 사람이 되었다. 초평의 들판과 동식물에서부터 바람과 눈송이와 빗방울과 염소와 새떼들을 비롯해 관능의 희열과 우주의 열락까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솔직하고 건강한 사유.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감정이 흘러넘치며, 때로는 엉뚱하고 삐딱한 언어들이 인간과 생에 대한 온기를 가득 품은 채 지면 위에 펼쳐진다. 자연스럽게, 저 들판에 넘쳐나는 흥(興)과 취(趣)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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