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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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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쓰기, 몰입의 즐거움
글씨 쓰기는 인간이 하는 일 가운데 매우 요긴하면서도 고상한 즐거움을 준다. 문자가 발명된 이래로 어느 사회에서나 글씨를 바르게 쓰고, 아름답게 쓰고, 개성적으로 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필체를 보기도 했다. 글씨에 몰입하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그토록 많은 명필이 출현했던 것이다. 명필 서예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되면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또 글씨를 쓰면서 단전 호흡이 저절로 되어 몰입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르다는 것, 그 비할 데 없는 절대 가치 사람이 배우는 것은 한결같이 ‘바른 길’로 향한다. 달리기를 하든, 공을 차든, 스케이트를 타든, 골프를 하든, 바둑을 두든, 똑같을 것이다. 걷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그 무엇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능률이 오르지 않아서 빨리 배울 수 없고 높이 오를 수 없다. 바르다는 것은 단순히 보기 좋다거나 바람직하다든가 모범적이라든가 하는 이미지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실용성과 편리성 정도를 넘어서서 존재 자체의 가치 완결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바르다는 것은 존재 자체가 떳떳하고 자연스러워서 별도의 검증과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뭔가 배울 때 정식으로,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한다. 글씨도 그렇다. 필기구를 바르게 잡고 바르게 글씨를 쓰는 것은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 바른 것을 추구할 때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깨달음도 차원이 다르다. 바른 글씨와 아름다운 글씨 폰트 활자도 바르기는 하다. 그러나 공간 균형만 잘 맞추어 놓아서 기의 흐름이 순조롭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데, 사람이 쓴 글씨는 삐뚤빼뚤 해도 그 나름의 기의 흐름이 있어서 정감이 묻어난다. 정감이 묻어나는 글씨 중에도 오래 보아도 늘 기분이 좋아지는 글씨는 아름다운 글씨라 할 수 있는데 모든 아름다운 글씨는 바른 글씨의 기초를 튼튼히 내포하고 있다. 바른 글씨의 기초는 필획 하나를 바르게 긋는 데서 출발한다. 필획은 동양 예술인 서화 감정의 아주 중요한 요체다. 일반 필기구로 그을 때도 원리는 그대로 통한다. 동양 서양 할 것 없이 잘 쓴 글씨는 선이 살아 있다. 모든 예술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기의 연결이 잘되어 시원하게 소통되면서 다양한 변화를 지닌 창작예술 작품을 최고로 여긴다. 창작예술 작품의 모든 아름다움은 바른 원칙 속에 기운 생동과 다양한 변화를 내포해야 시간을 견딜 수 있다. 바른 글씨와 개성적인 글씨 바른 원칙을 내포하지 않은 개성이란 한갓 비뚤어짐이거나 악습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모든 활동이 기초를 익힐 때 기준과 원칙 없이 배워서 자기습관으로 굳어지면 발전하기 어렵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길이 하나로 통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현상은 다양해도 원리는 하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통달한 사람에게는 법이 없는데,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이 지극한 법이다.”(석도石濤)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진정한 개성은 바른 원리 원칙을 숙달한 다음에 꽃피는 것이다. 좋은 글씨는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원칙을 잘 지켜 쓰지 않으면 선이 시원시원하지 않고 오밀조밀 어지럽게 보여서 눈에 거슬린다. 진정으로 개성 있는 글씨를 쓰고 싶다면 글씨의 원칙을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문장을 필기하는 즐거움 필기하는 노동, 필기감의 즐거움, 이런 것은 키보드와 스마트 기기의 터치에 익숙한 현대인이 일부러라도 되찾아야 할 필수항목이라고 생각한다. 낙서 정도만 해도 정신과 감정이 정리되고 휴식을 얻는데, 좋은 문장을 정성 들여 따라 쓴다면 어떨까? 비교가 안 될 만큼 후자의 긍정적 효과는 클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칠 때, 혹은 무료하거나 짜증이 날 때, 누군가를 혹은 무엇을 기다리는 시간에, 무심하게 한 페이지씩 따라 쓰는 것은 특별한 체험일 것이다. 현실이라든가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채 가만히 두고 호흡과 자세를 가다듬어 정성스럽게 한 획 한 획 쓰다 보면 그 어떤 휴양지에서도 맛보기 힘들었던 ‘평온함’에 이른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눈빛이 반짝 빛나는 순간, 그때가 바로 좋은 내용의 문장을 정성스럽게 쓰면서 영혼에 새싹이 돋아나는 순간이다. 필기구와 필기감 즐기기 글씨를 따라 쓸 때 밝은 컬러 사인펜 또는 컬러 붓펜으로 써보라. 기분도 밝아지고 즐거워서 동심으로 돌아간 듯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컬러 사인펜 또는 컬러 붓펜으로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임서(臨書)를 하면 꽃구경을 가거나 단풍놀이를 간 듯 정말 재미가 있다. 좋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 같은 희열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좀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직접 체험해 봐야 좋은 것은 기회가 되면 따로 특강을 마련하든가 할 생각이다. 이 책을 따라 쓰는 모든 사람이, 글씨를 쓰는 동안 평온하고 행복하며 마음에 새 힘이 솟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속도, 붓펜으로 쓰면서 읽는 속도 베토벤의 음악을 16배속으로 듣거나, 고흐의 그림을 빛의 속도로 훑어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대 문명이 속도를 중시하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지 말아야 의미를 가지는 영역이 있다. 눈으로 휙 읽는 것과 손으로 쓰면서, 그것도 붓이나 최소한 붓펜이라도 들고 써보면서 읽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고흐의 그림을 눈으로 보면 아무리 천천히 봐도 몇 분 안 걸리지만, 붓으로 터치를 흉내 내어 가면서 감상하는 것은 오래 걸린다. 그러나 그 시간만큼 고흐의 삶과 마음에 쉽고도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내가 잠시 그 사람이 된 듯이, 큰 무당이 망자의 혼령을 ‘빙의(憑依)’하듯이, 그렇게 접속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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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 선생의 이야기를 간단히 듣고 다시 쓰는 금강경을 펼쳐 보면 일단 큰 감동이 밀려온다. 아! 글씨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구나. 책으로 만들어진 필사본은 기계서체와는 그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작품으로 걸린 글씨와도 또 다른 느낌이다. 책으로 느껴지는 필사본의 맛이 참 멋지다. 왜 그동안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았을까 싶다.
명품은 누구나 쉽게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듯 명필은 누구나 좋은 글씨로 알아 본다는 것을 느꼈다. 칼라 붓펜으로 따라 써 보면 봄날 꽃구경하듯, 가을날 단풍 구경하듯 즐거울 것이라는 서암 선생의 이야기는 실제 몇 장을 써 보면서 금방 느낄 수 있다. 글씨를 제대로 쓰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무엇을 하든 한 가지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부처님 법에 맞다. 사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글자의 한 획 속에도 온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다는 것을 옛 어른들은 잘 아셨던 것 같다. 그것을 따라 쓰게 하고 싶은 것이 서암 선생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부처님의 말씀과 글씨의 한 획과 서암 선생님의 마음과 사경을 하려는 이의 마음이 모두 하나임을 느낀다. 이것이 이심전심의 사경이 되어 참다운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아닐까? 긴 말이 필요 없다. 책을 펼쳐 보면 서암 선생의 글씨에서 그 마음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요리사는 맛으로 말을 하고, 음악가는 소리고 말을 하듯 서예가는 글씨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말로 하는 것은 모두 금으로 짠 비단 위에 꽃을 올리는 것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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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色遊覽 사색유람
네 명의 작가들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따로 또 같이 다니며 찍고 쓴 이야기 김상수, 『편도 티켓이라도 괜찮아』 “영원한 건 없지만 영원 같은 순간은 늘 있는 법이니까.” 혼자 여행해도 좋지만 가끔은 이 순간 누군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꼼꼼히 계획한 여행도 좋지만 가끔은 돌아올 기약 없이 편도 티켓만 가지고 떠나는 여행도 좋다. 김상수의 『편도 티켓이라도 괜찮아』는 저자만의 시선으로 찍은 정성스러운 사진과 솔직한 감정들을 담은 글의 모음집이다.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 해가 넘어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만큼 여행을 좋아하지만 ‘돌아오는 것’까지가 여행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돌아갈 곳을 만들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아는 그이기에 이 책은 여행 에세이이자 일상 에세이일 수 있을 것이다. 김유진, 『지금쯤 에펠은 반짝이고 있겠네』 “인생이동화같지않으니사진이라도동화같이남기어야지.” 일도, 사랑도, 사람도 좋은 일이랄 게 없어 ‘이왕이면 좋아하는 곳으로 도망가자!’ 생각했던 것이 여행이 되었다. 떠나가 보니 반짝이는 에펠도, 골목길도, 사람들도 눈앞의 모든 것들이 좋았다. 그 좋은 것들을 모두 담고 싶어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저자 김유진은 거리의 악사에게 2유로짜리 동전을 던져줄 만한 여유가 있고 고작 동전 몇 닢에 완벽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파리가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그곳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고 싶어 멈춰 서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현실을 살면서도 언제나 파리의 사진을 보면 꿈속이 된다. 시작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토록 사랑하는 파리와 파리의 에펠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단한 일을 하고자 한다. 이종범,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에 대해』 “한 번 다녀온 여행지를 다시금 찾고 싶을 때, 그곳이 나를 그리워하는 건 아닐지.” 이 책은 저자 이종범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기 위해 사진을 통해 쓴 일기이다.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들, 계절이 오는 소리, 물가의 밤거리 등 우연히 마주친 소중한 것들, 그래서 붙잡고 싶은 것들에 대해 쓰고 찍었다. 그래도 다 풀리지 않는 아쉬움은 그곳에 남겨두고 다시 또 가기 위한 이유로 삼는다. 늘 같은 자리에 있다가 우연처럼 우리와 마주치는 것들, 다시 찾은 곳에서 저자는 언제나 같은 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것들을 보고 더 두꺼워진 일기장을 들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독자들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이 사진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읽어주길 바란다. 첫 책이 천국 같았던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면, 이 책은 천국이 아니라고 해도 좋은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현봄이, 『낯설어서 좋은 날』 “아침에 골목길에서 마주친 고양이처럼” 호불호가 강한 저자 현봄이는 늘 무언가를 아주 많이 좋아하거나 아주 많이 싫어해왔다. 그런 그녀에게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떠나 후련하게 돌아오는 여행은 늘 ‘최고 좋음’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걷고 때론 멈춰서면서 찍은 사진과 글들을 모은 이 책은 저자의 ‘좋음’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비밀 얘기를 털어놓을 만한 강가, 따뜻한 방 안 창을 타고 흐르던 물방울, 편의점 유리병 음료수. 이곳에도 있지만 낯설어서 더 좋은 것들, 그 낯선 것들이 모인 여행이라는 날들에 대해 담았다. 날씨나 계절, 하늘이나 강이 가진 모든 색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볼 수 있는 여행의 시간들을 좋아하는 저자가 싫은 것투성이인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그 속에 파묻혀 그럭저럭 살아낼 수 있을 만한 좋은 것들을 가득 담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