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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 조선을 경륜하다
오세현
나녹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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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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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 조선의 정치와 사상의 큰 맥, 문장 4

1 문장으로 나라를 경륜하다
1. 유학의 근간을 이룬 문장 30
2. 문장으로 나라를 경륜하다 49
3. 외교의 일등공신, 문장 69

2 조선중기 문장 사대가
1. 임진왜란을 극복하다 94
2. 정치적 시련 111
3. 문형에 오르다 128
4. 병자호란과 외교활동 144

3 사대가가 바라본 도학과 문장
1. 다시 보는 조선중기 문학론 164
2. 영원한 문장의 가치 ~ 신흠과 장유 185
3. 도학에 충실한 문장 ~ 이정구와 이식 205

4 사대가의 사상적 분기
1. 유·불·도 공존의 전통 ~ 신흠과 장유 230
2. 조선후기 서인 도통의 성립 ~ 이정구와 이식 266

부록
· 註/ 308
·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서강대학교 사학과에서 역사 공부의 기초를 다지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거치며 조선시대 사상사를 전공했다. 간송미술관에서 미술사를 비롯해 조선 시대 문화사 전반에 대한 시야를 넓혔고, 규장각 연구원으로 지내는 동안은 조선 시대 문인들의 개인 문집들을 깊게 만날 수 있었다. 현재 경상대학교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문화사』(공저), 『진경문화』(공저) 등과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성리학 이해와 조선사회의 변화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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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56쪽 | 526g | 148*210*30mm
ISBN13
9788994940748

책 속으로

1-1 유학의 근간을 이룬 문장(37p)

전통적으로 시는 정치 현실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는 존재로 개인적 감흥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치도(治道)를 위한 유용한 도구로 인식되었다.
“시 삼백 편을 외우면서도 정치를 맡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나가 혼자 해결하지 못한다면, 비록 시를 많이 외운다 한들 어디에 쓰겠는가?” - 『논어』 「자로」

1-2 문장으로 나라를 경륜하다(56p)

“우리나라가 명나라를 섬긴 후로 표전(表箋)의 글은 대부분 이숭인(李崇仁)의 손으로 지어졌다. 공민왕(恭愍王)이 시호를 얻고, 상왕(上王)이 부조(父祖)의 봉작(封爵)을 이어받은 것 모두 이숭인이 지은 문장의 힘이었다. 해마다 보내는 세공(歲貢)에 금·은·말·베를 면제받은 것도 역시 이숭인의 (문장의) 힘이었으며, 황제께서 여러 번 문장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서 우리나라에 인물이 있다고 한 것도 역시 이숭인의 (문장의) 공(功)이었다.” - 『고려사절요』 34권 공양왕 원년(1389)

1-2 문장으로 나라를 경륜하다(68p)

옛사람의 말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 셋 있으니, 덕(德)을 세우는 것과 공(功)을 세우는 것과 말(言)을 세우는 것이다.” 했다. ... 덕을 세우는 것을 학(學)이라 하고 말을 세우는 것을 문(文)이라 하는데, 말이 문장을 이루면 이 또한 사문(斯文)에 공이 있는 것이니, 덕과 공과 말은 셋이 서로 연관되어 하나일 뿐이다. - 서거정(徐居正), 「태허정집서」

1-3. 외교의 일등공신, 문장(95p)

문장이 비록 경학에 비하면 못하지만, 문장은 실로 문신의 날개가 되니 말단이라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문장을 하지 않은 현인(賢人)은 없기 때문에 나라의 문치(文治)는 반드시 문장에 힘입어 일어났던 것입니다. ...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예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문장 때문입니다. - 김안로(金安老) 『중종실록』 중종 28년(1533) 4월 13일

1-3. 외교의 일등공신, 문장(103p)

사신은 논한다. 문(文)과 질(質)이 빈빈(彬彬)해야 군자라 한다. 문이 우세한 것은 본디 질이 우세한 것만 못하다. 그러나 문과 질이 다 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문을 보존하여(存文) 질을 붙게 하는(寓質) 것이 나을 것이다. - 『중종실록』 중종 37년(1542) 11월 1일

2-1 임진왜란을 극복하다.(118-119p)

전근대 혹은 근대는 물론 현대 사회 모두 대규모의 상비군(常備軍)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경제적 지출과 인적 징발이 필요하다. 한반도는 중국이라는 최고의 강대국과 인접한 지정학적 이유로 인해 오랜 시간을 거치며 ‘외교’라는 수단을 통해 최소한의 사회적 비용으로 국가 방위전략을 마련했다. ... 조선은 국초부터 외교를 통한 국가 안보에 관심이 많았고, 당연히 외교에 무엇보다 예민하고 신속하게 응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 마련에 고심했다. 전쟁 기간 중 명의 장수들을 접반(接伴)하거나 전략적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문한 활동은 전투에서의 군사적 활동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로 간주했다. 조선의 문인 중 문한에 뛰어난 인물들의 문장력이 전쟁 기간 중 빛을 발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2-1 임진왜란을 극복하다.(121p)
선조는 곡진하면서도 간결하고 속되지 않은 글을 구사하는 이정구가 정응태의 무고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라고 확신했다. 이미 자신의 곁에서 여러 차례 문장력과 중국어 실력을 선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돌발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사행과 변무의 과정에서 이정구의 풍부한 지혜와 계책 역시 무엇보다 큰 장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2-3 문형에 오르다(167p)

이식은 선조대에 명나라 사신 웅화를 접반한 이정구의 예를 거론하며 중국의 예법과 조선의 예법을 적절히 조화시킬 것을 주장했다. 사신을 맞이하는 일 중에서 각별히 신중해야 하는 것이 다양한 의례적 절차 문제였는데, 이식은 웅화를 접반한 이정구를 모범적인 전례로 거론하며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고자 했다.

2-4 병자호란과 외교활동(178p)

국왕 인조가 강화의 자리에 직접 참여하는 문제를 두고 협상 테이블에서 장유가 강력하게 반대하자 유해가 주장을 굽혔다. 유해는 이 일을 두고 이후에도 줄곧 조선이 외교 현장에서 체통 있는 모습을 지켰다고 이야기했다. 조선 시대 외교의 현장에서 전례(典禮)의 문제는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문제였고, 그러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문장력을 지닌 인재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2-4 병자호란과 외교활동(189p)

한 시대의 문풍(文風: 글을 숭상하는 풍습)과 선비들의 취향이 문형에 의해 좌우된다는 서명응(徐命膺)의 지적처럼 문형은 한 나라의 문한을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직책이었다. 특히 명·청 교체기의 위기에 처해 있던 조선으로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외교에 치중해야 했고, 당시의 문형 선발은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 문제로써 최고의 극선(極選: 매우 정밀하게 잘 골라 뽑음)일 수밖에 없었다.

3-2 영원한 문장의 가치(236p)

“동파(소식)는 호걸(豪傑)의 선비이다. 개보(介甫: 왕안석)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한 패거리가 되려 하지 않은 것은 평소의 행동을 고수함이요, 속수(涑水:사마광)가 (조정에) 들어가 정승이 되었을 때에도 부화뇌동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화이부동(和而不同)’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단지 정문(程門: 정이의 제자들)에 죄를 얻은 까닭에 회암(晦庵: 주희)이 힘써 공격했던 것인데, 세상의 유학자들이 마침내 남에게 뒤질세라 배척을 하고 나섰으니, 이는 지나치다고 할 것이다.” - 신흠(申欽) 『상촌고』 권57 「구정록」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일제 식민지배를 초래한 원인이 조선왕조의 부패와 무능에 있다는 식민사관은 아직도 우리가 조선 시대를 바라보는 주된 시선 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조선 시대 말기의 부패와 무능이 조선왕조 전체를 대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는 5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결코 하나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 가운데 조선 시대의 가장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가치를 지녔던 ‘문장’이 조선 시대를 작동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는지 살펴보고 ‘문장’, 즉 글쓰기의 힘을 재조명하였다.

이 책에서는 글쓰기 특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서술되는 조선 시대 사상가의 글에 대한 식견과 글을 쓰는 이유를 읽는 것만으로 글에 대한 안목을 체득하고 문장과 사상의 관계를 다각도로 읽으며 글쓰기와 관련한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나갈 수 있다.

내용 요약 :

조선 시대 인재 선발의 기준은 경전 공부로 대표되는 도덕적 측면(도학)과 제술을 통해 증명되는 문장이었다. 이것은 조선 시대의 가치 기준이 도학과 문장으로 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조선 중기는 문장의 가치와 문장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조선전기 이후로 지속된 시기였다.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진전됨에 따라 그동안 문장의 빛에 가려졌던 도학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롭게 확산되기도 했다. 문장의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성리학 이해에 공감했던 존재가 바로 조선 중기 문장 사대가다.
국내외의 양 측면에서 진행되었던 사대가의 문한 활동은 전기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문장의 가치와 문장가의 역할이 조선 중기 사회에서 실현되는 구체적 양상을 말해준다. 조선 중기 문장 사대가의 국내외적 문한 활동은 문장이 나라를 빛낸다는 차원을 넘어 문장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로도 전개되었다. 사대가 모두 성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사대부 사회에서 누구보다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존재들이었다.
문장 사대가는 문장과 도학의 관계에 대해 일정 부분 다른 견해를 보였다. 신흠과 장유가 문장이 지닌 가치와 역할이 사문의 융성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반면 이정구와 이식은 문장의 가치 기준을 도학과의 연관성에 두었다는 차별점이 확인된다.
신흠과 장유가 보여준 문장의 독자적 가치에 대한 긍정은 성리학의 심학화에 바탕한 유·불·도 삼교의 공존이나 포용과 연관된다. 반면 이정구와 이식은 문장가적 특징을 지니는 동시에 도문일치론에 기반하여 도학의 확산에 적극 동참했다. 신흠과 장유가 문장과 도학의 대등한 가치 지향을 보였던 조선의 논의를 대변하는 반면 이정구와 이식은 조선 후기 일부 문장가에게서 확인되는 도학에 근접한 모습의 단초다. 문장의 가치를 지키려는 기존의 보수적 입장과 새로운 도학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혁신의 사상적 분기가 조선 중기 문단에서 등장한 것이다. 조선 중기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대부들이었던 문장 사대가의 사상적 분기는 결국 조선사회의 가치 지향에 대한 변화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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