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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유실물을 찾아서
첫 번째 편지 1992년 11월 16일 오피치나에서 두 번째 편지 11월 18일 세 번째 편지 11월 20일 네 번째 편지 11월 21일 다섯 번째 편지 11월 22일 여섯 번째 편지 11월 29일 일곱 번째 편지 11월 30일 여덟 번째 편지 12월 1일 아홉 번째 편지 12월 4일 열 번째 편지 12월 10일 열한 번째 편지 12월 12일 열두 번째 편지 12 월 16일 열세 번째 편지 12월 20일 열네 번째 편지 12월 21일 열다섯 번째 편지 12월 22일 |
Susanna Tam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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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거라. 설교하려는 것도 아니고, 널 슬프게 하려는 것도 아니니까. 난 단지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야. 가슴과 가슴으로 나누는 대화 말이야. 우리가 서먹해지기 이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무거운 짐이 되곤 하더라. 나는 꽤 오래 살았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에 잘 알지. --- p.26~27
그러니 우리 사이가 멀어진 건 지극히 당연한 거란다. 너의 껍데기는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했고, 나의 껍데기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니까 말이야. 너는 내가 우는 걸 못 견뎌했고, 나는 갑자기 차가워진 너를 견딜 수 없었어. 물론 사춘기를 거치면서 네 성격이 달라질 거라 기대했지. 그런데도 막상 그때는 참을 수 없이 힘들었단다. 내 앞에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만 같았어. 어떻게 너를 대해야 할지 모르겠더구나. 밤이면 지금 너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변화에 감사하기로 마음을 가다듬었어. 아무 문제없이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은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아침이 되고, 눈앞에서 문을 꽝 하고 닫힐 때면 얼마나 절망적이었던지. 그저 울고만 싶었어. 나에게는 그런 널 견뎌낼 만한 에너지가 없었어. --- p.28~29 그 시대에 여자와 남자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았지. 남자들에게는 직업도 있고, 정치도 있고, 전쟁도 있었어.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곳이 많았던 거야. 하지만 여자들은 아니었지. 수많은 세대에 걸쳐 우리는 침실과 부엌과 욕실에만 갇혀 있었어. 그곳에서 똑같은 분노와 불만에 수백만 번도 더 괴로워했지.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되었냐고? 아니야. 난 단지 이 모든 것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를 명확히 보려고 할 뿐이야. 성모마리아 승천 축일날 밤, 바다 위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갔던 일 생각나니? 가끔씩 높이 올라가기도 전에 꺼져버리고 마는 폭죽들이 있었지. 내 어머니의 삶, 할머니의 삶, 그리고 내가 아는 많은 여자들의 삶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그런 거란다. 하늘 높이 올라가지도 못하고 낮은 데서 칙 하며 꺼져버리는 불꽃. --- p.68~69 “혀는 아픈 이를 건드린다.” 이 속담이 그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하겠지. 하지만 깊은 관련이 있단다. 그때 일이 자꾸 떠오르는 건, 내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야. 네 엄마는 나를 안고 울고 있었어. 아주 잠시 동안 그 애의 껍데기가 벌어졌고, 그 좁은 틈으로 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기회였지. 그럴 수만 있었다면 그 애의 인생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되어줄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러려면 아주 단호한 태도가 필요했겠지. 그 애가 가라고 했을 때도, 난 그냥 거기 머물러야 했어. 근처에 숙소를 잡고 매일 그 애를 찾아가서는 틈새가 다시 열리도록, 그 안으로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애써야 했어. 사실 거의 그럴 뻔했었지. --- p.88~89 ‘뱀 사다리’ 게임 알지? 주사위를 던져서 뱀 자리에 가면 내려가야 하고, 사다리 자리에 가면 올라가는 게임 말이야. 인생도 그와 비슷하게 전개된단다. 올라가기도 했다가 다시 밑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뭔가를 이루기도 했다가 다 잃어버리기도 하고. 갈림길에 선다는 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맞부딪히게 된다는 뜻이란다. 그들과 합쳐지게 될 것인지, 끝내 모른 채 지나치게 될 것인지는 오직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지. 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발걸음에 따라 너와 네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단다. --- p.91 가장 기본적인 진실들이 오히려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아니? 그때 진짜 사랑은 ‘강인함’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돼.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하지. 남들이 전혀 모르는 깊숙한 비밀까지도. 하지만 삶은 온갖 사건들의 연속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거기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강해질 수가 있다는 걸까. --- p.109~110 그때 내 눈앞에는 정원을 돌아다니는 너댓 살 무렵의 그 애 모습이 보였어. 좋아하는 인형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난 부엌에 있어서 뭘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가끔씩 그 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 아주 따뜻하고 행복 가득한 웃음이었지. 그래. 한 번이라도 행복했던 적이 있다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어. 그 어린아이에서부터 다시 한번 삶을 시작해보는 거야. --- p.146 어느 날 넌 내게 엄마를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어. 천국은 너무 넓은데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이야. 난 너에게 천국은 큰 호텔 같은 거라고 했지. 사람들이 죽으면 그 호텔에 방 하나씩을 얻게 된다고. 그래서 생전에 서로 사랑했던 사람들이 거기서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지내게 된다고. 한동안은 이런 말로 널 안심시킬 수 있었지. 하지만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인가 금붕어가 죽었을 때 넌 그 얘기를 다시 꺼내더구나. -그런데 천국의 방이 다 차면 어떻게 해요? -천국의 방이 다 차면 눈을 감고, “넓어져라, 방들아” 하고 계속해서 말해. 그러면 순식간에 방들이 커지게 될걸? --- p.197 너도 사랑에 빠지게 되면 사랑의 효과가 얼마나 다양하고 재밌게 나타나는지를 알게 될 거다. 네 안에 사랑이 없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면 세상 어떤 남자도 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야. 그러다 어느 한순간, 한 사람이 네 마음을 훔치고, 너도 그에게 온 마음을 쏟기 시작하면 이상한 일이 생겨. 세상 모든 남자들이 다 너를 쫓아다니기 시작하는 거지. 너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사랑을 달라고 애걸하면서 말이야. 이게 다 몸과 마음 사이에 창문들이 열리기 때문이란다. 일단 그 창문들이 열리면 몸은 마음을, 마음은 몸을 거울처럼 환하게 비춰 서로를 빛나게 해주지. 아주 빠른 속도로 따뜻한 후광이 생겨나서 널 감싸게 될 거야. 이 후광이 바로 남자들을 끌어들이지. 꿀 냄새가 곰을 끌어들이듯이. --- p.208~209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세 달을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난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전화기 옆의 메모지에 적어놓았었지. 바깥에서만 보면 많은 사람들의 삶이 뭔가 잘못되고, 비이성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처럼 느껴지고 그들의 인간관계에 대해 오해하기도 쉽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오랫동안 아주 깊게 살펴봐야만 그의 행동 방식, 동기, 감정 같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단다. 이런 이해는 많이 안다는 자만심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는 겸손에서 나오는 거야.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인디언 속담처럼 행여나 내 신발을 신어볼 마음이 들까? 그러길 간절히 바란다. 네가 그렇게 방과 방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 보기를, 정원의 호두나무에서 벚나무로, 벚나무에서 장미로, 장미에서 소나무로 수없이 왔다 갔다 해보기를 바란다. 날 동정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죽은 후 용서받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야. 단지 너와 너의 미래를 위해서란다. 거짓에 방해받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네가 존재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부터 이해해야 해. --- p.240~241 넌 세상 모든 것들의 안에도 있어 보고, 바깥에도 있어 봐야 해. 그래야 그늘과 휴식처를 제공할 수 있고, 너 자신도 적당한 계절에 무성한 잎들, 풍성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 그냥 아무길이나 들어서진 마. 내가 세상에 나오던 날 그랬듯이, 자신 있는 깊은 숨을 내쉬어 봐. 어떤 것에도 현혹당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기다려 보렴. 네 마음이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가거라. --- p.278~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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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엄마가 딸에게,
모든 여자가 여자에게 전하고 싶은 반짝이는 삶의 진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멀리 미국으로 떠나버린 손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할머니 올가. 혼자 남겨질 손녀를 위해 평생 동안 지켜왔던 비밀과 불행했던 삶, 여자가 여자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진실과 가족 간의 사랑을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부엌에 앉아 네가 쓰던 낡은 연습장을 펼쳤단다. 어려운 숙제를 하면서 연필 끝을 잘근잘근 깨무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구나. 유언장을 쓰는 거냐고? 그건 아니야. 내가 필요할 때마다 네가 꺼내 볼 수 있는, 몇 년이 지나도 네 곁에 머물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려 한단다. 걱정 말거라. 설교하려는 것도 아니고, 널 슬프게 하려는 것도 아니니까. 난 단지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야. 가슴과 가슴으로 나누는 대화 말이야. 우리가 서먹해지기 이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무거운 짐이 되곤 하더라. 나는 꽤 오래 살았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에 잘 알지. -본문 26~27쪽 중에서 35일간 써내려간 15통의 편지 안에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의 불행했던 성장, 나이든 남편과의 사랑 없는 결혼 생활,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랑, 딸의 출생의 비밀과 어긋난 관계, 딸의 죽음을 비롯하여 단 한번의 거짓말을 고백하며 손녀가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저자는 표피적으로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고 가족 관계의 심오함과 추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20~30대 여성들은 엄마들을 이해하게 되고, 엄마들은 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기회를 갖는다. 어머니는 노인이 된 후에야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어. 내 할머닌 어머니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삼 년 전에 아들, 그러니까 엄마의 오빠가 폐병으로 죽었어. 할머니는 아들이 죽은 뒤 곧바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 그 아이는 딸이었던 데다가 하필 아들이 죽었던 날짜에 태어난 거야. 그렇게 두 가지 불행한 우연 속에 태어난 내 어머니는 젖을 떼기 전에 상복부터 입어야 했단다. 아기의 요람 위에는 오빠의 커다란 초상화가 걸려 있었어. 눈을 뜰 때마다 어머니는 자신이 오빠의 빛바랜 복사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이해할 수 있겠니? 이쯤 되면 냉정하고, 바보 같은 선택 때문에 평생을 외롭게 살았다고 어떻게 그녀를 비난할 수 있겠니. 이렇게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또 어떤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될까? -본문 67~68쪽 중에서 이 책의 원서가 출간된 지 24년이 지났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과 치유의 힘은 여전하다. 어려울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가족 간의 사랑을 되새기게 해주며,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고 그들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에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절망과 외로움, 고독, 세대 간의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을 아름답게 그려냈으며, 작가 특유의 담백하고 서정적인 문체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공감대를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