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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물에 비친 달
一. 아침 새소리는 나를 깨우고 기쁨의 발견 ‘결정장애’ 극복을 위한 뜻밖의 제안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 아버지 우리가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 난이 군자가 된 사연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용기 기다림의 미학 옛 그림 톺아보기 1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二. 곳곳마다 핀 매화는 봄을 부르네 그 여름, 냇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바람이 분다, 바람을 본다 달에게 물어보자 별에서 온 신선 마음을 열면 친구가 되네 매화꽃 만발한 서재에서 만난 봄 균형이냐 대립이냐 옛 그림 톺아보기 2 기록의 힘, 역사의 창 三. 어지러운 세상에도 새 바람은 불어와 제복의 품격 새벽, 희망이 움트는 시간 의인이 그리운 시대 돈의 진정한 의미 만남의 즐거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마치며 옛 그림에서 길을 찾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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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그린 윤두서는 18세기 초의 대표적인 선비화가로, 우리 미술사에서 최초로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가만 보니 진단의 얼굴이 윤두서의 「자화상」과 닮았다. 어쩌면 훌륭한 군주를 맞게 된 진단의 기쁨을 윤두서 자신도 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p.19
그림 속 인물들은 바둑을 두기는 하지만 반드시 이기겠다는 마음은 없어 보인다. 사실 옛사람들은 승부를 가르기 위해서 바둑을 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바둑을 상대의 감정과 인격이 만나는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 해서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도 불렀다. --- p.30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지만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을 기회 또한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잘못된 선택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 p.33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부옹(負甕)」은 새우젓을 담은 독을 지게에 지고 팔러다니는 등짐장수를 그린 그림이다. 누군가 쓰다 버린 갓을 주워 쓴 듯한 잠방이 차림의 젊은이에게서, 짊어지고 있는 독만큼이나 무거운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등에 진 짐을 두 손으로 받치느라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내려와도 쓸어올릴 수 없다. 여기저기 떠돌며 장사를 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 p.36 한 자락 부드러운 바람이 살며시 지나간 듯 단아하면서도 격조를 살린 강세황의 묵란화를 보노라면 그윽한난향이 풍기는 것 같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난과 같은 고결한 인품을 유지했던 강세황의 삶을 염두에 둔다면, 이 그림은 그이 자화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p.57 광화문을 지날 때면, 늘 가슴이 뛴다. 인왕산 때문이다. 마침 비가 그친 후라면, 「인왕제색도」 그 자체를 현장에서 보는 감격에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저기 저 산을 좀 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 옛날 정선과 이병연이 보았을 인왕산을 보는 기쁨! 비에 젖은 인왕산이 화면 밖으로 나온 듯한 현장을 보는 즐거움! 내게는 이것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 p.94 바람은 수평으로 이동하면서 수직으로 서 있는 모든 것을 휘감기 때문에 대나무는 바람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대나무는 다시 곧게 설 것이다. 어쩌면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곧게 서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풍죽도(風竹圖)」에서 화가가 대나무의 주변 환경을 최대한 간결하게 처리한 것도 바람을 견뎌내는 대나무의 꿋꿋한 기상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 p.108 고려대학교박물관에는 강세황과 허필이 합작한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가 한 점 있다. 몇 년간 고려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강의 가는 날이면 박물관에 들러 이 그림을 감상하곤 했다. 하나의 부채 위에 왼쪽에는 허필이, 오른쪽에는 강세황이 산수화를 그린 작품이다. 사이좋게 각자의 방식으로 그린 산수화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데가 있어 서로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운 우정의 기운이 그림 밖으로까지 전해지는 듯해서 무척 행복했다. --- p.232 이하응의 「석란도」를 볼 때마다, 그가 말년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야망을 내려놓지 못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스승 김정희가 불가의 선(禪)을 실천하며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경지로 삶을 마감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권력에 대한 욕망에서 끝내 자유롭지 못했던 인간적 한계가 느껴져 씁쓸하기까지 하다. --- p.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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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옛사람의 마음
영화 「원더풀 라이프」와 김후신의 「통음대쾌도」, 미켈란젤로와 추사 김정희, 렘브란트와 계회도 등 지은이는 서로 다른 소재를 연결해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는 옛 그림 이야기를 펼친다. 조선 후기 화원화가 윤덕희의 「관기망초(觀基忘樵)」를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관기망초」는 산속에서 한 사내가 노인들이 바둑 두는 모습을 구경하는 그림인데, 지은이는 이 그림을 더 깊게 보기 위해 오래된 설화를 재독한다. 설화의 내용은 이렇다. 나무꾼이 무심코 두 백발노인이 바둑 둔 것을 잠시 구경했을 뿐인데 옆에 세워둔 도끼자루가 썩어버렸고, 심지어 마을로 내려오니 마을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에 놀란 나무꾼이 한 노인에게 자기 이름을 물으며 자초지종을 묻자, “그분은 저의 증조부 어른이십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설화에 착안해 지은이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조종사 쿠퍼가 지구로 돌아오니 자신의 딸이 노인이 되어 임종을 앞둔 장면을 오버랩하며 두 이야기의 우주관, 우주에 대한 신비와 동경이 예나 지금이나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작품 자체를 스토리텔링해 들려주는 대목은 옛 그림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소화한다. 주제마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우리 그림 이야기 이 책은 총 3부와 두 특집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아침 새소리는 나를 깨우고」에서는 ‘태도와 감정’을 키워드로 옛 그림과 일상을 교차시킨다. 가령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일화와 권용정의 「보부상」과 김득신의 「성하직구」, 영화 「국제시장」 등 자신의 이야기와 옛 그림, 대중매체를 오가며 풍성한 맥락에서 아버지와의 애틋하면서도 어색한 관계를 풀어내 공감을 준다. 2부 「곳곳마다 핀 매화는 봄을 부르네」에서는 ‘자연’을 대상으로 그린 옛 그림을 다룬다. 자칫 진경산수화 이야기로 치우치게 되는 조선회화가 아니라 ‘자연인’을 다룬 TV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듯 치유와 즐거움, 자연이 주는 에너지에 골자를 두었다. 3부 「어지러운 세상에도 새 바람은 불어와」는 ‘세상사’를 반영한 그림을 모았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즐겨본 지은이는 드라마 속 제복에 관심을 두다가 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채로운 의상을 떠올린다. 인물의 의상과 소품 등을 통해 당대 사회풍토를 짚어내며 제복에 대한 환상과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또한 ‘새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의유당 남씨의 「동명일기」, 조선의 인상주의 화가 강희언의 「북궐조무」, 조선의 마지막 화원화가 안중식의 「백악춘효」로부터 성장과 경쟁만이 전부인 양 달리는 사회에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넌지시 말한다. 각 부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에피소드 중심이라면, 특집 페이지는 지은이가 하나의 주제를 갖고 탐구한 내용을 다룬다. 첫번째 주제는 정선과 이병연의 우정에 관한 것으로, 정선의 『경교명승첩』을 기반으로 실제 장소를 답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두번째 특집은 조선왕실의 주요 행사를 기록한 ‘의궤(儀軌)’를 중심으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시사한다. 특집 부분은 에피소드 중심의 옛 그림 이야기와는 달리 심층적으로 주제를 파헤치고 있어, 옛 그림 전문가인 지은이 특유의 말맛과 인문학적 배경을 통해 오늘날에도 옛 그림이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다. 가뿐하게 읽는 ‘옛 그림’ 한 수 옛 그림을 친숙한 대중문화와 일상으로 자연스레 이끄는 이 책은 우리 옛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 색다른 지름길로 안내한다. 가뿐한 마음으로 정선과 김홍도와 같이 널리 알려진 그림부터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놀라운 그림 솜씨, 김후신, 이명기 등 다소 낯선 화가의 작품까지 두루 살피다보면 어느새 옛 그림이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더불어 오늘의 시각에서 옛 그림을 바라보며 스스로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물에 비친 달은 물일까? 달일까?’ 불교에서는 거울 속의 꽃과 물에 비친 달은 모두 환영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 위에 뜬 달은 허구의 세계, 한마디로 헛것이라는 뜻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하늘에 있는 달도 좋지만 물에 비친 달은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다. 본질이 중요하다면 현상도 의미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예술의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화가의 사유에 의해 탄생된 그림은 감상자가 지나온 삶의 경험과 만나면서 한번 더 깊은 차원으로 전개된다. 그림이 밤하늘에 뜬 달이라면, 감상자의 가슴속에서 일어난 감동은 물에 비친 달과 같다. 어쩌면 그림의 진정한 가치는 감상자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_본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