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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1 아프리카, 유목에서 정착까지 방랑을 그만두기로 하다 2 베르사유 궁전과 채소밭 정원 최초의 정원술을 만나다 3 발리, 그리고 동양의 수직정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리키다 4 낭만주의 시대 프랑스 정원들 중요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예술이였다 5 밤의 정원들 어둠 속에 빛나는 꿈 6 인도 자타르 만타르, 별들의 정원 우주를 향해 질문을 던지다 7 호주 탑엔드, 최후의 정원 정원의 부재와 정원의 미래 8 달팽이의 꿈 인간은 어떻게 자연가 화해할 것인가 9 포인트 카드 어느 정원사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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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야 강가의 피그미족 야영지는 진짜 야영지가 아니었다. 사라질 운명에 처한 야영지가 아니라 사실은 일종의 전진기지로서 처음으로 정착을 시도한 마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 침투한 정착수단들을 알고 있다. 알코올과 마약, 슈퍼마켓 말이다. 원주민 거주지역이라는 자의적인 이름이 붙여지기에는 자못 광대한 영토 안에 이 모든 것이 있다. 그리고 이 거주지역에서 원주민 부족은 정착수단의 원조를 받아 정체성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아프리카, 유목에서 정착까지」중에서 “다른 사람의 손을 자기 팔 끝에 올려놓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다.” 루소는 데제르(D?sert) 초가집에서 이 문장을 마음에 새겼다. 에르므농빌(Ermenonville) 공원 안에 있는 이 야생 상태의 데제르 초가집에는 햇볕이 잘 들었다. 루소와 달리, 나는 황량하지(d?sertique) 않으면 않을수록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한다. ---「낭만주의 시대 프랑스 정원들」 중에서 사람들은 인간에게 존재하는 예술적 급진성에 충격을 받은 상태로 쇼베 동굴에서 나온다. 이 오래되고 항구적인 증언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자기 후손들에게 물려준 것 중에서 예술과 그것의 문제제기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갈고리에서 평면스크린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명의 성과는 시선의 중요성이라는 오직 한 가지를 표현하기 위한 기술적 수식에 불과할 뿐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밤의 정원들」중에서 달팽이는 자기가 사는 환경 속에 존재하는 독성물질을 자신의 껍질 속에 축적한다. 하나의 건물을, 즉 자기 집을 위해 독성물질을 저장하면서 동시에 내버리는 것이다. 나무는 위로 솟으면서 줄기를 만들어낸다. 이 줄기는 불활성인 식물성 폐기물로 간주되는 목질소 침착물로서, 처음에는 철탑 모양이었다가 건물 모양으로 변한다. ---「달팽이의 꿈」중에서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비록 대수롭지 않고 국지적인 것이라 할지라도)는 지구의 전반적인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새로운 인식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진정한 사상의 혁명을 일으켰다. 20세기 후반기까지만 해도 정원사는 정원의 생산(꽃, 과일, 채소)과 건축의 책임자로 간주되었다. …… 20세기 말부터 제3의 임무가 생산자?건축가에게 덧붙여졌다. 그것은 바로 사명감으로서, 막중한 책임이 주어지는 임무다. 즉 앞으로 정원사는 종들을 보호하고 생명을 보호해야만 하는 것이다. 정원사는 자기가 이렇게 해야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역할을 맡도록 교육받지는 않았던 것이다. ---「달팽이의 꿈」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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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들은 왜 정원을 만들지 않을까?
문명이 자연을 위협하는 이 시대 인간은 어떤 정원을 만들어야 하는가? 채소밭에서 시작된 유구한 정원의 역사의 모든 것. 농약에 중독되었던 소년, 낙원을 찾아 떠나다 1992년 파리, 자동차 회사 시트로엥의 옛 공장 부지 23만 평이 시민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1971년 파리 시의 부지 매입 후 20여 년 만에 ‘21세기를 위한 정원’ 앙드레 시트로엥 공원이 태어난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질 클레망은 국제 공모전을 통해 앙드레 시트로엥 공원의 조경을 맡게 되는데, 그는 이 공원을 통해 ‘움직이는 정원’이라는 혁신적인 정원 개념을 구현했다. ‘움직이는 정원’은 자연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정원이다. 정원사는 자연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최소한의 역할로 조정자에 머무른다. ‘움직이는 정원’은 조경사의 부지런함과 기계의 도움 대신 생물학적인 깊은 지식으로 관리된다. 이 개념의 창안자인 질 클레망은 식물학자이자 곤충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움직이는 정원(Gardens in Movement)’, ‘제3의 풍경(The Third Landscape)', ‘지구 정원(The Planetary Garden)’ 등의 이론을 창안하고 세계 각지에 생태적 정원을 조성해왔다. 아버지의 정원에서 농약에 중독되어 이틀간 혼수상태에 빠졌던 소년 질 클레망. 그 강렬한 체험은 그를 독창적인 생태주의 정원 이론가로 이끌었다. 그는 2011년 말부터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큰 영예로 알려진 콜레주 드 프랑스(Coll?ge de France)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이 책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유토피아니스트” 질 클레망의 전세계 정원의 순례기이다. 아프리카 피그미 정착민의 작은 채소밭부터 우주를 지향한 인도의 잔타르 만타르… 자연 속에서 낙원과 은신처를 꿈꾸었던 인간의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를 깊고 아름다운 사유로 안내한다. 왕의 채소밭, 루소의 정원, 수직 정원, 별들의 정원… 황홀한 낙원들의 비밀 『정원으로 가는 길』은 1974년 아프리카 피그미족 정착마을 탐방에서부터 시작된다. 아프리카의 희귀 나방을 찾기 위한 여행에서 저자는 피그미족의 도움을 받던 중 우연히 ‘최초의 정원’을 발견한다. 피그미족 정착민의 정원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초기적인 형태의 정원이었다. 동시에 가장 인상적인 정원이기도 했다.” 땅콩 세 그루와 카사바 다섯 그루, 바나나나무, 토란… 따위를 보호하기 위해 대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초라한 정원은 유목을 그만두기로 한 인류 최초의 정원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1장 「아프리카, 유목에서 정착까지」) 채소밭이라고 해서 산출만을 기대해야 할까?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정원의 하나인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역시 채소밭 정원이다. ‘왕의 채소밭’에 설치된 분수는 “왕의 식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인 이곳의 생산물 전체가 베르사유성의 위엄 및 호사와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제2장 「베르사유 궁전과 채소밭 정원」) 인도네시아 발리로 간 저자는 그곳에서 다양한 동양 정원을 함께 불러낸다. 형식적 외관 속에 포함되지 않는 ‘정신의 정원’을 추구하는 발리와 중국, 일본 등지의 정원을 소개하며 이곳에 깊이 매료되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아시의 정신적 정원을 규모와 면적에 치중하는 서양식 사고에 대비하여 ‘수직적 정원’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같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문명은 정신적 여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인간에게서 끌어내기로 한 반면 이미지에 매혹된 또 다른 문명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복잡한 외형에 만족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제3장 「발리, 그리고 동양의 수직 정원」) 서양에서도 정통 낭만주의 시대인 18세기 말부터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예찬한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자신에게 헌정된 에르므농빌(Ermenonville) 정원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 상징적이다. 1778년 6월에 그곳에 간 루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의 가슴은 거기에 가기를 욕망했다. 그리고 나의 두 눈은 거기 계속 머무르기를 원했다”고 감탄했고, 6주 뒤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거의 1세기 전 베르사유가 자연을 지배하려 했다면, 에르므농빌은 자연을 적응시키려고 했다. 현대의 생태주의가 싹트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정통 낭만주의시대였다. 하지만 “자연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건 아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4장 「낭만주의 시대 프랑스 정원들」) 정원과 동굴, 어떤 연관성을 느끼기 어렵다. 저자도 썼지만 어떤 정원의 역사에도 동굴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동굴을 만들었다. 질 클레망은 피렌체 피티궁의 보볼리 동굴, 프랑스 튈르리궁의 사라진 동굴, 뤽상부르 공원의 메디치 동굴, 이믅리아 보마르조 정원의 ‘지옥의 문’ 등 매혹적인 동굴로 우리를 안내한다. 무엇보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동굴은 최근에 발견된 선사시대 동굴유적 쇼베(Chauvet)동굴이다. 그곳에 그려진 말, 소, 코뿔소 등에 감동한 그는 이렇게 묻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품 진열실이 된 이 동굴에서 살았던 이 옛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어쩌면 이 작품들은 위험에 처한 생물학적 다양성의 미래가 문제시되는 불안한 세계의 관객들인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들을 매혹했던 매머드의 나선 모양 엄니와 털이 많은 코뿔소의 피막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제5장 「밤의 정원들」) 별들을 숭배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원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인도의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다. 1724년에 천체관측을 위해 만들어진 이 장엄한 건축물의 정원에 대해 저자는 “그 어떤 정원이 이처럼 대담한 질문을 멀리까지 던질 수 있을까?” 경탄한다. (제6장 「인도 잔타르 만타르, 별들의 정원」) 베란다 채소밭과 테마파크 사이, 우리는 어떤 정원을 꿈꾸는가? 시간과 동서양 공간을 넘나드는 질 클레망의 여행은 호주의 험하고 척박한 지역 록하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이곳에는 정원이 없기 때문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호주는 백인들이 이주하면서 원주민들을 땅에서 몰아내고 대량학살한 잔혹사의 땅이다. 질 클레망은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 정착민촌을 이룬 록하트 강의 원주민들이 정원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른 호주 원주민들에게도 ‘정원의 부재’는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수년간 ‘정원의 부재’라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던 그에게 해답은 「꿈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찾아왔다.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라고 시작하는 이 시는 “그리고 천지창조의 꿈을 꾸어/ 피곤해진/ 생명의 정령은 땅 속으로 들어갔네/ 휴식을 취하기 위해”라는 대목에서 ‘정원의 부재’가 곧 ‘정원의 뿌리’임을 일깨워주었다. “거기서 쉬고 있는 정령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과연 어떻게 땅을 갈고 땅을 열고 땅에 상처를 입힌단 말인가? 호주 원주민에게 있어 서양이 이해하는 의미의 정원을 만든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제7장 「호주 탑엔드, 최후의 정원」) 세계 정원 순례의 끝에 질 클레망은 달팽이를 이야기한다. “달팽이는 자기가 사는 환경 속에 존재하는 독성물질을 자신의 껍질 속에 축적한다. 하나의 건물을, 즉 자기 집을 위해 독성물질을 저장하면서 동시에 내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이 제안하는 무상의 기술적 지원, 생태적 가능성은 하나 둘이 아니다. 아프리카 아카시아는 잎을 쓰디쓴 탄닌으로 채워 잎을 너무 오래 뜯어먹는 초식동물을 물리친다. 동시에 이 아카시아는 에틸렌 가스를 방출하여 주변의 아카시아 나무들에게 경고 신호를 보낸다. 이 장치 덕분에 아카시아 개체군은 초식동물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보호한다. 원시림의 나무들은 서로의 공간을 조정하면서 잎을 틔운다. 과학자들은 이를 ‘수줍음의 틈’이라고 부르는데 인간이 정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제8장 「달팽이의 꿈」) 『정원으로 가는 길』은 200쪽도 안 되는 작고 짧은 책이지만, 조경사이자 생태학자이며 자신의 경험을 에세이와 소설작품으로 발표하는 작가(이 책의 제9장 「포인트 카드」는 단편소설)이기도 한 질 클레망이 정원과 함께한 반 세기의 체험과 사유를 함축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정원 중 저자는 동양의 정원에 깊은 애정과 존경을 드러낸다. 이 책의 한국어판 인쇄를 앞둔 3월 말 저자가 새로 써 보내온 서문의 주제는 경복궁이었다. 그는 “유럽에서는 낯설기만 할 어떤 물건들을 찾아 내려고 애쓰는 대신, 마루 아래 설치된 저 놀라운 난방장치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구들을 가리켜 “그것은 말하지 않고서도 편안함을 창시하는 우아한 방식”이라고 감탄한다. 서구의 존경받는 철학자의 감탄에 동양은 자부심만을 느껴야 할까? 지구의 어느 반대편에서 그토록 찾아헤맨 지혜의 샘물을 집요하게 오염시키고 있는 건 누구인가? 정원의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모든 정원은 ‘낙원을 추구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원으로 가는 길은 도시생활의 긴장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