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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어디에 가지 않아도, 무엇을 사지 않아도, 함께하지 않아도
이민주
비사이드 2018.12.19.
베스트
그림 에세이 top100 1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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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라테에 바닐라 시럽 추가

#01 햇볕이 따스해서 #02 피할 수 있다면 피하기 #03 여행의 다른 말 #04 보물을 공유하는 마음 #05 배드 모닝 #06 어쩌다 보니 #07 난로 한 장 #08 마음이 건강합니다 #09 고요의 위로 #10 첫눈을 기다려요

#11 밤이라서 그래 #12 겨울 예찬론 #13 10년 뒤에도 변치 않길 #14 실수 #15 비온 뒤 맑음
#16 가만히 있어도 좋아 #17 각자의 바쁨 #18 한숨의 무게 #19 혼자만의 시간 #20 설렘 반 기대 반

#21 그날의 섬유유연제 #22 빵 투어 #23 오늘은 하늘이 참 예쁘다 #24 가을이 오는 소리 #25 쫓기는 세상
#26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괜찮은 식탁 #27 울어버린 종이 #28 자연 속 미술관 #29 상상은 또 다른 상상을
#30 여유 한 잔

#31 매일하는 후회 #32 웃을 수만 있다면 #33 비가 내려서 음악이 흐른다 #34 단순해서 좋아 #35 백색소음
#36 사막 #37 오월에서 유월사이 #38 흐름에 대한 원망 #39 지나치지 않는 사람 #40 행복이 클 필요는 없으니까요
#41 진심이 오갈 때 #42 무너진 모래성 #43 위로를 건네주세요 #44 My Favorite Things #45 끈적끈적
#46 친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47 상대적 능력자 #48 여름의 행복 #49 모른 척 #50 셀프 카메라를 쓰지 않고 나를 기록하는 법

#51 우리 것이 좋은 것 #52 추억은 향긋해 #53 잘자요 #54 양면 색종이 #55 소심한 사람의 관심 표현법
#56 지나간 것들로 지나간 날을 추억한다 #57 행복에 에너지 쏟지 않기 #58 뾰루지 #59 톡톡톡 #60 소생술사

#61 우리 집은 휴양지 #62 챔피언 #63 두 번은 없을 #64 내일은 어떤 것이 좋아질까 #65 천체관측
#66 섬광 #67 추억은 불고기 버거 소스 맛 #68 태양처럼 #69 안경을 씁니다 #70 앙상블

#71 그리움을 품는다 #72 사랑의 웃음소리, 히히호호 #73 꼬마전구는 작지 않아요 #74 엄마 말을 잘 들었습니다 #75 각자의 방식 #76 가벼운 슬픔은 없다는 걸 #77 용기있는 자가 되기는 어렵다 #78 진실은 무거우니까 #79 겨울의 행복 #80 개미는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81 틈 #82 비눗방울은 금방 터지니까 #83 인연은 어느날 유성우처럼 다가와 #84 맥주의 맛 #85 적당한 온도 #86 토닥 토닥 #87 목욕 #88 꿈 일기 #89 빗줄기가 필요해 #90 적당히, 평범하게

#91 삐뚤어진 선을 따라 #92 다음은 내 차례 #93 나는 여기에서,너는 반대편에서 출발하여 만났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94 비행기 모드 #95 내 멋대로 #96 좋아하게 될 수도 #97 버스는 피곤을 싣고 #98 햇볕을 기다리며 #99 봄의 알람이 울립니다 #100 꿈과 현실의 동기화?

저자 소개 1

무궁화(無窮畵)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 처음부터 영화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연히 접한 한 편의 영화 덕분에 영화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영화를 보고, 기록하고, 그리는 일에 큰 관심이 생겼다. 우리의 일상이 이미 영화 같다는 생각으로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서도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의 장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인 기록들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소박한 바람과 함께. 최근에는 회사에 들어가 디자이너로 일하며 평범하지만 특별한 자기만의 시퀀스를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 처음부터 영화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연히 접한 한 편의 영화 덕분에 영화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영화를 보고, 기록하고, 그리는 일에 큰 관심이 생겼다. 우리의 일상이 이미 영화 같다는 생각으로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서도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의 장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인 기록들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소박한 바람과 함께. 최근에는 회사에 들어가 디자이너로 일하며 평범하지만 특별한 자기만의 시퀀스를 새롭게 만들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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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98g | 135*205*20mm
ISBN13
9788960516762

책 속으로

어른이 되면 모든 일에 당당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할 말이 있으면 눈을 맞추고 제대로 이야기하고,
이건 아니다 싶은 게 있으면 아니라고 어엿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어른이 되고 나니 모든 일에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말의 의도가 잘못 전달되면 어떡하나 고민하다 입을 닫아 버리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 뒤로 숨어 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꾹꾹 눌러 낸다.
버티기 힘든 날이 찾아와도 그저 참고 또 참는다.
소란스러운 길을 지나가는 것보단 조용한 길을 지나가는 게 좋으니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기」중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유명한 맛집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맛을 본다.
좋은 카페가 있다는 소식에 먼 거리를 감수하고 발걸음을 한다.
행복하려면 부지런해야 하는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을러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행복을 얻으려면 집 밖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웠고, 그렇기 때문에 발견한 행복이 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주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매일 숨 가쁘게 보내다 마주하는 이 시간은 생각보다 더 달콤해서,
그 속에 녹아들고 싶게 만든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나른해
눈꺼풀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면 그냥 그대로 눈을 감고 있어도 된다.
그저 주어진 여유를 누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시간이 아니면 만나지 못할 행복이 스며 있다.
바깥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알 수 없는 행복이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특별한 계획이나 약속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 방 창문 밖의 아름다운 하늘이 주는 행복도 그에 못지않으니까.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하늘의 색과 구름의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딘가에서 벗어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다 스르르 잠들어 버리면, 그게 그날의 행복인 거다.
부지런하지 않아도 참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가만히 있어도 좋아」중에서

그동안 나는 빵보다는 밥이고,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주장하며
밥 애호가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세월이 무색하게 집 밖을 나서면,
빵을 탐색하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동네마다 특별한 맛을 자랑하는 빵집도 많고,
커피와 빵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카페도 많아
빵을 탐색하기에 어렵지가 않다.
어딜 가도 맛있는 빵 냄새가 솔솔 나는 탓에 하나둘 맛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빵의 맛.
담백하거나 짭짤한 맛을 좋아하는 나는 바게트나 깜빠뉴,
치아바타를 사랑하게 되었고 발 도장을 찍은 빵집이 늘어나면서
나만의 빵집 리스트를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왕십리에 가면 플레인 치아바타와 올리브 치아바타,
상수에 가면 바질 크런치, 도산공원에 가면 버터 프레츨.
빵을 사랑하게 된 후부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겁다.
집을 벗어나 특별한 음식을 먹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가끔 허전함이 밀려오곤 했는데,
이제는 ‘오늘은 또 어떤 빵을 발견하게 될까?’ 하는
소소한 기쁨이 하나 생겼다.
자주 갈 수 없으니 한가득 사 오는 탓에 팔이 좀 아파도,
빵을 사 오는 날은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빵 투어」중에서

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 불협화음은 피하도록 한다.
클래식을 말하고 싶은데 펑크록을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려우니까.
펑크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클래식을 말하면
궁금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강요하는 것이 되니까.
반대로 클래식이 클래식을 만나면 아름다운 화음이 생긴다.
“당신도 이걸 좋아하는군요. 저도요! 혹시 이것도 좋아하나요?”
“와! 이걸 알고 있네요! 제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유쾌한 앙상블이 생긴다.
웃음소리가 늘어나고, 한 시간이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대화가
두 시간이 되고 세 시간이 된다.
나와 앙상블을 함께해 주는 사람, 이게 바로 인연 아닐까. ---「앙상블」중에서

따뜻한 물에 추위를 벗어 던지고, 물의 온기가 남은 몸으로
가장 따뜻한 곳에 앉는다. 양손 가득 귤을 가져와 손끝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귤을 까먹으면, 겨울에 맛보는 최고의 순간 완성. ---「겨울의 행복」중에서

무척 뜨거웠던 여름날, 문득 맥주 맛이 궁금해졌다.
답답한 속이 풀어진다는 말이 진실인지 알고 싶었다.
무더운 그날의 날씨 탓이었는지, 아니면 즐겨 봤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맥주 마시는 장면에 마음이 동한 탓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술에 관심도 없고, 술 마실 일을 만들지도 않아서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그 맛을 모르고 지냈다.
한번은 술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그거 마시면 진짜 속이 시원해?”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묻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궁금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해 여름은 유독 맥주를 마시면
속이 시원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청춘시대]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는데,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어둠 속에서 드라마를 보곤 했다.
그런데 한 캐릭터가 유독 마음을 콕콕 찔렀다.
힘들고 벅찬 매일을 견뎌 내면서 일주일에 딱 한 번
네 캔에 만 원짜리 편의점 맥주에 기대는 주인공 ‘진명’이.
그날은 진명처럼 나도 맥주에 기대어 보고 싶었다.
그 여름의 나는 의지할 데가 없어 많이 힘들었으니까.
기댈 곳이 없다는 건 내 세상을 차지하지 않던 것까지
원하게 되고 떠올리게 만드는 걸까.
그 여름 맥주를 마셔 봤느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내 대답은 아니다.
외롭게 사는 것에 익숙하고, 꾹꾹 담아 두는 것에 익숙한 나는 여전히
어쩌다 마주치는 시원한 맥주 광고를 보며 상상에 맡기고 있다.
그런대로 살 만한가 보다. ---「맥주의 맛」중에서

나는 내가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말하는 평범하게 사는 일이란 보통을 유지하는 삶이다.
특별히 화나는 일, 짜증 나는 일, 슬퍼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마음 요동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잠깐 쏟아지는 소나기이길 간절히 원한다.
끙끙 앓게 만드는 일만 아니면 소나기는 얼마든지 맞을 수 있다.
사는 동안 나쁜 일 한번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니까.
나를 뒤흔들어 버리는 큰일만 아니면 된다.
대신 아주 큰 행복도 기대하지 않기로 한다.
행복도 적당히, 슬픔도 적당히.
적당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돌멩이 하나 던져도 금세 잔잔해지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살아가기를 원한다.

---「적당히, 평범하게」중에서

출판사 리뷰

“카페 라테에 바닐라 시럽 추가,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어요.”

‘아무 일’ 없던 날에도 ‘특별한 순간’은 있었다.
스물다섯, 방구석 일러스트레이터 무궁화의 ‘일상 수집 에세이’


학교에서, 알바에서, 직장에서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 오늘도 고생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사고, 어딘가를 가고, 누군가와 함께하려 한다. 소확행(小確幸)을 추구하는 것은 이제 한때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니라 ‘소비는 확실한 행복을 준다’의 줄임말에 가까운 ‘소확행’이 우리를 진짜 행복하게 만들고 있긴 한 걸까? 붙여넣기라도 한 듯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 인스타그램 피드 속 사람들처럼 매일같이 맛집을 가고, 명품을 사고, 여행을 떠나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우리는 왜 그래야만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유명한 맛집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맛을 본다. 좋은 카페가 있다는 소식에 먼 거리를 감수하고 발걸음을 한다. 행복하려면 부지런해야 하는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을러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행복을 얻으려면 집 밖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웠고, 그렇기 때문에 발견한 행복이 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주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매일 숨 가쁘게 보내다 마주하는 이 시간은 생각보다 더 달콤해서, 그 속에 녹아들고 싶게 만든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나른해 눈꺼풀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면 그냥 그대로 눈을 감고 있어도 된다. 그저 주어진 여유를 누리는 것이다. - 38~39쪽, 「16 가만히 있어도 좋아」

일러스트레이터 이민주(@mugung.hwa)의 그림은 환상적이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저 햇볕이 나른한 오후에 꾸벅꾸벅 졸고, 허전함을 느끼는 날엔 카페 라테에 바닐라 시럽을 추가하고, 덥디더운 여름에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있는 장면들, 사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행복의 순간들을 수집해 색연필로 꼼꼼히 칠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림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무엇을 사고, 어딜 가야만 행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일상 속의 이 기분, 그동안 잊고 있었어요’와 같은 댓글이 달리면서 순식간에 팔로워 수가 수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깊은 사랑을 표했던 그림을 고르고 골랐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 ‘P.S’를 덧붙이듯 글을 하나씩 붙이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인 그녀의 글과 그림이 말하는 행복이란 너무나 사소해서 사진으로 남길 수도 없고, 남에게 증명할 필요 없는 오롯이 나만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스마트폰을 내려두게 하고, 우리를 다시금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SNS 해독’ 에세이다.

‘이거 해 봤어?’ 물어보면, ‘해 본 적 없어’라는 대답이 열에 아홉인 인생.
그래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을.


하루하루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어린 시절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깨닫는 사실이 있다. ‘남들 하는 거 다 하면서 사는 게 제일 어렵다’는 것. 일러스트레이터 이민주도 그랬다. 대학 시절 과제에, 알바에, 작업에 치여 학교를 땡땡이친 적도 없고, 배낭여행은커녕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정도의 외박도 해본 적이 없다. 일탈이라고는 할 일을 살짝 미룬 채 눈을 질끈 감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정도였던 그녀.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남는 게 있을까? 못 해 본 게 너무 많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해본 게 적다는 것이, 재미를 모른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하지만 무턱대고 남들 다하는 것을 다 따라 할 순 없었다. 맥주 맛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마시면 즐겁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그녀는 주변에 있는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온 얼굴로 맞으며 바깥 구경하기, 새벽 네 시에 풀벌레 소리 감상하기, 좋아하는 음식 먹고 싶으면 바로 먹어 버리기 같은 것들을요.
어렴풋하긴 해도 분명하게 행복해지는 일은 있어요. 찾아보니 그런 일이 참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처럼 어느 순간 삶이 재미없게 느껴진다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행복을 찾아 주세요. 바닐라 라테를 마시면서. -프롤로그 중에서

베란다에서 풍겨오는 섬유유연제의 냄새를 맡으며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빵집을 투어하면서 나만의 ‘빵집 리스트’를 만든다. 예전에는 싫어했던 생크림케이크와 애호박이 좋아진 것에 화들짝 놀라며 호불호가 명확했던 자신이 ‘두루뭉술’해진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끔찍이 싫어했던 비 오는 날, 자욱한 안개가 만들어준 운치에 반해서 이제 비오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간, 장소, 음식, 사람, 장소, 공기, 냄새, 소리를 찾는 건 동시에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 남들 하는 거 다한다고 해서 나도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남들의 ‘좋아요’가 아니라 내가 ‘좋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잘 살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그림 선생님, 영화 포스터 그림 작가 , 리릭비디오 아티스트, 문구 브랜드 디자이너 무궁화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스물다섯, 이민주


대학 시절에 이미 자신의 길을 정하고 혼자서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별명이 ‘개미’였을 만큼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스물다섯 살인 지금, 영화 「델마와 루이스」 「허스토리」 「친애하는 우리 아이」의 일러스트 포스터, 가수 다비치 「나에게 넌」 리릭비디오의 아트워크를 담당하는 등 이미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브라운포레스트’라는 자신의 문구 브랜드도 론칭했다. 그러나 늘 자신의 길을 확신했던 것은 아니다. 혼자 일한다는 건 아티스트에게는 자유를 줬지만, 생활인 이민주에게는 누군가 정해준 룰도 기준도 없는 불안한 나날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는 과제를 주었으니까.

금방 터져 버리고 말 비눗방울 같은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나도 친구들처럼 취업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저는 그림을 그리고 살 생각입니다”했는지는 모르겠다. 막연히 내가 잘 해낼 것 같았다.‘지금껏 혼자서도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혼자서 잘하겠지.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을 계속 하고 싶으니까.’ 흔들리다가도 금세 제자리를 잡았다. - 172쪽, 「82 비눗방울은 금방 터지니까」

여전히 앞길에 대한 확신은 없다. 취업 자리를 다 거절하고 혼자 일하겠다고 말한 자신을 칭찬하는 대학 동기의 문자에 마구 불안해져 반나절을 웅크리고 있기도 한다. 좁은 인간관계를 고민하며 온통 빈말뿐인 안부 문자들에 상처받기도 하고,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유로워서 좋겠다’는 말을 들으면 불쑥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만화영화 「짱구를 못말려」를 보면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따뜻한 방바닥에 앉아 귤을 까먹고, 조용한 방 안에서 나는 책장 넘기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세를 고쳐 앉아, 색연필을 들고 정직하고 반듯하게 정성을 꾹꾹 눌러 담아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제는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토록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해낸 사람은, 어떤 혼란이 와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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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주 "사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행복"
    이민주 "사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행복"
    20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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