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전남 장성 출생. 호는 초성(焦星)·수산(水山). 필명으로 소춘(小春), 정로생(正路生)과 함께 S. K라는 영어 이니셜도 사용하였다. 목포공립심상고등소학교, 일본 구마모토 현립(態本縣立) 농업학교를 졸업. 1920년 와세다(早稻田)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0년 최초의 근대극 단체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를 조직. 1921년 동우회 순회연극단을 만들어 연출가로서 활약했다. 1924년 이후 <정오> <산돼지> <이영녀> <두덕이 시인의 환멸> <난파> 등 5편의 뛰어난 희곡작품을 발표했다. 같은 시기에 시·희곡창작·평론에 몰두해 48편의 시와 5편의 희곡, 20여 편의 평론을 썼다. 한국 최초로 유진 오닐, 피란델로, 차페크 등 극작가를 소개했으며 최초로 표현주의 희곡도 썼다. 1926년 8월 가수 윤심덕(尹心悳)과 현해탄에서 정사(情死)했다. 김우진은 해박한 식견과 선구적 비평안을 가지고 당대 연극계와 문단에 탁월한 이론을 제시한 평론가이며, 최초로 신극운동을 일으킨 연극운동가로 평가된다. 특히 희곡은 주로 가정과 사회의 인습에 의해 불행한 결말을 맞는 여성 혹은 예술가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표현주의극의 요소를 도입하여 새로운 극 형식의 창출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