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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깊은 물일수록 잔잔하다
뉴스가 중요하지만, 훈화도 중요하다 7 두터운 우애, 효성에서 비롯된 듯 10 2부 | “성원아, 할아버지·할머니도 지켜보신다” 국민학교 입학, 이름 때문에 1년 늦어져 16 이래저래 서울의 중학교에 못 가게 되고… 20 두 마리 토끼 다 놓치는 바람에 고향으로 23 첫 공직 생활, 밤길 자전거 타다 다치기도 27 대통령 방문 소식에 전투처럼 도로변 단장 31 스승 같은 선배들 덕에 공직 생활 큰 도움 34 아버지는 영원한 나의 영웅 37 “얘야, 나 돈 한 푼 없다” 40 아들의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43 눈물겨운 아내의 모성애 46 3부 | 우리 형제, 가난해도 나눌 줄 안다 중학교에 가기 위한 송아지 키우기 52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 뒤늦게 고교 입학 55 제대한 지 하루 만에 공직 복귀 59 사표 내고 흘렸던 눈물, 나중엔 보약 62 비서실 직원은 머슴 중에서도 상머슴 66 영광스러운 공직 생활, 공기업 CEO까지 74 아버지의 술자리 예절과 왼손의 의미 78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얻기까지 82 손주 재롱에 피곤 모르는 할아버지 되다 85 신춘문예 당선에 부모님은 외려 속이 상해 89 맹꽁이, 맹꽁이 서당, 맹꽁이 타령 93 완장은 권력이 아니라 봉사의 표식 96 비고시 출신의 한탄, 역지사지 아쉽다 99 첫 주례 경험과 자기반성 104 구제역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107 조촐한 어머니 칠순 잔칫상, 두고두고 죄송 110 외국서 듣게 된 어머니 세상 하직 소식 112 묘역은 망자와 산 자의 쉼터 116 어버이가 자식 봉양 기다리진 않는다 119 4부 | 기자 됐다고 그 가난에도 차를 사주시고… 자주 바뀐 선생님들, 불편한 ‘스승의 날’ 124 여러 유형의 선생님, 물거품이 된 교사 꿈 127 정신 번쩍 들게 한 어머니의 소풍 도시락 131 어떤 맛도 어린 시절 미각에는 못미처 135 불호령 아버지, 막내에게만 예외 139 아, 아버지! 143 “어머니, 부지깽이가 그립습니다” 147 맨손 고기잡이 손맛 짜릿, 어린 조카도 ‘짱’ 151 기자 생활, 놀아도 노는 게 아니다 154 부전자전, 나도 자식에게 공부하라 안 해 158 5부 | “내게 진 빚은 네 자식에게 갚아!” 음식 맛있으면 어머니 생각 되살아난다 166 “내 부모 욕하는 놈은 용서할 수 없다” 169 철없던 고교 시절, 그러고 재수·삼수까지… 172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175 신났던 대학 시절과 재미없는 회사 생활 177 힘겨운 유학, 서른셋에 다시 신입사원 180 드디어 애니메이션 연출가가 되다 183 딸 잘 키우는 게 어머니 빚 갚는 일 186 자개장롱, 어머니에게는 보물이었지만… 189 아버지와 함께 먹은 돼지고기구이가 최고 191 옥수수는 내게 단순히 간식거리가 아니다 193 [터닝 메카드] 감독으로 등극하다 195 부인들 이야기 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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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살아오면서 가장 걱정 없이 보낸 행복한 때가 바로 유년기가 아닐까, 나의 유소년 시절은 정서적인 풍요가 넘치는 시기였다.
---「국민학교 입학, 이름 때문에 1년 늦어져」중에서 나에게 아버지는 영원한 영웅이시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6남매를 모두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고, 나름의 위치에서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거인 같은 존재이셨다. 아버지는 평생토록 하지 않은 세 가지가 일이 있으시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화투 같은 놀음을 하지 않으셨다. 운전도 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전거조차 타지 않으셨다. 동이 트면 으레 동네를 한 바퀴를 걸어서 돌아보신 후에 아침 식사 시각에 맞추어 돌아오시는 것으로 하루를 열곤 하셨다. 한가위와 설 명절에는 집에서 두부를 만들었는데, 밖에 나가셨다가도 순두부를 먹을 때쯤이면 신기하게 거의 정확하게 집에 돌아오셨던 일도 생각난다. ---「아버지는 영원한 나의 영웅」중에서 책임을 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책임을 회피하거나 감추는 일은 비겁하다. 사표를 내고 눈물을 흘렸던 일은, 공직의 길을 걷는 동안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보약이었다. ---「사표 내고 흘렸던 눈물, 나중엔 보약」중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는 빚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로서 변변히 놀아준 일이 없고 신경을 써 준 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바쁜 부서에서만 일하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했다. 특히, 관선 시절 도지사 비서실에서 6년여 일할 때는 명절 때를 빼곤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아들이 국민학교 때 부산, 중학교 때 동해안으로 함께 여행한 것 빼고는 같이 먼 곳으로 떠나 본 적이 없다. 틈틈이 외식한다든지 공놀이를 하는 정도로 놀아주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아버지로서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중략 결혼식을 마치고 아프리카 모리셔스로 신혼여행을 하고 온 아들과 며느리는 알콩달콩 잘살고 있다. 딸 같은 며느리가 생겼다는 사실은 참으로 좋은 일, 손자와 손녀가 1명씩 태어나고 나는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손주들의 재롱에 세상 피곤한 줄 모르고 지낸다. 새로운 가족과 오래도록 화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손주 재롱에 피곤 모르는 할아버지 되다」중에서 국민의 머슴인 공무원은 ‘망설이면서 겨울에 냇물을 건너듯이,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 낮은 몸짓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다. 다산 선생은 세상에는 옳고 그름의 저울, 이로움과 해로움의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고 했다. 공직생활 동안 나는 늘 한결같이 절제하면서 올곧은 삶을 지키려 발버둥 쳤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보편타당성이 있는 일반적인 잣대와 살아가는 도리를 훼손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성을 기울여왔다고 자신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하면 올바르고 현명한 판단이 나오고, 자기관리 잘하고 청렴하면 늘 당당하고 위엄이 생긴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공직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하지만 어머니의 칠순 잔치를 못 해 드린 것은, 자식 된 도리를 못 한 일이라는 아쉬움으로 두고두고 가슴속에 남는다. ---「조촐한 어머니 칠순 잔칫상, 두고두고 죄송」중에서 국민학교 때는 어머니가 1학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소풍에 같이 가지 못하셨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4남 2녀를 키워야 하는 녹록하지 못한 처지가 동행을 막았을 것이다. 소풍은 늘 혼자였고, 손 위 누나가 의지가 됐다. 그래도 김밥은 꼭 싸주셨고,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여 주셨다. 어머니는 국민학교 때 소풍을 혼자 보낸 게 늘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엄마 없이 홀로 차가운 김밥을 먹었을 유년기의 쓸쓸함을 모르지 않았을 터, 꼭 보상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마지막 소풍날, 먼 길을 달려오신 어머니는 한없이 따뜻한 얼굴이었다. 솜씨 좋은 어머니가 싸준 김밥과 손에 쥐여 준 5,000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적의 힘이 됐다.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고3병을 이겨낼 수 있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정신 번쩍 들게 한 어머니의 소풍 도시락」중에서 아버지는 엄했지만, 들녘 한복판에서 단둘이 잠을 잔다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버지는 별말씀 없었지만 싫지 않았다. 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는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이 내게로 쏟아졌다. 하나같이 밝고 뚜렷했다. 가끔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자리를 찾기도 했지만, 이처럼 수없이 별이 빛나는 밤은 처음이었다. ---「아, 아버지!」중에서 아버지는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으셨다. 잔소리도 별로 없으셨다. 나에게는 늘 묵묵히 그늘 드리우며 시원한 바람을 지원하는 거목 같은 존재였다.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던 아버지, 실패했을 때도 꾸짖기보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손을 내미셨던 아버지, 나도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려고 한다.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겠습니다」중에서 어머니가 작은아버지 댁에 간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친척 방문이라기보다는 뭔가를 받으러 가셨던 것 같다. 조금 지난 후, 그것이 자개장롱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은집은 금전적으로 꽤 유복했다. 장롱을 교체하려는데, 쓰던 장롱을 우리 집에 주신다고 했던 것 같다. 그 장롱은 나전칠기의 화려한 봉황무늬가 새겨진 것으로 어머니는 굉장히 좋아하시며 소중히 쓰셨다. 지금은 그 장롱이 없지만, TV 속에서 가끔 나전칠기 장인이 만든 화려한 장롱을 볼 때면 장롱이 운반되어 집으로 들어오던 날,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활짝 웃는 얼굴이 생각난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소중한 보물로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자개장롱이 나에게는 좀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물건이었기도 하다. ---「자개장롱, 어머니에게는 보물이었지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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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은 곧 그 시대의 단면이다!
사형제의 삶이 세월의 골목길을 돌아 다른 사람의 삶에도 나부끼길 기대한다. 다르지만 어쩐지 공통점이 많아 보이는 사형제의 삶.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의 업에 대한 소명감은 5부에 걸쳐 이야기가 이어진다. 먼저, 1부 ‘깊은 물일수록 잔잔하다’에서는 시인이자 전 현대그룹 편집장 송년식 선생이 제 삼자 입장에서 사형제의 삶을 조망하면서 이 책의 출간 목적을 이야기 한다. 2부 “성원아, 할아버지·할머니도 지켜보신다”에서는 장남 홍종명의 학창시절, 공직 생활 그리고 부모님과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잔잔하게 이어진다. 3부 ‘우리 형제, 가난해도 나눌 줄 안다’에서는 집안의 살림꾼 역할을 했던 차남 홍승표의 삶이 그려진다. 맏이 홍종명과 같이 공직 생활의 애환과 보람, 아버지와의 추억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그려진다. 4부 기자 됐다고 그 가난에도 차를 사주시고…에서는 셋째 홍종명의 이야기를 통해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절정에 이른다. 또한 기자로서의 삶과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도 엿볼 수 있다. 5부 “내게 진 빚은 네 자식에게 갚아!”에서는 막내 홍헌표의 이야기에서는 막내다움이 느껴진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이 많아서 였을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에 대해 “늘 묵묵히 그늘 드리우며 시원한 바람을 지원하는 거목 같은 존재”였다고 회상하며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될 것을 다짐한다. 홍 씨 사형제의 다양한 삶과 이야기들은 어쩌면 동시대를 살았던 독자들에게는 추억으로 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는 삶의 교훈으로 다가올 것이다. 인생의 선배이자 아버지 그리고 어쩌면 친구로서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다. 책의 제목처럼 서로 다른 삶을 살았지만 “아! 이래서 형제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저자들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조망하며 차분하게 새해를 맞이해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