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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마음의 고향
2. 한국전쟁, 아이들의 전쟁놀이 3.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4. 약장수 방랑기 5. 예수, 지가 뭘 믿었노 6. 폭풍 속으로 7. 만리동 고갯마루 8. 내 영혼에 지진이 9. 낮에는 커닝하고 밤에는 방언기도 10. 판차촌에 들어가다 11. 느그덜이 천당 가면 나는 만당 갈 끼다 12. 1971년, 아, 활빈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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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운동이 내세우는 신학은 목민신학이라 이름한다. 목민신학은 지난 30년간 온몸으로 쌓아온 체험에서 베어난 신학이다. 목민신학은 도서실에서 이루어진 신학이 아니다. 민초들의 삶의 현장에서 우러난 신학이다. 목민신학은 머리에서 구상하여 손으로 쓴 신학이 아니다. 몸으로 체득하여 발바닥으로 쓴 신학이다. 목민신학은 200년 전에 통한의 삶을 살다 간 선각자 다산 정약용에서 그 틀을 찾는다
--- p.3권 312-- 무너진데를 다시 쌓는 사람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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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이 일곱 글자가 나를 강렬히 압도했다. 문제의 열쇠는 거기에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란 말에 해답이 있었다. '그리스도 안'이란 어떤 곳인가?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이 결집된 곳이다. 신은 잃어버린 파트너인 인간을 찾아 세상으로 들어왔다. 그분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 부른다. 이 땅에 온 하나님인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고 피 흘려 죽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나를 기투할 때 하나님과 합일된다. 일컬어 구원받는다고 표현한다.
--- p.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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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고향>
내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청송땅이다 청송이라면 이름 그대로 산 깊고 골 깊기로 유명한 곳이다. 청송에서도 안덕면 사부실이라는 산골 중의 산골이 내가 나서 자란 마을이다. 1941년 온 마을이 보리베기, 모내기에 한창이던 초여름 6월 열여드렛날에 나는 태어났다. 네 살 위의 형과 두 살 위인 누나에 이어 셋째였다. 당시 아버지는 일본 도쿄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모범운전사쯤 되셨던 것 같다. 일본에 사시던 어머니는 나를 낳으러 고향에 오셨다가 산후조리가 끝난 후 다시 일본으로 가셨다. 나는 태어나서 며칠 뒤 곧바로 도쿄로 갔고,다섯살까지 도쿄 신주쿠에서 낫토나 우메보시 같은 일본음식을 먹으며 자라났다. 신주쿠에서 자라났다고는 하지만 내 기억에는 집앞에 작은 언덕이 있던 희부연 풍경밖에는 기억이 없다. 아무튼 내게 고향이란 한국의 청송과 일본의 도쿄가 되어버린 셈이다. 우리 가족이 귀국선을 탄 것은 1945년 해방되던 해 가을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일본에 남고, 어머니만 우리들 사남매(형 누나, 나, 세 살 아래 남동생)를 데리고 귀국하셨다. 그때 헤어진 아버지는 다시 뵐 수 없었다. 몇 년 후 일본땅에서 병사하여 한줌의 재로 돌아오셨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유골을 산에 묻었다. 마침 비가 그치고 무덤 아래 골짜기에서 무지개가 일어 하늘로 뻗치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아버지는 저 무지개 타고 천국으로 가셨다' 하시며 눈물지으셨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다섯 살때 헤어졌으니 어렴풋이라도 기억에 남아 있을 법하건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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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고향>
내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청송땅이다 청송이라면 이름 그대로 산 깊고 골 깊기로 유명한 곳이다. 청송에서도 안덕면 사부실이라는 산골 중의 산골이 내가 나서 자란 마을이다. 1941년 온 마을이 보리베기, 모내기에 한창이던 초여름 6월 열여드렛날에 나는 태어났다. 네 살 위의 형과 두 살 위인 누나에 이어 셋째였다. 당시 아버지는 일본 도쿄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모범운전사쯤 되셨던 것 같다. 일본에 사시던 어머니는 나를 낳으러 고향에 오셨다가 산후조리가 끝난 후 다시 일본으로 가셨다. 나는 태어나서 며칠 뒤 곧바로 도쿄로 갔고,다섯살까지 도쿄 신주쿠에서 낫토나 우메보시 같은 일본음식을 먹으며 자라났다. 신주쿠에서 자라났다고는 하지만 내 기억에는 집앞에 작은 언덕이 있던 희부연 풍경밖에는 기억이 없다. 아무튼 내게 고향이란 한국의 청송과 일본의 도쿄가 되어버린 셈이다. 우리 가족이 귀국선을 탄 것은 1945년 해방되던 해 가을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일본에 남고, 어머니만 우리들 사남매(형 누나, 나, 세 살 아래 남동생)를 데리고 귀국하셨다. 그때 헤어진 아버지는 다시 뵐 수 없었다. 몇 년 후 일본땅에서 병사하여 한줌의 재로 돌아오셨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유골을 산에 묻었다. 마침 비가 그치고 무덤 아래 골짜기에서 무지개가 일어 하늘로 뻗치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아버지는 저 무지개 타고 천국으로 가셨다' 하시며 눈물지으셨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다섯 살때 헤어졌으니 어렴풋이라도 기억에 남아 있을 법하건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