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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가 장미꽃같이 1
김진홍
한길사 199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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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3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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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내 마음의 고향
2. 한국전쟁, 아이들의 전쟁놀이
3.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4. 약장수 방랑기
5. 예수, 지가 뭘 믿었노
6. 폭풍 속으로
7. 만리동 고갯마루
8. 내 영혼에 지진이
9. 낮에는 커닝하고 밤에는 방언기도
10. 판차촌에 들어가다
11. 느그덜이 천당 가면 나는 만당 갈 끼다
12. 1971년, 아, 활빈교회

저자 소개

저자 : 김진홍
1941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1966년 대구 계명대학 철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을 마쳤다. 1971년 청계천 빈민촌에 활빈교회를 개척한 이래, 판자촌 철거계획이 발표되자 1976년 철거민을 이끌고 남양만에 정착하여 1986년 남양만 두레마을을 열고 지금까지 활빈교회와 두레마을에서 헌신하고 있다. 대표 저서인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졌다.

그 밖의 저서로『비전있는 교회』『행동하시는 하나님』『정금같이 나오리라』『바닥에서 살아도 하늘을 본다』『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고난을 이기는 열두 달』『김진홍 생각』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623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5652051

책 속으로

두레운동이 내세우는 신학은 목민신학이라 이름한다. 목민신학은 지난 30년간 온몸으로 쌓아온 체험에서 베어난 신학이다. 목민신학은 도서실에서 이루어진 신학이 아니다. 민초들의 삶의 현장에서 우러난 신학이다. 목민신학은 머리에서 구상하여 손으로 쓴 신학이 아니다. 몸으로 체득하여 발바닥으로 쓴 신학이다. 목민신학은 200년 전에 통한의 삶을 살다 간 선각자 다산 정약용에서 그 틀을 찾는다

--- p.3권 312-- 무너진데를 다시 쌓는 사람들 중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 일곱 글자가 나를 강렬히 압도했다. 문제의 열쇠는 거기에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란 말에 해답이 있었다. '그리스도 안'이란 어떤 곳인가?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이 결집된 곳이다. 신은 잃어버린 파트너인 인간을 찾아 세상으로 들어왔다. 그분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 부른다. 이 땅에 온 하나님인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고 피 흘려 죽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나를 기투할 때 하나님과 합일된다. 일컬어 구원받는다고 표현한다.

--- p.190

<내 마음의 고향>

내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청송땅이다 청송이라면 이름 그대로 산 깊고 골 깊기로 유명한 곳이다. 청송에서도 안덕면 사부실이라는 산골 중의 산골이 내가 나서 자란 마을이다. 1941년 온 마을이 보리베기, 모내기에 한창이던 초여름 6월 열여드렛날에 나는 태어났다. 네 살 위의 형과 두 살 위인 누나에 이어 셋째였다. 당시 아버지는 일본 도쿄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모범운전사쯤 되셨던 것 같다. 일본에 사시던 어머니는 나를 낳으러 고향에 오셨다가 산후조리가 끝난 후 다시 일본으로 가셨다.

나는 태어나서 며칠 뒤 곧바로 도쿄로 갔고,다섯살까지 도쿄 신주쿠에서 낫토나 우메보시 같은 일본음식을 먹으며 자라났다. 신주쿠에서 자라났다고는 하지만 내 기억에는 집앞에 작은 언덕이 있던 희부연 풍경밖에는 기억이 없다. 아무튼 내게 고향이란 한국의 청송과 일본의 도쿄가 되어버린 셈이다. 우리 가족이 귀국선을 탄 것은 1945년 해방되던 해 가을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일본에 남고, 어머니만 우리들 사남매(형 누나, 나, 세 살 아래 남동생)를 데리고 귀국하셨다.

그때 헤어진 아버지는 다시 뵐 수 없었다. 몇 년 후 일본땅에서 병사하여 한줌의 재로 돌아오셨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유골을 산에 묻었다. 마침 비가 그치고 무덤 아래 골짜기에서 무지개가 일어 하늘로 뻗치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아버지는 저 무지개 타고 천국으로 가셨다' 하시며 눈물지으셨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다섯 살때 헤어졌으니 어렴풋이라도 기억에 남아 있을 법하건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 p.

<내 마음의 고향>

내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청송땅이다 청송이라면 이름 그대로 산 깊고 골 깊기로 유명한 곳이다. 청송에서도 안덕면 사부실이라는 산골 중의 산골이 내가 나서 자란 마을이다. 1941년 온 마을이 보리베기, 모내기에 한창이던 초여름 6월 열여드렛날에 나는 태어났다. 네 살 위의 형과 두 살 위인 누나에 이어 셋째였다. 당시 아버지는 일본 도쿄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모범운전사쯤 되셨던 것 같다. 일본에 사시던 어머니는 나를 낳으러 고향에 오셨다가 산후조리가 끝난 후 다시 일본으로 가셨다.

나는 태어나서 며칠 뒤 곧바로 도쿄로 갔고,다섯살까지 도쿄 신주쿠에서 낫토나 우메보시 같은 일본음식을 먹으며 자라났다. 신주쿠에서 자라났다고는 하지만 내 기억에는 집앞에 작은 언덕이 있던 희부연 풍경밖에는 기억이 없다. 아무튼 내게 고향이란 한국의 청송과 일본의 도쿄가 되어버린 셈이다. 우리 가족이 귀국선을 탄 것은 1945년 해방되던 해 가을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일본에 남고, 어머니만 우리들 사남매(형 누나, 나, 세 살 아래 남동생)를 데리고 귀국하셨다.

그때 헤어진 아버지는 다시 뵐 수 없었다. 몇 년 후 일본땅에서 병사하여 한줌의 재로 돌아오셨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유골을 산에 묻었다. 마침 비가 그치고 무덤 아래 골짜기에서 무지개가 일어 하늘로 뻗치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아버지는 저 무지개 타고 천국으로 가셨다' 하시며 눈물지으셨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다섯 살때 헤어졌으니 어렴풋이라도 기억에 남아 있을 법하건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 p.

리뷰 총점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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