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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학교 풍경과 학생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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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총서를 펴내며
머리말

1 신학문 수혜 통로로 야학운동이 전개되다
1 제도권 공교육이 부진하다
2 의무교육론이 대두되다
3 국권수호를 위한 의무교육이 시행되다
4 야학생 향학열로 한글 상용화의 밑거름이 되다
5 야학운동이 발흥하다
6 민중교육기관으로 거듭나다

2 식민지 노예교육으로 변질되다
1 일본어 만능시대가 도래하다
2 내선일체를 위한 국어강습회로 전락하다
3 아리가토가 풍미하다
4 한글은 외국문자다
5 민족의식을 말살하다

3 들불처럼 야학운동이 확산되다
1 초등교육기관에서 입학시험을 치르다
2 노동단체에서 노동자교육에 나서다
3 주경야독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다
4 청년단체도 합심일체가 되다
5 언론사와 학생이 하나로 결합하다
6 사회교육기관으로 거듭나다
7 새로운 민중문화를 창출하다
윤봉길의 농민야학에 주목하다|최용신과 샘골강습소를 이야기하다

4 일본어 상용화에 부응하다
1 야학 50만 개소 설립을 계획하다
2 한글과 한국어 사용은 이단이다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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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金炯睦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학석사, 문학박사(한국근대사 전공) 학위를 취득했다.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사)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적심사위원, 숭실사학회 편집위원, 동국사학회 편집위원,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나혜석학회 연구이사, 육군본부 군사연구소 편집위원, 한국사학회 지역이사, 한국교육사학회 연구이사, 한국여성사학회 지역이사 및 편집이사, 최용신기념관 자문위원, 독립운동가인명사전편찬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주독립운동사』(공저), 『교육운동 - 한국독립운동의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학석사, 문학박사(한국근대사 전공) 학위를 취득했다.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사)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적심사위원, 숭실사학회 편집위원, 동국사학회 편집위원,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나혜석학회 연구이사, 육군본부 군사연구소 편집위원, 한국사학회 지역이사, 한국교육사학회 연구이사, 한국여성사학회 지역이사 및 편집이사, 최용신기념관 자문위원, 독립운동가인명사전편찬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주독립운동사』(공저), 『교육운동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35』, 『국채보상운동과 여성구국운동의 재조명』(공저), 『김광제, 나랏빚 청산이 독립국가 건설이다』, 『나혜석, 한국근대사를 거닐다』(공저), 『나혜석, 한국문화사를 거닐다』(공저), 『대한제국기 야학운동』, 『대한제국기 경기도의 근대교육운동』, 『대한제국기 충청지역 근대교육운동』, 『도마 안중근』(공저), 『배움의 목마름을 풀어준 야학운동』, 『서천독립운동사』(공저), 『안중근과 동양평화론』(공저), 『여주 독립운동사 개관』, 『일제강점기 한국초등교육의 실태와 그 저항』(공저), 『진주 3·1운동과 근대 사회 발전』(공저) 『충남독립운동사』(공저), 『충청도 국채보상운동』, 『최용신, 소통으로 이상촌을 꿈꾸다』, 『최용신 평전』, 『홍성의 항일독립운동사』(공저), 『화성시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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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452g | 148*210*30mm
ISBN13
9788974839741

출판사 리뷰

1898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민중교육기관으로서 야학과 근대교육운동으로서 야학운동


이 책은 '한국 근현대 학교 풍경과 학생의 일상' 총서의 하나로, 야학운동의 배경, 실태, 성격 변화, 기능과 운영 주체 등에 주목했다. 시기는 1898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를 대상으로 삼았다. 근대교육 시행과 동시에 시작된 야학은 을사늑약을 전후로 야학운동으로 발전했다. 곧 사립학교설립운동과 더불어 야학운동은 근대교육운동의 주요한 영역을 차지했다. 고조된 교육열에 부응하는 대표 민중교육기관은 바로 야학이었다. 물론 실력양성론에 매몰된 채로 식민교육체제에 편입된 부분은 야학운동사에서 아쉬운 부분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그런 사실에 주목하면서 야학운동의 역사적인 성격을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새로운 배움터로 부각된 야학,
야학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었나


야학운동은 을사늑약 이후 급속하게 발흥하는 계기를 맞았다. 일부는 일본어 보급에 치중하는 등 식민교육체제에 동화되는 부정적인 요인도 공존했다. 시작 초기부터 문명화 논리에 매몰된 활동가들의 현실 인식은 한계가 있었다. ‘일어학교’와 ‘일어야학’ 등의 교과목과 일본인 교사 채용은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식민지 시기 국어강습회나 관제야학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하면서 야학운동의 역사적인 성격을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1장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시작된 야학의 대두 배경, 위기의식 고조에 따른 야학운동으로 발전과 전개과정, 민중교육기관으로서 위상 등에 주목했다. 이는 의무교육론 대두, 계몽단체의 조직과 활성화, 군 단위 의무교육 시행, 사립학교설립운동, 민중의식의 심화, 향학열 고조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초기에는 근대교육기관으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을사늑약 이후 식민지화에 대한 점증하는 위기의식은 야학운동이 발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특히 '사립학교령'이나 '학회령' 공포·시행에 즈음해 사립학교설립운동은 점차 퇴조하는 분위기였다. 이와 달리 야학 설립이나 운영은 전국에서 들불처럼 확산되었다. 이는 교육열 고조로 이어지는 등 향학열을 고취하는 밑거름이었다. 친일세력이나 매판자본가 등은 근대교육 보급을 구실로 일본어교육을 위한 사립학교와 야학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인화를 획책하는 식민 당국의 침략정책에 편승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공립보통학교에 대한 불신이나 근대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는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2장은 경술국치 이후 일본어 보급을 위한 식민교육기관으로 전락한 국어강습회에 주목했다. ‘당당한’ 국어로서 위상을 차지한 일본어는 원활한 식민 지배를 위한 중요한 교과목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식민 당국은 부족한 교육시설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국어강습회를 통한 일본어 보급에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한일 양 민족의 소통에 의한 정서 공유 등은 내선일체를 기조로 하는 동화정책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부일이나 친일로 변절한 대한제국기 계몽론자 다수는 여기에 포섭되었다. 관청이나 공립보통학교 등은 부설로 국어강습회 운영에 앞장섰다. 이와 맞물려 ‘일본어 만능시대’ 열풍은 식민지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었다. '조선교육령'과 '사립학교령' 개정 등을 통해 일선동조론에 입각한 동화정책은 식민교육정책의 근간이었다. 반면 한국어는 모국어로서 위상을 상실한 채로 ‘부수적인’ 교과목이나 다름없었다.

3장은 3·1운동 이후 들불처럼 확산되는 야학운동을 살펴보았다. 문화운동 확산에 따른 개조는 ‘뜨거운 감자’였다. 향학열 고조는 곧바로 초등교육기관마저 심각한 입학난을 겪게 했다. 입학난 구제를 위한 교육기관은 야학운동 진전을 견인하는 요인이었다. 더욱이 부문별 민족해방운동 진전과 더불어 야학은 분화·발전되어 나갔다. 80퍼센트에 달하는 문맹률은 민족해방운동 진전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이념적인 이질성과 달리 각 운동세력은 야학을 주요한 활동 영역 중 하나로서 인식했다. 결국 민족해방운동 매개체로서 야학은 다시 발흥하기에 이르렀다. 1930년대 중반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라는 구호는 당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언론사의 문자보급운동과 브나로드운동, 종교계의 농촌부흥운동 등은 당시 상황과 맞물려 전개되었다. 특히 1920년대와 1930년대를 대표하는 윤봉길과 최용신의 민중계몽운동의 헌신적인 활동상도 조명했다.

4장은 수탈 강화를 위한 농촌진흥운동과 민족말살정책은 우리말과 우리글마저 사용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야학도 일본어 상용화와 더불어 간이학교나 일본어 보급을 위한 식민교육기관으로 또다시 변질되는 수난을 겪었다. 독서회나 윤독회 등과 같은 극소수 야학만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가운데 겨우 명맥만을 유지했다. 전시 파쇼체제 강화에 따른 민족말살정책은 오직 ‘충량忠良한 제국신민’만을 강요했다. 교육기관은 원활한 전쟁 수행을 위한 병영기지화로 변모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상명하달만이 난무하는 고립무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가족이나 친척마저도 서로 대화하기를 꺼렸다. 혹시 우리말을 하다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체제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을 하면 곧 ‘이단아’로 취급되는 살벌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 글을 쓰는 데 활용된 자료 대부분은 신문과 잡지다. 야학운동의 발전·분화와 침체 배경, 학생의 호응 등은 주요 활동가의 기록물에 대한 면밀한 검토 작업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들이 직접 남긴 기록물은 희소하고, 그나마 있는 야학에 관한 부분은 너무나 단편적이다. 야학운동에 직접 참여한 박은식·장지연·유길준·윤봉길·최용신 등은 이에 관한 사실을 직접 기록했다. 이를 중심으로 야학운동 실태, 지역 특성, 교재 내용, 성격 변화와 기능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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