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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서문_소년들을 향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PART 1 소년들의 자리 교실에서의 남학생과 여학생 하지만 남학생들이 시험을 더 잘 보지 않는가? 남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제국의 귀환 여성 단체들을 부추기는 것 경제적 부산물 또다시 여성 단체들이 반대하다 학교가 남학생들을 돌보지 못한다는 명백한 증거 PART 2 소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위험 요소가 없는 학교 운동장 줄어드는 쉬는 시간 남자아이들에 대한 무관용 초강력 범죄자 후퇴와 강화 소년을 재구성하다 젠더 평등 활동가들의 마음과 정신 우리 모두에게 선물 같은 존재 병적인 남성성인가 건강한 남성성인가 PART 3 남성과 인형 웰즐리대학 성 평등 세미나 초기 발명품들 윌리엄의 인형 버지니아 밸리언이 생각하는 세상 모성이 페미니즘과 맞지 않는다면? 주디 로건 교사의 학급 금지된 연구 남녀 분리 교육에 전쟁을 선포한 ACLU 8명의 교수와 하나의 ‘연구’ 차이에 대한 존중 PART 4 캐럴 길리건과 위축된 소녀 공정하지 않음, 그리고 듣지 않음 그렇다면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의 위기 7인의 여성과 팩시밀리 1대 미국의 비극 실마리가 풀려가는 신화 획기적 연구, 《다른 목소리로》 다윈주의자적 임무 PART 5 캐럴 길리건의 섬 가부장적 사회 질서 속의 남성성 남자아이들과 어머니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남자아이들 호전적인 미덕들을 위한 변명 캐럴 길리건의 방향 PART 6 남성들을 구하라 언론의 힘 햄릿들과 오필리아들의 나라 손 밖의 소년들 과묵함에 대한 호소 치료 문화 치료주의 VS 금욕주의 PART 7 왜 존은 읽고 쓰기를 좋아할 수 없을까? 지식 습득 VS 재즈 즉흥곡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니시어티브 다시 미국을 돌아보면 보다 더 큰 배경 우리의 어설픈 수리공들, 그리고 우리 자신 또다시 여성 단체의 반대에 부딪히다 여학생들이 천재가 더 많은가? 재생의 길 PART 8 남자아이들의 도덕적 삶 ‘야만인들’이 문명화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아들들 나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을 게 뭐가 있겠어요? 소크라테스 식으로 대화하기 탈가치적 아이들 말다툼이 법정으로 가다 개혁론자들이 틀린 부분 사악한 소년들 인성 교육의 조용한 부활 아이다호의 아리스토텔레스 제리 해링턴 교사의 ‘성공하는 법’ PART 9 전쟁과 평화 위대한 재학습 감사의 말 | 주석 | 색인 |
Christina Hoff Som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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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학교생활에서 훨씬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많은 교육자가 인정하지만, 이를 심각하게 다루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학생 친화적 교육법, 읽기와 쓰기의 의무 수업, 직업 기술, 성별 분리 학급 등은 시류를 거스르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그러한 방법을 시행하고자 하는 학교들은 대개 그 기세가 꺾이고 만다. 여성 압력 단체들은 여전히 그런 프로젝트들을 가리켜 여학생들의 성과에 대한 “백래시”라고 부르면서 여성들의 보다 큰 진전을 멈추게 하려는 시도의 일부라고 여긴다. --- p.7
건강한 젊은 남성은 육체적 형태의 경쟁적 노력으로 남성다움을 표현한다. 이들은 성숙해가면서 책임을 맡게 되고, 우수함을 얻으려고 애쓰며, 무언가를 달성하고 “성취한다”. 육체적이고 지적인 능력 및 자기 규율을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남성성을 내보인다. 미국 사회에서 다수의 건강하고 평범한 젊은 남성은 여성을 공격하거나 강간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들을 존중하고 친구로 대한다. 불행하게도 남성성 그 자체가 폭력의 원인이라는 말이 무차별적으로 반복되면서 많은 교육자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교육자들은 대부분의 폭력이 남성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전제 아래 남성이 폭력의 제1원인이라는 주장으로 잘못된 결론을 짓는다.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남자아이는 범죄자의 원형이다. --- pp104-105 캐럴 길리건은 여자아이들에게 했던 실수를 남자아이들에게 똑같이 저지르고 있다. 소수의 아이들을 관찰하고 우리 사회가 이 아이들에게 성별 역할 전형을 강요해 생긴 깊은 병세를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청소년기까지 이 전형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압력에 짓눌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 모두가 해를 입고 고통받고 변형된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폭력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반사회적으로 굴지 않는다. 길리건 교수는 남자아이들에게 공감력이 없다고 했지만, 정작 본인은 남자아이들과 진정으로 공감했는가? --- pp. 206 아이들은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재발명”함으로써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 고착은 대답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자존감은 성취에서 오는 자부심으로부터 나오며 그 성취는 올바른 노력의 결과물이다. 미국의 남자아이들은 구조될 필요가 없다. 이 아이들은 병리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억눌린 분노로 끓고 있지도, ‘남성성이라는 구속복’ 안에 갇혀 있지도 않다. 미국의 여자아이들은 자신감의 위기를 겪고 있지 않으며, 현재 우리의 문화로 인해 침묵당하고 있지도 않다. 도덕적 방황이나 인지적이고 학업적인 부족 등 우리 아이들의 전망을 위협하는 진짜 문제에 관해 치료사들, 사회 개혁론자들, 자존감 강사들은 대답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진정한 해결책을 가로막고 서 있을 뿐이다. --- p.243 “남성들은 필요한가?” 그렇다. 필요하다. […] 성별은 동등하지만 그 동등함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한다. 남녀 간에 잘 알려진 상호 보완성이 있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이 간단한 진실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 사회가 이토록 남자아이들을 가혹하게도 내버려두었단 말인가? […] 우리는 아이들을 병자로 만드는 온갖 위기론을 끝내야 한다. 선정적인 전문가들이 여자아이들을 익사하는 오필리아들로, 남자아이들을 불안하고 소외된 햄릿들로 그릴 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남녀 어느 쪽도 ‘재활’되거나 ‘구조’될 필요가 없다. 어느 쪽이든 ‘재발명’될 필요도 없다. 할 필요가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대신 필요하고 가능한 힘든 임무에 헌신해야 한다. --- pp.331-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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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리고 왜, 소년을 향해 끝나지 않는 전쟁을 벌이는가?
현대 사회와 교육의 관심은 차별받는 여자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데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왜곡된 급진 페미니즘이 개입하면서 균형감을 잃었고 남자아이들을 향해 직접적인 위해가 가해졌다. 더 나아가 남자아이 혐오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긍정적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적이고 진보적인 여성운동과 급진 페미니즘의 이기적 준동 사이에 엄격하게 선을 긋는다. 이제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 위기에 처했다. 소년들은 남성적 성향을 버리도록 재사회화되면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소년들을 향한 전쟁을 멈출 방법은 없는가? 죽어가는 소년들을 되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이 책은 소년들의 위기를 광범위한 증거를 통해 실증적으로 제시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