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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작법(作法) 낙타 뼈 고백 헬리콥터 생(生) 천직(天職) 도시를 생각한다 길을 가다 만난 사람 탄광촌을 지나며 나팔꽃 걸작 정선을 묻다 이상(李箱)을 읽으며 구절리 그리운 식사 지노귀 훈장 제2부 작은 섬 모란 필리핀 결백 오월의 흰 구름 등용문(登龍門) 산골 소년 섬에 사는 민들레 장릉기행 쑥국새 우박 해바라기 주변 숲 쑥에 대한 전기(傳記) 나비를 보며 천태산 은행나무 인디언의 노래 천둥 제3부 지상의 친구들 가을의 접경 사색의 에움길 내가 그를 찾는다 귀양지 속리산 단풍 죽은 벌레 추 사장(秋 社長)의 가을 적소로 띄우는 편지 가랑잎 만경평야 봉선화와 봉선이 이장(移葬) 하나의 길 풀밭에 든 낮달 해변을 떠나며 귀뚜라미 선생과의 하루 수치의 계산법 소금을 한 줌 먹고 밀월(蜜月) 제4부 초혼(招魂) 노 철학자 겨울나무의 숨소리 물의 시 김정호 다시 세상 밖으로 잠든 여자 영혼의 그림자 평행선 아름다운 장례 경구(警句)처럼 저녁 초연한 생각 무색계 아픈 순간들 고요의 뒤쪽 가는 길 시인의 산문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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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의 소중함을 진리로 삼은 뜨거운 삶의 흔적
우리나라 광부시인 1호 정일남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훈장』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정일남 시인은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성수기인 1961년 태백의 장성광업소 채탄광부로 입사, 1980년까지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말단광부였다. 서울시민들이 연탄이 아니면 겨울을 날 수 없을 때였다. 막장에서 석탄을 캐면서 그 경험을 틈틈이 습작한 시가 197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인이란 칭호를 얻었다. 이후 1980년 『현대문학』에 탄광을 소재로 한 시 「어느 갱 속에서」가 추천되면서 한국문단에서 최초의 광부시인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많은 동료광부들이 막장에서 탄광사고로 순직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의 “전성기도 막장에 갇혀 생사를 넘나들었”(「탄광촌을 지나며)」다. 폐광이 되면서 많은 광부들이 무작정 도시로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몸 생각지 않고 석탄을 캐던 열성”과 “갱이 무너지던 그날의 아우성”을 온몸으로 재구하고 있다. 이젠 누가 기타를 치면서 오지도 않을 기찻길/석탄을 캐던 광부는 상한 폐를 안고 떠난 지 오래다/50톤 화차가 녹슬고 흥청대던/호경기는 가고 싸늘한 폐광만 남았다/그 많던 술집은 온데간데없고/화장품 냄새 풍기던 단골집 여자/양상추 같던 부드러운 순정도 떠났다 -「구절리」 부분 정일남 시인의 시편들은 작위적이거나 현학적이지 않다. 복잡함도 요란스러움도 없다. “죽은 자의 길을 여는” 염장이 아버지, “흰옷 입고 걷다가” 떠난 아내, 아우의 등록금을 대준 “모란꽃 그늘의 약속을 아는” 제수씨, “당뇨로 눈이 멀어 꽃이 안 보이는” 누이, “망치질로 사춘기를 두드렸”던 친구, 선하디선한 두메산골 폐광촌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같은 보폭으로 걸어간다. 굼뜨게 발을 옮기는 그는 “낙타의 슬픈 눈”으로 “콘크리트 뚜껑으로 덮”인 도시와 거기 깃든 거대한 그림자를 “훠이 훠이 물러가라”고 호통 친다. “발이 저려오는” 신산한 삶의 “뼈 훑는 소리”를 듣고 “내 발바닥은/허공을 밟고 가야 할 때”라며 “옷가슴을 관통하는 목탁소리를 안”고자 한다. 또한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것, 금방 사라지고 마는 것들을 먼저 끌어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벚꽃과 새벽별, 풀잎이슬과 말기암환자들이 그것들이다.” “물잠자리와 아침 안개, 기차를 타려고 철로변에 무수히 몰려 피어있던 민들레 꽃들,” 이들은 시인과 함께 살아왔고 또 살아갈 친구들이다. “20년 동안 몸담았던 탄광을 떠나 나도 동료들과 같이 상경했습니다. 막막했지요. 경기도 광명에 집을 구해 학교 정문 앞에서 문방구를 차려 생계를 이어갔지만 신통치 않았어요. 경험도 없이 젖소를 키웠습니다. 우유를 생산해 납품한 수입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자식들의 학비를 대어 대학을 졸업시켰지요. 웬만한 젖소의 질병은 수의사를 부르지 않고 자체로 치료했고요. 그러는 동안 아내의 불치병을 진작 알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떠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큰 슬픔을 건너와 지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를 매만지며 위로를 받고 살아간다고 말하는 시인은 문명의 소리로 소란하게 “떠 있”는 “인간의 마을”에서 오히려 자연의 소리로 고요하고 초연하다. 사색의 에움길에 들어선 시인의 고향은 이제 “초가집도 아니고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두메산골도 아니며 다닥다닥 붙은 고층아파트가 아니면 산부인과 조리원이다.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전원이 아니라 까치집보다 더 높은 병원의 몇 호실이 시인의 출생지다. 그러니 시인의 고향이란 의미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제 시인의 생가는 초가집으로 복원할 것이 아니라 시 속에 스스로 묻어둘 일이다.(시인의 산문, 「내 마음의 단상(斷想) 모음」) 고독과 절망을 귀인으로 맞는 그의 시 속에 뜨거운 삶의 흔적이 물기를 머금고 조용히 반짝이고 있다. 생전에 아무것도 부여받지 못한 어느 무명시인의 무덤 하나가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덤 앞에 애석하게도 온전한 석재가 아닌 시멘트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비바람의 광음이 할퀴어 비석은 금이 가고 틈이 벌어졌다 벌어진 틈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온 민들레 홀씨 하나 세들고부터 비석은 해마다 봄이면 금빛 훈장을 달고 있었다 -「훈장」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