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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서문
감사의 글 서론: 우치무라 간조의 간략한 일대기/ 시부야 히로시 1 제1부 역사적 맥락과 사회 사상 1. 세계를 위한 일본/ 앤드루 바르쉐이 2. 우치무라 간조와 미국의 기독교적 세계관/ 오야마 쓰나오 3. 우치무라 간조와 평화주의/ 다카하시 야스히로 4. 예언자적 민족주의: 하나님과 일본 사이의 우치무라/ 야규 구니치카 5. 우치무라 간조의 애국심이 남긴 유산: 쓰카모토 도라지와 야나이하라 다다오/ 쇼기멘 다카시 제2부 성서 연구와 신학 사상 6.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 연구 방법/ 미우라 히로시 7. 우치무라와 무교회주의/ 시부야 히로시 8. 《구안록》에 나타난 우치무라의 속죄관/ 이경애 9. 《로마서 연구》에 나타난 우치무라 간조의 칭의론: 로마서 3장 19-31절의 의미론적 분석/ 치바 케이 10. 우치무라 간조와 속죄적 종말론: ‘십자가교’에 대하여/ 치바 신 기고자들 역자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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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일본’, 두 축을 중심으로
우치무라 간조의 사상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조명하는 우치무라의 사회 사상과 신학 사상 이 책의 원전은 《Living for Jesus and Japan: The Social and Theological Thought of Uchimura Kanzo》(예수와 일본을 위한 삶: 우치무라 간조의 사회 사상과 신학 사상, 2013)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 사상가이자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1861~1930) 탄생 150년을 기념하여 영어권 독자에게 우치무라 간조의 삶과 사상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4년간의 공동 연구의 결과물이다. 역사학, 철학, 기독교학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우치무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의 사상의 주요 주제들을 따라 집필한 10편의 글을 엮었다. 부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의 1부는 우치무라의 사회 사상을 다루며, '셰계를 위한 일본'에 관한 그의 사상, 어린 시절 미국에서의 체험, 그의 평화주의, 민족주의와 애국심의 유산을 살펴본다. 2부는 우치무라의 성서 연구와 신학 사상과 관련되며, 그의 성서 연구 방법, 무교회주의, 속죄관, 칭의론, 속죄적 종말론 등을 다룬다. 우치무라 간조, 오늘의 우리에게 말하다 우치무라 간조는 일본의 문화적 특징을 영향력 있는 보편 종교인 기독교와 연결시키고자 노력했다. 기독교를 ‘일본 최고의 영적 유산’으로 이해한 그는 일본의 영적· 문화적 유산을 국제사회가 이해할 수 있게 하려 했다. 그가 고백한 대로 우치무라의 삶의 궤적은 ‘예수와 일본’이라는 두 개의 중심이 있는 타원인데, 그 한 중심(Jesus)은 일본에 대한 사랑을 강하고 고결하게 했으며, 또 하나의 중심(Japan)은 예수에 대한 그의 사랑에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다. 삶과 사상을 이루는 이 두 축은 그의 민족주의가 통상적인 의미의 자민족 중심적인 민족주의를 넘어선 보편성을 띠게 했으며, 신앙인으로서도 내적이고 실존적인 차원을 넘어 이웃, 사회, 나라, 지역, 세계 등의 공적인 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신학적 헌신 또한 복음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살아내고 실천하는 것에 방점이 있다.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은 미국 유학 시절 그의 성경책 표지 안쪽에 쓴 자신의 묘비명 가운데 마지막 구절이다. “나는 일본을 위하여, 일본은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그의 묘비명에는 그가 추구하고자 한 바와 걸어온 삶의 자취가 집약되어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에도 ‘일본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바쳐진’ 그의 모든 것이 오롯이 녹아 있다. 그의 묘비명에서 ‘일본’을 ‘대한민국’으로 바꾸어 읽으며 의미를 새겨 보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깨닫고 행해야 할 바가 좀더 명확하게 다가올 것이다. ◆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 다카사키 번(藩)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도쿄외국어학교를 거쳐(1874) 삿포로 농업대학에 입학하여(1877) 그곳에서 기독교를 처음 접하고 세례까지 받았다. 졸업 후 잠시 농상무성(農商務省) 관리로 있다가 미국 유학을 떠나 애머스트 대학에서 기독교 역사, 히브리어, 헬라어, 서양사 등을 공부했으며, 졸업 후 하트포드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했다. 1888년 귀국하여 니가타 현 호쿠에츠가칸(北越學館)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1891년 제일고등중학교 재직 당시 천황의 [교육칙어(敎育勅語)]를 불경시(不敬視)했다는 이유로 교직을 떠나야 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저술활동에 들어가 주옥같은 저작들을 쏟아 냈다. 이후 《요로즈조호(万朝報)》와 《도쿄도쿠리츠잣시(東京獨立雜紙)》를 통해 공공적 정의에 입각한 왕성한 사회평론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성서의 연구》를 통해 신앙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애국과 정의에 관한 견해를 펼쳤으며, 이러한 사상은 김교신과 함석헌에게 이어져 《성서조선》 창간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기성교회가 지나치게 의식적이고 조직에 얽매여 있으며 신학에 사로잡힌 나머지 본래의 생명성을 잃어버렸다고 판단, 무교회주의를 주창하며 성서 연구 중심의 기독교 복음 운동을 전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