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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다양한 삶의 양식과 통합조절
양장
채웅석 편저
혜안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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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역사 문화의 다원성과 통합성 연구총서

책소개

목차

발간사|고려시대 역사·문화의 다원성과 통합성, 개방성을 찾아서

총론1 고려 사회·문화의 다원성·다층위성과 소통의 이중주|채웅석

1. 머리말
2. 고려 사회·문화의 특징:다원성·다층위성과 소통의 이중주
3. 경쟁·갈등의 조절기재
4. 다원적 국제환경:국제적 개방성과 자기인식의 토대
5. 맺음말

총론2 고려 다원사회론의 과제와 전망|박종기

1. 머리말
2. 다원주의 개념:다원성과 다층위성
3. 다원주의의 기원과 다원사회
4. 다원사회의 과제와 전망

제1부 통합과 조절

제1장 고려전기 사회적 분업 편성의 다원성과 신분·계층질서|채웅석
1. 머리말
2. 양천제(良賤制)와 사(士)·서(庶) 구분:본관제와 예치(禮治)질서
3. 문반·무반의 분화와 ‘중간계층’
4. 농·공·상의 분리와 차별
5. 부곡제(部曲制)와 잡척(雜尺):특정 국역(國役)과 지연·혈연
6. 맺음말
제2장 고려 태조~현종대 다원적 사상지형과 왕권 중심의 사상정책|최봉준
1. 머리말
2. 나말여초의 사상지형과 다원적 공존관계
3. 사상 간 균형 추구와 왕권 중심의 사상정책
4. 맺음말
제3장 고려시대의 삼경(三京)과 국도(國都)|신안식
1. 머리말
2. 양경(兩京)과 삼경
3. 국도와 순행(巡幸)
4. 맺음말
제4장 고려식 석탑양식의 완성과 지방사회 통합-현종대 명문석탑(銘文石塔)의 건립목적과 새로운 양식 성립과정을 중심으로-|홍대한
1. 머리말
2. 현종시기 건립된 명문석탑과 고려식 석탑양식의 완성
3. 현종대 조탑명문(造塔銘文)의 성격과 건립목적
4. 맺음말

제2부 다양한 물질적 삶의 양식

제1장 고려후기 분묘 출토 도기(陶器)의 지역적 차이와 그 배경|한혜선
1. 머리말
2. 지역별 분묘 출토 도기의 양상
3. 고려후기 도기부장(陶器副葬)과 향촌사회와의 관계
4. 맺음말
제2장 고려 금속제 불구류 명문(佛具類 銘文)에 보이는 경·외 장인(京·外 匠人)의 제작활동|홍영의
1. 머리말
2. 불구류 명문에 보이는 장인
3. 경·외 공장의 편제와 운영
4. 장인의 제작 활동과 지방 확산
5. 맺음말
제3장 고려시대 철제 농구(農具)와 농경의례|김재홍
1. 머리말
2. 철제 농구의 분석
3. 철제 농구의 통일성
4. 농경의례의 지역적 다양성
5. 맺음말
학술연구발표회 종합토론|경쟁과 조절-고려인의 다양한 삶의 양식과 통합 조절-

저자 소개 1

편저채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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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시대의 정치사와 사회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고려시대의 국가와 지방사회』(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고려사 형법지 역주』(신서원, 2009), 『고려의 다양한 삶의 양식과 통합 조절』(편저, 혜안, 2019), 『고려의 중앙과 지방의 네트워크』(편저, 혜안, 2019), 『고려의 국제적 개방성과 자기인식의 토대』(편저, 혜안,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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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1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153*224*30mm
ISBN13
9788984946231

출판사 리뷰

이 책의 필자들은 고려사회의 다원성과 다양성 혹은 다층위성 사이에 어떠한 개념 차이가 있는지, 수평적인 다원성과 수직적인 계서성이 서로 구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 중앙집권적 성격을 가진 고려사회에서 다원성이란 어떻게 발현되는 것인지 등에 대한 문제를 주로 논의하였다.
우선 고려사회의 성격에 대해, 그간 사회구성체론 관점에서는 고려를 노예제사회나 아시아적 공동체사회, 봉건사회 등으로 파악하였다. 전자는 고려전기에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가 미숙하였다거나 국가의 부세가 노동력 수탈 중심이었다고 보지만, 후자에서는 이미 소유권에 의한 토지지배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농민층의 계급분화가 진행되었다고 본다. 동일하게 사적유물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당시의 사회성격에 대해서는 서로 이질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들로서 수조율이 수확량의 1/4인지 1/10인지, 농업생산력이 휴한단계인지 상경단계인지 확정하기 어렵고, 대토지소유자의 농업경영 양태가 어떠했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또한 지배층의 성격에 초점을 맞추어 고대의 귀족사회나 조선의 사대부사회와 비교하여 문벌귀족사회라고 파악하기도 하지만, 관료제사회라고 파악하는 견해도 그에 못지않게 설득력이 있듯이 지배층의 성격을 귀족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들이 많다. 때문에 개인의 능력보다 가문 배경을 우선시하고 지배층에 대한 우대책을 공공연하게 시행하면서도 특정 혈통이나 가문에 대한 세습특권은 법제화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문벌사회라고 부르자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그처럼 지배층의 성격을 중심으로 사회성격을 파악하는 방식은 중앙집권 또는 지배층·엘리트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필자들은 고려왕조가 장기 지속한 원인의 하나로서 다원적 특성에 주목한다. 사상·문화·사회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여러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대립하지 않고 공존하는 형태의 다원성이 고려 사회·문화의 특징이었다는 것이다.
귀족제론과 관료제론 사이의 논쟁에서 보듯이 정치 지배층의 성격을 어느 한 가지로 분간하기 어렵기도 하려니와, 정치제도 상으로 중국으로부터 당제를 수용한 3성6부와 송제를 수용한 중추원·삼사 그리고 고유의 도병마사·식목도감 등 각기 연원이 다른 중앙정치기구들이 병존하면서 운용상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자율성을 배경으로 한 본관제 시행, 다원적이고 계서적인 군현체제, 양천제와 사·서(士·庶) 구분, 지배층의 문·무·리(文·武·吏) 분화, 사회적 분업(농·공·상)의 법제화, 토지지배관계에서 소유권과 수조권 지배의 공존, 유학·불교·도교·풍수지리사상의 공존 등에 따라 사회·문화가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사회의 다원성과 계서성은 신분제와 지방지배질서에서 두드러졌다. 신분제는 혈통에 따라 양인과 천인을 구별하되, 양인의 신분적 제일성(齊一性)을 추구하면서도 사·서를 구분하였다. 그리고 사회적 분업 상으로 농·공·상을 구분하고 특정 국역(國役)을 지는 잡척을 분리하는 등 계서적 계층질서를 두었다. 한편 지방지배질서는 신라말에 새롭게 정치주체로 부상한 지방세력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고 그들이 활동한 공간의 지역적 다양성을 반영하여 성립하였다. 분권적 자치성을 확보하고 있던 지역 지배층의 자율적 지배를 인정하고 본관제를 시행하여 민을 통제하였다. 그리고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주현-속현체제와 부곡제 등에 의하여 지역별로 계서적 차등을 두었다. 개경은 왕경으로서 지방과 구분되고 본관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한편 종교·사상의 측면에서는 병렬적 다원성이 특히 두드러졌다. 태조 왕건이 훈요10조에서 불교·유교·풍수지리사상을 각기 차별적인 효용성을 갖고 나라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상호보완적이라고 파악하였고, 최승로는 유교는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고 불교는 몸을 닦는 근본이라고 강조하였다. 고려초부터 유교·불교·도교·풍수지리사상·민간신앙 등이 각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면서 팔관회와 같은 국가 의례 속에 통합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문화양상은 고려 문화의 다원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되었다.

또한 고려는 지방세력과 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정책을 우선시하여 소통하면서 통합력을 강화하였다. 중앙집권화의 기조 속에서도 지역사회의 자율성을 인정한 지방지배제도, 표준화된 유학교육제도와 지역 안배를 고려한 과거제도, 전국적으로 잘 정비된 교통 및 물류제도, 체계적으로 갖추어진 진휼·권농제도 등에 의하여 통합과 소통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었다. 각 층위나 요소에 소속된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서로 대립·경쟁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존을 지향하고 소통·교류하는 시스템을 구성하였던 것이다.

물론 고려 국가의 공공성이 약화되면 통합력이 약화되어 삼국유민의식이 재현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었다. 고려중기에 사회모순이 드러나서 농민항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에 삼국부흥운동이 나타났지만 그동안 강화된 통합력 때문에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다.
이처럼 다원성을 구성한 층위·요소들 사이에 소통과 통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회가 경직되지 않고 변화에 유연하여 역동성을 지녔다. 정치의 주도층이 호족→ 문벌→ 무신→ 권문세족→ 신흥사대부로 변화하면서 고대의 골품귀족, 조선의 사대부처럼 장기지속성을 보이지 않은 것은 그러한 역동성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잦았던 정치 주도층의 변화를 정치적 불안정성 탓으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탓이라면 고려왕조가 475년 동안이나 장기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특정 계층이나 이데올로기가 장기적으로 독점적인 지배력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만든 역동성의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려시대의 역사와 문화는 다원성·다층위성을 보이면서도 층위·요소 간에 경쟁과 소통이 이루어진, 곧 ‘다원성·다층위성과 소통의 이중주’ 양태를 보이는 가운데, 역동성도 컸다는 특징을 보인다. 즉 고려 사회와 문화는 다원성·다층위성을 특징으로 하면서도, 층위·요소들 사이가 단절되었던 것만은 아니고 서로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서 사회적 통합을 이루었다. 그런 가운데 특정 계층이나 이데올로기가 독점적 지배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지 못하였고, 사회가 변화에 유연하여 역동적이었다. 그런 역동성은 국제 환경 변화에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되었다.
고려 전기·중기의 동아시아 다원적 국제질서와 후기의 몽골 세계질서 구축에 대응하여 때로는 전쟁 때로는 외교 교섭·교류를 통하여 안보를 도모하고 선진문물을 수용할 수 있었다. 특히 각국과의 다양한 교류와 외국인의 투화·거류 장려는 고려사회의 다원성을 높이는 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문화에 대한 보편주의적 관점과 개별주의적·공동체주의적 관점 사이에 긴장을 유지하여, 고려왕조 500년간 국제적으로 개방적이면서도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들의 생각이다.

이 책이 앞으로 고려시대 역사·문화의 연구 지평을 넓히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과 국제환경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역사담론의 형성에 밑거름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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