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강홍식 傳』 차례
타임라인 1. 프롤로그 2. 일본에서의 배우수업 3. 조선영화에 등장 4. 연극계에서의 활약 5. 레코드계의 스타 6. 고려영화협회와 현대극장 7. 해방과 북조선국립영화촬영소 8. 6.25전쟁의 발발과 「비행기사냥군조」 9. 전후의 활동 10. 에필로그 『강홍식 傳』 자료편 차례 1. 영화단편어 경도일활촬영소에서 2. 기예에 대하여 3. 여주객 4. 「내 고향」 연출 후기 5. [나의 새해 결의] 좀 더 젊었으면…… 6. 예술가의 영예를 지니고 7. [영화인 소개] 연출가 강홍식 8. [1961년을 맞이하여] 더 높은 항쟁의 노래를 위하여 9. 우리의 승리, 오늘의 행복 10. 세상에 부럼 없는 나 11. 수령의 보살핌 속에서 |
한상언의 다른 상품
|
영화배우에서 대중가수까지 만능엔터테이너
『월북영화인 시리즈』2권은 조선연예계의 만능 엔터테이너, 강홍식의 생애를 담은 평전과 그가 쓴 글들로 구성되었다. 1917년 일본으로 건너간 강홍식은 최승희 보다 먼저 일본의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제자가 되어 무용을 배웠으며 아사쿠사의 도쿄가극단 배우, 일본의 영화회사 닛카츠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1927년 심훈이 연출한 [먼동이 틀 때]에 출연하면서 조선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취성좌, 조선연극사 등에서 배우 겸 연출자로 활동했으며 1930년대 들어서는 가수로 활동했다. “봄이 왔네 봄이 와..”로 시작하는 [처녀총각],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로 시작하는 [유쾌한 시골영감] 등을 불러 유명했으며, 1940년대에는 다시 배우로 복귀하여 고려영화협회에서 제작하는 [복지만리](1941), [집 없는 천사](1941) 등에 출연했으며 유치진이 이끌던 현대극장에 입단하여 배우로 활동했다. 해방을 북한에서 맞은 그는 그곳에 남아 영화감독 겸 배우로 활동했다. 특히 북한 최초의 예술영화인 [내 고향](1949)을 연출하여 북한영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이후에도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영화감독 겸 배우로 활동하여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1960년대 후반에 숙청되었으나 사후 복권되었다. 영화배우 최민수의 외조부로, 강홍식-전옥, 강효실-최무룡, 최민수로 이어지는 배우 집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