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독백
고향으로 빈집, 하얀 나비 그가 말했다 재회 |
박정선의 다른 상품
|
일 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내러 가는 고향 집은 할아버지를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옛날에 지어진 육중한 대문에서부터 서너 채 기와집과 넓은 마당을 돌아 뒤뜰 대나무 숲까지 근엄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우리 집은 할아버지 그 자체라고 해야 옳다. 그러므로 우리 고향 집은 고향 사람들도 함부로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우리 가문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 p.21
우거진 숲을 배경으로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집은 그냥 바라만 보아도 권위적이 다. 고관대작이 살았던 집이거나 왕족들이 궁궐을 벗어나 따로 살았다는 이궁처럼 보였다. --- p.51 “가서 니네 할아버지께 전해, 군수 댁 제사 음식 따위는 개나 줘야 한다고.” --- p.86 그날도 친구와 함께 교수님 인쇄물을 찾으러 갔었고, 우리가 인쇄소로 들어가는데 바로 옆 인쇄소에 서 나오는 남자가 있었다. 다소 긴 머리가 얼굴을 가렸지만 머리카락 사이로 눈빛이 선명하게 빛났다. 나는 직감적으로 준호를 떠올렸다. --- p.129 누가 하나하나 자세하게 읽어 준 것처럼 그의 기도 소리가 내 귀에서 맴돌았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가슴이 서늘해진 것 은, 어릴 때 그가 나에게 쏘아붙였던 말이 다시 떠오른 탓이었다. 준호가 그들이라고 지칭하는 무리 속에 우리 할아버지가 포함된 것만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 p.156 |
|
“하지만 여전히 두렵기는 마찬가지예요.
제가 과연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정말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국가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 매 순간 고민하고 갈등하고 선택해야 하는 개인의 존재에 대하여 소설의 주인공 이함은 친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 즉 조부들의 친일 덕분에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판사직에 오른다. 반면, 이함과 비슷한 연배의 김준호는 독립운동을 한 조부 때문에 극빈자로 살다가 열악한 환경 탓에 폐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소설은 김준호와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나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이함의 죄책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심리적 갈등과 고민을 박진감 있게 서술한다. 소설은 이함 조부의 친일행적과 이와 대비되는 김준호 조부의 독립운동 행적들을 보여주며 광복 이후, 우리 사회에서 친일과 반일의 프레임이 어떻게 작용됐는지 보여준다. 특히 이함의 조부는 일제 말기에 군수를 지낸 인물로 일제의 파시즘 체제를 공고화하는 데 기여했고, 이는 김준호의 비극적 가족사와도 연결된다. 해방 직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 세력은 소설 속에서 ‘한남동 할아버지’(이함의 작은할아버지)로 대표되는데, 이 인물은 독재정권과 결탁해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한다.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이함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신념 사이에서 갈등한다. 할아버지로 상징되는 가문과 김준호, 아버지로 상징되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길을 고뇌하는 것이다. 특히 이함의 망설임은 그저 탐욕적인 악인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조부의 인물됨과 관련하여 더 심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조부는 학식과 교양을 겸비한 인물로, 손녀인 이함에게도 훌륭한 어른으로 기억되어 있다. 작가는 친일 고위 관료였던 조부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함의 고민이 왜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는지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함의 행복한 유년기를 만들어준 집안의 추악한 과거, 이함은 50여 년이 지난 후, 가문의 얼룩진 행적들을 단죄할 수 있을까? “우거진 숲을 배경으로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집은 그냥 바라만 보아도 권위적이다.” 집과 유산, 그 의미에 대하여 이함은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의 고향인 상암리로 향한다. 상암리는 그녀의 집이 있는 상리와 김준호의 집이 있는 하리로 나눠진다. 상리는 마을 전체를 볼 수 있는 높은 지대에 있고, 하리는 푹 꺼진 지형으로 비가 많이 오면 번번이 집이 물에 잠겼다. 이러한 공간적 배경은 이 집에 사는 인물들의 삶과도 고스란히 연결된다. 김준호가 살면서 겪은 고난의 시간들은 마치 퍽퍽하고 낡은 그의 고향 집과 닮아 있었고, 이함은 그녀의 기세 좋은 고향 집 마냥 순탄하고 여유로운 삶을 걸었다. 또한 집은 조부와 집안, 가계 등을 의미하며, 언젠가 이함이 물려받게 될 ‘유산’이라는 점에서 이 글의 제목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유산은 이함과 그녀의 고향 집처럼 이미 주어진 것이나 물려받은 것과 같이 고정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함이 자신의 집안이 걸어온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려고 하는 시점부터 유산의 의미는 철저히 남은 자의 몫으로서 변화의 의미를 가진다. 세상의 온갖 권력과 권세를 흡수하던 그곳, 상암리 고향 집. 가문의 모순을 깨달은 후손이 선택한 길에서 이 집의 운명은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 남겨질 유산은 무엇일까? 작가 박정선은 소설 속에서 상징적 소재들을 활용해 친일 청산 문제의 본질이 이제는 우리 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