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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방 직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귀국으로 시골 농촌에서 자랐다. 큰 대문이 달린 초가집에서 대가족이 소작농으로 살았다. 전기는 그 실체도 모른 채 등잔불로 살았으며, 수돗물은커녕 한참 걸어가야 만나는 우물물을 길어다 마셨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진학은 어림도 없었다. 솜씨 좋으셨던 어머니께서 한산모시 길쌈을 팔아 보태셔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남다른 교육열 덕에 근근이 중학교는 입학했으나, 등록금 독촉에 한 학기도 못 버티고 말았다.
이후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여 북아현동 노고산 밑에 담배 가게를 열었으나, 집주인이 알량한 보증금 반환도 없이 집을 팔고 이사 가는 바람에 그 돈마저 떼였다. 할 수 없이 다시 낙향하여 입학 철 지나 면 소재지 동강중학교에 재입학했다. 이른 새벽 눈 비비고 일어나 낡아 빠진 원동기로 돌리던 방앗간과 논밭 일을 거드느라 등하굣길에 영어 단어 몇 개 외우는 게 고작 하는 공부였다. 형편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 국비 고등학교를 염두에 두었으나 영어선생님은 내 실력이 못 미친다며 대신 강경상업고등학교를 권했다. 함께 시험 치러 간 친구 고모 집에 신세 지며 응시했는데, 혼자 합격하는 바람에 부모님이 차마 외면을 못 하시고 입학시켜 주셨다. 하지만 자취방을 얻어주시고 몇 푼 되지 않는 차비가 없었던 아버지는 40여㎞ 귀갓길을 걸어가셨단다.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다닐 때 부족했던 학력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공부에 매진한 덕에 조흥은행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늦깎이로 입행하는 바람에 바로 군에 다녀와야 했고, 입행했던 동대문 지점에 복직 후 인사과로 영전되는 행운도 따랐다. 그 덕에 일찍 직장에 대해 눈뜰 수 있었고, 광화문지점으로 전근되었을 때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갑자기 중견 행원들의 입행 전(前) 군 경력을 소급해 인정하는 바람에 수혜를 받은 대졸 행원들의 출근부가 나보다 앞장으로 넘어갔다. 당시 출근부는 서열 순이었기 때문이다. 입행 동기들과 조직적으로 반대 투쟁에 나서 인사부 압력을 견뎌내며 수천 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결국 인사에는 배제되고 급여만 반영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고 출근부도 원위치로 되돌려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조의 요청에 따라 집행부에 참여하게 되었고, 교선부장과 총무부장을 거쳐 조합원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부위원장에 당선되었다. 당시 해외연수가 힘든 시절이었지만 이스라엘 연수 기회도 잡았다. 국비 초청이었고 텔아비브 소재 아프리카 아시아 연구소(Afro-Asian Institute)에서 ‘개발 도상국가의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역할’이란 주제로 20여 개국의 60명 지도자와 함께 공부했으며, 주말마다 성지순례도 빠짐없이 다녔다. 연수를 다녀온 덕택에 노조위원장에도 무난히 당선될 수 있었으며, 힘없고 소외된 조합원 편에 서겠다던 정견 발표 때 공약들까지 꼼꼼히 챙기면서 7년간의 노동운동을 대과大過 없이 마쳤다. 이후 인사부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핵심부서인 국제부 외화자금과 대리로 복귀하였으며, 샌프란시스코 주재원을 거쳐 과장 승진에 이어 동기 중 단독으로 차장에 승격하였다. 또 조흥은행 최초 고졸 노조위원장, 해외 연수, 국제부 대리 및 샌프란시스코 주재원, 경영학 석사학위까지 상고 출신들이 얼씬도 못하게 했던 분야마다 정면 돌파하여 작은 고졸 신화를 이룩해 냈다. 하지만 인사카드에는 여전히 그냥 ‘고졸’이었다. 작심하고 신설된 동화은행으로 전직하자 인사카드의 학력도 실제대로 대학원 졸업으로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학력 차별 없는 세상에서 공정한 경쟁을 기대했으나, 출신은행 간 파벌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업부 창업을 마치고 첫 발령을 받은 서교동 지점 개점식 때였다. 노조위원장 출신의 콧대를 꺾어야 한다며 개점식에 참석하신 은행장이 방명록에 ‘축 폐점(閉店)’으로 써놓으시고, 축사도, 테이프 커팅도, 금고 개비식도, 심지어 내빈 축하연까지 몽땅 망쳐놓는 망신을 주고 가셨다. 그러나 은행장의 횡포에 대항하지 않고 묵묵히 인내한 보은으로 단번에 서울 한복판 태평로 지점장으로 영전되었었다. 그 후부터는 주요 부서장을 거치면서 순조롭게 경험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IMF 환란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멀쩡했던 동화은행은 타살되는 불운을 맞고 말았다. 33년간의 성실하고 화려했던 금융인 경력이 송두리째 무용지물이 된 가운데, 졸지에 백수가 된 것이다. 어쩌면 은행장 한 분의 일방적 지시에 좌우되는 패도경영(覇道經營)과 파벌이 만연된 은행의 최후 모습이란 생각도 들었다. 졸지에 직장을 잃었지만, 잠시 자산관리공사 관리인을 거쳐 공채로 저축은행 대표이사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통하여 정상화되어 갈 때, 모기업 회장의 부당한 지시에 직면했다. 그간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임직원들의 주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회장의 부당한 지시를 단호하게 거절한 후 사임하는 길을 택했다. 다행스럽게도 또다시 재취업한 예금보험공사 파산관재인을 끝으로 파란만장했던 37년간 금융인 삶을 무사히 마감하고 행운의 정년퇴직을 맞았다. 퇴직 후에는 친구들과 우편정보 아웃소싱 회사를 창업하여 대표이사를 맡았다가 자진해서 그만두고, 적성에 맞고 보람된 일로 생각되던 ‘선진 재기 시스템’ 구축 사업에 뛰어들었다. 서울법대 연구과정에서 배운 선진제도를 실천하기 위해서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실패 기업인들의 재기 컨설팅, 그리고 미국식 회생전문가 교육 사업에 착수한 것이다.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후배 금융인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도 만들어주고 싶었다. 나 자신도 졸지에 은행 퇴출로 길거리에 나앉는 고통을 겪었고, 파산재단의 탈·불법 대출로 인하여 수많은 부도기업과 채무불이행자를 양산하는 금융소비자 피해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것들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나는 온-오프라인에서 수천 명의 부실중소기업과 채무불이행자들의 무료 상담을 맡으면서 약 700명의 회생경영사CTP를 양성했다. 그리고 사단법인 한국기업회생경영협회 허가를 받아 냈으며, 국제회생경영협회TMA 한국지부 가입까지 추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안산지청의 기획수사에 걸려들어 변호사법 위반죄로 구속되는 날벼락을 맞고 말았다. 고소인이나 피해자는 물론 부도덕한 일마저 한 적이 없었고, 서울대 법대 연구과정에서 배운 대로 최대한 합법적인 방법으로 ‘선진재기제도’ 구축에 10여 년간 사재를 축내가면서 봉사했다. 그럼에도 우리 상담사들이 이직 후 타 로펌에서 취급했던 개인회생 및 파산 사건으로 인해 변호사법 위반죄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과거 우리 연구소에서 취급했던 사건까지 소급되면서 당시 대표이사였던 책임을 추궁당한 것이다. 완전 불모지에서 이루어놓은 공든 탑인 선진재기제도가 공권력에 의하여 하루아침에 여지없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아무리 몸부림쳐 봐도 현실을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합의해 줄 피해자조차 없이 구속되면 더욱 나갈 수가 없단다. 결국 더 이상 선진재기제도를 추진할 수 있는 열정도 수단도 남아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잃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삭이고 달래가며 옥중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저술을 결심했다. 지난 13년간의 활동 내용을 중심으로 수백만 부실기업과 실패 기업인들의 필독서를 기록으로라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루하루 채워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초급 행원으로 입행해서 학력 차별을 극복해 가며 성공적인 금융인으로 마칠 수 있었던 37년간의 소중한 경험, 전직을 통하여 자율 경영이 가능했음에도 퇴출이라는 비운을 맞아 결과적으로 부실기업과 채무불이행자 양산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한 금융인의 참회를 글로 남겼다. 그리고 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고자 지난 13년간 뛰어들었던 금융피해자 구제 차원의 선진재기제도 구축 활동과 지난 환란 이후 누적되어 온 금융적폐 청산의 필요성을 기록했다. 아울러 서민금융 시스템을 재건하기 위한 정책 제안, 불공정하게 구제된 채무불이행자 224만 명의 금융적폐 청산과 선진재기제도 도입법 개정 국민청원 요청, 50년 금융인의 종착역이 되어버린 기막힌 옥중 단상 등을 진솔하게 엮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출간을 흔쾌히 결심해 주신 권선복 대표와 수고하신 전재진 편집장을 비롯한 출판부 직원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원고를 완성하기까지 많은 자문을 해주신 이종춘 회장님을 비롯한 장영희 단장과 신종섭 친우, 그리고 아낌없는 격려와 지지를 보내준 친지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쉼없이 달려온 인생길에서 기쁠 때나 힘들 때나 항상 내 편이 되어준 아내와, 뉴욕 다국적 기업에서 편집장으로 바쁘게 일하면서도 초고부터 끝까지 바른 길잡이 역할을 해준 외동딸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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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신용불량자를 두고 마치 범죄자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아직도 많습니다. 평범한 서민이 한순간에 몰락해 범죄자 취급을 받고 주저앉는 것이 과연 한 개인만의 잘못일까요?
‘서민’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 벼슬을 못한 사람, 또는 귀족이 아닌 범민, 넉넉하지 못한 중류 이하의 백성’입니다. 사회적으로 보자면 신용도가 낮거나 소득이 적어서 은행 거래를 하기 어려운 계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의미의 서민들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상당수 신용불량의 절벽으로 내몰렸고, 국가와 제도권 금융사가 외면한 서민들을 상대로 사채가 극성을 부렸습니다.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1998년부터는 외국 사채업자들까지 들어오기 시작했고, 국가의 외환관리 부실로 찾아든 위기로 인해 금융권으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은 그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사채 피해 상담을 하면서 고리사채로 신음하시는 분들을 보며 저도 가슴이 아팠고, 이분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민금융연구원을 설립,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서민금융에 대한 애착과 금융인으로서의 양심을 갖은 분이 또 계셨네요. 이 책 『금융인의 반란』에는 흙수저에서 출발해 직업 금융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상층부까지 두루 경험하며 대한민국 금융의 민낯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이기철 저자의 인생 역정과, 선진재기제도 정착을 통해 대한민국의 몰락한 서민금융이 다시 본궤도를 찾을 수 있는 방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論語(논어)』 「子罕篇(자한편)」에는 “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고장 난 금융시스템이 양산한 신용불량자들의 회복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금융인의 반란』에서는 대안으로 선진재기제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회생경영사들이 이기철 저자의 노력으로 탄생했고, 이제 그들의 활동 시스템만 구축된다면 개인이 신용 회복을 통해 건전한 경제인으로 사회에 복귀하는 데에 우리 금융이 크게 일조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께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시리라 생각하며, 저자처럼 서민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분들이 많아져 함께 잘사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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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저자와의 만남은 특별하다. 2015년 9월경 저자가 내 사무실을 방문하여 미국 Turnaround Management Association 과의 협약을 추진하기 위한 자문업무를 요청하였을 때, 나는 저자의 열정을 느꼈다. 이분은 특별한 분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저자와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저자의 삶의 궤적을 관찰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저자는 자신을 위해서 살기도 버거운 마당에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구제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무려 10여 년간 서울법대 연구과정에서 배운 선진재기제도를 몸소 실천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막대한 사재를 투입했고, 남의 눈에 띄거나 관계당국의 지원을 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일에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관계당국을 비롯한 많은 유관기관에 정책을 제안하며, 각종 대책회의나 세미나에 참석하여 채무자 중심의 선진제도 필요성을 주장해 온 저자의 열정에 나는 감탄을 하였다. 저자의 열정은 내가 따라하고 싶으나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느끼면서,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선진재기제도는 회생전문가와 채무자 중심의 민간단체 육성, 그리고 채무자 중심의 채무조정·중재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법적 기반인 전치주의前置主義를 제도화하여 시장자율 채무조정·중재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내가 만난 회생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선진재기제도의 필요성에 공감을 하고 있다. 나는 저자가 이루어놓은 선진재기제도에 대한 노하우가 한국의 회생 및 재기시스템을 좀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를 넘어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회생경영학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고객과 직원 존중, 지배구조의 중요성, 부실기업의 선제적 대응전략과 회생경영, 그리고 실패기업인들과 채무불이행자들의 재기 성공담 등 매우 실용적인 회생지식을 저자가 실제 상담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여타 회생관련 책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생생한 현장 지혜를 담고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실 징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그리고 실패기업인들 및 저신용자들에게 유익한 지혜서가 될 것이다. 저자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참으로 가치가 있는 일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열정과 노력이 녹아있다. 독자가 이 책을 펼치면 저자의 땀과 노력, 그리고 열정을 눈에 보듯이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개인 및 기업의 재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 김재헌 (법무법인 천고 대표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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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은행에서 저자를 처음 만났으나 지난 환란 시 은행이 퇴출되는 바람에 서로 다른 길을 가다 예금보험공사에서 재회하였다. 당시에도 저자가 근무했던 저축은행의 무과실에 기인한 대표이사 책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모기업의 부당한 지시를 마다하고 자진 사퇴하면서까지 경영부실을 막아낸 불가피한 사건이었지만, 상호신용금고법상 무과실 책임 조항이 살아있을 때여서 동 조항에 의한 불이익을 당한 것이다. 결국 예금보험공사 법무팀의 의협심 강했던 이 대리의 수고로 헌법소원까지 간 끝에 승소하여 면책 구제를 받았었다.
그 후 저자가 설립한 협회에서 다시 만나 부실중소기업 구조조정과 실패 기업인들의 재기를 위한 선진제도 도입을 위하여 함께 뛰었다. 예금보험공사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한 부실금융기관의 채권을 회수·관리하는 파산재단 업무의 연장선인 셈이다. 수백만 부실중소기업의 구조조정과 실패 기업인들의 구제를 위한 회생전문가 양성, 그리고 재기 또는 파산 정리를 돕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인생이 굴곡이 없으랴마는 도전정신과 포기할 줄 모르는 저자의 삶은 특별히 드라마틱한 점이 많고 금융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가슴 따뜻한 인간 승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선구자적 불굴의 용기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의 불꽃이었다. 그리고 그는 탁상공론하기보다는 바로 실천하는 행동가였다. 거친 파도가 강한 뱃사람을 만들어내듯, 선진제도 도입을 위하여 숱한 시련과 고난이 저자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으로 끊임없이 연구하며 정책 개발에 충실했다. 저자는 자기가 맞닥뜨린 수많은 난관을 포기하지 않고 강하게 돌파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로 수요자 중심의 미국식 회생경영사CTP 양성과 협회 설립, 그리고 20여 선진국들이 가입하고 있는 국제회생경영협회TMA까지 가입하는 선진재기제도의 초석을 확실하게 이루었으며, 그 고난의 여정을 이 책에서 소상히 담아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인 열정, 재도전, 헌신, 신뢰의 미덕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누구든 작심하고 공통점을 실천하면 자기 삶에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에서 증명하고 있다. 특히 예기치 않았던 황당한 옥살이 중에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이 말의 진정한 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준 책으로, 소외된 이들과 후배 금융인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 이용복 (前 예보 조사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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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라는 정글의 법칙만이 냉정히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데 실패한 이들에게 재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반면 이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배려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문제를 혁신해 보겠다고 여생을 바쳐온 열렬한 투사이자 행동가며 실천가인 한 금융인이 있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 끊임없는 수학과 자기계발을 통해 승승장구하면서 요직을 두루 섭렵했으면서도 IMF 환란에 따른 은행 퇴출로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그러나 틈틈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은 탓에 어렵지 않게 저축은행 사장을 거쳐 예보의 파산관재인에 선임되었었다.
저자는 부임한 재단에서 저축은행 고의 사고로 인한 수만 명 금융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직접 목격한 후에야 금융인으로 살아온 본인도 가해자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여생을 금융피해자 편에서 낡은 제도를 혁신하는 일에 헌신했다. 파산과 회생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채권기관들이 의도적으로 자기 이익에 유리하게 만들어 놓은 금융 시스템 속에서 발생한 고장 난 금융의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요자 중심의 선진재기제도 확립이 절실했다. 이를 위해 무려 13년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감옥이 종착역이 되어버린 억울하고 기막힌 사연도 부록에 담았다. 금융자본주의는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선택한 시스템일 테지만, 이러한 제도에서 낙오된 실패인들을 재기시키려는 노력은 어쩌면 채권기관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제도가 최선이라는 고정관념이 골리앗처럼 버티고 있다. 저자는 이에 맞섰다가 땀 흘려 10여 년간 추진했던 연구소의 문을 닫아야 했고, 그동안 양성한 약 700명의 회생경영사 회원들과 수많은 부실기업·실패기업인을 위한 협회의 내일이 풍전등화에 놓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어떻게, 누가, 책임지고 해결해 내야 할지 공권력은 생각이나 해 보았을지? 또한 성실히 평생 금융인으로 살아온 인생이 감옥에서 멈춰버린 처절한 결과에 대한 보상은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아야 하는 건지도…. 아마도 그 답은 수백만 부실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그리고 실패 기업인들이 수월하게 재기할 수 있는 선진재기제도가 구축되어 결국 금융회사의 건전성 확보도 건강한 금융소비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는 데 기여한 금융인으로 기억되는 것이 저자가 바라는 유일한 보상일 것이다. 친애하는 회생경영사 여러분! 우리 다 함께 심기일전하여 겹겹이 쌓인 금융 적폐 청산과 선진재기제도 완성을 위한 기업회생경영사CTP 제도의 법적 기반을 갖추기 위한 관련 법 개정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국민청원에 동참하여 기필코 이루어 냅시다. - 김병준 (㈔한국기업회생경영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