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下)권
귀향 歸鄕 서당 書堂 축성 築城 민란 民亂 애정 哀情 낙조 落照 작가의 말 |
오세영의 다른 상품
|
실학이란 무엇인가.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이용후생(利用厚生)으로 백성을 이롭고 윤택하게 하는 것 아닌가. 약전은 틀림없이 흑산도에서 실학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 원형으로 된 성이 있다. 둘레와 지름의 길이는 알 수 없는데 사면에 문이 있다. 을이 남문을 나와서 똑바로 백삼십오 보를 걸어가서 어느 지점까지 왔다. 그리고 갑이 동문을 나와 똑바로 십육 보를 걸어간 곳에서 그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성의 지름은 얼마인가? “답은 이백사십 보입니다.” 정답이었다. “풀이는?” 약전은 감탄을 억누르며 해답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물었다. 수학에서 풀이 과정은 답보다 더 중요하다. “먼저 천원(天元)을 설정해서 성의 반지름으로 삼고 남행보(南行步)로 고(股 높이)를 정한 후에 여기에 동행보(東行步)를 더하여 구(句 밑변)를 얻습니다. 그리고 현(弦 빗변)을 구하고서 이것으로 현멱(弦冪 빗변의 제곱)을 얻어서 차례로 구멱(句冪 밑변의 제곱)과 고멱(股冪 높이의 제곱)을 계산한 다음에 이들을 가감해서 반경(半徑)을 산출하면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최종문이 차분하게 풀이를 설명했다. 나무랄 데 없는 풀이였다. 최종문은 기대 이상으로 완벽하게 풀이를 한 것이다. 약전은 기뻤다. 흑산도에서 이런 인재를 만나게 될 줄이야. 최종문은 정녕 한양에서도 찾기 힘든 인재였다. --- 본문 중에서 |
|
격변의 시대를 살아 간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전
흑산도에서 실사구시 실학의 꿈을 펼치다 소설 『자산어보』는 정치 경제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던 18, 19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1801년 신유사옥 때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를 만드는 과정과 어민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설이다. 이 당시 양반 지배계층은 천주학과 서학을 비롯해 밀려오는 서양 문명의 물결 앞에서 공리공론과 당파싸움에만 몰두하여 서민의 삶을 돌보지 않았다. 이후 19, 20세기, 나라 안팎으로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던 이 시기에 천주학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서해의 외딴섬으로 유배된 실학자 정약전은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유배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뇌한다. 그리하여 바닷가 어민들의 목숨이 걸린 상황을 맞닥뜨리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소설 『자산어보』에서는 어지럽고 지난했던 조선후기 사회상이 농민과 어민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어부와 잠녀들의 일상사나 표류민들의 애환, 홍경래의 난으로 봉기한 농민들과 그로 인해 쫓기는 잔당의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또 옥패의 친구인 이국영과 허회영의 결혼을 앞두고 죽은 줄만 알고 있던 고상운(이국영의 남편)이 살아돌아온 것이나 노비의 신분으로 은인과 정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야기 등은 남성우위 및 봉건제 신분 사회의 한계와 특성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한편 서원의 동주(원장)가 서민들이 공부하던 사촌서당의 맥을 끊기 위해 약전과 최종문(약전의 제자)을 배척하고 고사시키려 했던 모습은 조정의 비호 아래 외딴섬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서원의 행태와 조개껍질 속으로만 숨으려 했던 조선후기 보수 지배계층의 단순무지함이 결국 근대사회 우리 국운을 몰아갔음을 암시한다. 소설 『자산어보』는 격동기 조선사회의 이면을 주된 배경으로 하면서 탄탄한 구성과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의 결합을 통해 감동적인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동시에 절망적인 생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실천하는 지식인인 정약전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인과 리더의 모습을 반영한다. 희귀한 소재로 우리에게 필요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소설 『자산어보』는 역사소설의 품격을 한 단계 더 높일 것이다. |